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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다루는 미디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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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2. 12. 1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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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33호 이슈와 현장 2022.12.22]

 

재난을 다루는 미디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한진이 (ACT! 편집위원)

 

10.29 참사 이후 소셜미디어에 접속하는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구태여 묻지 않아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의 상황이 적나라하게 담긴 글과 사진, 영상을 혹시라도 마주칠까 저어하는 것이다. 피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한편으로는 참사 현장을 여기저기로 나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모두가 자극적인 기록을 팔아 잇속을 차리려 한다고 말하는 것은 손쉬운 비약이다. 누군가는 진실한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자 피해자의 사진을 가져다 썼는지 모른다. 잔혹할망정 최대한 날것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일견 온당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나은 애도와 기록을, 기억을 고민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실마리는 약하고 소외된 이를 끌어안는 데 있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애도, 누구든 마땅히 접근할 수 있는 기록, 모두를 회복으로 이끄는 기억을 구하며 우리는 아동을 바라본다.


호주의 아동 정신 건강 관련 비영리단체, 이머징 마인즈 Emerging Minds는 미디어 전문가를 대상으로 “아동과 가정을 생각하기”라는 제목의 재난 및 지역 공동체 외상적 사건 community trauma events 보도 지침을 제작 및 배포한다. 지침은 아동과 가정, 지역 공동체는 물론이고 사건에 노출되어 이차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경험할 여지가 있는 미디어 종사자와 그들의 가족까지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모범 실천을 제시한다.

 

 

▲ 호주의 아동 정신 건강 관련 비영리단체, 이머징 마인즈 Emerging Minds 가 만든 재난 및 지역 공동체 외상적 사건 community trauma events 보도 지침 내용 중 자료 이미지 (출처: Emerging Minds 홈페이지)

 


외상적 사건은 주관적으로 경험되는 사건 중 그 규모와 강도가 압도적이고(과도한 두려움 및 과도한 괴로움) 개인의 대처 능력을 넘어서는 것들을 이른다. 여기에는 홍수, 산불,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 총기 난사, 차량 사고, 테러 공격과 같은 지역 공동체 외상적 사건이 포함된다. 이러한 외상적 사건은 대개 지역 공동체 전체에 파급을 미치며, 아동도 예외는 아니다. 외상적 사건은 이내 재정적, 사회적, 정서적, 생활환경적 역경으로 확장되는데 이 시기에는 미디어 노출 역시 스트레스의 주요 근원지가 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미디어 노출이 늘어남에 따라 아동의 재난-후 외상 반응 post-disaster trauma reactions 역시 증가한다. 따라서 재난 및 지역 공동체 외상적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해하지 말것Do no harm’의 접근법을 채택하여 아동과 가족의 안녕을 염두에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미디어는 어떻게 재난 혹은 외상적 사건의 보도에 대비할 수 있는가? 재난 및 지역 공동체 외상적 사건의 내부에는 순서대로 대비-즉각 대응-단기-장기-지속적 회복의 단계가 존재하며 기자 및 미디어 종사자의 역할과 책임은 그에 따라 변화한다. 이 가운데 대비 단계에서 미디어는 다음과 같은 책임을 가진다:

 

• 해당 지침과 여타 윤리적 지침에 대한 지식을 갱신하기
• 잠재적 사건과 위험에 처한 지역 사회에 대한 정보를 숙지하기
• 동료 및 비상 관리 담당 공무원 emergency management officials과 대응을 조정하기
• 기본적인 외상 징후를 이해하기
• 응급 구호품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게끔 물, 식수, 긴급/구급 대책을 준비하기
• 사람들이 추후 동의를 철회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려는 목적으로 연락을 취하고자 할 수 있으니 충분한 양의 명함을 챙기기


사건 발생 이후 몇 주 혹은 몇 달간, 즉 단기 단계의 보도는 붕괴가 아닌 재건과 회복을 강조하는 편이 좋다. 사람들이 겪은 일과 그로 인한 상실에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지녀야 하며, 사건에 관계되었을 보다 폭넓은 구조적 요인(날씨, 기후 변화, 정부 정책 등)을 일러 주어야 한다. 사회 public가 회복을 심적, 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외상에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래를 바라보고 지역 사회와 삶을 재구축하기 시작할 것이다. 붕괴 혹은 죽음에 대한 기록을 재사용하여 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고통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다. 삶의 재건이나 재난으로부터의 회복에 관한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보다 긍정적이고 균형 있는 보도가 가능할 것이다.


사건 발생 이후 수 달 혹은 수 년이 지나 장기적 회복 단계에 들어섬에 따라 기자는 특별 추모제나 기념일을 위해 지역 사회에 재방문하게 될 수 있다. 과거에 사건을 경험한 이들을 (재차) 인터뷰하게 되는 경우, 극복의 과정 혹은 극복을 가능하게 했던 힘에 질문의 초점을 맞추어라. 생존자들의 모습이 담긴 과거의 기록을 보여 주는 것은 지난 몇 달, 몇 년을 사건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해 왔을 이들에게 있어 정서적 ‘습격’이 될 수 있으며 그들의 회복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이야기를 전함에 있어 생존자의 기록이 필수적인지 스스로 질문해 보고, 만약 그렇다면, 보게 될 기록에 대해 인터뷰 대상자를 충분히 대비시켜야 한다. 모든 보도물은 재난과 외상에 대한 신체적, 심리적 회복이 지난한 연속의 과정임을 거듭 상기시킬 의무를 가진다.


