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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에 장애가 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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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3. 12. 2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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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38호 Me,Dear 2024.01.04.]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에 장애가 되는 것은,

 

양현아

 

 

 

비장애인이 영화관 장애인석에 앉아볼 일이 있을까요? 장애인석은 장애인증(복지카드)이 있어야 앉을 수 있는 자리기 때문에 비장애인은 앉을 수도, 예매해서도 안 되지만 얼마 전 저에게 장애인석에 앉아볼 기회(?)가 생겼어요.

 

먼저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저는 주변에서 제법 알아주는 영화 덕후입니다. 봄엔 전주국제영화제, 여름엔 정동진독립영화제, 가을엔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 겨울엔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영화제를 척도 삼아 4계절을 인지할 정도로 영화제와 영화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10시면 눈이 감기는 체력이 되었지만, 서독제를 알게 된 후로는 티켓 예매 창이 열리면 제일 먼저 심야상영 회차 밤새Go’부터 잡습니다. ‘밤새Go’란 밤 12시 막차 시간부터 새벽 5시 반 첫차가 운행되기 전까지 서독제의 상영작들을 틀어주는 회차를 말하는데요. 체력 소모가 여간한 것이 아니지만 가장 많은 상영작을 관람할 기회기 때문에 절대 놓칠 수 없죠. 저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씨네필 사이에서 인기 회차라 실제로 일찍 매진되기도 합니다. 서독제 기간 동안은 주말엔 밤샘 상영을 보고, 평일엔 퇴근하자마자 숨도 못 쉬게 압구정으로 뛰어가 상영작을 관람하는 일의 반복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으실까 싶어요. 영화는 삶의 활력과 비타민이 되기도 합니다. 소개가 거창하고 길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볼게요.

 

 

지난 128, 49회 서울독립영화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어요. 올해 서독제의 상영작은 단편, 장편 할 것 없이 훌륭한 영화가 많았습니다. 수많은 관객으로 극장이 북적거려 모처럼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어 행복했어요. 저에게 일어난 한 사건이 아니었다면 더없이 완벽했을 시간이었죠.

 

부국제에서부터 정말 보고 싶은 영화 한 편이 있었는데요. 부국제에선 티켓팅에 처참히 실패했기 때문에 서독제에선 꼭 관람하고 싶었어요. 워낙에 화제작이었기 때문에 티켓 구하는 일이 여간 쉽지 않았습니다. 심야상영 회차부터 잡는다고 조금 주춤했더니, 해당 상영작의 티켓은 금세 매진돼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영화덕후들은 티켓 오픈날 원하는 상영작의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고 관람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서독제 상영작은 당일 취소가 안되지만, 상영 전날 예매 취소 시 티켓값의 100% 환불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전날에 취소표가 가장 많이 풀리죠. 때문에 영화 상영일 전날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취켓팅(취소표를 티켓팅하는 일)’을 노립니다. 그렇게 저는 상영 전날 밤, 보고팠던 영화의 취켓팅에 성공했습니다. 제가 잡은 자리는 압구정 본관 32관의 맨 뒷자리인 H14번 자리였어요. GV가 있는 회차는 앞자리에서 보는 것을 선호하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어쨌든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니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집에서 영화관까지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였습니다. 여유 있게 출발해 넉넉히 일찍 영화관에 도착했습니다. GV까지 집중해서 보려면 상영 시작 전 화장실은 필수 코스입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산뜻하게 극장으로 입장했습니다. 티켓 검수를 해주시는 스태프분이 영화 티켓을 보고 상영관을 안내해 줬고 극장으로 들어섰는데, 문제는 이때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리로 가보니, 상영관 H9번부터 14번까지는 장애인 마크가 그려져있는 카펫이 깔려있고, 그 위엔 접이식 영화 의자가 놓여있었습니다. 제가 예매한 자리가 장애인석이었던 것입니다. 티켓에는 일반이라고 쓰여있었고, 예매할 때도 어떠한 안내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상영관 입구로 다시 돌아가 스태프분에게 티켓을 다시 보여주며 장애인석 같은데 비장애인인 제가 앉아도 되는 것이냐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태프분은 당황한 듯 확인해보더니 예매하신 좌석은 장애인석이 맞고, 장애인석은 규정상 일반인이 앉을 수 없으니 장애인증이 없으시다면 환불해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장애인석을 아무런 안내 없이 비장애인에게 판매한 것은 극장 측 실수인데, 관객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어야 하는 이 상황이요. 이런 상황에서 영화 티켓값을 환불해주는 것이 적어도 제게는, 최선의 보상일 수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이 영화를 기대하고 기다려온 마음이 한순간에 꺾이는 기분이었습니다. 상영 전날까지 온신경을 집중하여 티켓을 알아본 후 예매하고, 시간과 돈을 내어 극장까지 왔는데 갑자기 환불이라니요. 저는 이 영화를 꼭 보고싶다고, 예매과정에서 장애인석이라는 안내가 없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장애인석인 줄 알았다면 애초에 예매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자 매니저분은 그러면 일단 극장에 입장하시고 상영관 불이 꺼질 때 슬쩍 해당 좌석에 앉아 보시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제값을 주고 극장에 입장했으나 웬일인지 무임승차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른 관객들이 착석하기를 기다렸다가 극장이 어두워질 때쯤 장애인석의 접이식 의자를 끌어내 몰래 앉았습니다. 영화는 화제작이었으니 보러오고 싶어 하는 장애인 관객도 분명히 존재했을 것입니다. 의도치 않게 장애인의 영화 관람 권리를 빼앗은 듯한 찝찝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저 같은 관객이 저뿐만은 아니었던 건지, 비장애인으로 보이는 관객들이 비슷한 타이밍에 우르르 장애인석에 앉았습니다.

