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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퀴어 다큐멘터리 제작자 대담 -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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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3. 5. 25.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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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35호 이슈와 현장  2023.05.30]

 

한국 퀴어 다큐멘터리 제작자 대담

다큐멘터리를 퀴어링 @한국 – 2부

- 이동윤(영화평론가), 홍민키, 권아람, 마민지(영화감독)

 

진행 및 정리: 김주현, 박동수, 임종우(ACT! 편집위원회)

 

(1부에서 계속)

 

공간의 문제

이동윤: 논의를 바꾸어 작품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세 감독의 영화들을 다 봤다. 흥미롭게도 주제가 딱 3개가 모이더라. 첫 번째는 가족이었고, 두 번째는 역사. 세 번째는 공간이다. 세 분이 모두 공간에 관해 흥미롭게 바라보고 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권아람 감독님의 <퀴어의 방>은 공간들을 인터뷰 내레이션과 함께 클로즈업으로 담아냈다. 풀샷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홈그라운드도> 결국은 공간에 관한 이야기이고. 홍민키 감독님의 <들랑날랑 혼삿길>은 뒷배경을 그래픽으로 이상적이고 행복한 중산층 가정의 이미지로, 마치 아파트 모델하우스 같은 느낌으로 재현한다. <낙원> 또한 바다극장을 담아내는 방식에서 공간을 담는 것에 관해 관심이 있다고 느껴졌다. 마민지 감독님의 <버블 패밀리>도, 부동산 문제는 결국 공간의 문제이지 않나. 세 분의 공통된 관심사가 이렇게 세 개로 모인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주제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우선 공간부터, 공간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을지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왼쪽부터 홍민키 감독, 이동윤 평론가, 마민지 감독, 권아람 감독

 

홍민키: <들랑날랑 혼삿길>부터 이야기를 해보자면, 크게 두 가지 공간으로 연출되었다. 하나는 가족들의 모습이 프론트 캠으로 잡히고 뒤에는 CG로 게임 [심즈]의 집처럼 만들었다. 두 번째는 내가 핸드캠으로 찍은 일인칭 시점의 일상의 모습이다. 보통은 남자친구를 기록하고 있고, 혹은 시위현장을 나가고, 이런 현실의 시선을 담았다. 가족을 찍을 때 행복한 중산층의 표면을 만든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정상가족이라는 세계관이 저에게는 게임 속에서나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일부러 가상의 배경에 집어넣었다. 내가 경험하는 나의 삶이 비정상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이 사회에서 살아갈 때 혐오의 언어가 난발하는 시위를 마주하는 한편,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는 집이 있다. 그게 나에게는 일상이고 정상성이었다. 가족들이 반복적으로 말하는 정상성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공간을 분리하여 연출했다.

 

<낙원>에서 다루는 바다극장은 70~80년대 게이들이 알음알음 모여 크루징을 하던 공간이다. 다른 공간은 다 사라졌고 바다극장이 여러 이유로 그대로 남아있는데, 가보면 게이들이 써놓은 낙서 같은 것도 있다. 나는 수업시간에 의도적으로 커밍아웃을 해버리며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관종 호모였다. 왜 그랬을까 생각했을 때, 나는 내 신체를 부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보통 혐오의 언어들은 머릿속에 대상화된 게이라는 단어를 향해 공격하고 있다. 눈앞에 게이가 있을 때 그 사람을 향해서 혐오 언어를 뱉는 것은 사실 굉장한 용기다. 의외로 호모포비아더라도 “너 호모 새끼냐?” 이러면서 멱살 잡을 사람은 없다. 텍스트로 욕을 하고 뒷말로 “야 그 새끼 호모 새끼야” 이러지, 면전에서 말하는 것은 광인이 아닌 이상 하기 어렵다. 그만큼 내가 물리적으로 존재한다는 개념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어서, 관종 호모로 내가 게이임을 선언하고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이 신체가 서 있는 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땅에 서 있으며 같은 공기를 마시는 육신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물리적 지지체가 필요하다고 계속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게 일단 공간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에서 사회적으로 낙인 찍힌 존재들은 언제나 밤에 모였고, 거기에 성노동자나 퀴어 당사자들이 모이던 구역이 생기곤 한다. 결국에 그 공간은 재개발 등에서 최우선으로 삭제되어 버리는, 지역 주민들도 덮어버리고자 하는 공간이다.

