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그래서 누가 부치이고 팸인지, 집에는 안 들어가고 택시 타고 클럽 가서 어땠는지, 지난번에 채팅 앱에서 내가 누굴 봤는지, 진정한 부치라면 어때야 하는지, 자주 오가는 '썰'과 유머를 유튜브에서 마주했을 때는 좀 놀랐습니다. 이런 레즈비언 유머가 영상으로는 잘 만들어지지 않으니까요. 아직 모르신다면, 공감성 수치에 괴로워하면서도 다음 영상을 기다리게 되는 유튜브 채널 '레즈용'을 만나보세요. 레즈용 채널을 소개하고자 운영자께 채널 운영에 대한 에세이를 청탁해 액트에 싣습니다.
안녕하세요. 많은 분이 궁금해했던 레즈용에 대해서 원고를 쓰게 됐습니다. 레즈용은 1인 채널이고, 매 시나리오에 맞는 배우님들과 함께 제작하고 있습니다. 소규모 촬영은 저와 배우님 둘이 연기하고 촬영을 진행합니다. 대규모일 때는 배우님들과 촬영을 도와주는 친구들을 포함한 여러 명이 진행합니다. 유튜브 주인장이 기획부터 장소섭외, 시나리오, 배우 섭외, 편집 등 모든 걸 맡고 있는 셈입니다.
영상은 장소, 배우, 아이디어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완성이 됩니다.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아이디어부터 말씀드리면, 많은 분이 “대체 이런 스토리 어떻게 짜냐”를 물어봐 주시는데, 신기하게도 말하다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면 배우님의 외모로 영감을 얻을 때도 있습니다.) 배우님들을 포함한 주변인들의 끼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말하다 보면 기상천외한 소재들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나올 때마다 매번 메모장에다 적어두는데, 강렬하고 재밌는 스토리들이 먼저 우선순위로 살아남습니다.
장소는 보통 대면으로 식사하러 갔다 촬영 제의를 받아 섭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스러운 사장님들께서 너무 감사하게도 알아봐 주시고 여기에서도 촬영해달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아, 굉장히 기쁜 마음으로 기획하게 됩니다. 도움을 주시는 사장님들이 계시기에 그 장소의 분위기를 최대한 생생하게 담으려고 배로 노력합니다. 장소가 먼저 섭외된 상태로 시놉시스를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소가 주는 이미지가 강하면 장소에 맞춰 시나리오를 쓰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배우님들에 대해서도 궁금해하시는데, 배우님은 구인 글을 올렸을 때 연락하시는 분들과 비수기 때(구인 글을 올리지 않고 촬영을 쉬고 있을 때) 연락하시는 분들로 나뉩니다. 유독 레즈용 채널에서 비주얼을 담당하고 계시는 몇몇 분들 신기하고 감사하게도 비수기 때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분들의 강한 캐릭터성 덕에 더 쉽고 재미있게 시나리오 작업이 가능했습니다. 연락오신 분들께는 자기소개 글과 영상을 요청드리고, 1대1 미팅을 통해 배우님의 성격은 어떤지, 현재 상황은 어떤지 등등 얘기를 들으며 이미지에 맞는 역할이나 영상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짧으면 40분에서 길면 2시간까지 대화를 나눕니다. 정해진 몇 가지 질문으로 미팅이 진행됩니다. 또한, 간단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진행하는데, 출연 확정 후 도중 하차, 영상 업로드 후 삭제 요청, 합의되지 않은 페이 요구 등의 문제가 발생할 때를 대비할 수 있습니다.
같이 촬영할 인원이 완성되면, 촬영일과 시놉시스(줄거리)를 공지합니다. 시나리오는 참여 인원에게 모두 공유하고 피드백을 거쳐 완성도를 높입니다. 규모 있는 촬영이면 촬영일 전에 대본 리딩을 진행합니다. 촬영이 마무리되면 편집을 진행하는데, 이 단계에서는 장소 제약이 없기 때문에 카페든 어디든 가서 종일 작업하는 편입니다.
