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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를 보고 난 다음 나는 - <다음 소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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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3. 3. 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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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34호 리뷰 2023.03.30]

 

                                                                   

 <다음 소희>를 보고 난 다음 나는

 

                                                                  이슬아(영화과 학생)

 

 

▲ <다음 소희> 포스터

 

영화 속 주요 공간으로 등장하는 콜센터는 크게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로 구분된다. 인바운드는 고객이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 상담사와 상담하는 방식이고, 아웃바운드는 특정 고객에게 상담사가 직접 연락하여 상담하는 방식을 말한다. 내가 근무했던 곳은 어느 홈쇼핑의 인바운드 콜센터였다. 영화에도 잠시 나왔던 것처럼, 콜센터에서는 교육의 일환으로 실제 상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배우기 위해 선배 상담사의 전화 응대를 들어보는 시간이 있다. 선배 상담사와 연결된 고객은 대기시간이 길었던 탓인지 자신의 요구를 친절하게 들어주는 데에도 뭐가 불만족스러운지 말끝마다 짜증이 묻어 있었다. 그런고객의 비협조적인 태도에도 선배는 몇 분 만에 상담을 마칠 만큼 능숙한 응대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음 콜이 들어오기 전 나는 사담으로 선배에게 이곳에서 근무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3개월 됐어요” 콜이 들어오지 않는 동안 틈틈이 업무를 알려주었던 선배는 내가 근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다.

 

콜센터에는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교육장에는 언제나 새로운 교육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교육을 마치고 입사한 신입 상담사들은 몇 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둔다. 나와 함께 교육을 받았던 동기들도 하나 둘 그만 두더니 3개월쯤 지나자 결국 나 혼자 남게 되었다. 3개월이 지나고부터는 신입 상담사도 CS 콜이라는 고객 민원 전화에도 응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주 콜센터 현장 실습생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도 내가 콜센터에서 근무했을 때였다. 콜센터라고 해서 모두 같은 업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품 해지 방어’ 부서에서 근무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가 어느 정도의 고강도 업무에 시달렸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사회 경험이 많은 성인들도 강성 민원 전화를 받고 나면 휴식이 필요한데 고작 18살 밖에 되지 않은 그 아이가 응대하며 겪었을 버거움에 대해서는 누구도 감히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상담사가 그런 고객을 만나면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고객의 화가 누그러질 때까지 견뎌낼 수밖에 없다. 상담사에게는 고객의 전화를 먼저 끊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소희는 근무시간이 끝나고도 업무를 처리하느라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한다. 계약서 상 기재되어 있는 상담사의 근무시간은 8시간이다. 홈쇼핑 콜센터 상담사의 경우는 최소 하루에 100통 이상의 전화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한 시간에 13콜 이상의 상담을 소화해야 하고, 이는 곧 상담사가 1콜당 4분 내로 상담을 마쳐야만 하는 것으로 계산되다. 동시에 상담사는 고객이 남긴 민원에 대한 기록도 남겨야 하고 이에 대하 처리도 마쳐야 한다. 민원을 처리 하려면 이곳저곳에 연락을 취해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데 이런 아웃콜은 인센티브 실적에 포함되지 않는다. 실적에는 들어가진 않지만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업무들로 인해 상담사들은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어렵다. 상담사들은 우울증만큼이나 방광염에도 잘 노출되는 환경에 놓여있다.

 

그렇게 기업은 콜센터 노동자에게 고강도의 감정노동을 시키면서도 상담사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상담사는 언제나 대체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객센터는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쉽거나 오래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는 않는다. 영화 <다음 소희> 에서 소희는 언제나 교체될 수 있는 부품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만일 소희가 회사를 일찍이 그만두었다면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는 누가 앉게 될까? 또 다른 실습생이 채우게 될 것이다. 소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 <다음 소희> 스틸컷

 

영화 <다음 소희>는 단순히 콜센터의 노동 환경과 실적 압박, 노동의 강도를 꼬집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소희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존재로 비친다. 서장은 유진이 소희 사건을 수사하는 동안 다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 실적이 떨어질 것을 걱정하고, 소희가 다녔던 특성화 고등학교의 담임과 교장 선생은 다른 특성화 고등학교에 비해 취업률을 높이지 못해 필요한 예산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유진이 찾아간 교육청의 장학사 역시 전국의 교육청과 비교해 취업률이 뒤쳐지며 안되기 때문에 노력하는 것뿐이라 말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는 악의가 없다. 낙오되지 않기 위해 숫자 채우기에 혈안 되었을 뿐이다. 소희의 죽음은 경쟁 사회가 낳은 비극이다.

 

여전히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열약한 노동환경에 노동자를 방치하는 기업, 제대로 점검하지 않는 기관,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경찰, 그리고 무관심한 사람들. 인명사고의 굴레는 끊어지지 않고 다음 세대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러나 모두 귀책을 회피한다. 영화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자신을 찾아온 유진에게 장학사는 한 가지 타박 섞인 질문을 남긴다. ‘그다음은 어디로 가시게요?’ 유진은 대답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곳을 뒤집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이 어긋난 사회 속에서 아이들은 중심을 잃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영화는 그 답을 제시한다. 관심을 가질 것. <다음 소희> 속 유진은 영화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바라는 모습의 투사다. 유진은 소희의 죽음이 산업재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소희가 거쳐간 모든 곳을 찾아다닌다. 가족, 친구, 춤 연습실 그리고 소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들렀던 가게까지. 유진은 소희가 앉았던 자리에 똑같이 앉아, 같은 맥주를 마시고, 소희가 바라보았던 빛을 똑같이 응시한다. 유진이 소희의 죽음을 집요하게 수사했던 것은 응당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는 우리에게도 사회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인지 영화에는 공백이 많지 않다. <다음 소희>는 그 제목처럼 비극을 맞이한 소희의 삶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설명하는 것에 집중한다. 메시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소희가 겪은 비극의 모습을 대부분 다 보여준다. 생각은 대사로, 일의 고단함은 음주로 반복되어 표현된다. 소희가 손목을 그어 피를 흘리는 것도, 저수지에 빠져서 죽었을 때의 얼굴도, 전팀장이 차에서 죽은 얼굴까지도 영화는 전부 보여준다. 이는 그 당시의 일들을 뉴스로 전해 들었던 것을 영화로 재연해 보여준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가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지만, 영화의 메시지를 분명히 하기 위한 감독의 선택이라 생각한다.

 

나는 가끔 콜센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떠올린다. 고객이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상담사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의 무력함을 기억한다. 그렇지만 나는 잊지 않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비록 지금의 나는 관심을 갖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언젠가 나 역시도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잘 기억하고 잘 기다리기로 했다. 소희의 춤을 끝까지 바라보았던 유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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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슬아(영화과 학생)

햄스터처럼 남는 주머니에 영화 잔뜩 넣기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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