 

역사적 가치를 위해 공간을 보존해야 한다는 대안적인 움직임이 있는데, 우리들의 공간을 지켜낼 사람은 없다. 퀴어 당사자들도 그런 공간을 쉬쉬한다. 첫 번째 게이바를 지켜야 한다는 움직임 같은 것은 생기지 않고. 결국 우리는 지지체들을 계속 상실해나가는 삶을 살아가다 보니까, 90년대 초반생인 나는 왜 게이들이 종로에서 놀아야 되는지 왜 이태원에 게이바가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그곳들에서 놀았다. 나는 그런 지지체를 찾고 싶었다. 내 신체가 머릿속에 있는 어떤 악마화된 변태 성욕자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육신이고, 그러한 육신이 서 있는 지지체를 역사화하고자 하기에 공간을 기록하고자 한다.

 

 

홍민키 감독이 연출한 <들랑날랑 혼삿길>(왼쪽), <낙원>(오른쪽)의 한 장면 

 


마민지: <버블 패밀리>에서는 공간이 특정적으로 어떤 계급의 공간이었고, 내가 잃어버린 중산층 정상가족의 공간이었다. 영화에서 그 공간에 대한 비판, 집값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욕망과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다가, 결국 그 안에 있는 내 욕망을 발견하며 마무리된다. 그게 영화 바깥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성애를 하고 남성과 결혼해서 정상가족을 꾸려 아파트에 다시 들어가야지”와 같은 욕망도 존재했었던 것 같다. 영화가 IMF 외환위기 시대를 이야기하며 강남의 어떤 공간들과 아파트가 주요한 주거환경으로 등장하는데, 영화를 통해서 그러한 공간들을 부숴 나가려 노력했다. 영화를 만들 때도 그렇고 그 이후에도 어머니가 가모장으로 우리 가족의 정상성을 일부를 받치고 버티셨다. 그러다 작년에 돌아가신 이후 그 체제가 와장창 다 깨지는 경험을 했다. 이제 나도 내 공간을 다시 구축해나가는 과정들 안에서 공간의 개념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버블 패밀리> 때와 감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영화를 만든 지 오래되기도 했지만, 생활도 예술적 작업도 완전히 달라졌고. 그 전에는 사회를 바라볼 때 계급문제를 중점적으로 바라보았다면 이후에는 젠더문제를 더하여 다층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권아람: 아까 말씀드렸던 <2의 증명>이라는 작품에서 공간에 관한 관심이 시작되었다. 작품의 주인공인 유정씨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성별정정을 하려고 고군분투하시던 상황이었는데, 그 당시 그분의 집이 집이라고 하기엔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부천의 단칸방이었다. 그 공간에 들어갔을 때 나던 섬유유연제 냄새나 핑크색 옷과 침구 등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분이 방 밖에 나가 겪게 되는 현실이 어려웠기에, 방 안에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충만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이 사람에게는 완벽한 곳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 작업을 마치고 그 방에 관한 인상을 오랫동안 갖고 있다가 <퀴어의 방>을 만들게 됐다. <퀴어의 방>은 개인적인 장소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곳은 텐트인 경우도 있었고, 혼자 사는 곳, 커플이 사는 집, 셰어하우스 등 다양한 곳이었지만, 어쨌든 다 집이니까 문을 닫고 들어가는 공간이었다. 이것을 찍고 나니 다른 고민이 생겼다. 이제 이 바깥에 있는 장소를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책임감까지는 아니지만, 방을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홈그라운드>를 찍었고, 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레즈비언 공간,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레스보스’와 비교적 최근에 생긴 ‘루땐’이라는 댄스 공간까지 엮어 작업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개인적인 사람이라 그런 곳에 가는 곳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시끄러운 데를 싫어한다.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다는 것은 정체성뿐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감각이다. 어딜 가도 좀 어색하고 학교에서도 잘 어울리거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에 너무 궁금했다. 이 사람들은 왜 모였고 모여 있는가, 그게 알고 싶었다. <홈그라운드> 촬영 당시 극작가 이은용씨나 변희수 하사, 언니네트워크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했던 난새 등 세상을 떠나는 퀴어들에 대한 소식이 많이 들려왔다. 은용씨는 <퀴어의 방>의 출연자이기도 하다. 이런 소식들을 들으면서 많이 절망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회의감도 많이 느꼈고, 한동안 편집을 못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힘을 내서 촬영하러 가면 어김없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위로받기도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퀴어 문화가 서울이나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경향이 있고, <홈그라운드>도 서울 중심의 장소들만 다룬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역에 계신 관객분들에게는 이 영화가 하나의 통로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지역에도 이런 곳들이 존재한다. 내 홈그라운드를 찾고, 만들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결국 서로 연결되면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성향은 아니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다큐멘터리 작업이 내가 사회와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이 되어준다.

