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가는 길>, 미국으로 가는 길!

[ACT! 136호 Me,Dear 2023.08.03.]

 

<너에게 가는 길>, 미국으로 가는 길!

 

변규리

 

 

2023년 4월 23일. <너에게 가는 길> 팀은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2022년 4월, 미국 상영회를 제안받은 후로부터 딱 1년 만이었다. 공항에 마중 나온 <너에게 가는 길> 팀 친구이자 동료 활동가분의 응원을 받아 나비님, 비비안님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을 때의 설렘이 아직도 기억난다. 앞으로 미국에서 펼쳐질 16일간의 일정 동안 만나게 될 인연들은 <너에게 가는 길> 배급 활동에 또 어떤 이야기로 기억될까.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 주신 더 많은 분들과 미국 땅을 밟고 싶었지만, 그에 대한 아쉬움은 남겨둔 채 비행기는 이륙했다.

 

우리가 미국에 체류하며 상영 및 Q&A로 방문한 곳은 총 7군데였다. 방문한 곳을 순서대로 적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듀크대학교, 채프먼대학교, UC Irvine, CSUN, Pasadena City College, UCLA, Los Angeles Community Event. 이 상영회들을 만들기까지 정말 많은 분이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주셨다. 특히나 듀크대학교의 김은영 교수님, 채프먼대학교의 이남 교수님, 남부 캘리포니아 상영회를 조직해 주신 UCLA의 한주희 교수님, 로스엔젤레스 커뮤니티 상영회를 위해 애써주신 GYOPO와 KYCC에 감사드린다.

 

미국에 오기 전. 이국의 땅에서 상영회를 하게 된다는 설렘과는 별개로 관객 반응은 좀처럼 예상하기 어려웠다. ‘미국에서 성소수자와 그들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이야기 되어왔고 특별하게 색다른 이야기도 아닐 텐데. 과연 관객들이 관심 있어 할까?’라는 것이 나의 우려였다. 하지만 상영회를 돌고 나서 나는 나의 이러한 단순한 도식을 반성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방문한 듀크대는 2017년 연분홍치마의 작품들을 듀크대에서 상영하면서 김은영 교수님과 연분홍치마의 인연이 쭉 이어진 곳이었다. 이를 계기로, <너에게 가는 길>도 미국 투어 일정 중 감사하게 상영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나비님, 비비안님도 그렇지만 나도 듀크대학교 방문이 처음이었다. 우리가 방문한 대학교 대부분의 곳에서 학내의 LGBTQ센터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학내에 당연하다는 듯이 LGBTQ센터가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공간에 퀴어 영화나 책들이 빼곡하게 아카이빙 되어 있는 것도 좋았다. 더불어 그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듀크대에서의 투어를 마치고, 대망의 상영회 날. 우리는 Q&A에서 특별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상영회에 오신 한국말을 잘하시는 분이었는데. 이 영화를 보기 위해 한국에 오셨었다는 관객분의 이야기였다. 한국에서도 영화를 보았지만, 듀크대와 집이 가까워 소식을 듣고 상영회에 또 오셨다는 것이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나눠주신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때 처음 미국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문화, 인종, 가족관계, 역사가가 이 공간에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 듀크대학교 상영회를 마치고.

 

한국에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가끔 관객분들의 커밍아웃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미국에서의 Q&A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시간을 경험했다.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관객분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 반가웠고, 감사했다. 더불어 연분홍치마와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활동을 응원한다며 진하게 안아 주시는 분들의 마음도 찡하게 기억 남는다. 한 번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 관객분이 우리 앞에 서서 5분 동안 계속 눈물을 흘리고 가셨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온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셨고 그 눈물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이 영화가 누군가에게 아주 잠시라도 편히 숨 쉴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채프먼대학교 상영회 장소는 정말로 컸다. MARION KNOTT STUDIOS라는 학내 극장이었는데 상영 전날 극장을 방문했다가 극장 규모에 놀라 맨 위 객석까지 신나게 뛰어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채프먼대에서 <너에게 가는 길>팀을 초청하기 위해 거의 1년 동안 펀딩을 준비하셨는데 이 극장을 채우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애를 쓰셨을까 많은 생각이 스쳤다. 영화는 만드는 사람, 출연하는 사람, 배급하는 사람도 있지만 영화를 함께 봐주는 관객분들이 있을 때 그 의미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 의미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신 미국 상영회 기획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했다. 채프먼 대학교 Q&A시간에서도 따뜻한 박수를 받으며 상영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비님 비비안님은 긴장한 나와는 다르게 여전히 유려하셨고 관객 한분 한분과 따뜻한 인사를 나눠 주셨다. 매번 느끼지만, 두 분의 상영 활동에 대한 애정은 감복할 정도로 에너지틱하며 뜨겁다. 관객분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나는 두 분께 배운 것이 정말 많다. 미국 상영회에서도 그 두 분의 힘은 넘치게 빛났다.

