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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는 군집생활을 한다: 웹진 해파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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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3. 7. 1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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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36호 인터뷰 2023.08.03.]

 

해파리는 군집생활을 한다:

웹진 해파리 인터뷰

 

진행: 박동수(ACT! 편집위원)

녹취: 차한비(ACT! 편집위원)

 

수많은 글을 손 위의 작은 스크린에서 읽을 수 있는 시대다. 글의 가치는 떨어지고, 글의 수명도 짧아진다. 그런데도 새로운 블로그, 새로운 플랫폼, 새로운 웹진은 등장한다. 누군가는 그곳을 활동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교류의 장을 만들려 한다. 물론 단순히 좋아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보고 글을 나누는 공간도 있다. 영화 비평문부터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회초년생 영화인의 인터뷰, 영화제의 프로그램노트와 직접 기획한 상영회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영화보기를 실천하려는 웹진 해파리를 만났다.

 

▲웹진 해파리 구성원의 프로필 사진. 왼쪽부터 A와 난둘.

 

 

ACT!: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난둘: 웹진 해파리에서 활동하는 난둘이다. 영화를 같이 공부하면서 서로의 글을 좋아하고 서로의 영화를 보는 방식을 좋아하는 세 사람이 모여 만든 해파리의 일원이다.


A: 웹진 해파리에서 활동하는 A이다. 영화제 노동자로 일하면서, 이제 곧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다.

 

ACT!: 2021년 여름에 SNS에서 웹진 해파리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바로 팔로우했던 기억이 난다.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분들의 지면이 늘어난다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소식인데, 어떻게 해파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먼저 여쭤보고 싶다.

 

난둘: A 씨랑 (지금은 활동을 그만둔) 서너시 씨랑 학교 다닐 때 항상 붙어 다니면서 수업도 같이 들었다.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영화 장르도 다르고, 영화를 바라보는 방식도 다르고, 영화에 관해 글을 쓰는 방식도 달랐다. 그래도 각자의 관점과 그런 관점으로 쓰여진 글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그런 작업을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이어가고 싶었다.

A: 자퇴와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난둘 씨가 말한 것처럼 이제 그런 자리가 없지 않을까?”, “서로 영화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우리 셋이라도 지면을 만들어보려고 했다. 그때의 우리는 등단을 거치고, 지면을 확보하는, 그러한 평론가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화에 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가장 필요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궁금한 사람의 작업을 같이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ACT!: 서로 신뢰할 수 있는 필자를 찾는다는 느낌으로 뭉쳤다고 생각하면 될지?

 

A: 글이랑 사람이랑 다른 경우도 굉장히 많지 않나. 그 사람과 글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ACT!: 이렇게 영화만을 다루는 웹진이 사실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는 않다. 독립적인 웹진도 많이 떠오르지도 않고, 영화 글을 쓰는 사람들이 투고할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다는 생각도 종종 하게 된다. 물론 웹진 퐁이나 콜리그 등 최근 몇 년 동안 문화 비평이나 예술 비평 미술 비평 쪽에서는 웹진들이 여러 곳 생겼다. 다만 이곳들은 비평적인 매니페스토나 지향점을 가지고 어떤 활동을 전개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웹진 해파리는 조금 더 단순하게 글쓰기 스터디나 동아리 같은 지향을 가지고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까?

 

A: (긍정적인) 아마추어리즘에 기반한 글쓰기는 확실히 맞는 것 같다. 홈페이지 구성할 때 처음에 크리틱이라는 항목을 만들었다가 시네마로 바꿨다. 우리가 하는 것도 크리틱의 일종이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난둘: 주제나 목표, 지향점을 갖고 글을 쓰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재미있어하는 영화를 공유하고 싶었다. 지면에 글을 싣거나 어떤 영화를 소개할 때 여러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내가 이거 봤는데 재밌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웹진 해파리의 ABOUT 페이지

 

ACT!: 웹진 해파리가 다른 웹진과 다른 지점이라면, 해파리를 테마로 삼은 일종의 세계관처럼 운영된다는 점이다. 홈페이지 대문에는 "알면 알수록 신기한 해파리의 특징 9가지"를 적어두기도 했다. 이러한 세계관 혹은 컨셉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다. 어딘가 장난꾸러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난둘 A: 장난을 치고 싶었는데, 그것이 우리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해파리는 뇌가 없고, 입으로 배설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경계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면 글을 보호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우리는 도나 해러웨이 스터디도 하고 한창 해러웨이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종, 특히 해양생물체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이름을 고민할수록 초반 기획에서는 벤야민을 좋아하니까 바다보다도 우주를 생각하면서 성좌를 활용할 수 있는 것도 고려했는데, 그럴수록 규정이 안 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너무 복잡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ACT!: 해파리가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개체들이지 않나.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셨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나?