 

 

 

권아람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퀴어의 방> 중 한 장면

 

이동윤: 말씀 듣다보니 이혁상 감독이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종로의 기적>을 만들고 전국에서 100회 정도의 GV를 했는데, 정말 많은 남성 게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종로로 나오게 되었다고 하더라.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커뮤니티에 들어가고 싶어하면서 종로에 나왔다는 거다. 내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되게 많았다. 이게 권아람 감독님이 말한 것처럼 공간을 담은 작품이 갖는 힘이며, 공간은 결국 모이는 장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홍민키 감독님이 다룬 그 공간처럼 음지의 공간이든 아니면 양지의 공간이든, 그러한 힘을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홍민키: 하나 덧붙이자면, 이번 전주에서 <낙원>을 상영하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분들도 이 역사, 공간의 존재, 의미를 어렴풋이 단어들로만 알다가 실제 공간을 스크린 위에서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너무나 닿고 싶었던 공간이었다는 것을, 만들면서도 스스로 느꼈는데 관객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마민지: 애인이랑 같이 영화제에서 처음 본 영화가 <홈그라운드>였다. 갔더니 퀴어 커플이 관객으로 많이 와 있어서 재밌었다. 내가 강의를 나가는 곳의 학생들도 관객으로 왔었는데, 불편해하고 낯설어하는 모습을 보며 혼자 좋아하고 그랬다. 최근에 ‘아는 언니들’(각주1) 공연을 보러 갔을 때, 원래 알던 사람들은 많았는데, 그분들이 “네가 왜 여기에?” 하면서도 환대를 해주는 게 좋은 경험이었다.

이동윤: 다시 또 갑자기 든 질문인데, 추상적인 질문이니 추상적으로 답변해주셔도 된다. 퀴어에게 공간은 어떤 의미일까? 

마민지: 이번에 애인과 집을 합쳐 너무 좋다. 넓고 쾌적한, 고양이와 식기세척기 건조기와 함께하는.

이동윤: 마민지 감독님에게, 퀴어에게 공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그런 곳인가?

마민지: 그전에는 되게 외로웠었다. 항상 좋은 집에서 살고 싶었고, 안정적인 테두리가 있었으면 좋겠고, 내 공간을 갖고 싶은 욕망이 크게 있었다. 그런데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테두리를 버리고 지금 원하는 형태로 빠르게 추진해서 공간을 만드니 좋았다. 애인도 창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같이 창작 활동을 하면서, 지금은 평온한 상태다.

 

 

마민지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버블패밀리> 중 한 장면.

 


홍민키: 내 앞선 말들과 너무 양립할 수 없는 것 같지만, 공간이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존재감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인 나는 그것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스스로를 변태 게이로 호명하는데, 만약 한국에서 ‘온리팬즈’(각주2)가 합법이라면 그거하고 살았을 것 같다. 불법이라 못하고 있지만. 사실 자기가 변태임을 스스로 말하는 것을, 사람들이 잘 안 하지 않나. 나는 변태임을 거리낌 없이, 사생활이 없듯이 말한다. 안과 밖이 뒤집어져 있어서, 오히려 개인적인 목적과 필요로 사생활을 지킬 울타리가 필요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월세를 내고 잠만 잘 공간만 있으면 되고. 나는 외부의 역사적인 땅들을 다져나가고 싶다. 그래서 사적영역보단 공적영역에서의 퀴어 공간성을 가시화하는 것에 더 힘을 쏟는 것 같다.