미디어가 주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무의식에 자리 잡히죠. 개인적으로 혐오는 무지에서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얼굴을 모르는 사람을 욕하는 건 쉽지만, 가까운 사람을 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쪽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 사람들의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꾸는 것을 어릴 때부터 추구해 왔습니다.
원래는 그림으로 다른 사람에게 제가 겪은 얘기를 들려주는 걸 좋아했습니다.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성향이 바뀌고, 사람들 만나는 것 즐거워져 지금은 많은 분들과 함께 레즈용 영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제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작업하는 유튜버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한다면 커플 유튜브를 하지 않을까 했는데, 당시 만나던 사람과의 관계에서 확신을 얻을 수 없었고, 자신도 없었습니다.
또 저는 원래 연기를 할 생각도 없었고, 그럴 기회도 없었는데, 같은 과 언니 덕에 우연한 기회로 연기를 하게 됐고, 그 순간에 강하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연기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중독적이었습니다. 친한 게이 친구 영상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게 됐는데, 그 친구의 촬영장 분위기에 반해 저도 연출을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이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21년 겨울에 첫 연출을 하게 됐습니다. "커플이 커플임을 속이고 번개를 한다면?"이라는 주제로 레즈비언 커플이 술자리에서 싸우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촬영 이후로도 더욱 재미를 느껴 다시 다른 시나리오를 기획했는데, “전애인을 번개에서 만났다”가 그 내용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튜브 채널은 없었고, 채널을 만드는 걸 미루고 있었습니다. 첫 연출작이 제가 추구 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있어, 2번째 연출작이 나왔을 때가 되어서야 유튜브에 업로드하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두 번째 연출작을 기획하던 와중, 2021년 크리스마스 때 친구들과 퍼즈에 놀러 갔다가 퍼즈 사장님 두분을 비롯해 직원분들과 친밀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퍼즈 사장님께서 퍼즈에서 촬영할 생각은 없냐고 먼저 제의해주셔서, '스트릿 부치 파이트(스부파)' 컨텐츠를 기획했습니다. 끼 넘치게 노는 퍼즈 직원분들을 보며 영감을 얻어 내용을 썼고, 실제로 직원분들이 출연도 해주셨습니다.
촬영 후에 그제야 채널 이름을 고민했었습니다. 레즈용, 뼈레즈, 왕레즈, 용스무비 등등 별의별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한국에서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도록 채널 이름에 ‘레즈’란 단어를 꼭 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이름 끝에 비슷한 것과 레즈가 합쳐져 레즈용이 되었고, 레즈 전용, 레즈 드래곤, 레즈 + 제 이름 이런 여러 가지 의미를 담게 되었습니다.
첫 연출 때 연기도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작업을 거듭하며 저는 누구나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촬영 과정이 즐겁다는 것도 누구나 경험해 봤으면 합니다. 제 유튜브가 연기에 관심있는 분들께 기회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럴 수 있도록 되도록 다양한 분들과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출연시켜, 레즈비언의 얼굴은 한가지가 아니고 스펙트럼처럼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폭넓게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아직까진 이쪽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를 위주로 제작하고 싶습니다. 이쪽 문화가 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미 이쪽 문화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얻기 위한 콘텐츠, 이쪽 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간접적으로나마 이쪽 문화를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려 합니다. 더불어, 아직 벽장인 분들도 제 콘텐츠를 보며 함께 이쪽 문화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나중에는 대중들이 레즈비언 문화를 아는 날이 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레즈비언 문화는 남들과 달라 이상한 것이 아닌 특별함으로 느껴질 것이라 예상합니다. 레즈비언 문화가 멸시되는 것이 아닌 너무도 궁금한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 다음 스텝을 밟아보고 싶고, 게이분들을 비롯해 더욱 다양한 분들과 여러 가지 콜라보 영상 작업을 시도하고 싶습니다. □
글쓴이. 즈용이
레즈용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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