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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는 마음 - 반짝다큐페스티발 준비모임 김수목, 명소희, 오재형, 조이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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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3. 3. 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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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34호 인터뷰 2023.03.20]

 

준비하는 마음
-반짝다큐페스티발 준비모임 김수목, 명소희, 오재형, 조이예환

 

 

인터뷰어, 정리 및 작성 : ACT! 편집위원 차한비

 

 

▲반짝다큐페스티발 준비모임 왼쪽부터 명소희, 김수목, 오재형, 조이예환



“그럼 우리 만날까요?” 운을 띄우고 나서도 다섯 명이 둘러앉기까지는 한참 걸렸다. 2022년 7월 29일, 여름 중턱에 접어들어서야 초동 모임이 성사됐다. 오재형 감독의 작업실에 익숙한 얼굴이 하나씩 모였다. 2020년의 마지막 날 잠정 중단 소식을 알린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수목 감독과 최종호 감독, 첫 단편영화를 상영한 이래 인디다큐페스티발과 줄곧 인연을 이어 온 조이예환 감독, 그리고 인디다큐페스티발 봄 프로젝트를 통해 장편영화를 완성한 명소희 감독까지. 그들에겐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창작자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인디다큐페스티발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그들에게 신기하고 애틋한 시공간을 제공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영화를 발견했고, 낯선 이와도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어울렸다. 다섯 명의 감독은 일시 정지 상태의 영화제에 살짝 숨을 불어 넣기로 했다. 올해는 영화제에 참석하는 게스트가 아니라 영화제를 여는 호스트로서 반짝이는 시공간을 마련해볼 계획이다. 반짝다큐페스티발(3.24~26 @인디스페이스) 개막을 앞두고 후원의 밤 행사가 열렸던 지난 3월 3일, 종일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과 만나서 준비하는 마음에 관해 물었다.


각자 소개와 더불어 인디다큐페스티발과 어떤 인연인지 들려주면 좋겠다. 

김수목(이하 수목)_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서 서울에 왔을 때 미디액트를 만났고, 미디액트를 통해 자연스레 인디다큐페스티발도 알게 됐다. 처음부터 친근하게 느껴졌다. 인디다큐페스티발에 가면 미디액트에서 오며 가며 인사했던 감독, 함께 교육받은 동기 등을 만날 수 있었거든. 그 후 내 영화도 상영하게 됐고. 시간이 지날수록 여느 영화제와는 느낌이 좀 다르더라. 스태프들 만나면 뭐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항상 간식거리 같은 걸 들고 갔던 기억이 난다. 3년 전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중단됐을 당시, 나와 최종호 감독은 영화제 집행위원을 맡고 있었다. 영화제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던 이유를 알지만 한편으로 ‘이런 자리가 다시 생기면 좋겠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영화제를 열게 될 줄은 몰랐지. (웃음)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고,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영화제의 필요성에 공감했기에 준비모임에 합류했다.

오재형(이하 오쟁)_ 본래 미술을 하다가 영화 쪽으로 왔다. 처음엔 여기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작품을 상영하게 됐고, 그때를 기점으로 친구와 동료가 많이 생겼다. 내게는 좋은 추억을 많이 안겨준 영화제라 수목이 합류를 제안했을 때도 별 고민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명소희(이하 소희)_ 10년 전 부천미디어센터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들으며 영화를 시작했다. 당시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장이었던 오정훈 감독님이 강의를 진행하셨다. 수업을 마친 후, 감독님이 인디다큐페스티발을 소개해주시면서 수료작을 한번 출품해보라고 하시더라. 보기 좋게 떨어졌다. 자원활동이라도 해봐야지 싶어서 신청했는데 그것마저 떨어지고. (웃음) 그냥 놀러 가서 영화를 잔뜩 봤다. 물론 밤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술도 마셨다. 관객으로 와서 일주일 내내 뒤풀이에 따라간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웃음) 그 해를 시작으로 내게 인디다큐페스티발은 당연히 가는 영화제가 됐다. 내 영화를 그곳에서 꼭 상영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모로 고마운 영화제다. 인디다큐페스티발 신진작가 제작지원 사업 ‘봄 프로젝트’ 덕분에 첫 장편 다큐멘터리 <방문>(2019)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나도 오쟁처럼 준비모임 이야기를 듣자마자 알겠다고 했다.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더라.