 

A: 맞다. 그리고 첫번째 영화가 또 기요시의 <밝은 미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우린 해파리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ACT!: 해파리의 구성원분들이 실명 대신 필명을 사용하지 않나. 그 이유도 연결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A: 글에 대한 책임을 지긴 해야 하지만, 그러면 (해파리 활동을) 제대로 못할 것 같았다.

ACT!: 해파리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도 살짝 궁금하다. 어떻게 역할 배분하고 계신지, 이를테면 홈페이지 관리를 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지,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때는 어떻게 진행을 하는지 궁금하다.

A: 보통 제가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고, 난둘 씨가 인터뷰 섭외 등을 같이 한다.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항상 엎어지고 그러니까, 내가 홈페이지 만들 테니 글만 같이 써주면 함께 해보자 했다. 난둘 씨는 영상이론과 진학 전에 영화과 다녀서 현장 쪽 사람들을 더 잘 안다. 상영회에서는 난둘 씨가 그런 자리에서 훨씬 말 잘해서 GV 진행을 담당한다. 글은 다 같이 쓴다. 올리기 전에 서로 피드백하고, 인터뷰지도 같이 작성한다.

ACT!: 해파리를 웹진이라는 형식으로 만들게 되셨을 때 레퍼런스 삼은 웹진이나 홈페이지, 혹은 비슷한 프로젝트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더불어 해파리도 브런치 계정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브런치 등 기존 플랫폼을 메인으로 사용하는 대신 새로운 홈페이지를 개설해 진행하는 이유도 궁금하다.

 

A: 레퍼런스는 없다. 기존 플랫폼 사용하지 않은 것은, 멋진 사이트 만들고 싶어서였다. 원래 저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나온 홈페이지를 생각해서, 아무나 와서 익명으로 게시글 쓰는 곳을 원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저희가 젠더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고, 내부에서 외부 사람이 글쓰는 게 위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내려놓고, 심플하게 90년대스러운 홈페이지를 생각했던 것 같다.

 

▲웹진 해파리의 ARCHIVE 페이지

 

ACT!: 해파리가 다룬 첫 영화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밝은 미래>였다. 여담이지만 이 때문에 처음 해파리의 소식을 발견했을 때 더욱 반가웠다. 이후엔 허안화의 <객도추한>, 줄리아 뒤쿠르노의 <로우>,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찬란함의 무덤> 등부터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해어질 결심>, <군다> 등의 개봉작까지 다양한 영화들을 다뤘다. 영화를 고르는 해파리만의 기준이 있다면?

 

난둘 A: 초반에는 셋이 돌아가면서 하고 싶은 영화를 다뤘다. 취향이 다 너무 달랐다. 각자에게 당시 화두였던 영화들, 영화가 선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웹진 해파리는 현재 사비로 운영되고 있고, 영화 쪽 아예 지원이 없는 상황이다. 미술 등 다른 분야와 연계하면 지원받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영화만, 좋아하는 영화로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ACT!: 작년부터 해파리가 여러 영역으로 활동을 넓혔다. 외부필진을 섭외하여 새로운 영화들을 소개하기도 했고, 영진위 직원이나 상업영화제작부 스탭을 인터뷰하는 해파리와 파티를!” 코너를 신설하기도 했다. 영화계의 사회초년생을 인터뷰한다는 아이디어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영화진흥위원회 직원을 인터뷰할 일이 사실 별로 없지 않나. 내부 필진끼리 영화글을 공유하는 것 바깥의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난둘 A: 첫째로 영화이론 바깥의 일을 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행정적 일이라든가 제작 일하는 사람들 만나서 배우고 싶었기 때문에 인터뷰를 진행했다. 두 번째는 사회초년생이라는 기준이었는데, 우리도 한참 진로 탐색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여성들이 여성영화인들이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외부필진의 경우에는 저희가 유동적으로 섭외했다. 항상 공동체에 관한 생각이 있었다. 스피커로서의 여성들은 어디에 있을까 많이 생각했고. 우리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궁금했기에 영화를 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우리가 좋아하는 분들에게 언제나 부탁드려왔다. (<군다> 글을 쓴) 이병현 평론가는 그분이 쓰는 글 항상 좋아해서 섭외하게 되었다.

