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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하는 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 마산영화구락부와 무학산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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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2. 10. 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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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것 하나 없는 ‘나’도 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산을 포함한 소도시에서 작지만 단단한 많은 영화공동체가 등장하여 척박한 영화문화, 인프라라는 말을 쓸 일이 줄었으면 좋겠다. 넓고 평온하며 윤기 나는 토양 위에서 좋은 영화들이 맘껏 자라날 수 있기를 바란다."

 

[ACT! 132호 미디어 큐레이션 2022.10.19]

 

누구나 하는 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마산영화구락부와 무학산영화제

 

김준희(마산영화구락부장)

 

▲ 제2회 무학산영화제 포스터(출처: 마산영화구락부)

 

무학산영화제는 2021년 마산에서 처음 개최됐다. 하루 만에 끝나는 작고 작은 영화제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끙끙대며 준비했던 기억이 있다. 부족한 기획에도 1회 무학산영화제에 선뜻 참여해 주신 박소현 감독님, 오정석 감독님, 인디그라운드의 지원 덕분에 무사히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야심 없이 진행한 작은 영화제에 생각지 못한 관심이 몰렸다. 지역신문사, 지역 잡지, 지역영화 인사 등이 연락을 해왔다. 그 목적은 조금씩 달랐지만, 내가 누군지, 무학산영화제는 어떤 과정을 거쳐 기획되었는지를 궁금해했다. 그때 정확한 답을 드리기는 어려웠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학산영화제를 기획, 운영하는 마산영화구락부는 경남 통합창원시에서 활동하는 단체다. 모두 아는 것처럼 마산은 2011년 진해와 창원이 통합되면서 창원통합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행정지명이 사라지면서 최근 마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마산을 가시화, 재조명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마산영화구락부도 그중 하나다. 다만 영화라는 명확한 소재가 있어서 많은 마산 무브먼트 중에서도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최근 지역 언론과 영화 관련 기관에서 무학산영화제 및 마산영화구락부에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데 다소 겸연쩍다. 우리의 활동 정도는 사실 다른 지역에서는 평범하고 부단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관심을 주시는 만큼 좋은 과정과 결과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산영화구락부는 멤버라는 개념은 딱히 없으며 결이 맞고 시기가 맞으면 함께 하고, 나 홀로 운영하기도 한다. 마산영화구락부는 최근 두 번째 무학산영화제를 치렀다. 많은 사람들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해주었고 나 또한 일부분 수긍한다. 외연과 내연을 동시에 확장하려 했고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1회와 달리 2회에는 경남섹션을 마련하여 공모를 받았고, 선정작을 상영하고 해당 감독과 전문영화인들을 섭외하여 관객과의 시간을 가졌다. 또 심사를 더해서 경남섹션의 두 작품에는 시상까지 했다. 작지만 타이틀 하나라도 얻어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시상품은 인두화상패와 무학소주의 국화면좋으리가 포함되었고, 이는 모두 협찬으로 진행했다.

 

▲ 제2회 무학산영화제 현장 사진(출처: 마산영화구락부)
▲ 제2회 무학산영화제 현장 사진(출처: 마산영화구락부)

 

지역영화?

 