권아람: <홈그라운드>를 촬영하며 70년대의 샤넬 다방이나 2000년대 신촌공원 등을 다녔던 분들 인터뷰하며 꼭 여쭤봤던 게, 거기 처음 나갔을 때 어땠는지 기억하냐는 것이었다. 많은 분이 옛날임에도 기억하고 있더라. 70년대는 지금이랑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는 게 어렵던 시절이다. 샤넬 다방은 퀴어 전용 업소는 아니었지만 퀴어들이 알음알음 모이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지 않나. 처음부터 환대해주는 것이 아니라 기싸움하고, “너는 뭔데? 나이도 어린 게.”이러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은 그런 일을 겪고도 또 거기에 가고, 결국 일원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고, 나라면 한 번 갔는데 나랑 맞지 않는다면 집에 가자고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또 다른 곳을 찾았을 것이고, 거기서 일원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문화를 만들고, 사람이 많이 모여 존재감이 생기고, 가시화를 하지 않으려 해도 자연스레 가시화가 되지 않나. 신촌공원이 자동적으로 레즈공원이 됐던 것처럼. 공적 공간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연결되는 것도, 안정적인 사적 공간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근데 그건 단번에 되는 일도 아니고, 계속 염원하며 만들어나가야 하는 과제인 것 같다.



이동윤: 개인적으로 퀴어에게 사적공간은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역사를 봤을 때 퀴어는 사적공간조차 점유할 수 없는 완전한 타자로서 사회를 살아가고 있고. 내가 나를 커밍아웃할 수 없는 조건에 살아가는 경우, 내가 나의 어떤 은밀한 욕망을 표현하거나 온전히 안식할 공간이 없다. 그렇기에 그들이 모이는 은밀한 공적공간이 사적공간과 겹치고, 그러한 공간이 퀴어한 공간이라 생각했다. 이게 현재로 넘어오면서 굉장히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민지 감독님이 공간을 쟁취하고 만들어냈다는 말이 기쁘기도 하고, 이제 우리가 이렇게 나아갈 수 있구나 하는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회가 우리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우리의 관계를 내 공간에서 스스로 정리하면서 가겠다는 선언 혹은 의지라 느껴져서 반가웠던 것 같다.

홍민키: 권아람 감독님 말 듣고 덧붙이고 싶었던 게, 코로나 때 (게이클럽이) “이태원발 코로나”라고 낙인찍혔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게이들은 격리가 끝나자마자 그 클럽에 다시 갔다.  욕을 먹어도 그 공간에 다시 가야 하는, 갈 곳이 그곳뿐인 것이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작년 10.29 참사 직후 이태원에 사람이 싹 사라졌었는데, 그 건너편 게이클럽 쪽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여기가 사라진다면 갈 곳이 없는 이상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투명울타리가 쳐진 것처럼, 이태원에는 게이가 신촌에는 레즈들이 있는 것처럼 되어 있는, 쉬쉬하면서도 유일하게 허용이 되어 있는, 스트레이트들도 “여기는 타자의 공간성이다” 하면서 의식하고 들어오는 공간이지 않나. 종로 골목에서도 “여기 그런 곳인가 봐” 하면서 혐오 발언을 자제하면서 도망치듯 나가는. (웃음) 그게 특수한 공간이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밖에는 갈 곳이 아무 곳도 없다, 이것뿐이라는 생각도 들고.

이동윤: 권아람, 홍민키 감독님의 작품에 그런 요소들이 흥미롭게 많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공간 하나를 가지고서 퀴어 다큐멘터리들을 새롭게 해석해보는 것도 굉장히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 퀴어 다큐멘터리에는 공간성이 다양한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담겨 있다. 

 

 

권아람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홈그라운드> 중 한 장면.

 


가족의 문제

이동윤: 역사성 이야기는 많이 나왔으니 시간상 넘어가도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가족 이야기를 해보자.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우리는 퀴어이기 때문에 결국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속에 부합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그것에 균열을 내려 하거나 타파하려 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있는 것 같다. 동시에, 감독님들 나름대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들, 가족에 대한 가치나 새로운 의미들을 갖고 있을 것 같다. 그게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다.