조이예환(이하 조이)_ 처음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사람이 미래다?>(2011)를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했다. 당시 인디포럼과 서울독립영화제 등 몇몇 영화제를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인디다큐페스티발처럼 재밌게 놀았던 영화제가 또 있을까 싶다. 나 역시 아는 사람이 없는 상태였는데, 때마침 손경화 감독님이 ‘신나는다큐모임(신다모)’을 같이 해보자며 연락을 줬다. 끈 떨어진 사람끼리 알고 지내자면서. 나처럼 2012년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작품을 상영했던 감독들을 포함해서 여러 창작자가 신다모에 모였다. 같이 얘기하고, 영화 보러 가고, 술 마시고. 덕분에 빠르게 가까워졌던 것 같다. 다른 영화제에서 술을 한두 번 마신다면 여기에선 일주일 내내 마셨거든. 영화보다 영화 만드는 사람들과 더 친해졌다. 사실 난 인디다큐페스티발 덕분에 영화를 계속하게 된 것 같다. <사람이 미래다?>를 만들 때만 해도 영화에 별 관심이 없었다. 대학생이었고 막연히 ‘졸업하면 취직하겠지’ 생각했다. 근데 영화제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너무 재밌는 거다. 구름 속 존재처럼 느껴졌던 김동원 감독님과 술도 마시고. (웃음) 평생 이렇게 살면 좋겠다 싶을 만큼 즐거웠다. 인생을 바라보는 기준점 하나를 마련한 것 같다.

 

 

신다모에서 말하는 “끈 떨어진 사람”은 누굴 뜻하나.

조이_ 같은 영역에 있다 하더라도 선배들과 우리는 상황이 좀 달랐다. 손경화 감독님에게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선배들은 예전에 학생운동을 같이 했다거나 함께 뭉쳐서 시간을 보낸 경험 덕분에 꾸준히 알고 지낸다. 우리에겐 그런 연결고리가 없다. 당시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도 적었다. 학교를 통해 만나는 경우도 별로 없었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끈이 없는 상태여서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준비모임 결성 과정은 어땠나. 먼저 나서기가 쉽지 않았을 듯한데. 

수목_ 작년 6월쯤 김동원 감독님에게 연락을 받았다. 시네마 달 김일권 대표, 인디스페이스 안소현 국장, 인디다큐페스티발 최민아 국장, 변성찬 전 집행위원장 등 몇몇이 한자리에 모였다. 김동원 감독님이 최근 영화제에서 독립다큐멘터리 만드는 사람들이 너무 외로워 보인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소외감이라고 해야 할까, 감독님 역시 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그런 감정을 느끼셨나 보더라.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영화제를 다시 열어 보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다만, 이전 방식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오히려 진입한지 얼마 안 된 신진 창작자들, 다큐멘터리 작업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계속 넓혀가고 싶은 젊은이들이 중심에 서는 구조를 만들면 좋겠다고. 초반에는 알음알음 추천을 받았다. 예를 들어 오쟁과 조이는 문정현 감독을 통해 의사를 확인했다.

조이_ 문정현 감독님이 갑자기 전화해서 묻더라. 인디다큐페스티발을 부활시키려는 모임이 생길 것 같은데 관심 있냐고. 당연히 있다고 했지. 덧붙여 오쟁도 추천했다. 오쟁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걔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사실 난 관심은 있지만 참여를 확신하기엔 어렵다고 했다. 일을 해야 해서 시간을 내기가 마땅치 않을 듯했다. 근데 감독님이 이러더라. “그럼 하는 거야. 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 (웃음) 실제로 영화제를 열 수 있는 모임이라고 생각을 안 했다. 다들 그렇지 않나? 그냥 모여서 논의하는 자리, 그 정도로 알고 갔다. 논의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우리가 열고 싶은 영화제,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제는 어떤 그림일까. 그걸 같이 얘기해보고 싶었다. 막상 모임에 가보니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일이 이미 시작된 느낌이더라. 누구는 돈을 내겠다고 하고, 다른 누구는 자료를 공유하겠다고 하고.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반짝다큐페스티발이 진짜 열리는 건가. 3월 24일이 되어야 뭐라도 느낄 것 같다.