많은 곳에서 지역영화에 대해서 논의를 펼치고 있다. 가끔 나에게도 묻는다. 경남영화의 정의 혹은 경계가 무엇이냐고. 참 어려운 질문이다. 지금은 깊고 똑똑한 사람들이 글과 말로 정의해야 한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영화를 내세우며 관심과 지원사업을 받는 나 역시도 그 정의를 말하고 쓰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애초에 지역영화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지역영화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아마 우리 대부분은 지역영화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경남영화라는 단어로 응모요건을 축소해 그나마 가까운 영화인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개념이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이번 무학산영화제의 경남섹션 공모방법을 말해본다. 구글폼으로 공모를 받았고, 신청폼의 제일 마지막에 경남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의 작성을 요청했다. 적어도 경남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명분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받은 구글폼에는 많은 분들이 마산, 경남에서 태어나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었고, 경남 어딘가를 여행 와서 시나리오 영감을 받았다는 분도 계셨다. 그것을 구분하는 내 일이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결국 내 마음에 드는 영화를 선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많은 지역영화제들이 내세우는 실거주지 몇 년 이상, 혹은 제작사가 경남 소재여야 한다라는 등의 공모요건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나 또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모 광역시의 독립영화제는 해당 지방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현재 서울에서 거주한다는 이유로 해당 독립영화제에 출품이 어렵다. 물론 규모가 있는 지역영화제는 어쨌거나 명확한 공모를 내야 할 필요가 있다. 마산영화구락부의 선택은 사실 영화제를 이끄는 단체의 행동으로는 다소 비겁하다. 우리가 편하자고 결정한 방법이었으며, 오히려 응모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변명하자면 구획한 요건에 애매하게 빗나가는 창작자들을 구제하고자 했다. 이를테면 경남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귀향한 창작자, 로케이션만을 경남에서 치룬 영화, 경남에서 한창 활동하다가 언젠가 서울로 올라가서 한참 후 작품을 완성한 창작자들은 그동안 많은 지역영화제에서 외면받았다. 물론 서울독립영화제나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등의 특별한 요건이 없는 영화제도 있지만 문턱이 상당히 높다. 전국 단위로 작품을 받는 영화제의 경우 출품작 수가 천 편을 넘은 지 오래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비교적 문턱이 낮은 영화제를 만들고자 했다. 만듦새는 아쉽지만 잠재력이 있고 단점 때문에 장점이 저평가된 작품들을 상영하고자 했다. 그렇게 11편의 경남섹션 단편영화를 선정했고, 그들에게 무학산영화제를 통해서 다시 한번, 어쩌면 처음으로 상영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건 다소 주제에 벗어나는 말이지만, 경남섹션의 접수자들의 많은 분들이 경남과 부산, 울산을 구분하지 않았다. 부울경이라는 단어에 헷갈려 제출한 것인지, 아니면 알고서도 제출하고 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경남 자체가 주는 단일한 이미지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지역영화라는 개념이 어폐만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하긴 어렵겠다.

 

또한 어떤 기준으로 작품들을 선정했냐고 많이들 여쭈어본다. 이 또한 주관적이었다. 이번 2회 무학산영화제의 경남섹션 상영작은 오롯이 나 혼자서 선택했기 때문이다. 공정성과 취향의 문제가 있지만, 나로서는 품을 적게 들이고 영화제를 여는 게 중요했다. 상의하면서 작품에 대해 논의할 여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나의 기준은 오락적인 요소였다. 작품성이 결여되더라도 재미라는 장점을 눈여겨봤다. 무학산영화제의 러닝타임이 비교적 짧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객들이 소중한 시간을 써서 만든 온 자리를 지루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다른 기준으로, 이미 많은 상영 기회가 있었던 작품은 엄격히 심사했다. 주요 영화제에서 상영도 하고 수상을 한 작품의 응모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조금 더 응원하고 싶은 영화에게 마음을 줬다.

 

 

미래의 무학산영화제

 

선정을 포함해 두 번째 무학산영화제 역시 나 혼자 기획했다. 물론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영화제의 전반적인 프로그래밍과 형태와 내용은 홀로 했다. 힘들기도 했지만 소통력이 부족한 나에게는 편한 점이 많아서 차라리 나았다. 하지만 무학산영화제가 앞으로 주요 지역영화제로 자리 잡아야 한다면, 내실 있고 공정한 영화제를 위해 본인의 독단을 해체하고 힘을 구성원들에게 분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학산영화제는 인디그라운드의 커뮤니티시네마 지원사업의 지원금인 400만원으로 치렀다. 장비임차비와 작품상영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그다음으로는 심사위원 및 모더레이터의 초빙비용이었다. 인디그라운드는 이번 지원사업에 처음으로 인건비를 책정하였는데, 덕분에 400만원의 20%에 달하는 80만원을 개인 인건비로 받을 수 있었다. 80만원만은 끝까지 지켜내려고 했지만, 결국 나중에 이런저런 지출로 소진했다. 그럼에도 인디그라운드의 결정처럼 기획자의 인건비를 책정하는 배려가 점점 많아지길 희망한다.