권아람: <퀴어의 방>을 만들면서는 집에서 커밍아웃할 수 없는 사람이 집에서 나와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갈 때, 거기서는 어떤 일이 생기고 이야기가 쌓이며 어떻게 다른 가족이 만들어질까 관심을 가졌다. <홈그라운드>를 만들면서는 퀴어의 관계가 꼭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해명되어야 하나 생각했다. 명우형은 멋진 분인데, 그분이 멋진 여러 이유 중 하나가 권위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젊고, 다양한 사람들과 넓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신다. 물론 영업을 하시다보니 그렇게 되는 부분도 있지만, 명우형이 마음을 쓰시고 주변을 돌보는 모습을 보면 영업 마인드만으로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명우형이 만들어나가시는 우정의 지형도는 계속 변화한다. 요즘 어떤 분과 친하신가 해서 여쭤보면 새로운 이름을 말씀하신다. 처음에는 특정한 분과의 우정이 더 오래 유지되면 좋은 게 아닐까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게 신비한 돌봄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인이나 부부 등 헌신을 약속한 관계가 아니라 손님이나 선후배, 행사에서 마주치는 사람 등과 그때그때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순간순간 만들 수 있다는 게 영감이 되었다. 가족을 새로이 해석하는 것도 흥미롭겠지만 꼭 가족이라는 가치에 갇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읽었던 김경태 선생님 논문(각주3)에서 인상적이었던 게, 성정체성이 퀴어인 사람이 나오는 영화가 아니라 새로운 친밀성과 돌봄의 방식을 보여주는 게 퀴어영화 아닐까 하는 의견이었다. 가족이라는 둘레보다는 퀴어들이 어떻게 새로운 친밀성의 방식을 고안하고 서로를 돌보며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재밌는 것 같다. 비혼, 1인 가구도 정말 많고, 다양한 방식으로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점점 많이 들려온다. 신기한 게, 퀴어들이 어떤 공간에 나와서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금방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공간이 절실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쓰고, 서로 부대끼면서 그곳에 맞는 친밀성의 방식, 친밀성을 표현하는 방식을 열심히 찾는 것 같다. 그게 항상 아름다운 돌봄은 아닐지라도, 그렇게 서로의 존재에 개입하고 서로를 돌보며 만들어지는 순간순간의 관계망은 한국 사회에도 귀감이 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홍민키: 공감하실지 모르겠는데, 사실 자주 왕래하는 친구 중에는 레즈비언 친구가 없는 것 같다. 레즈비언 혹은 비-게이 퀴어들과 말을 섞을 기회가 많지 않다. 간단히 말하면 게이들은 그냥 커뮤니티에 관심이 없다. (게이들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남자와 어떻게 하면 하룻밤을 보낼지에 더 혈안이 된 것 같다. 처음에 주변 커뮤니티에 역사화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 다들 “그걸 왜 해?”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이 가족을 구성하는 것을 원하는지에 관해 의문이 정말 많이 든다. 물론 그것을 원하기는 하겠지만, 게이 커뮤니티나 웹사이트 같은 데서 흔히 보이는 것은 “게이는 얼굴이 전부고 다른 것은 의미 없다. 결혼도 못 하는데 연애해봐야 다 헤어진다. 결혼하는 사람도 결국 이혼하는 팔자인데 가족 무슨 의미가 있냐.” 같은 이야기들이다. “진짜 그런가?” 하는 생각이 스스로 들기도 하고. 서구권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어도 게이의 외로움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사도 많이 봤던 것 같다. 나는 그냥 이상향을 쫓아 달려가는 것인가 하는 혼란이 계속 있는 것 같다. 가족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입이 아플 정도로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의문이 계속 드는 상태에 가깝다. “게이 커뮤니티는 진짜로 가족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가끔은 그런 농담도 들었다. “레즈비언은 처음 만나면 3개월 만에 동거하고, 게이는 처음 만나면 섹스하고 3개월 안에 해어진다.” (일동 웃음) 이게 딱 단적인 문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게 혼란스럽다. 게이로서, 게이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게이를 역사화 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고민이 많다.

마민지: 애인이랑 합친다고 했을 때 주변 레즈 언니들이 놀렸다. “이럴 줄 알았다. 몇 년 동안 또 안 나오겠구나.” (웃음) 아무튼, 권아람 감독님이 이야기한 돌봄 이야기에 이어서, 몇 년 동안 나에게 여성, 돌봄, 퀴어 이슈가 압축적으로 벌어졌다. 작년에 어머니를 반년가량 간병하며 돌봄에 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돌봄 문제 때문에 다시 이성애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상가족 구성원이 완전히 부서지면서, 청년 여성으로 혼자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데 퀴어로 정체화한 이후에는 내가 다른 이성애자 남성들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더 독립적인 개체로 살아 왔구나, 그럼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가족 구성원을 만들게 되었다. 지금 고양이 둘과 애인, 이렇게 넷이 살아가는데, 이는 여성주의 경험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페미니즘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돌보는 체계들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지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이번에 애인과 집을 합칠 때도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결혼이랑 비슷한 거 아니야?”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면 식기세척기를 사주고 아니면 안 사주겠다고 하기도 하고. (웃음) 어머니와 제 관계가 특별했기에 아이가 갖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비혼여성은 입양이 안 되더라. 그런데 성인 여성을 입양하는 것은 된다길래 언젠가 애인을 입양할까, 이걸 다큐로 찍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지면에 기록을 남겨 소재를 선점해야겠다.