소희_ 나도 마찬가지다. 다만, 공감대를 확신했다. 처음 만나서 대화하는데 다들 생각이 비슷하더라. 영화제의 방향성과 가치 등 지향하는 바가 겹쳤고, 인디다큐페스티발을 좋아했던 이유 역시 비슷했다. 개인적으로는 동료가 생긴 기분이다. 그간 주로 혼자서 작업해온 터라 이렇다 할 동료를 만들지 못했는데, 이번에 준비모임을 통해 협업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 지금까진 즐겁다. 설득할 부분은 설득하고, 안 되는 일은 빠르게 포기하고. 서로 마음이 잘 통하는 편이다. 이러다 3월 24일에 싸울 수도 있지만. (웃음) 

오쟁_ 알다시피 영화제는 희생 공동체다. 서로 부탁하고 힘을 보태면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쉽다고 할 순 없는 일이지만, 한 번쯤 참여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작품을 상영하고 사람들과 만나면서 분명히 성장의 동력을 얻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그런 자리를 열어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더라. 게스트가 아닌 호스트로서 예전의 나 같은 사람, 동료를 찾거나 응원이 필요한 누군가를 초청하는 일에 함께하고 싶었다. 적어도 한 번은. 두 번까지는 모르겠다. 약속할 수 없다. (웃음) 

▲ 명소희, 김수목

 


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과 집행위원회 등 현재 어떤 주체와 협력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수목_ 공동 주관으로 함께하는 인디스페이스를 포함해서 많은 분이 알게 모르게 도와주신다. 난 처음부터 영화제는 어떻게든 열 거라고 생각했다. 방향과 규모를 열심히 고민했던 것이지 개최 여부를 의심한 적은 없다. 아마도 그건 뒤에서 우리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서 나온 자신감 아닌가 싶다. 돈은 알아서 구해 올 테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을 울타리 삼아 안정감을 느끼며 일했던 것 같다. 이제야 새삼 그런 생각이 든다. 김동원 감독님의 경우, 요즘 마음은 영화제에 이미 가 계신 듯하다. 개막식 사회자부터 후원의 밤 행사까지 살뜰히 챙겨주신다. 애초 감독님의 의지가 없었다면 영화제를 열기 힘들었을 거다.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2차 송환>으로 다큐멘터리상을 받으셨는데 당시 상금을 전부 반짝다큐페스티발에 후원해주셨다. 그렇게 감독님을 포함해서 선배들이 재정 문제를 맡아준 덕분에 우리는 실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조이_ 근데 난 얘기를 듣다 보니 수목의 낙관이 없었으면 우리가 여기까지 못 왔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솔직히 난 작년 말까지도 반신반의했거든. 영화제 관련 자료를 보니 엄두가 안 나더라. 우리는 1천만 원으로 시작해보자고 모였는데 인디다큐페스티발 규모에 맞추려면 10배 정도의 비용이 필요했다. 공적 지원금 없이 여는 영화제라니 한편으로는 너무 멋져 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왜 다들 지원금을 받겠어? 그거 없으면 안 되니까 받는 거겠지.’ 주변에서도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응원 메시지가 80%를 차지하긴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영화제를 열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서 미친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만났다. 지나고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나 싶다. 너무 힘들면 관두자는 생각으로 준비했는데 어느새 영화제 개최를 코앞에 두고 있다.

 

 

준비모임에서 영화제 실무와 프로그래밍을 모두 담당하나. 각자 역할 배분은 어떻게 했나.