 

처음으로 앉아본 이동식 간이 장애인석은 매우 불편했습니다. 의자 높이가 낮고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허리에 힘이 많이 실리는 느낌이었죠. 연결되어있는 2인석 의자라 옆좌석 사람이 움직이면 제 의자도 함께 덜컹거렸고요. 이동식 간이 의자가 있다는 것은 장애인석이 휠체어 장애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체 장애를 가진 관객이 이용하는 좌석이라는 의미일 겁니다. 그런데 어째서 의자가 이렇게 불편한 형태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의자여서 비장애인인 저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던 걸까요?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지 않나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신체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요. 장애인을 위한 의자라면 오히려 비장애인석보다 훨씬 더 튼튼하고 편하게 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좌석에 앉아보고나니, 극장측이 장애인석을 만든 이유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극장이 보여주기식으로 장애인석을 만들어두고, 관람 수요가 높은 회차는 장애인석까지 비장애인에게 판매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거든요. 정말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좌석이라면, 착석감보다 이동성에 더 집중한 간이의자를 사용할 리 없으니까요.

 

그날은 기대를 잔뜩 안고 극장에 입장했지만, 몸도 마음도 불편한 채로 영화 관람을 해야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무척 감동적이었지만요.

 

영화 관람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는 휴대폰으로 영화관 장애인석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온라인 예매 시 장애인석을 예약할 때 별도의 확인 과정이 없어 문제라는 내용의 4년 전 기사가 있었습니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석을 예매해 장애인들이 영화를 보는데 제한이 생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키오스크 등으로 영화관이 무인화되어 장애인들이 영화 관람할 때 도움받기 어려워졌다는 최근 기사도 보였습니다.

 

·청각장애인은 물론, 모두가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화면 해설과 한글자막을 넣은 영화를 상영하는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는 올해로 13회를 맞았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사회를 그린 영화와 드라마 역시 꾸준히 나오고 있고요. 하지만 여전히 픽션은 픽션이고 현실은 현실인 것 같아 씁쓸한 마음입니다.

 

극장은 관람객에게 최고의 관람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극장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관람객에게 신체의 장애가 있든지 없든지요. 이날 제가 한 이상한 경험은 영화를 양껏 사랑하려는 마음에 장애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구조나 시스템의 문제라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도요. 그래서 일단, 함께 고민해봤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이 글을 썼습니다.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편한 마음과 몸으로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를 본 후에 호들갑 떨며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면서요. 이 같은 세상을 상상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요.

 


 

글쓴이. 양현아(영상제작PD)

 

수많은 사람들이 공들여 만든 영화를 2~3시간 만에 소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짜릿함을 느끼는 영화덕후입니다. 세상 모든 영화를 낼름 봐버리고 말겠다는 음흉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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