 

ACT!: 작년부터 여러 영화제에 프로그램 노트로 참여하고 계신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서울동물영화제, 그리고 올해 부산현대미술관의 [영화의 기후: , 행성, 포스트콘택트존]까지 여러 영화제/기획전에 참여하셨다. 얼핏 여성영화제와 동물영화제의 주제가 영화의 기후 기획전으로 이어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영화제와 협업하게 되실 때 어떻게 진행하시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A: 여성영화제에서는 되게 감사했던 게, 지면을 만들어주고 싶어했다. 트위터의 씨네펨(*1)이나, 마테리알 등으로 활동하는 분들도 프로그램 노트를 쓰게 됐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러면서 점점 해파리에 기회가 생겼던 것 같다. 저희처럼 아무한테도 알려지지 않는 곳까지 찾아서 글 쓸 기회 주신 것에 대해서 영화제의 순기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이참에 새로운 이름을 알게 되어 찾아서 팔로우하기도 했다.

 

▲웹진 해파리의 상영회 [3시부터 5시까지의 해파리]와 [월간감독] 포스터

 

ACT!: 작년 5월 해파리에서 처음으로 상영회를 직접 기획하고 개최했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를 상영하고, 영화글 및 GV 기록까지 모두 웹진 해파리에 올라와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읽었다. 직접 상영회를 기획하시게 된 동기 혹은 계기가 있다면?

 

난둘 A: A 씨가 모든 영화제에서 상영이 된 엄청난 영화라고 먼저 알려줬다. 그냥 좋아했던 영화여서 상영하고 싶었다. 박송열 감독과 원향라 배우가 실제로 직접 촬영 시나리오 제작까지 하시고 그런 부분이 궁금했고. 영화제 일 시작하면서 상영회를 여는 게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모두가 원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고. 그때 코로나가 심각할 때여서 그랬나, 대화에 목말라 있던 것 같기도 하다. 한 달에 한 번 글을 올리는 것을 계속하던 상황인데 다른 걸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희가 잘할 수 있는 걸 해보자. 그리고 중요한 건 일방향적 GV는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우리가 GV에서 내성적이어서 질문이 나중에 생각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카톡방에 모여서 서로에게 말을 하고 감독님과도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보통 영화제에서 GV 시간은 길지 않고, 여러 감독이 모여서 진행하는 경우에는 있으면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을 길게 가져가면서 서로 이야기 길게 나누는 GV 만들려고 했다. 비평은 영화에 대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건데 상영회는 좀 더 대화에 가까운 형태라 생각했다.

 

ACT!: 첫 상영회 이후 2022 11월부터 2023 4월까지 정여름, 박세영, 임정은, 윤지혜, 오민욱, 김아영 등 여러 감독의 영화를 상영하고 토크를 진행하는 [월간감독] 프로젝트까지 진행하셨다.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었는지 여쭤보고 싶다.

 

A: 앞선 상영회가 발판이 되었다. 시네클럽 소행성(*2)과 함께하게 되었고, 그분들도 대안적 상영에 고민하고 오랜 기간 활동해온 분들이었다. 연이 닿아 시작하게 되었는데,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를 진행하며 해파리가 해야 하는 일에 구체적인 방향성이 생긴 것 같다.

 

난둘: 소행성과 협업하면서 3년 이내 작품이 나온 젊은 감독들로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현시대 감독 작품 조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A: 극장 개봉하지 않거나 영화제를 순회하고 상영이 끝난 영화들을 어떻게 볼 건지 고민했다. 더해서 어떻게 수평적 GV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에 관해 중요하게 논의했다. 공통적으로 GV빌런 같은 말이 없는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곳을 찾자는 의견이 나왔다. 물론 우리가 새로운 것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움직임이 많다는 것도 간과하지 말자고 생각했고. 대체 수평이 뭘까 고민하면서 단순한 것부터 대안적인 것을 고민했던 것 같다. 의자를 낮추거나 게스트와 관객이 빙 둘러앉는다거나.

