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ACT! 137호 미디어 큐레이션에서는 경기시민예술학교 성남캠퍼스 안에서 이루어진 아카이브 작업을 소개합니다. 적지 않은 미디어교육이나 문화예술교육에서 결과발표와 과정 공유는 형식적인 절차를 밟듯이 이루어진 후 그 의미가 휘발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혹은 결과보고서의 형태로 닫힌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공공기관과 교육자의 저장장치 한 칸에 자리 잡은 채 영영 빛을 보지 못하는 일도 많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우연히 만난 경기시민예술학교 성남캠퍼스 아카이브가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 임종우(ACT! 객원 편집위원)
경기시민예술학교는 만 19세 이상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 문화예술교육으로 시민들이 자기표현의 주인이 되어 지역사회의 문화를 이끌고, 성숙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예술" 중점 프로그램이다. 사업 운영 기간은 약 7개월 정도이며 2023년에는 경기, 성남, 수원, 의정부, 양평, 안양, 여주 7개 캠퍼스가 운영 중이다. (출처: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 내 경기시민예술학교 페이지 https://www.ggcf.kr/edus/328)
경기시민예술학교 성남캠퍼스는 2020년에 시작되어 2023년 현재까지 4년째 진행 중이다. 벌써 4년이라니, 시간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하다가 이렇게 4년 차라고 소개하는 순간에서야 흠칫하고 만다.
성남캠퍼스를 기획할 당시부터 4년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올해의 아쉬움을 내년에는 좀 더, 다음 기회가 있다면 그때에는 이렇게, 하는 마음으로 2년 차에서 3년 차로, 3년 차에서 4년 차로 흘러온 것 같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해마다 시작하는 순간에는 뜨거운 열정으로 가열차게 달려들었지만, 학기가 진행되는 중에는 몸과 마음이 갈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며 마무리하는 시간에는 깊은 반성과 값진 배움이 남았다. 사실은 해마다 잊지 못할 드라마틱한 시간이었건만, 그럼에도 4년을 돌이켜보면 그저 모든 게 자연스러운 흐름 같다.
2020년, 성남캠퍼스 1년 차를 떠올려 본다. 성남캠퍼스 첫해는 코로나19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2020년 봄은 초중고 개학이 무기한 연기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모든 사업이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멈추던 때다. 생업이 정지되는 상황에서 예술, 예술교육은 언감생심이 아닌가 싶었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진행해 오던 알투스도 일시 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나는 집에 틀어박혀 생각했다.
‘예술은 우리의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우울한 시간이었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나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우울감에 시달렸다. 어쨌거나 시간은 흘렀고 꽉 닫은 창문 틈으로 봄바람이 스며들었다. 나는 마스크를 단단히 조이고 집 주변을 걸으며 생각했다.
‘예술은 우리가 생존 그 이상을 추구할 때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코로나19가 발화시킨 기록과 공유
2020년, 코로나19가 한창인 가운데 성남캠퍼스는 내가 사는 이 도시, 나의 일상을 발견하고 도시와 나를 알아가는 예술적인 방식을 고민하고자 기획되었다. 문제는 누가 와서 우리와 함께 고민을 나눌 것인가, 라는 점이었다. 방역 지침에 따르면 주강사와 보조강사, 기획자를 포함하여 10인 이상이 한 공간에 머물 수 없었다. 적은 인원이건만 참여자를 모집하기도 쉽지 않았고- 다시 말하지만,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어른들도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는 경험이 아직 생생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누군가는 반드시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감염된 사람과 접촉하는 바람에 함께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생겼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하고 공유하기로 했다.
지금 여기, 이곳에 함께 해야 할 참여자
알투스는 경기시민예술학교 성남캠퍼스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홈페이지를 기반으로 한 아카이빙을 계획하고 아키비스트라는 역할을 설정했다. 아카이빙의 목표는 수업 현장의 생생한 기록이었다. 그래서 아키비스트는 매 차시에 참석하여 수업 내용을 상세하게 워드로 기록했으며 녹음과 촬영도 동원했다. 녹음기에는 강사의 모든 말들이 담겼고 영상에는 현장의 모습이 그대로 저장되었다. 넘쳐나는 기록을 정리할 기준이 필요했다.
우리는 언젠가 이 기록을 보게 될 참여자를 기준으로 삼았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수업의 현장에 미처 오지 못한 누군가를 위하여 기록하고 이를 웹에 공유함으로써 언젠가 발견되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으로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인스타그램을 개설하여 매 차시의 수업 내용과 강의자료, 현장 사진을 올렸다. 인스타그램은 대체로 수업 후 24시간 이내에, 홈페이지는 수업 후 일주일 이내에 업로드했다. 수업의 기록 외에도 추가로 DIO(Do It with Ourselves)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프로그램별 수업자료를 더욱 체계적으로 공유했고, 현장 수업으로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어디서나 참여할 수 있게끔 별도로 기획한 프로그램과 제작한 자료를 업로드했다.