오쟁_ 심사와 프로그래밍을 공동 업무로 놓고 각자 영역을 나눴다. 수목은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소희가 회계 업무를 담당한다. 나는 포스터 제작과 SNS 관리 등 홍보를 맡고 있다. 

조이_ 난 상영본 관리를 포함해서 주로 기술 파트에 신경을 쓰고 있다. 종호는 자원활동가 관리를 맡아줬다. 안 그래도 초반에 사무국 설치 여부를 놓고 회의를 많이 했다. 다들 사무국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상태였기에 갈피를 잡기가 어렵더라. 외부 인력이 필요한지, 아니면 우리 안에서 소화 가능한지. 결국 우리 힘으로 해보자고 결정했는데 다행히도 능력자들이 모였다. (웃음)

오쟁_ 각자 공동체 상영을 경험해봤다는 점이 큰 강점이었던 것 같다. 이전까지 다섯 명이 손발을 맞춰 일해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일이 돌아가는 흐름 자체는 어렴풋하게나마 인지한 상태였다.

조이_ 솔직히 영화만 잘 만드는 사람 5명이 모였으면 안 됐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오쟁처럼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예산 집행은커녕 엑셀 실행하는 법도 모른다면? 촬영만 해봤을 뿐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은 없다면? 5명 모두 낯선 사람에게 연락하는 일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라면? 알고 만난 것도 아닌데 신기하리만치 합이 괜찮다. 

▲ 오재형, 조이예환


잘할 수 있는 일이 달라서 시너지를 낸 것 같다. 출품 요건에 관해서도 이야기하면 좋겠다. “60분 이내의 중·단편 다큐멘터리영화, 한글자막 필수, 국내·외 영화제 상영 2회 이하, 작품 제작연도 제한 없음, 저작권과 편집권을 제작자 또는 연출자가 갖고 있는 작품” 요건에서 영화제의 방향성이 드러난다. 하나하나 고민하면서 결정했구나 싶다.

수목_ 작년 8월부터 12월까지, 거의 공고를 내보내기 직전까지 논의했으니 정말 오래 걸리긴 했다.

소희_ 중단편으로 제한하는 것과 동시에 고심했던 부분이 상영 횟수다. 아예 상영한 적이 없는 작품을 받자는 얘기부터 1~3회 사이에서 한참 고민했다. 근데 또 생각보다 쉽게 쉽게 결정이 났다.

수목_ 특별히 갈등이 벌어진 적은 없다. 누가 의견을 냈을 때 “절대 안 돼!”라고 하는 사람이 없거든. 다들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편이다.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리는가 싶다가도 끝에 가면 정리가 수월하더라.

조이_ 난 중단편으로 제한하지 말자는 쪽이었다. 장편이야말로 개봉하는 영화와 개봉하지 않는 영화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거든. 인디다큐페스티발은 개봉작과는 조금 결이 다른 작품을 볼 수 있는 공간이기에 좋아했고. 장편이나 단편 같은 분류보다는 주제와 작업 방식을 기준으로 작품을 찾아보고 싶었다. 근데 영화제 기간이 짧아지면서 최종적으로 중단편 제한에 동의하게 됐다. 상영 횟수와 러닝타임 등을 고려해야 하니까. 자막의 경우, 배리어프리 관점으로 접근한 오쟁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봤다. 요새 영화를 보면 디자인적으로 예쁘게 보이는 데만 치중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든 샷이 예쁜 것만 추구하고, 자막도 아주 작게 넣는다. 다른 걸 떠나서 일단 대사 전달이 중요한데 정작 중요한 걸 놓치는 거다.

오쟁_ 영화제의 규칙을 정할 수 있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게 한글자막 삽입이었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비단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접근성을 한결 높인다. 근데 화면해설이라든지 배리어프리 자막을 요구하기는 어려웠다. 현실적으로 시간과 공부가 필요한 영역이니까. 한글자막은 누구나 시도할 수 있고 바로 효과를 내기에 조항에 포함하고 싶었다.