이동윤: 오래된 파트너들이 법적으로 유산상속이 안 되니 자녀로 입양하여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가족에 관해 접근하는 게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남성과 여성의 젠더권력에 따른 차이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통적으로 봤을 때 남성은 자본을 조금 더 쉽게 취득할 수 있기에 자유롭게 가족, 돌봄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 사적인 영역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다. 물론 모든 이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불안정한 편견과 폭력 속에 내몰린 사회적 구성 속에서 살아가기에, 여성들은 돌봄이나 공동체에 관심을 많이 둔다고 생각한다. 가족에 대해서 대안을 생각하는 관점이, 전부 다 여기로 귀결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젠더권력과 어느 정도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나왔던 김경태 선생님 논문에서 <시인의 사랑>을 언급하는데, 이 영화에서의 남성성은 한국이 강조하는 남성성과 반대된다. 남자주인공은 생산을 하지 못하고 아내가 다 생산을 하고, 이런 식으로 비-남성성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돌봄의 수행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퀴어 극영화들을 보면, 여성 퀴어 당사자들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돌봄의 의미가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입장의 차이가 젠더권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개인적 생각이었다. 

 

 

대담 중인 마민지 감독(왼쪽)과 권아람 감독(오른쪽)

 


퀴어로서, 퀴어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바람

이동윤: 시간이 다 되어서 마지막 질문하고 마치려 한다. 감독님들이 보고 싶은 퀴어 다큐멘터리는 무엇인가? 본인이 만들 수도 있는 작품일 수도 있고, 직접 만들 수는 없지만 한국에 이런 작품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것을 여쭤보고 싶다.

홍민키: 이 대담이 시작했을 때부터 많이 썼던 표현인데, 게이들도 쉬쉬하는 게이들의 삶이 있다. 질병의 이슈라던가, 질병의 원인이라 생각되는 공간, 노인 게이의 삶 등이다. 그러한 스트레이트의 삶을 묘사하는 영화, 미디어, 다큐는 많지만, 게이 당사자로서 그런 다양한 이야기를 경험해볼 기회가 너무 없었다. 미디어가 묘사하는 게이 이미지는 한정적이고 피상적인 경우가 굉장히 많다. 최근에 BL이 장르화 되어 콘텐츠가 많이 나온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는 하다. 내가 어렸을 때 게이가 나오는 콘텐츠에서는 다 성폭행당하거나 자살하고, 사고 나서 죽고, 이런 역할로만 나왔었으니까. 내가 다큐를 만들 때 게이를 그렇게 서술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이의 삶은 눈물이 아니라 웃는 날이 훨씬 더 많으니까, 더 다양한 종류의 게이 이미지를 보고 싶다. 살다 보면 진짜 어울리기 싫다 싶은 게이들도 있는 만큼 다양한 군상이 있지 않나. 그런 다양한 군상을 다루는 콘텐츠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 그중에서도 게이들도, 퀴어들도 쉬쉬하는 공간을 다루는 것이 변태 게이로서의 소망이랄까.