 

많지 않은 금액으로 이틀간의 영화제가 가능했던 이유는 장소를 무료로 대관했기 때문이다. 적은 금액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알맞은 공간을 찾다가, 마침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동체 공간을 찾았고, 선뜻 장소를 제공해 주셔서 행사를 무사히 열 수 있었다. 이 기회를 빌어서 신추산공동체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하지만 공간을 무료로 빌려 쓰는 일은 참으로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행사를 준비할 때, 영화제가 진행될 때, 영화제가 끝나고 나서도 공간담당측의 눈치를 봐야 했고, 신추산공동체와 약속했던 몇 가지 규칙을 신경 쓰는 까닭에 행사에 집중을 못하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공간을 소홀히 하는 우리의 행동에 결국 혼이 났다. 공간을 빌려가며 행사를 치뤄보니 마산영화구락부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더욱 풍성한 기획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한참 뒤에나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영화제는 무료입장이었다. 구글폼으로 간단하게 관람신청을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노쇼 관객이 많았다. 어쩔 수 없어서 오지 못하셨겠지만, 만약 이 행사가 유료였다면 이렇게 쉽게 약속을 어겼을까 생각하며 인류애가 조금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무료인 행사를 가볍게 여기는 일은 나 또한 그렇다는 것을 상기했고, 노쇼를 줄이기 위해 더 매력적인 기획에 힘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년에는 유료로 영화제를 진행하고 싶다. 높은 금액이 아니더라도, 유료라면 조금이라도 노쇼가 줄어들 것이다. 또한 입장을 체크하는 일도 더 수월해질 것이고, 수익금은 영화제에 재투자 할 수 있다.

 

 

희망사항

 

무학산영화제는 꽤 성공적이었다. 관객 수는 100여 명을 넘겼고, 참여한 관객과 창작자들 모두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영화제 이후 네트워크 파티에서 감독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 자리에 큰 갈증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본인이 마산사람이지만, 마산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제를 즐기는 일이 꿈 같다라든지 앞으로 영화제를 계속 기획하여 경남영화인들이 힘을 모을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같은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마산영화구락부가 잘 해냈다는 것이 아니다. 문화토양의 척박함을 무기이자 방패로 삼아 관심을 받으며, 의도치 않은 성장을 거듭했을 뿐이다.

 

▲ 제2회 무학산영화제 현장 사진(출처: 마산영화구락부)

 

경남에는 경남영화를 위한 영화제가 거의 없다. 합천수려한영화제가 있지만 경남섹션보다는 일반섹션에 더 힘을 주고 있으며, 관의 지원을 받으므로 캐주얼한 행사가 되기는 힘든 것 같다. 다른 지역처럼 미디어센터나 영화협회들이 튼튼하고 영리하게 자리 잡아서 타 지역영화제처럼 멋지고 단단한 영화제를 열어 주기를 바란다. 공적 자본의 등장은 어쨌거나 경남영화 생태계를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실제로 창원에 경남시청자미디어센터가 2023년 건립 예정이다. 시청자미디어센터가 영화라는 부문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투자할지는 모르겠다. 현재 창원에서는 미디어센터를 비롯해 몇몇 단체와 그룹들이 경남을 위한 영화제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가끔 들린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마산영화구락부와 무학산영화제는 지역영화제라는 타이틀을 순순히 내놓을 것이다. 대신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영화기획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커뮤니티시네마의 대표격 단체인 '무명씨네’, ‘가장 보통의 영화 VOM’처럼 말이다.

 

▲ 제2회 무학산영화제 현장 사진(출처: 마산영화구락부)

 

당분간 마산영화구락부는 지역을 위한 영화기획에 조금 더 힘을 쓸 것이다. 나 또한 창작자로서, 경남의 척박한 환경을 불평하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마산영화구락부와 무학산영화제를 기획한 만큼 당분간은 이 문화를 지키고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경남이 아니더라도 전국에 숨어있는 영화애호가들, 기획자들이 작게는 영화 스터디, 크게는 상영회, 영화제 등을 머리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한 번 몸소 실행해 보셨으면 한다. 잘난 것 하나 없는 도 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산을 포함한 소도시에서 작지만 단단한 많은 영화공동체가 등장하여 척박한 영화문화, 인프라라는 말을 쓸 일이 줄었으면 좋겠다. 넓고 평온하며 윤기 나는 토양 위에서 좋은 영화들이 맘껏 자라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산영화구락부와 무학산영화제 소식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산영화구락부 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masanfilmclub/

마산영화구락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masanfilmclub/

 

 


 

글쓴이. 김준희(마산영화구락부장)

마산영화구락부 운영. '마산'이라는 이름을 조명하기 위해, 마산의 이름으로 영화 관련 기획을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창작지망생으로서, 마산 혹은 경남의 척박한 영화문화환경에 대한 불만도 큰 동력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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