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33호 미디어 큐레이션 2022.12.22.]
[편집자주] ACT! 133호 미디어 큐레이션 코너에서는 독립영화 쇼케이스 실천 사례를 다룹니다. 2007년 5월에 시작한 독립영화 쇼케이스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한국독립영화 정기상영회 중 하나일 것입니다. 2022년 11월까지 무려 197회의 상영회를 열었습니다. 올해 해당 사업을 진행한, 그리고 사업 안에서 작지 않은 변화를 만들어낸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원 두 분의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임종우(ACT! 객원 편집위원)
김윤정(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원)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주최하는 ‘독립영화 쇼케이스’ 사업은 2007년 5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총 197회의 상영회를 진행해왔다. ‘독립영화 쇼케이스’는 개봉을 앞둔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정기상영회를, 다양한 주제와 장르의 영화를 묶어 기획전을 무료상영으로 진행하고 상영이 끝난 후에는 감독의 제작일지와 관객과의 대화 녹취를 묶어 책으로 발간한다. 이처럼 ‘독립영화 쇼케이스’는 상영부터 책 발간까지의 과정에서 창작자와 관객의 연결다리 역할을 하고있다.
오랜 시간을 거쳐 안정적인 상영회로 자리 잡았지만, ‘독립영화 쇼케이스’는 여전히 ‘더 많은 독립영화를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게 하기’라는 숙제를 하고 있다. 새로운 관객을 불러들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관객을 ‘독립영화 쇼케이스’에 오게 할 수 있을까. 보완점을 찾기 위해서는 독립영화 쇼케이스에 오는 관객들이 어떻게 독립영화 쇼케이스를 알게 되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로 필요했다.
2021 독립영화 쇼케이스를 시작하며 신청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주목했던 답변은 신청자 대부분이 한국독립영화협회의 매체(홈페이지, SNS, 메일링 서비스)를 통해 독립영화 쇼케이스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곧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소식을 받아볼 수 없는 사람은 독립영화 쇼케이스의 소식을 알 수 없다는 뜻이었기에 홍보 창구를 넓히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가장 먼저 ‘영화제’라는 창구를 두드렸다.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상영하는 많은 작품들은 다른 영화제에서 상영, 수상을 한 경력이 있었다. 영화제 SNS에 독립영화 쇼케이스 상영 소식이 올라간다면 해당 작품을 관심 있게 보았던 영화제 관객을 독립영화 쇼케이스로 유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상영작 별로 각각의 영화제에 홍보 요청을 보냈고 협조해준 영화제 덕분에 독립영화 쇼케이스 소식이 더 널리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독립영화에 관심 있는 관객들은 독립영화 쇼케이스에 올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대상이라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독립영화 쇼케이스는 많고 많은 상영회 소식 중 하나일 수 있었기 때문에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들이 활동하는 공간에 찾아가 홍보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넓게는 영화 관련 카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영화 관련 계정에 소식을 올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고등학교 영화 동아리와 대학교 영화과, 영화 동아리는 홍보의 주요 대상이었다. 각 상영회 별로는 상영작의 중심 키워드에 관심 있는 관객을 찾아 나섰다. 여성운동과 여성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바운더리>의 경우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구분하고 해당 키워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성단체, 대학교 성평등위원회, 페미니즘 책방 모임 등에 홍보를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대학교 성평등위원회에서 참석을 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기존에 진행해온 홍보 방식을 전체적으로 점검하는 시간도 가졌다. 작품 정보, 상영회 정보만을 요약해서 발송했던 메일링 형식을 보도자료 형식에 맞춰 새로 구축했고, 게스트 안내와 같은 내용은 정기적인 홍보 콘텐츠로 만들어 내보냈다. 보도자료는 기사화가 되었고, 배우의 많은 팬들이 상영회를 참석하였다. 이처럼 관객을 독립영화 쇼케이스에 불러오기 위한 크고 작은 시도들이 있었다. 이 시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관객이 되어 극장을 채워주었다.
많은 관객이 독립영화 쇼케이스를 새롭게 알고 신청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제 영화를 관람하러 오는 관람객의 수이다. 일명 ‘노쇼(No Show)’ 비율을 낮추기 위해 여러 차례 관람객 안내를 내보내고, 관객 대상 현장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것이 실질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으로 남는다.
독립영화 쇼케이스를 준비하는 회차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깊어졌다. 관성적으로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을 경계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2023년 독립영화 쇼케이스도 새로운 시도들로 가득 채워나가려고 한다.□
두 번째 글, 고민하기-되풀이하기
양나래(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원)
독립영화 쇼케이스 준비 과정을 차례대로 적어 봤다. 빠트리면 안 되는 중요한 일들 위주로 적고 자잘한 업무들을 보탰다. 처음에서 마지막까지 과정과 절차가 매끄럽게 나열됐다. 한 해 동안 열두 번의 독립영화 쇼케이스 상영회를 마쳤고, 이제 상영회를 진행하는 데에 익숙할 거 같지만 상영회는 잘 만들어진 매뉴얼대로 되는 법이 없었다.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졌고, 상영회마다 고민의 지점이 옮겨 갔다.
나와 윤정은 익숙하고 편리한 것들도 다시 따져보기로 했다. 사소한 버릇처럼 별다른 이유 없이 따라 하던 것들을 촘촘히 살폈다. 하던 대로 답습하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질문했고, 우리에게 필요한 답을 찾아냈다. 어쩌면 그 시간은 독립영화 쇼케이스와 여타 많은 상영회의 차별점을 발견하고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잘 할 수 있는 것을 벼르는 시간이었다.