권아람: 공감하면서 이야기 들었다. (ACT! 기획안에서) 원래 주셨던 질문 중에 영화제 등에서 비-퀴어들이 게이트키퍼로 있을 때에 관한 질문이 있었는데, 게이트키핑까지는 모르겠지만 퀴어적 요소가 있는 작품이 쉽게 범주화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이성애자 남성이 나오는 생태, 정치, 가족 다큐멘터리를 묶어 남성 다큐멘터리라고 하지는 않지 않나. 퀴어가 나오면 노인이든 청년이든 시스젠더든 트랜스든 가족이든 공간이든 통틀어 퀴어 다큐멘터리가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느꼈다. 그런 시각을 흔들기 위해서라도 더 다양한 퀴어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좋겠다. 내가 관심 갖는 부분은 교차성이다. 퀴어이면서도 여러 다른 정체성이 있지 않나. 젠더, 지역, 계급 등 개인의 삶은 다양한 조건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진다. 그러한 교차성의 지점에 좋은 이야기들의 소스가 있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고민의 결들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 같다. 그냥 통칭해서 퀴어, 게이, 레즈비언이라 해도 그 안에서는 굉장히 많은 차이가 있다. <홈그라운드>도 ‘레즈비언 다큐’라고 불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레즈비언 중심의 퀴어 공간을 다룬 영화라 말한다. 명우형도 본인을 레즈비언이라고 정체화해오신 역사가 있고 그 단어에 친밀감을 느끼시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트랜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기도 하다. 정체성이 무 자르듯 자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개인이 살아가는 삶의 조건들이 교차하는 지점을 더 잘 바라보아야 한다. 그럴 때 더 풍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민지: 개인적으로는 귀여운 할머니, 귀여운 중년여성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더 보고 싶다. 그런 작품을 볼 때마다 너무 행복해진다. 최근에 반박지은 감독의 <두 사람>도 재밌게 봤다. 중노년 퀴어들의 이야기, 나와 가까운 40대 50대 중년 퀴어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권아람 감독님이 교차성 이야기를 했는데, 이 부분에서 항상 영상이나 영화가 가장 늦는 것 같다. 최근에 연극을 촬영하거나 공동창작할 때가 많았다. 교차성이 다른 매체에서 먼저 다뤄지고 있더라. 장애인이면서 퀴어 당사자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다룬다던가, 이러한 방식으로 교차성을 가진 여러 이슈를 들여다봐야 하는데, 영화는 그러한 주제로의 콘텐츠 생산이 덜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부지런히 찍어야겠다고 생각도 많이 든다. 

이동윤: 말씀 들어보니 앞으로의 감독님들 작품이 더 궁금해지고 더욱 좋은 작품을 계속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자리가 뜻깊은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권아람 감독님 말씀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우리가 원하는 삶은 우리의 특수성이 일반화되는 사회이지 않나. 우리가 성소수자인 게 대단한 일이 아니고 변태 게이가 터부시되지 않고, 그냥 그 존재 자체로 인정해주는 어떤 사회를 꿈꾸는데, 그 사회로 가려면 끝없이 그 특수성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게 딜레마인 것 같다. 특수성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그 안에 갇히게 되지 않나. 사회는 그것에 울타리를 쳐서 그 안에만 있게 만든다. 미국 다큐멘터리 협회에서 했던 ‘다큐멘터리를 퀴어링’ 대담에서도 어떤 감독님은 나는 퀴어감독으로 불리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동시에 그 영화들을 퀴어영화로 호명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우리의 숙제가 아닐까?

홍민키: 덧붙이자면, <들랑날랑 혼삿길>에 이런 대사가 있다. 요즘 미드를 보면 퀴어 캐릭터가 꼭 하나씩 나오는데, 그것을 보고 자라는 입장에서는 그게 어떤 기준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나의 디폴트는 미드 세계관인데 현실로 나오면 혐오의 펀치를 맞고. 그래서인지 나는 부모님들에게도 커밍아웃을 다 했으니 내가 게이라는 것을 스스로 잊어버릴 때도 있다.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게이임을 말해도 아직 끊임없이 놀라는 사회다. 나에게는 “남자를 좋아해”라는 말이 “짜장면을 좋아해”라고 말하는 것 정도의 무게감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나한테 이 사회를 위해서 “나는 자지를 좋아하는 남성이야.”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는 게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위화감이 들 때가 있다.

이동윤: 결국 영화로서 어떻게 다뤄내고 이야기하고 담론화하고 문제제기하고 질문할 것이냐의 문제로 가야 하는 것 같다. 우리들의 위치는 결국 창작자고 감독이고, 카메라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 역할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 끝 -

 


각주1) 아는 언니들 - 여성주의 문화운동 단체 언니네트워크의 합창 소모임. 홈페이지: http://www.unninetwork.net/?cat=51

각주2) 온리팬즈 Onlyfans - 본래 구독자들의 구독료로 크리에이터가 콘텐츠를 제작 및 유통하는 플랫폼이었으나, 포르노를 제한하지 않은 특징으로 인해 아마추어 포르노 제작자들이 대거 몰려, 현재는 아마추어 포르노 유통 플랫폼으로 여겨진다.

각주3) 김경태, 「동시대 퀴어 영화와 돌봄의 정치-<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시인의 사랑>, <이스턴 보이즈>를 중심으로-」, 『현대영화연구』, 제14권 제2호,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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