 

▲ 채프먼 대학교 상영회를 마치고.

 

우리는 채프먼 상영이 끝나고 난 후, UCLA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도움으로 남은 미국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채프먼 대학교 상영이 끝나면 UCLA 상영을 하고 한국에 돌아오는 것이 일정이었는데, 중간에 날짜가 뜨면서 다른 대학들 상영조직을 UCLA의 한주희 교수님이 해 주셨다. 그 덕분에 정말 캘리포니아 남부 투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5개월 동안 1-2주에 한 번씩은 메일을 주고 받으며 소통을 이어 나갔다. 뿐만 아니라 상영회를 준비하시는 분들은 각 대학에 이 영화를 틀자고 설득하고 회의하고 일정을 조정하시고 정말 많은 애를 쓰셨다.

 

UCLA 상영회에 많은 관객분들이 영화관을 찾아 주셨다. 영화를 상영하기에 앞서 영화를 소개할 때, 한 번은 한국말로 한 번은 영어로 말씀해 주시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통역 차원이 아니었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스며들어 있는 태도라고 생각했다. UCLA 상영회쯤 오니까 미국 상영회에 슬슬 적응됐는지 나비님, 비비안님과 뒷좌석에 앉아 관객분들이 어느 포인트에서 공감하는지 느끼며 서로 눈빛을 통해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 게 무척 즐겁고 좋았다. 나는 특히나 관객분들이 웃어주는 순간이 가장 좋다. ‘이 농담을 읽어준다고?’ , ‘이걸 더 재밌어하는구나.’라는 순간들을 발견할 때마다 덩달아 신이 나 같이 웃고는 했다.

 

▲ UCLA 상영을 마치고.

 

출국 전날. Los Angeles Community Event가 시작되었다. 이 행사는 미국 상영회 중 유일하게 대학이 아닌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기획된 상영회다. 200명이 넘을 것 같은 관객들이 행사장을 가득 채워 주셨는데 그분들이 보내주시는 반응에 다시 한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영화의 거의 모든 순간을 반응해 주셨다. 이렇게 영화의 모든 순간 리액션을 보여주신 관객들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고, 객석이 모자라서 다 앉을 수도 없었는데 상영하는 내내 일어서서, 쪼그리고 앉아 끝까지 자리를 지켜 주셨다. 비하인드를 전하자면, 영화에 등장하는 강아지 신통이의 “멍” 소리에 화답하는 강아지 아지의 “멍”소리 때문에 행사장이 웃음바다로 뒤집어지기도 했었다. 상영회는 감동이었고, 나비님 비비안님이 늘 하시는 말씀처럼 오히려 우리가 관객분들에게 받은 응원 덕에 에너지를 가득 머금고 Q&A 시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소수자부모모임, 다양한 네트워크를 만나 인사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자리였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미국에서의 16일간의 일정이 인생의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라 생각했다. 어디에 사는 것과는 상관없이 상영회로 맺어진 연대와 응원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의 마음속에 뜨겁게 자리 잡고 있다. □

 

▲Los Angeles Community Event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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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변규리

2016년부터 연분홍치마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첫 장편 연출작인 통신설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팟캐스트 방송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Play On>(2017)을 연출했다. 두 번째 장편으로 “성소수자 부모”라는 정체성을 마주한 두 여성이자 엄마의 성장 서사를 그린<너에게 가는 길>(2021)을 연출했다.

In 2016, BYUN Gyuri started working in PINKS. Her first feature length documentary Play on (2017) is about the podcast of irregular workers in telecommunication facilities. As her second film Coming to you (2021), it depicts the narrative of two women who face the identity of "sexual minority par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