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35호 이슈와 현장 2023.05.30]
한국 퀴어 다큐멘터리 제작자 대담
다큐멘터리를 퀴어링 @한국 – 1부
- 이동윤(영화평론가), 홍민키, 권아람, 마민지(영화감독)
진행 및 정리: 김주현, 박동수, 임종우(ACT! 편집위원회)
[편집자 주]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에서는 국제 다큐멘터리 협회에서 진행된 해외 퀴어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의 대담을 번역 게재한 바 있습니다.(다큐멘터리를 퀴어링: LGBTQ+ 대담) 한국도 퀴어 제작자 및 퀴어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점점 더 많아지고, 다양한 형식과 주제를 가진 영화가 제작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퀴어 다큐멘터리의 제작 환경, 주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ACT! 에서는 한국 버전의 ‘다큐멘터리 퀴어링’ 대담을 마련했습니다.
대담에는 이동윤 평론가, 권아람, 홍민키, 마민지 감독이 참여하여 5월 초에 진행되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퀴어와 다큐멘터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다음 대담에서는 더 많은 퀴어 제작자와 함께 하길 바랍니다.
들어가며
이동윤: 먼저 돌아가며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저부터 소개하자면, 사실 영화평론가라는 직책은 조금 부끄럽다.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 한국퀴어영화사 프로젝트(한국퀴어영화사, 한국트랜스젠더영화사, 한국레즈비언영화사, 한국게이영화사)를 하면서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되었는데. 원래는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영화를 준비하는 창작자 입장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감독님들이 만드는 작품들 중심으로, 물론 현장에서 당사자로서 경험도 이야기하겠지만, 영화 연출을 지향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궁금한 점들, 예를 들어 감독님들은 작품을 통해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등을 여쭤보고 싶었다.
홍민키: 홍민키라고 한다. 퀴어와 관련된 주제를 다룬 건 비교적 최근이다. <들랑날랑 혼삿길>이라는 작업으로 퀴어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했는데, 그전까지는 어떤 사회적 이슈나 투쟁의 현장을 다루는 작업을 더 많이 했던 미술작가였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감독이라는 호칭이 더 익숙해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나와 같은 소수자 중에서도 우리가 애써 외면하거나 숨기고 싶어 하는 내용을 들춰내려 하는 편이다. 그런 ‘관종’ 호모인데(웃음). 퀴어 안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지 않나. 그리고 퀴어 운동에 반감을 가진 퀴어 당사자도 있고. 나는 그런 곳에 아예 쏙 들어가고 싶은 것 같다. 그런 곳이야말로 정말 우리가 끄집어내야 하는 역사적인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 <들랑날랑 혼삿길>이라는 작업으로, 커밍아웃 이후 퀴어 당사자로서 경험하는 삶의 무게감과 고민을 다뤘다. 가장 최근에 만든 작업인 <낙원>은 1970~1980년대 한국 게이 ‘크루징’(각주1) 문화 이야기다. 크루징 문화를 어떤 변태 성욕으로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퀴어 문화 자체가 음지에서 알음알음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런 것들을 통해서 커뮤니티가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업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정보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하고자 하는 작업은, 아마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 하는 것 같은데, 게이라면 많이 익숙할 수 있는 누누모텔이라는 공간에 대한 것이다. 굉장히 상징적인 공간인데, 그 공간과 함께 커뮤니티 안에서 많이 퍼지고 있는 케미컬 섹스(마약을 활용한 성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동시에 다루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케미컬 섹스 자체가 금기시되거나 음지화되거나 터부시되는 분위기가 있는데, 나는 그 문제의식을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동윤: 조각에서 영화 영역으로 넘어온 과정, 계기가 궁금하기도 했다.