 


2주라는 짧은 접수 기간 동안 총 153편이 영화제 문을 두드렸다.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창작자이자 동시대 관객으로서 기분이 묘했을 것 같은데.

수목_ 공모를 시작하기 전에는 작품이 얼마나 들어올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내부에서는 따로 초청작을 더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출품 편수가 적으면 어쩌나 싶어서. 그러다 153편이라는 결과를 받으니 기분이 참 좋더라. 영화제 하나가 정말 소중한 자리구나, 이런 기회가 필요하구나 싶기도 하고. 그다음엔 이걸 다 봐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밀려왔다. 우리가 영화 등급 심의 절차에 관해 몰랐던 바람에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부족했거든. 다들 부랴부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조이_ 정확히 예상보다 3주 적었다. (웃음) 

오쟁_ 다행히 홍보가 잘 됐다. 인디다큐페스티발 출품작 수가 150편에서 200편 사이였다고 하는데, 접수 기간을 비교해서 보면 우리도 비슷하게 받은 것 같다. 

 


심사하면서 눈에 들어온 점이 있다면. 

소희_ 이렇게 많은 작품이 그간 영화제에서 소개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걸 확인해서 반갑기도 했고. 제작연도를 제한하지 않다 보니 작품 사이에서 어떤 경향을 파악하기엔 어려웠다. 다만, 작품 대부분 낮은 곳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아무래도 나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 눈길이 가더라. 

수목_ 공통으로 좋다고 말한 작품이 딱 하나뿐이었다. 진짜 신기했다. 이렇게 보는 눈이 다르구나 싶고.

오쟁_ 내가 최고점을 준 작품은 안 뽑혔는데 정작 최하점을 준 작품은 뽑히는 일이 일어나더라. 그래도 최대한 각자의 시선과 취향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공통으로 선호하는 작품만 추려내다 보면 전체적으로 개성이 옅어질 수도 있으니까.

조이_ 중단편이다 보니 확실히 개인 서사가 많다. 그에 비해 오랜 시간 진득하게 찍은, 노력을 쏟아부은 티가 나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아서 내심 아쉽기는 했다. 장편을 보고 싶었던 마음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초청 섹션은 어떻게 기획했나.

조이_ 부산에서 활동하는 신나리 감독님 작품을 모아서 상영한다. 몇 해 전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만났을 때 감독님이 했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놀 수 있는 영화제는 처음인 것 같다고 하더라. 2012년에 내가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느꼈던 기쁨이 바로 그거였다. 신나리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덩달아 신이 났다. 다른 누군가도 그 기쁨을 느끼는구나, 우리가 그걸 공유했구나 싶어서. 항상 마음속에 있는 감독님인데 얼마 전 암 투병을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분의 영화를 상영하면서 응원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작품들이 우리 영화제의 지향과 맞닿아 있다고 봤기에 망설임 없이 제안했다. 

수목_ 장애인 이동권 연대 특별초청전에서는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집단 ‘다큐인’의 단편 2편을 상영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투쟁 현장을 기록한 작품들이다. 전장연에서 시민들의 연대를 요청하는 ‘달보기 운동’이 진행 중인데 이 소식을 접하고 다큐인에 상영을 제안해 초청 섹션을 꾸렸다.

▲ 명소희, 김수목, 오재형, 조이예환


곤란하겠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 같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반짝다큐페스티발은 일회성 이벤트와 인디다큐페스티발을 계승하는 축제 사이에 있다. 영화제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흔적도 곳곳에서 엿보인다. 각자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듣고 싶다.