 

ACT!: [월간감독] 소식을 알리던 SNS 게시물에는 "한 달에 한 명의 감독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동시대 한국영화의 흐름을 조망해 볼 수 있는 특별한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라는 소개글이 적혀 있었다. 어떤 논의를 거쳐 여섯 감독을 선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우선 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중요한 쟁점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 고르려고 했다. 그것도 균형이 맞게. 예를 들면 <다섯 번째 흉추>가 극적인 영화라고 본다면 정여름 감독이나 오민욱 감독의 영화에서는 그 외의 이야기들을 다룰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시기였고. 사실은 저희가 그냥 좋아하는 작가님들이었다. 무엇보다 여섯 개가 하나로 묶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분들에게 연락드렸던 것 같다.

 

난둘: 작가 후보는 진짜 많았다. 조현철 감독도 생각했었고.

 

A: (조현철 감독 영화는)이미 다른 곳에서 많이 상영되고 있어서 넘어갔다. 우리는 이미 상영이 끝났거나 아직 상영을 시작하지 않은 영화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채민이에게>를 틀고 싶기도 했는데, 한편만 틀기에는 러닝타임이 짧아 어려웠다. 정여름 감독님 영화랑 <채민이에게>를 같이 틀고 싶었는데.

 

난둘: 감독님이 또 외국에 계시고 해서 무산됐다.


ACT!: 개인적인 궁금함이긴 하지만, 상영회 예산은 어떻게 마련했는지 궁금하다. 지원 사업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아는데.

 

A: 각자 돈을 열심히 벌어서 열심히 썼다. [월간감독]은 소행성 측에서도 같이 부담할 수 있었기에 좀 더 긴 호흡의 기획전이 가능했던 것 같다.

 

ACT!: 사실 일종의 대안적 시네마테크라 할 수 있는 형태로 활동하는 집단들을 인터뷰해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먼저 떠올렸던 곳 중 하나가 웹진 해파리였다. 보통의 관객들은 영화제나 시네마테크 혹은 아트하우스 영화관의 기획전에 따라 자신의 영화경험을 쌓아간다. 반면 직접 상영회를 조직하거나 어떤 영화를 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자고 제안하는 것은 다른 방향으로 영화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상영회를 기획하는 마음"이랄까. 시네마테크나 영화제가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여러 이유로 위기에 놓인 지금의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파리의 구성원 스스로 자신의 활동을 자평한다면 해파리의 활동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A: 일단 저도 영화제나 서울아트시네마 등의 프로그램을 많이 쫓아다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거만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좀 돌림노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제가 단순히 영화를 위한 자리가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영화제가 답습된 권력의 장소가 되고, 많은 사람의 욕망이 그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부터는 죄악감이 들기도 하고. 편하게 갈 수 있는 장소가 점점 없어진다. 그런 곳을 가지 못하는 젊은 분들이 오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엄격하게 영화를 보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월간감독]에서 의외로 정말 처음 보는 분들을 만났다. 영화제나 시네마테크만 가다 보면 많은 관객의 얼굴이 익숙해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번에는 어디서 나타나셨는데 영화를 이렇게 많이 보셨지 싶은 관객들이 많이 보여서 배우게 되는 것도 많고 신기했다

 

난둘: 저는 목표나 주제가 정해진 것을 안 좋아한다. “지금 얘기하고 싶은데 와서 들어라. 같이 얘기하자.” 이런 식으로 상영회가 기획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A 씨도 같은 생각이었다. 영화제 포럼 라인업 등을 보면 이번에는 이 국가 영화를 하네 이번에는 어떤 스타일의 영화를 하는구나 생각하며 기존의 관례를 답습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좋은 동료를 만나 생각을 공유하며 진행할 수 있었고 재미있었다.

 

A: 다들 말을 안 하는 것 같다. 영화에 대해서 화가 나 있거나 아니면 우리랑 이야기를 안 해준다거나. 아무도 우릴 껴주지 않으니까.

 

▲웹진 해파리 홈페이지 메인 이미지


ACT!: 지난 2년 동안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활동을 지속하는 웹진 해파리의 동력은 무엇이었나?


A: 저는 본질주의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영화를 스크린에서 보고 싶어 그런 환경을 구축하고 싶었다. 그래서 극장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했고. 동력은 영화제에서 선택받거나 선택받지 못한 영화들, 틀어주는 영화들뿐만 아니라 계속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엔 어느 순간 영화가 수장고에 갇혔다고 해야 하나. 영화는 언제나 동시대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유행이 빠르게 왔다가 사라지고. 정리하자면 영화를 현재화하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난둘: 저는 사실 상업영화 후반작업 회사에 다닌다. 상업성의 끝판왕만 다루는 회사에 다니다 보니 원래 학교 다니면서 좋아했던 영화들은 그것들과 결이 다르다. 그래서 그런 영화를 상영하고 기획하면서 좋아했던 걸 다시 보고 좋아했던 마음을 다시 이어가보려고 했다. 그런 것이 동력이 되는 것 같다.