홍민키: 이상하게 오늘 그라인더를 잡는 날이었다. 조각 전공을 하면서 이게 너무 무서웠다. 너무 위험하니까, 몸에 상처 나는 걸 싫어해서. 그래서 나는 다시 조각을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다른 매체를 찾다가, 내가 설치 미술을 했기 때문에 미디어로서 영상을 다루게 되었다. 영상을 하겠다는 결심보다는, 미디어로서, 지지체로서 영상을 써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영상 편집이 매력적이어서 몰입하게 된 것 같다. 재밌는 부분이 있는데. 관객 중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감독님의 영상은 무언가 용접된 것 같다”고. 내가 그 정도로 프레임을 엄청나게 쪼개서 합성을 한다. 약간 세공하는 수준으로 하는데, 나의 전공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권아람: 나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권아람이다. 항상 자기소개가 너무 어렵다. 원래는 철학 전공이었다. 철학은 재미있었지만 대학에서 철학 공부하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약간 바깥으로 돌아다니다가, 2010년에 미디액트 독립 다큐멘터리 과정을 수강한 것을 계기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2년에 <2의 증명>이라는 장편 다큐멘터리를 공동연출했다. 40대 MTF트랜스젠더 분의 법적 성별정정 과정을 다룬 작업인데, 지금은 외부 성기 수술을 하지 않아도 성별 정정이 가능한 판례들이 생기고 조금 변화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당시에는 수술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 과정을 담으면서 성별이 어떻게 증명될 수 있는 것인지, 그 사회적 조건들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다큐멘터리가 너무 어려운 거다. 물론 작업하면서 많이 배웠는데 제작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보니 그만두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가, 결국 다큐멘터리가 제일 재밌어서(웃음), 돌아와서 다큐멘터리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원 과정 중에 단편 다큐멘터리를 몇 편 만들었다. <퀴어의 방>과 <463 Poem of the Lost>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홈그라운드>라는 장편 다큐멘터리를 완성해 작년에 첫 상영을 했다. 좋은 소식이 있는데, <홈그라운드>가 개봉 지원을 받아서 하반기에 개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날 기대를 하면서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동윤: <홈그라운드>는 어떤 작품인가?
권아람: <홈그라운드>는 레즈비언들이 주로 이용했던 퀴어 공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자 또 현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명우형(윤김명우)은 널리 알려져 있는 분이다.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바인 레스보스를 오랫동안 운영해 오셨다. 명우형과 레스보스를 중심으로 1970년대 샤넬다방과 2000년대의 신촌공원,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댄스공간 루땐 등 서울의 다양한 퀴어 공간의 면면을 다루고 있다. 그 장소들이 당면한 문제와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이 느꼈던 편안함이나 연결의 감각 같은 것들을 세대와 시간을 넘어서 연결해 보고 싶었다. 개봉하면 꼭 봐주셨으면 한다.
마민지: 나 역시 소개가 참 어렵다. 나는 계속 영화를 해온 사람이고, 영화를 전공했고, 어쩌다 다큐멘터리를 하게 되었다.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도시 재개발이나 공간 의제에 좀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런 주제의 단편 다큐멘터리 작업을 계속 하다가, 나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 <버블 패밀리>라는 영화를 찍게 되었다. 그 뒤로 수많은 방황의 시기를 거쳤다. 갑자기 몽골에 가서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하고(웃음). 최근에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 분들과 같이 일상 회복 워크숍을 같이 3~4년째 하면서 동시에 그 과정을 촬영하고 있다. 현재 제목은 <착지연습>이고 내년에 완성을 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동윤: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다큐멘터리를 퀴어링” 기사 시리즈에 대해 몇 가지 포인트만 말씀드리겠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퀴어 당사자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중심으로 진행한 대담이다. 목적 자체가 퀴어 당사자로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의미와 현실에 집중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기사를 보면서, 우리나라 현실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으며, 이것을 우리가 그대로 반영해 한국 대담을 진행하는 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이유는 일단 미국과 한국의 성소수자 인식이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두 번째 이유는 교차성 문제이다. 미국은 다인종 국가이고 또 젠더 또한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의 결들을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분류해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 교차성 문제가 굉장히 첨예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문제를 한국의 상황에 고스란히 가져와 고민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대담에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질문하고자 한다. 그전에 기사를 읽으신 권아람 감독님부터 소감을 듣고 싶다.
권아람: 모든 부분을 꼼꼼하게 읽지는 못했지만 재밌었다. 말씀하신 대로 상황이 다른 부분도 있으니 완전히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퀴어 당사자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다양한 분야에 이미 포진되어 있고, 심지어 마이너한 영역뿐만 아니라 메이저한 영역에도 있고, 그곳에서 어떻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더 많은 목소리를 모을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좀 부럽기도 했다. 그 대담이 가능했다는 사실이 한국과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퀴어 당사자로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
이동윤: 첫 번째 질문을 드리고자 한다. 감독님들 모두 본인을 퀴어로 정체화하고 스스로 호명하신 분들이다. 이 사실이 어떤 방식으로든 작품을 만드는 데 개입하고 또 부딪히며 영향을 줄 것 같다. 여러 가지 면에서 퀴어 당사자로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또 그걸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다 넓은 의미로 여쭤보고 싶었다.
