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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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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3. 7. 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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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36호 Me,Dear 2023.08.03.]

 
지금 여기에 있다

 

원혜윤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오랜만에 한글 빈 문서를 켜둔 채 오래 생각한다. 전에 워드 쓰는 곳에서 일하다가(그마저도 구글 드라이브, 노션 등 온라인 앱을 주로 사용했기에 워드를 켜는 일은 거의 없었다) 퇴사 후 한글과 웹하드를 사용하는 잡지사에 입사했는데, 한글이랑 웹하드라니 그 두 개를 쓴 지 얼마나 됐더라, 하며 혼자 놀라워한 적이 있다. 그러다 출판업계는 대개 문서 작업을 한글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좋아하는 작가가 SNS오늘도 아무것도 적지 않은 hwp 파일을 저장한다...” 따위의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되며, 모 작가는 아직도 원고지에 직접 글을 쓴다던데 그 원고를 전부 타이핑해서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을 누군가는 하게 되겠구나 힘들겠네, 그런데 그 작가는 왜 손 글씨를 고집하는 걸까 본인만의 낭만인가 거참 엄청난 노동력이 요구되는 낭만이구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 적이 있다. 빈 문서 위 깜박이는 커서를 가만히 쳐다보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잡지사 생활을 마치고 잡지 전문 공간(구매할 수도 있고 읽다 갈 수도 있다)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은 매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혼자 질문을 던진다.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이 시대에 굳이 종이 잡지를 읽으러 여기까지 오셨나요.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젖은 가방을 툴툴 털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들어와 이미 두 손 가득 짐이 있음에도 기어코 잡지 한 권을 골라 사 가는 사람이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읽어야겠다고 다짐해 놓고 정작 지하철이나 버스에 올라타서는 이내 잠들어 버리더라도 그는 괜찮다고 여길 것이다. 종이 잡지는 그런 것이니까. 읽으려고 샀지만 읽지 않아도 괜찮은 것. 읽고 싶은 잡지 한 무더기 쌓아놓고 한 권도 채 읽기 전에 고개를 까딱거리며 졸아도 그 자체로 낭만적인 무언가.

 

▲ 늦은 밤 매장에서 잡지를 읽고 있는 손님

 

 

지난 6월에 개봉한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16mm 필름 카메라로 찍은 영화로, 주인공인 농인 복서 케이코가 자신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맞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분투하는 모습을 담았다. 감독이 영화 개봉 기념으로 진행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필름 촬영에 관해 한 말이 있다.

 

나는 아이폰으로 촬영하는 것도 좋아하고 디지털로만 구현 가능한 기술에 대해서도 긍정한다. 동시에 그런 맥락에서 시간이 천천히 화면에 고이고 또 흘러가는 느낌에 있어서 필름을 통해서만 표현 가능한 것이 있다는 점도 믿는다. 전혀 과학적인 진술은 아니겠지만, 디지털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 거만해져서 모든 것을 다 제어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고 할까. 하지만 필름은 불가역적인 상태를 따라가야 한다. 빛과 색, 잠깐의 시간을 체현해내기 위해 나는 철저히 영화에 복속된다.”

 

낭만이란 것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그 안에 천천히 고이거나 흐르게 하며 결국엔 그 순간에 복속되게 만든다는 점에서. ‘낭만이라는 촌스러움에 경도된 이들이 종이 잡지를 찾고 읽고 결국 직접 만들며, 영화를 찾고 보고 결국 직접 만들게 된다는 점에서. 동일 인터뷰에서 미야케 쇼 감독은 청춘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청춘영화의 감정이란 보통 이미 지나가버렸다는 느낌, 혹은 시간을 돌이킬 수 없기에 찾아오는 약간의 멜랑콜리에 가까울 것이다. 애수를 표현하는 것이 어떤 의미로는 쉽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내가 확신하기로는, 어차피 나이와 관계없이 자신만의 인생은 단 한번밖에 없으므로 그다지 지나간 것을 희구하거나 감상에 젖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속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 그 인물이, 혹은 그 배우가 ‘있다’는 것을 포착하는 것이 청춘영화의 미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 스틸

 

청춘이라는 단어는 좋았던 시절로 읽히고는 한다.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푸르를 수 있는 어느 때. 그래서 낭만으로 물드는 때. 그러나 청춘이 정말 그런가. 낭만이 정말 그런가. 필름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었던 감독의 영화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이미 지나간 한철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 있는‘, 그래서 필름에 녹아 있는 감독의 낭만이다. 케이코가 삶에서 마주하는 일들을 감당하고 눈물 나도록 서럽고 분해도 다시 털고 일어나 달려가는 치열한 청춘이 필름 카메라와 만났을 때 발현되는 낭만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앞으로 있을 것도 아니며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감응한다.

 

월간 <디자인> 541호에서 편집장은 생성형 AI로 인해 변화하는 세계를 조망하며 어쩌면 디자이너를 포함한 창작자들은 이제 사유의 축을 앞으로 당기는 연습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새로운 기술은 창작 과정 중에 사유가 끼어들 틈을 허락하지 않으니까요.”라고 했다. 우리가 계속 종이 잡지를 펼치고 카메라를 손에 드는 것은 곧 도래할, 사유가 필요하지 않은 세계에 대한 저항일지도 모른다. 잡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누군가의 고찰을 느끼고, 소리와 빛을 탐구하며 한 장면 한 장면 만들어 간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사유하는 낭만을 누린다. 낭만이란 아름답거나 고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고민하고 투쟁하는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놓지 않는 한, 낭만은 늘 우리 앞에 있다’.

 

한글 문서를 켠 노트북 앞에 앉아 이런 생각을 오래도록 한다. 아직은 포기할 수 없고 놓칠 수 없는 깜박이는 커서의 사유의 기쁨을 누리며. 언젠가는 원고지에 글쓰기는커녕 웹하드에 한글 파일을 올리는 작업조차 와 그런 적이 있었어? 하고 회자될 한 때로 남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앞에 있는 낭만에 화답하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앞으로 있을 것도 아니며 현재 여기에 있는, 단 한 번뿐인 지금의 낭만에.□

 

 


 

글쓴이. 원혜윤

책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가끔 영화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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