 

ACT!: 해파리의 멤버들이 각자 해파리를 통해 해보고 싶은 기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혹은 해파리에 알맞은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강연. 그러니까 상영, GV에 이어서 강연까지 같이 할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하고 싶다. 저희가 강연하는 게 아니라 배움을 줄 수 있는 분들을 모시고 싶다.

 

난둘: 예를들어 도나 해러웨이 영화(*3)를 상영하고 우리가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를 모셔놓고 그 얘기를 열심히 듣자라던가. 이런 얘기를 계속 해봤다.

 

A: 원래 [전쟁과 여성 영화제] 기획하신 프로젝트38 분들을 모시고 싶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 일을 하고 싶고 좀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

 

난둘: 계속 장편만 주로 상영했는데 단편도 모아 상영하고 싶다. 인터뷰도 계속 하고 싶고.

 

A: 지금 기획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정치적 목소리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원래는 즐기자는 마인드였는데 우리의 목소리에 관해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그런 프로젝트를 내부적으로 준비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영화 이야기를 한다면서 비겁하게 영화 텍스트 내부에 대한 이야기만을 해왔다. 그것보다는 지금 한국영화의 위기라고 하는 그 상황에 대한 발언 같은 것이랄까?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 기획하는 것은 <본명선언> <흔들리는 마음>을 함께 보면서, 한국 영화계가 집단을 만들어서 가해해왔던, 그런 식으로 성장해온 과정에 관해 이야기하게 될 것 같다. 근데 아무래도 또 장난스럽게 하게 될 것 같다. (웃음)

 

ACT!: 최대한 힘을 빼고 한다는 마음으로 해파리를 시작했다고 하셨지만, 지금의 이야기는 오히려 힘을 줄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 같다. 이게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생긴 것은 아닐 것 같은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A: 다른 젊은 평자들이 하는 이야기들, 각각 목소리를 내고있는 분들과 저희도 결이 좀 다르다. 그분들에게 대항하거나 같이 이야기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좀 다른 입장도 있다는 것을 저희가 해오는 것들로 이야기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다른 분들의 활동도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게 지켜보지만, 이게 또 답습의 문제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그분들이 문제라는 것은 아니고. 이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생각인데, 위에 있는 사람들도 본인들이 한 번도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래 사람들을 누르려고 하고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도, 그들도 여전히 자리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 측면에서 다 같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다.

ACT!: 인터뷰에 섭외하며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인터뷰를 준비하며 웹진 해파리의 인스타그램을 보니 ACT! 136호가 발행되는 8월 초에 웹진 해파리가 2주년이 되더라. 2주년을 맞이한 소감을 여쭤보며 인터뷰를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다.

 

난둘: 일단 A 씨에게 감사하다. 왜냐면 항상 어떤 기획안을 먼저 얘기하고, 재미있을 것 같은 일을 제안하면 나는 그걸 따르는 포지션의 사람이다. 좋은 것들을 기획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재밌는 글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 비평과 이론은 밀접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론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멀어짐의 속도를 늦춰주는 게 해파리라고 생각해서 오래오래 지속됐으면 좋겠다.

 

A: 2년 만에 처음 온 섭외 메일이 바로 ACT!였다. 해파리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생긴다는 것에 감사하다. 난둘 씨도 너무 고맙다.

 

 

 

 

 참고 자료

웹진 해파리 홈페이지 https://haepari.net/

웹진 해파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webzine_haep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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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성 영화 시네마테크"를 표방하는 트위터 계정. 각자 영화를 관람한 뒤 트위터의 음성채팅 기능 '스페이스'를 통해 영화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다. 종종 영화의 감독을 초대해 스페이스를 통한 GV를 열기도 한다. https://twitter.com/cine_femme

 

2. 매주 고전/예술영화 및 동시대 한국독립영화를 상영하는 비영리단체. 상영 당일 자율 후원을 받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https://www.instagram.com/cineasteroid.seoul/

 

3. 파브리지오 테라노바가 연출한, 도나 해러웨이를 다룬 다큐멘터리 <도나 해러웨이: 지구 생존 가이드>(Donna Haraway: Story Telling for Earthly Survival,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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