소셜미디어가 이토록 일상적으로 우리 곁에 있고, 미디어의 수신을 넘어 배포, 심지어는 생산의 문까지도 활짝 열려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모두가 안녕한 미디어를 만드는 책임은 미디어 전문가에게만 있지 않다. 그렇다면 미디어를 이용하는 시민의 역할은 무엇일까?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는 미디어의 올바른 사용, 무엇보다 디지털 시민 의식이 공동체의 회복과 치유를 보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서문과 함께 디지털 시민이 재난 상황에서 참고할 수 있는 미디어 이용 지침을 공유한다.
 

 

▲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에서 제작 배포한 미디어 이용 지침

 

재난 상황에서 아동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는 보호자에 집중하여 아동의 안녕을 도모하는 지침 역시 존재한다. 미국소아과학회는 참사 및 여타 외상적 기사 사건에 관련하여 아동과 이야기 나누는 방법을 제안한다. 미국소아과학회는 부모, 교사, 아동 돌봄 제공자 등 아동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 사건에 대한 정보를 아동이 이해할 수 있고 건강한 방식으로 대할 수 있도록 적절히 여과 및 조정하라 조언한다. 혹시 보거나 들은 것이 있는지 물으며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은 아동의 나이와 발달단계에 관계없이 항상 좋은 시작점이 된다. 아무리 나이 어린 아동이라 하더라도 분명 무언가 들은 바가 있을 것이다. 들은 바에 대해 물은 후에는 그와 관련한 궁금증이 있는지,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하라. 소년, 십 대, 청년 들은 보다 많은 것을 궁금해할 수 있으며, 그들이 요청하는 경우에는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어도 좋다. 그러나 아동의 나이를 막론하고 대화는 솔직하고 직관적이어야 함을 명심하라.

 

 

▲ 미국소아과학회는 참사 및 여타 외상적 기사 사건에 관련하여 아동과 이야기 나누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미지 출처: 미국 소아과학회 홈페이지)

 

대부분의 경우, 아동과 전반적인 정보를 공유하되 시각적 묘사나 비극적 상황에 대한 불필요한 묘사는 피하는 것이 옳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충분히 이해하기를 원하는 것은 성인이나 아동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각적 정보나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은 금물이며 아동은 텔레비전, 라디오, 소셜미디어, 인터넷 등에서 반복적으로 발신될 수 있는 시각적 이미지나 소리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보다 나이가 있는 아동의 경우에는 미리 뉴스 보도물을 검토해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리하여 보호자와 아동은 사전에 검토된 콘텐츠를 함께 살펴볼 수 있으며 필요한 때에는 잠시 멈추고 논의할 수 있게 된다. 아동은 대개 옳은 조언을 잘 가려낸다. 그러나 옳지 않은 조언을 따른다 할지라도 아동이 자신의 결정에 준비가 된 상태라면 그의 선택과 행동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아동은 핸드폰을 통해 소셜미디어 및 인터넷 등지에서 뉴스와 시각 이미지에 바로 접근할 수 있으므로, 아동이 듣거나 보게 될 것에 대비하여 될 수 있는 한 얼른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위 지침을 참고하여 아동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었다면, 이제 부모, 교사, 돌봄 제공자 등 보호자는 아동이 정보를 어떻게 소화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음의 신호는 아동이 대처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시사한다:

 

• 수면 문제: 아동이 잠에 들지 못하는지, 자꾸 깨는지, 잘 깨어나지 못하는지, 악몽 혹은 기타 수면 장애를 겪는지 살펴라.
• 신체적 불편감: 아동은 피곤함, 두통 혹은 복통, 전반적으로 안 좋은 몸 상태를 호소할 수 있다.
• 행동적 변화: 아동의 식사량이 평소보다 극히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경우가 있다. 미성숙한 행동이나 참을성이 부족한 모습, 때 쓰기 혹은 짜증 내기, 사회적 퇴행 등 퇴행적 행동의 징후를 살펴라. 한번 부모와 쉽게 분리되는 경험을 한 아동은 부모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십대들은 담배와 술, 약물에 새로 손을 대거나 기존의 사용량을 늘리게 되기도 한다.
• 정서적 문제: 아동은 지나친 슬픔, 우울, 불안 혹은 공포를 경험할 수 있다.


아동은 때로 능숙하게 괴로움을 숨긴다. 따라서 보호자는 징후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빨리 아동과 대화를 시작해야 하며, 그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아동 통합 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인 딱따구리는 10.29참사 직후 미국소아과학회의 위 지침을 참고하여 카드 뉴스를 제작한 바 있다. 작금의 구체적인 상황에 보다 적용하기 쉽도록 다듬어졌으니 일상적으로 아동과 교류하는 이라면 꼭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살피기, 그리고 돌보기. 그것을 재난을 다루는 미디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로 제안하고 싶다. 더욱 자세한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아래의 자료 출처를 참고하라. □

 

자료 출처

 

글쓴이. 한진이 (ACT! 편집위원)

말하고 싶지 않음과 말해야 함 사이에서 갈등하며 번역이라는 회색 지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일감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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