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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시민으로서 카메라를 드는 것 - [커뮤니티 아카이브 만들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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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2. 12. 1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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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아마추어적이고 의미 전달이 서투를지라도 각자의 작은 이야기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만들어 아카이빙하는 과정이 사실 우리 사회가 거대한 이야기 속 다양한 사람들과 풍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서로를 좀 더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앞으로 난 현장에서 어떤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어야 할까? 책 '커뮤니티 아카이브 만들기’의 와스렌! 의 기록 정신처럼 카메라 앞에 있는 이들과 같은 세상에 서있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ACT! 133호 이슈와 현장 2022.12.22]

 

한 명의 시민으로서 카메라를 드는 것

- 책 [커뮤니티 아카이브 만들기] 리뷰

 

박명훈

 

커뮤니티 아카이브 만들기 - 센다이미디어테크 311일을 잊지 않기 위하여 센터 분투기20113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와스렌!'이라는 커뮤니티 아카이브 활동을 통해 시민들이 직접 재해 현장과 부흥 과정을 기록하고 그 활동을 지원한 과정을 설명한 책이다. 아마추어인 시민들이 재해 현장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기록하고 아카이빙하는 과정을 보면서  지난 9개월 동안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 이 책은 센다이미디어테크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아카이브 플랫폼인 [3월 11일을 잊지 않기 위하여 센터(약칭 와스렌!)]의 활동 기록이다. 센다이미디어테크는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소재한 예술 문화 시설 및 평생 학습 기관으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사상 초유의 재난이 발생하자 같은 해 5월 3일 [3월 11일을 잊지 않기 위하여 센터(약칭 와스렌!)]를 개설했다. 와스렌!은 지진에 관한 기억 및 피해 복구, 부흥 과정을 기록하고 발신하는 플랫폼이다. (출처 : yes24 책 소개)

20223월부터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조연출을 하면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장애 해방 운동을 촬영하고 있다. 작업에 참여하기 전, 언론을 통해 알고 있던 예산 확보를 위해 지하철을 막는 장애인 단체라는 이미지는 내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활동가 개개인의 이야기를 담음으로써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 330일부터 121일까지 장애인 권리예산 확보를 위해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각자의 삭발 결의문을 읽으며 삭발을 했다.

 

주류 언론들은 장애인 단체가 삭발을 하고 지하철을 막는다는 이슈 위주의 보도를 했지만, 그날 삭발을 결심하고 자기 삶의 이야기가 적힌 결의문을 들고 온 당사자/연대자 각자의 이야기가 있었다. 장애 운동 현장을 기록하는 영상활동가들은 이 각각의 삶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대항로 영상활동가 모임이라는 작은 모임을 만들었다. 요일을 나눠 촬영하고 한 곳에 파일을 정리하고 그 기록들을 편집해 영상들을 만들었다. 내가 시설에서 무엇을 겪었고, 탈시설하여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노동하기 위해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이동하는데 어떤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등 이런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동안 TV 방송에서 봐왔던 동정과 시혜의 시선에 갇힌 장애인이 아니라 차별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카메라를 든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촬영해 아마추어처럼 촬영했지만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삶의 이야기들을 담을 수 있어서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실 처음 촬영본을 가지고 영상을 만들자고 제안하셨을 때 부담이 컸다. 아직 이 운동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아직 아마추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과물을 만들고 보여준다는 게 많이 망설여졌던 것 같다하지만 영상을 만들면서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시같은 것도 없었고 내가 마음에 와닿았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결의문의 구절을 따오는 자율적인 방식이었기에 오히려 부담 없이 편집했던 것 같다영상에 다 담을 수 없어서 결의문 중에서 정말 짧은 부분과 삭발하는 모습 정도만 담을 수 있었지만 뉴스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영화같은 삶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사실에 괜히 뿌듯해했었다. 사실 처음에는 사적 다큐멘터리 정도만 만들다 운동 현장에 왔기 때문에 지하철을 막고, 긴급행동을 하고, 경찰들과 충돌하고 시민들에게 욕을 먹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심적으로 부담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당사자도 아닌데 왜 여기서 같은 구호를 외치며 이들의 이야기를 촬영하고 있는지, 이 운동(이동권, 탈시설)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로 조연출이라는 역할로 왔기 때문에 자꾸 외부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커뮤니티 아카이브 만들기에서는 지진이 난 일본 동북 지역이 아닌 도쿄에서 온 2명의 극영화 감독(하마구치 류스케, 사카이 코우)이 와스렌!에서 기록 활동을 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도쿄에도 분명 지진 피해가 있었고 TV를 통해 재해 현장을 계속 마주쳐 트라우마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재해 현장 밖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이재민과 구분지었다. 하마구치와 사카이는 사람들의 이런 마음이 궁금하여 재해 지역에 가 기록 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카메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는 것은 나와 당신을 구분 짓는 마음,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100% 이해할 수 없다는 마음을 뛰어 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사실 우리는 같은 세상에 서 있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촬영을 하면서 점점 알게 되는 것 같다.

 

 

▲ 하마구치 류스케와 사카이 코우 두 감독은 와스렌 활동을 통해서 만난 주민들의 인터뷰를 담은 영화를 세 편 제작했다. 이미지는 첫번째 편인 [파도의 소리](2011) 포스터

 

 

지난 여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전장연의 한 활동가가 나치의 학살 작전에 희생된 장애인과 성 소수자를 언급하며 연대 발언한 말이 떠오른다. ‘장애인과 성 소수자, 함께 학살당했던 과거의 동지에서 우리의 권리를 찾아가는 동지로 나아갑시다.우리는 각자의 소수자성을 숨겨야 하는 것으로, 사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하는 운명적인 것으로 체념하며 살아왔다. 이렇게 외면당하는 다양한 소수자성을 기존의 미디어들은 잘 담아내고 있는 것일까? 각각의 작고 개성적인 이야기들이 거대한 사회적 이슈로 뭉뚱그려져 기록으로 남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일본의 와스렌!은 커뮤니티 아카이브 활동을 하며 지진 재해 현장에서 기존 미디어들이 기록하지 못했던 시민들의 다양한 관점들과 표현법이 담긴 현장의 기록들, 이슈화되지 않았던 주변부와 각자의 개성적인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이렇게 거대한 사회적인 이슈 속에서 한 시민으로서의 관점이 담긴 작은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을 나도 지난 2년 동안 해왔고, 봐왔던 것 같다.

 

미디액트에서 한 작업(한국 사회에서 성 소수자는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는지)전장연 현장에서 만든 영상(삭발자 개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촬영한 영상들)같이 비록 아마추어적이고 의미 전달이 서투를지라도 각자의 작은 이야기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만들어 아카이빙하는 과정이 사실 우리 사회가 거대한 이야기 속 다양한 사람들과 풍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서로를 좀 더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앞으로 난 현장에서 어떤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어야 할까? 커뮤니티 아카이브 만들기의 와스렌!의 기록 정신처럼 카메라 앞에 있는 이들과 같은 세상에 서있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 와스렌! 홈페이지 https://recorder311.smt.jp/

■ 하마구치 류스케와 사카이 코우 감독이 만든 3부작 영화 사이트 https://silentvoice.jp/

<커뮤니티 아카이브 만들기> 관련 영상 모음 https://blog.naver.com/goodlife05/222379082372


글쓴이. 박명훈

다큐멘터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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