마민지: 사실 처음 대담 참여 제안이 왔을 때 내가 가도 되는 자리인가 약간 고민이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퀴어로서 정체화를 한 지 얼마 안 됐다. 다른 분들과 다르게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을 하면서, 출연진들을 만나다가, 오히려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좀 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한데,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고 나니 뭐랄까, 장녀로서의 어떤 모든 책임감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오랜 시간 나도 모르게 결혼을 수행해야 한다든지, 장녀로서 이성애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살았다는 점을 크게 느꼈다. 그래서 몇 개월 동안 고민의 시간을 조금 길게 보냈다. 사실 지금 작업의 출연진 중 한 명이 나의 파트너이다. 현재 작업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함께 모여 있고, 연대인들이 함께하고 있고 퀴어도 많이 있다. 그래서 나도 어떤 부대낌 내지는 고민을 크게 하지 않고 정체화를 빠르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동윤: 정체화 이전과 이후 작업 과정에 변화가 있는지 궁금하다.
마민지: 출연자와 만나고 있다 보니 사람들이 되게 놀린다(웃음). 이게 주인공에 대한 애정인지 아니면 이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인지가 너무 구분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나중에 또 다른 출연자를 떠올렸는데, 그 출연자에 대해서는 전혀 연애 감정이 안 드는 거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다. 지금 파트너에게 느끼는 애정이 다큐멘터리 주인공으로서 느끼는 애정인 줄 알았는데, 너를 생각하면 이거는 우정이고 파트너를 생각하면 우정이 아닌 것 같다고. 이런 부분을 고민했다고 얘기를 털어 놓은 적이 있었다. 출연진이나 함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동료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적응했다.
권아람: 퀴어 다큐멘터리 작업을 몇 편 해오기는 했지만 작업을 통해 내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작업 바깥에서도 내 이야기를 할 기회는 특별히 없었고, 별로 욕구도 없었다. 하지만 관련된 자리에서, 예를 들어 GV나 피칭 같은 자리에서 내가 퀴어라는 사실을 숨긴 적도 없었다. 사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제일 강한 것 같다. 그런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감각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냐는 걸 생각을 해보면, 그게 퀴어 정체성과 긴밀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거다. 하지만 사회에서 주변화되는 사람들의 경험에 마음이 가닿고, 이런 이야기들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를 단순히 정체성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다. 정체성을 기반으로 쌓아온 시간과 감각, 관계의 역사가 그 위에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퀴어 정체성만큼 페미니스트로서의 인식이나 관심사가 중요하기도 하고. 솔직히 다큐멘터리 만드는 건 정말 힘들고 퀴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은 여러모로 더욱 녹록지 않은 일인데 이걸 계속 하는 이유가 뭘까? 계속 고민한다. 궁금한 게 너무 많고, 결국 마음이 가는 인물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그 궁금증이 퀴어로 정체화하는 인물이나, 퀴어들이 모이는 어떤 현장으로 향했던 거다. 그런데 지금은 퀴어 다큐멘터리 혹은 퀴어영화라는 게 단순히 정체성이 퀴어인 사람에 대한 것만은 아니라는 방향으로 생각이 나아가게 되면서, 예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 혹은 다른 이야기 그러나 역시 퀴어영화의 범주에 포함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것 같다.
홍민키: 퀴어에 대해 공부할수록 나에 대한 정체화를 하나로 하는 게 맞을까라는 고민을 어쩔 수 없이 거치게 되지 않나. 나는 무엇인가 쪼개지다가 끝에 만나는 결론은, 그냥 속된 말로 “난 자지가 너무 좋다.” “나는 게이다.” “나는 호모 새끼다.” “그냥 자지가 좋은 남자 새끼.” 이 한 문장만큼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없는 거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많이 하는데 특히 성적인 포스팅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다. 딜도 사진도 많이 올리고. “딸치고 싶다”라든지 “섹스 하고 싶다”라든지 이러한 표현을 정말 많이 한다. 그 이유는 내가 변태 게이라는 사실을 꼭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는다면 변태 게이도 변태 성욕자로 욕할 것이 아니라 그냥 게이로 인정을 해야 혐오세력이 퀴어를 배제하는 논리를 오히려 반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게이 커뮤니티 안에는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게이 문화가 있다. 예를 들어 찜질방 문화라든지 노콘섹스와 같은 것들.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금기시하는 질문을 계속 끄집어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냥 자지가 너무 좋은 남자 새끼로서, 변태 호모로서 정체화를 하고, 그 정체성을 중심에 두고 내가 끄집어내고 싶은 이야기들을 주변에서 찾아오는 거다. <들랑날랑 혼삿길>에서는 나의 가족을 인터뷰했다. 내가 커밍아웃하고나서 가족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내가 조카가 생겼을 때 나는 게이 삼촌일 수 있는지”. 가족들이 나의 커밍아웃을 수용한 상태에서 그 다음 세대까지 내가 게이로 살아갈 수 있는지, 아님 이 아이에게는 내가 게이임을 숨겨야 하는지. 이런 문제가 있다. 커밍아웃하고 나서 가족과의 어색한 거리두기가 생겼는데, 그 거리두기를 일부러 깨뜨려버린 거다. 다큐멘터리라는 핑계로 평소에 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내가 변태 게이여서 변태 섹스를 하지만 그것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공표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 않나. 나의 삶이나 나의 가치관 혹은 세계관을 어떤 담론의 현장으로 끌고 올 수 있는 주도권이 영화를 통해 생겼다고 느낀다.