소희_ 마음이야 영화제가 지속되길 바라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지더라. 창작자들이 뭉쳐서 저예산으로 영화제를 만들어보는 건 확실히 좋은 경험이다. 근데 매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라고 질문하면 모르겠다. 사실 이번에는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중단되고 3년이라는 공백이 있었기에 주변에서 많은 후원과 도움을 받았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올해와 같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 게다가 해마다 감독들이 나서서 품을 들여야 한다는 건데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는 즐거운 경험으로 받아들였지만 구성원이 달라지면 모르는 일이지 않나. 개인적으로 공동육아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거기선 무조건 차례를 돌아가며 이사회를 맡아야 하거든. 그런 조직을 만들어볼 수도 있겠지. 다큐멘터리 감독을 모아서 조합을 꾸리고, 조합원끼리 순번을 정해 1년씩 영화제 운영을 맡는 형태로. 근데 또 그걸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영화제가 지원을 받기 시작하면 운영 방식도 달라질 테고, 결국 특정한 몇몇만 일하는 구조가 될 가능성도 있다.

오쟁_ 나 역시 아직은 모르겠다. 영화제가 끝나고 나면 생각해볼 수 있으려나. 현재로서는 영화제에 관심 있는 사람을 찾아서 로테이션하는 방식이 가장 좋은 것 같긴 하다. 매년 개최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그냥 이렇게 2~3년에 한 번씩, 마음과 상황이 맞는 이들이 모여서 영화제를 열면 더 재밌지 않을까. 

조이_ 반대로 난 현재 구성원 5명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다시 하겠는데 아니라면 어려울 것 같다. 정말이지 우리는 운 좋게도 착착 맞아떨어졌다. 지금까지 재밌고 즐거웠기에 이 멤버라면 계속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목_ 처음엔 부담 갖지 말자고 했지만 아무래도 마냥 자유로울 순 없는 것 같다. 글쎄, 어쨌든 우리 손으로 시작했잖나. 그렇다면 “영화제 한 번 했으니 끝, 이제 난 몰라요!”라며 돌아서기는 어려운 것 같다. 올해 후원을 가능하면 많이 받고 싶다. 우리는 김동원 감독님 덕분에 시작이라도 해볼 수 있었거든. 영화제 개최 과정에서 재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음엔 누가 할지, 어떻게 할지 그런 걸 떠나서 일단 디딤돌 비용을 최대한 마련해두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한편, 뭐든 고정되는 순간 힘들어진다고 본다. 해야만 하는 일이 되면 정말 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이건 충분히 재미를 느낄만한 활동이고, 우리가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쟁이 앞서 말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위해 판을 만들어주는 경험이 우리 자신에게도 분명히 힘이 되거든. 새로운 걸 발견하면서 개인의 발전에도 영향을 준다. 

소희_ 그러니까 결론은 우리가 재밌어 보여야 한다는 거다. (웃음)

조이_ 다들 처음 인디다큐페스티발 가서 ‘여기 뭐지? 재밌네?’ 했잖나. 그 정도 느낌은 줘야 한다니까. 오늘 후원의 밤에 참석하는 감독을 한 명씩 붙잡아야 한다. (웃음) 관객에게도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우리 영화제의 매력은 모르는 사람하고 술 마시고 얘기하면서 친해지는 거다. 영화만 보고 돌아가지 마시고 함께 뒤풀이 갔으면 좋겠다. 극장 앞에서 두리번두리번하다 보면 누군가 말을 걸 거다. 

수목_ 관객 한 분 한 분을 소중하게 대하는 영화제다. 어차피 상영관이 하나뿐이라 만날 수밖에 없다. 반갑게 인사하면 좋겠다.

오쟁_ 술자리나 GV에 참여하기가 부담스럽다면 리뷰 많이 남겨주시길.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면 정작 감독들은 못 볼 수 있으니 피드나 블로그를 활용해주시면 좋겠다. (웃음) 



반짝다큐페스티발 기대작 미리보기
조이_ <곁에 서다>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는 가운데 홀로 갈아 넣은 고집이 매력적”
소희_ <우리는 어떤 음악을 만들 거거든요?> “이 영화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맞아, 인디다큐페스티발에 가면 이런 작품을 봤지!”
오쟁_ <도시수렵채집가와 로드워커들> “반짝다큐페스티발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유쾌한 청춘영화” 
수목_ <편지>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현장과 이야기를 가까이 들여다본다”
종호_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네> “누구도 부르지 않은, ‘나’를 찾고 싶은 모두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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