이를테면 자료집을 새롭게 만들기로 했다. 상영회를 찾은 관객들은 띄엄띄엄 놓인 극장 의자에 앉아 상영관 입장을 기다리며 자료집을 읽는다. 자료집에는 상영작의 정보부터 감독이 작성한 작품 제작일지, 평론가의 리뷰 등이 실려 있다. 왼쪽 모서리를 스테이플러로 철한 A4 크기의 자료집은 소지하기도 번거롭고, 앞뒤로 펄럭이며 읽기도 불편했다. 언제부터인지 이 모양새로 만들었고 그대로 굳어졌다. 상영회에 참석한 관객에게만 제공하는 자료집인데도 관객들 중 몇은 자료집을 훑어보고 버리거나 반납했다. 다음 상영회부터 소책자 중철 자료집을 챙겼다. 크기가 절반으로 줄었고, 한 손에 들어오는 자료집은 책장을 넘기며 읽을 수 있었다. 인쇄비용은 전과 비슷했다. 어떤 관객은 상영회에 늦게 도착할 거 같다며 남는 자료집이 있을지 물었다. 상영회가 끝나고 자료집 한 부를 더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보는 관객도 있었다. 관객들은 자료집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대신 가방에 넣었다.
여전히 해보고 싶은 게 있고 고민도 많다. 관람을 신청하고는 불참한 관객의 몫으로 인쇄된 자료집은 결국 버려진다. 일반용지가 아니라 재생지를 사용하려면 비용이 바뀔 테고 예산도 달라진다. 상영회 관람 신청 시, 인쇄물이 필요한 관객 수를 미리 파악하면 소량의 자료집만 인쇄할 수 있다. 그러려면 나머지 관객들이 자료집을 온라인에서 열람할 수 있도록 적당한 플랫폼을 찾아야 하고, 따라올 자잘한 업무들도 따져보아야 한다. 사소할지도 모르지만 성에 차지 않는 것들을 넘겨짚지 않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깐깐한 고민을 계속한다. 해낼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정하는 데에도 품이 든다.
새롭게 만든 자료집처럼 긍정적인 변화가 두드러지지 않을 때도 있다. ‘좋은 관객과의 대화’가 무엇일지 궁리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보였다.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고 극장을 빠져나올 때, 공간의 분위기와 온도가 은근하게 바뀌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무사히 잘 나누어 가졌다는 걸 알게 하는 미묘한 움직임이 있다. 좋은 관객과의 대화 후에는 은근한 변화와 미묘한 움직임이 더 잘 보인다. 하지만 관객과의 대화에서 유익한 이야기가 오가고 마음을 나누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시간이 허투루 흩어지지 않고 잘 모일 수 방법을 알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한 관객과의 대화’ 캠페인을 기획했다. 감독과 모더레이터, 관객들까지 모두 함께 평등하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자는 약속이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성평등한 환경을 위한 규약과 평등문화 약속문, 기타 영화제의 지침 등을 참고했고, 협회 내 성평등위원회와 결합해서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할 부분이 없을지 논의했다.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한 관객과의 대화’는 상영관 스크린에도 띄우고 오픈 채팅방에도 여러 번 공지한다.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할 때 모더레이터가 관객들에게 캠페인 내용을 환기하며 우리 모두 유념하자고 당부한다. 이 약속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유효한지는 알 수 없다. 여전히 오픈 채팅방의 익명성을 사용해 무례한 말을 서슴없이 남기는 관객도 있다. 퇴장 조치를 받은 관객에게서 항의 전화를 받기도 한다. 그럼 나와 윤정은 다시 고민했다. 친절하지만 보다 단호하고 정확하게 캠페인을 설명할 수 있는 문장과 단어는 없을까, 약속들에 구체적인 예시를 달면 어떨까, 자료집 한 면에 캠페인의 취지를 설명하는 내용을 추가하면 어떨까. 관객들에게 캠페인에 대한 소감이나 영향을 물을 수도 있고, 한 해의 독립영화 쇼케이스 기록을 묶어 발행하는 도서 『독립영화 쇼케이스』에 캠페인을 실을 수도 있다. 각종 영화 단체와 내용을 공유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떠오르고, 고민이 또 새로운 고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해결하지 못한 일들도 더러 있다. 상영회를 준비하며 가끔의 즐거움과 잦은 실의를 느꼈고 오르락내리락 마음이 나풀거렸다. 더 좋은 수를 찾는 일은 흥미롭지만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상영회를 준비하는 건 사소하고 자잘한 일들이 구구절절 이어지는 것이었고, 나도 절로 구구절절해졌다.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과 무관하게 마음을 밀어붙여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그럴수록 윤정과 머리를 맞대고 많이, 아주 많이 대화했다. 한 가지 고민과 어떤 실마리, 질문하고 답하며 해결하는 과정의 반복. 그렇게 찾은 ‘이유’를 가지고 우리는 독립영화 쇼케이스를 설명할 수 있다. 이 고민의 과정을 지지 않고 되풀이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믿는다.□
※독립영화 쇼케이스 소식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공식 홈페이지: https://kifv.org
■한국독립영화협회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kifv01
■한국독립영화협회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ifv_kifv
첫 번째 글쓴이. 김윤정(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원)
재미있는 일을 찾고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두 번째 글쓴이. 양나래(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원)
밀린 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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