작품과 거리두기
이동윤: 세 분의 이야기 들으면서 계획하지 않았던 질문이 하나 생각났다. 퀴어 당사자인 영화감독으로서 퀴어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내 삶의 어떤 부분과 작업이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작품은 또 작품으로서 존재하고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서 분리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 않나. 감독으로서의 거리두기도 필요할 것 같은데. 이런 부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작업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는지. 이런 것들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권아람: 나는 사실 나 자신한테는 크게 관심이 없다. 어쩌면 10대 시절 너무 많은 관심을 소진해버려서 그럴 수도 있고. 나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보다는, 어떤 현장이나 장소에 가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사건과 만남이 일어나는지를 지켜보면서 거기에서 나의 흔적을 찾는 것을 선호한다. <퀴어의 방>을 만들 때는, 나도 누구와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를 되게 고민하던 시기였다. 남들은 도대체 어떻게 사는 건지 너무 궁금해하던 중 시도한 작업이다. 출연자들의 방을 보고, 그들이 누구랑 어떻게 살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말 한 마디, 문장의 행간에 내 마음을 좀 담는 거다. 어떤 이야기가 내 고민과 맞닿으면 재밌고, 어떤 부분이 다르면 또 달라서 흥미롭고. <홈그라운드> 하면서 명우형을 몇 년 동안 지켜볼 수 있었다. 명우형이 화려한 모습으로 많이 알려지셨는데, 사실 그 이면에는 힘든 게 또 있지 않겠나. 나이도 있으시고 자영업자이시고. 그런 이면의 시간을 지켜보면서 ‘이분이 이걸 왜 계속하는 걸까?’, ‘너무 중요한 공간인 건 알겠지만 개인의 삶의 질을 위해서는 정리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건 내가 다큐멘터리를 하는 마음과 좀 비슷하구나’ 생각했다. 명우형도 되게 힘들게 공간을 지키지만, 나도 카메라 뒤에서 그 시간을 조금이나마 같이 지킨다. 물론 매 순간 거리두기가 잘 되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에는 너무 이입되기도 하고. 그래도 조금 떨어져서 타인의 삶을 바라보고 거기에 내 마음을 겹쳐서 볼 수 있는 것이 진짜 다큐멘터리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홍민키: 내 성격의 문제일 수 있는데, 타인에게 공감을 잘 못하는 편이다. 애초에 거리두기가 그냥 디폴트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공감하는 걸 잘 못하고 그냥 피사체처럼 느껴질 때가 훨씬 많다.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해 그렇게 흥미나 관심이 없고, 자신에 대해 탐구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나는 오히려 가상세계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 약간 유토피아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가상세계에서는 정체성도 없고 인종도 없고 그런 문제들이 다 소멸한 느낌이 들 때가 가끔 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현실에서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하는 게 어려워서 역설적으로 다큐멘터리를 하는 것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몰입했으면 ‘이것을 담지 않고 공감을 해줘야 하는 순간인 건가?’ 고민되는 게 있었을 텐데, 나는 그냥 피사체로 느껴질 때가 더 많으니까. 그래서 거리를 좁히는 게 나에게는 더 어려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계속 떨어져 나가려는 피사체를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어떻게든 당기려고 해서. 나는 어떤 평행선을 그리면서 나아가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 같다. 내 작업을 보면 카메라 기반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대부분 합성을 정말 많이 한다. 가장 최근에 만든 <낙원>이라는 작업은 거의 풀 3D 애니메이션에 보이스만 얹은 작업이다. 그러다 보니 매력적인 대상을 찾아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방식보다는 어찌 보면 역사를 서술하는 태도에 가까운 것 같다. 타인의 이야기들, 내가 닿지 못했던 파편들을 모아 역사를 되짚어보고 싶은 것에 더 가까워서, 조금 더 거시적인 역사를 서술하는 마음으로 다큐멘터리에 접근하는 것 같다. 그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사실 확인에 가까운 것들이 작업의 기반이 되어 있고, 그걸 바탕으로 내가 닿지 못했던 역사적 데이터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서 쉽게 전달될 수 있는 방향을 상상한다.
