[편집자주] ACT! 에서는 다큐멘터리 창작자가 쓰는 다큐 리뷰를 연재합니다.
첫번째 장편 제목은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두번째 장편 제목은 <박강아름 결혼하다>. 만드는 영화마다 자신의 이름 네 글자를 새겨넣는 사람이라니. 박강아름은 어떤 사람일까. 이제부터 나의 이야기, 박강아름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궁금해하든 아니든 그런 것에 상관 않고 나는 내 이야기를 하겠다고 눈을 반짝거릴 것 같은 사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처음 본 건 나의 첫 장편 <어쩌다 활동가>를 한창 제작하던 시기였다. 오프라인이고 온라인이고 할 것 없이 세상에 공개된 각종 자전적 다큐멘터리를 찾아 보기 시작하던 때에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주관하는 독립영화 쇼케이스를 통해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관람했다. 여성의 결혼과 임신 및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꽤나 익숙한 서사 안에서 박강아름이라는 여성이 스스로의 가부장성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인상깊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박강아름 감독의 모습이 계속 등장하는데 다수의 장면들이 박강아름 감독이 직접 셀프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카메라를 잡아줄 사람이 없어 그렇게 시작하나보다 했는데, 이번에 리뷰를 쓰면서 다시보니 설치하는 장면 자체를 노출시키려는 연출적 의도가 느껴졌다. 그의 전작인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까지 돌이켜 살펴보니, 그에게 있어 다큐멘터리란 일종의 셀프 퍼포먼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실제로 <박강아름 결혼하다>에서 그는 이런 내레이션을 읊는다. “퍼포먼스와 비디오 아트를 다큐멘터리로 연결해 내 작업 세계를 더 깊게 깊게 팔 생각이었다.”
박강아름 감독이 임신 이후 몸이 겪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는 장면이 있다. 이때 박강아름은 누군가와 통화 중인데, 통화를 녹화하기 위해 카메라를 켜는 과정과 전화가 끊긴 뒤 카메라를 끌지 말지 고민하는 찰나의 순간까지 모두 한 장면에 담겨있다. 통화 직전에 녹화를 계획했던, 아니면 훨씬 이전부터 계획했던 어쨌든 그것이 계획된 촬영이라는 것을 숨김없이 드러냈다는 게 내겐 낯설게 느껴졌다. 감정적 씬을 촬영 혹은 편집할 땐 인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장치들은 최대한 빼는 것이 내겐 익숙하고 일반적이었으니까. 그래서일까, 그의 말이나 행동이 진심이고 진실인 것과는 별개로, 셀프카메라를 통해 담긴 그의 모습이 어떤 점에 있어선 퍼포먼스처럼 기능하는 부분도 있다고 느껴졌다.
그의 이전작인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는 그야말로 퍼포먼스의 향연과도 같은 다큐멘터리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어떤 외모로 살아야 연애하는 여자로 살아갈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퍼포머로서의 박강아름 감독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외모 실험의 주체이자 객체가 되어 자신의 외모를 바꾼 채 거리를 걷고 소개팅을 나간다. 재미교포처럼 분장을 하고, 교복을 입기도 하며, 어떨 땐 히잡을 쓰고 등장하기도 한다. 다큐멘터리를 빌미로 거대한 실험의 장을 만든 박강아름 감독은 이 모든 과정을 즐기는 듯하다.
다큐멘터리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삶을 실험해보고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늘 흥미를 느껴왔다. ‘나’의 삶에 발생한 사건을 궁금해하고 사유하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 하기까지 뚝심있게 밀어붙이는 용감한 연출자를 보고 있자면 나도 덩달아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커스틴 존슨 감독이 만든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도 언급하고 싶다. 감독은 아마 이런 질문으로 영화를 시작한 게 아닐까 싶다. ’살아 생전에 나의 장례식을 보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이 질문 앞에서 감독과 감독의 아버지인 딕 존슨은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계획하고 수행하고 때론 연기도 한다. 일련의 과정들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안에서 시도 되었다는 점이 극영화와는 다른, 매우 독특한 감상을 가져온다. 실제와 허구 혹은 상상을 엮어 만든 무엇. 그리고 그 무엇은 관객에게 있어 거짓보다는 진실에 가깝게 느껴진다. 퍼포먼스를 통해 다큐멘터리스러운 진실에 도달하는 것. 나는 이런 방식으로 진실을 구축해나가는 창작자를 퍼포머로서의 다큐멘터리스트라고 부르고 싶다.
<박강아름 결혼하다>의 엔딩은 그간 봤던 다큐멘터리 영화 모두를 통틀어 손에 꼽게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날, 덩케르크 바다에서 남편 성만과 바닷가로 들어가는 장면.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유모차를 나눠 들고, 종종걸음으로 바다에 들어가고, 박강아름 감독이 요리조리 몸을 돌려가며 사진을 찍고, 강풍을 맞으며 휘청거리고, 또다시 유모차를 나눠 들고 모래사장을 걷는, 5분이 훌쩍 넘는 롱테이크를 보며 두 사람이 나눴을 대화를 혼자 상상해본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성만을 굳이 바다로 데려가는, 그야말로 독불장군처럼 구는 박강아름 감독이 살짝 얄미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는데, 혹시 또 모르겠다. 그 모든 건 퍼포머이자 다큐멘터리스트인 박강아름 감독의 큰 그림일 수도.□
글쓴이. 박마리솔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면 연기든 연출이든 뭐든 다 하고 싶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 매주 꾸역꾸역 에세이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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