취지는 좋지만, 강사로서는 수업 중에 녹음 및 촬영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기록과 공유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이기에 혹시라도 강사가 난색을 보인다면 지극히 아날로그한 방식으로, 아키비스트의 필기로만 진행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강사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제약 속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지금 여기의 현장을 전달하자는 기획팀의 의도에 동감하며 기꺼이 녹음과 촬영에 협조해 주었다.
반복되는 기록, 고민되는 나눔
성남캠퍼스의 프로그램들은 4년에 걸쳐 실험과 변화, 실패와 정제, 성장과 반성을 겪고 있다. 4년 동안 꾸준히 지속된 프로그램 3개(도시레벨링지도: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하여, 지금 여기의 그림자들: 목탄드로잉애니메이션, 도시명상: 익숙하지만 낯선), 3년 지속 프로그램 1개(위트앤시니컬_성남詩), 2년 지속 프로그램 5개(도시를 위한 수작(手作), 성남블렌드: 나만의 커피 블렌딩 프로젝트, 성남엽서: 좋아하는 것들의 그림지도, 뮤직컬러링: 색으로 그리는 플레이리스트, 위트앤시니컬_여름밤 시읽기)들이 있다. 특히 2, 3년 차 프로그램들은 연속해서 이루어진 경우와 휴지기를 거쳐 보완 및 수정하여 실행한 경우가 반반에 가깝다. 성남캠퍼스의 정체성 확립에는 프로그램의 지속과 심화가 가지는 의미가 그만큼 크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아카이브가 가져야 할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다.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프로그램의 현장을 지속해서 혹은 반복적으로 기록하다 보니, 매 순간 기록하여 참여자들에게 전달하는 수업 내용에는 더 이상의 직관적인 큰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게 된 것이다. 기획자와 강사의 시선으로는 보이지만 참여자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수업의 여러 변화를 세밀하게 기록한들, 참여자들에게 그 의미들이 제대로 전달될는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적고 있는 이 현장의 기록들이 더 이상 의미가 있기는 한 걸까? 2020년에 시작한 우리의 기록과 공유는 2023년,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이제는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까?
지금 여기, 이 순간을 넘어_맥락과 고민, 변하지 않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공유하기
4년 차에 이르러서도 성남캠퍼스는 여전히 기록하고 공유한다. 전보다 덜 기록하고, 전보다 더 고민하고 있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의 현장이 가지는 매력과 힘은 변함없이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남아있는 것에 관심이 커지면서 일어난 변화가 아닐지 싶다. 그래서 4년 차에 접어든 우리는 다시금 첫 시작의 고민을 하고 있다: 2023년의 성남캠퍼스는 어째서 지금 여기의 성남이라는 도시에 이러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수업 현장을 비롯한 수업의 전과 후의 시간 속에서 기획자와 강사와 참여자들은 어떻게 소통하고 서로를 변화시켰는지. 긴 시간, 가령 2,160분(3시간 12차시 수업 기준)을 함께 보내고 결국 너와 나와 우리에게 남은 변화, 변하지 않을 변화는 무엇인지.
이러한 고민들은 우리의 기록을 좀 더 느리고 신중하게 한다. 이 고민들의 답을 우리가 찾아낼 수 있을지, 답이 있기는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가진 지금의 고민들 또한 올해의 아카이브에 포함되리라는 것뿐이다.□
■ 관련 사이트
경기시민예술학교 성남캠퍼스 공식 웹사이트 https://www.snsiminedu.art
성남문화예술교육센터 꿈꾸는예술터 https://www.snarte.or.kr
글쓴이. 박성진(작가, 알투스통합예술연구소 문학연구원)
미술과 문학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지역에 기반한 일상 속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을 고민하고 실험한다. 경기시민예술학교 성남캠퍼스 기획 및 아카이브 외에도 앤솔로지 소설집 『안녕을 말하는 방법』(공저)에 참여했고 때때로 번역 작업을 하며 지낸다. 한편 알투스(altus)로서 멤버들과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컵이 없는 카페라든가.
■ 알투스통합예술연구소 공식 이메일: altuslab@gmail.com
■ 알투스통합예술연구소 공식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altuslab
■ here’s the thing 컵이 있다 프로젝트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heresthething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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