마민지: 정체화 이후 작업의 변화가 크게 생긴 것 같지는 않다. 평소에도 그렇고 나는 사람한테 관심이 너무 많다. 오히려 문어발처럼 접근하는 게 있어서, 정체화하고 주변에 이것저것 얘기를 했더니 환대도 많이 해주시고 수다 떨 거리도 더 많이 생겼다.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영역이 더 많이 생긴 느낌이다. 거리두기를 해서 작업을 하기보다는 가까이 다가가 신나게 활동하고 행동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작업 영역이 넓어진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여기 대담에도 초대를 받고. 조금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상태로 지내고 있다.
이동윤: 나는 극영화 경험은 있지만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보지는 않았다. 극영화는 아무래도 스태프들이 많지 않나. 몇십 명이 현장에 있고. 그래서 내가 퀴어 당사자라는 것 자체가 현장에서 여러 가지 작용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는 그렇지는 않으니까. 현장에서 스태프나 대상과의 소통과 같은 부분이 극영화와 다르리라 생각해서 여쭤본다. “퀴어영화 혹은 퀴어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감독이 퀴어 당사자여야만 할까?” 혹은 “유리하다”고 할 수 있을까? 중요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아까 권아람 감독님께서도 언급했다. 퀴어영화를 조금 투박하게 나누면 퀴어 당사자가 재현된 작품과 퀴어 당사자인 감독이 만든 작품이 있는 것 같다. 후자의 경우는 퀴어 당사자가 재현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퀴어 당사자가 감독이라면 그 작품은 퀴어한 시선으로 본 영화이기 때문에 퀴어 영화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인 거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퀴어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감독이 퀴어 당사자인게 유리하다고 볼 수 있는가, 비-퀴어인 감독이 퀴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을 때 그 작품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것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작년에 비-퀴어 감독이 만든 <퀴어 마이 프렌즈>라는 작품도 있었지 않나.
홍민키: 굉장히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루려는 것은 게이의 이야기 안에서도 닿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비-퀴어일 때 여기까지 닿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낙원>을 찍을 때 많게는 70대 보통은 60대 연령층을 인터뷰했다. 그분들은 퀴어 안에서도 자신을 숨기려는 분들이다. 인터뷰어가 <낙원>을 함께 기획한 토드 헨리라는 역사학자였고, 그의 인터뷰 자료를 넘겨받아서 작업했다. 나는 (인터뷰이) 여섯 분 중에 두 분만 만날 수 있었고 나머지 네 분은 만남을 요청했는데 거절하셨다. 만남을 거절한 분의 녹취록 내용 중에 “당신이 한국인이었으면 만나지 않았을 거다”라는 내용이 있다. 한국인에게 자기가 한국인 60대 게이 남성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 자체에 대한 공포가 너무 크셔서, 인터뷰어가 외국인이라는 필터가 하나가 있으니까 인터뷰에 응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교차성의 이슈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필터들이 계속 있는데, 어쨌든 당사자일 때 필터 하나를 거두고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터뷰이 여섯 분 중에 한 분은 “꽃띠”라는 표현을 했었다. 과거에 좀 예쁘장한 남자애를 “꽃띠”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분의 취향에 내가 가깝다 보니까 더 끄집어낼 수가 있는 거다. 그래서 그걸 이용할 때가 많았다. 그분이 진 사장님인데, “진 사장님~ 사장님 잘 지내셨어요?” 이러면서 애교 부리고 미팅 날짜를 따로 잡아서 인터뷰를 요청하고. 사실 다 들은 내용인데, 그 내용을 다른 문장으로 쓰고 싶어서 인터뷰를 한 번 더 요청을 드렸다. “다 들었잖아. 근데 예쁜 애랑 밥 먹으니까 좋네” 이러시면서 인터뷰를 해주시고. 만약에 내가 스트레이트 남성이면 그분이 그런 태도를 보이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한마디로 그 필터 하나가 거두어진 채 시작을 하니까 그 사람 안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데 유리한 점이 분명 있었던 것 같다. 굳이 내가 어떤 단어를 쓸 때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거지. 선험적인 경험이라는 게 있기에 걸러졌을 수도 있는 언어들이 날 것의 형태로 나오는 것 같다. 극영화는 이야기를 타이핑 치면 되는데, 인터뷰에서의 언어는 다큐멘터리 할 때의 생명력이지 않나. 걸러지지 않은 그 언어들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유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마민지: 정체화한 이후 다음 작품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할 때 기존 관심사와 다른 것이 생긴 걸 느낀다. 지난 몇 년 간 내가 직접 등장하거나, 수행적으로 활동의 판을 만들거나, 당사자들과의 공동작업을 했었다. 지금은 파트너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제도 안에서 어떤 의미일지 고민하게 되더라. 다음 작업이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내 삶의 문제들이 사회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전에도 IMF 때 집안이 망한 당사자,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서의 당사자 등으로 이야기를 해왔는데, 다음은 퀴어 당사자로서 무언가를 해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든다. 소재를 생각할 때도 퀴어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동료들도 이전보다 자유롭게 퀴어 농담을 하면서 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도 있고. 주제가 다른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권아람: 퀴어 당사자가 아니어도 퀴어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겠지만, 어떤 이야기를 왜 하려고 하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 그게 명확하지 않다면 좋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퀴어 당사자인게 퀴어 다큐멘터리를 하기에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섭외를 하려 해도 많은 공을 들이고 관계를 맺고 긴 시간 촬영하면서 신뢰를 쌓아나가는 건데, 비-퀴어가 요청했을 때와 퀴어 당사자인 사람이 요청했을 때 섭외 받는 입장에서는 신뢰도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홈그라운드> 만들고 해외 영화제에 출품할 때, 감독의 정체성이나 섹슈얼리티를 쓰게 하는 곳들이 종종 있었다. 퀴어 영화제들이 주로 그러했는데, 한국의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나 한국퀴어영화제에서는 그러한 정보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신기했다. 그 이유를 떠올려봤을 때, 물론 단순 통계 목적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연출자에 대한 신뢰를 담보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쓰는 게 한국에서는 아웃팅이 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내 추측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그것을 공개하는 것이 덜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당사자로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고 더욱 당당하게 작품을 내놓을 수도 있고, 제작진이 퀴어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임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게 중요한 정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동윤: 퀴어영화에서 퀴어 당사자성은 논쟁이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내 위치에 따라 내가 포착한 이미지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성의 신체를 이성애자 여성 감독이 찍은 것과 이성애자 남성 감독이 찍는 것은, 똑같은 프레임으로 찍더라도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여성영화에서도 첨예하게 이야기되어 오던 것이기 때문에. 퀴어영화도 마찬가지로 감독의 당사자성이, 무조건 당사자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지 판단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관련 정보를 요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하기엔 인권이라던가 여러 측면에서 미미한 부분이 많다보니 논의가 거기까지는 아직 못 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퀴어 마이 프렌즈>는 모범 같은 작품이라 인상적이었다.
마민지: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얼마 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들을 만났다. 작업할 때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 당사자들이 섞여 있다보니까 당사자성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더 나아가서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담론을 만들어가고. 당사자만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의견을 낼 수 없어지니까. 이 부분을 계속 경계하며 작업을 하다가 남성들과 같이 페미니즘 이야기를 했는데, 이때 결국 같은 맥락에서 문제들이 튀어나왔다. 당사자분들도 남성 활동가들도 고민을 많이 하고 계셨고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니 시원하면서도 답답한 여러 감정이 들었다. 결국에는 담론이 확장되려면 당사자가 아닌 이들도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말씀주신 것처럼, 어떤 입장과 태도, 얼마나 고민했는가가 작업에 투영이 되어 다 드러나는 것 같다.
이동윤: 논의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일 수도 있겠는데, 그러한 문제가 퀴어 당사자인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사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 않나. 예를 들어, 나는 시스젠더 게이이기 때문에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잘 모른다. 내가 성소수자니까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권위적이거나 위험할 수 있다. 때문에 권아람 감독님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로서 스스로 인식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2부에서 계속)
각주) 크루징 - 길거리나 화장실, 극장, 공원 등의 공공장소 혹은 게이대상 업소 등을 돌아다니며 데이트 상대를 찾는 일. (출처: 친구사이 LGBT 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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