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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마을 동료, 이곳에서 찾다 - '지역 미디어 생존가이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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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3. 3. 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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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미디어가 효과적인 수익 모델을 만들고 각 조직의 상황에 맞는 수익 모델을 실험하는 사례들을 읽으며 스스로가 기존의 관성적 사고와 활동의 틀 안에 갇혀있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보고서는 연구 과정에 지역 미디어들이 그들이 제공하는 핵심적인 가치로부터 최대한의 수익을 끌어낼 방법을 깊이 고민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 가치란 바로 독자와의 깊은 관계와 신뢰이며, 이 신뢰를 수익으로 전환하고 싶다면 그 매체의 저널리즘이 어떻게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독자들이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지에 대해 독자들과 터놓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편집자 주] '지역 미디어 생존가이드'는 국제언론인협회(IPI)가 세계 곳곳에서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기 위해 활동하는 다양한 지역 저널리즘 단체를 소개하고 정리한 보고서입니다.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비공식 번역을 진행하였으며, 웹진 <양천의 소리>를 발행하는 양천구 마을미디어 ‘은행정 책마당’에서 본 번역본에 대한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책자 다운로드(클릭))
※ 아래 원고는 마을미디어 웹진 '마중'과 진보적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에 공동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ACT! 134호 리뷰 2023.03.30]

 

전 세계 마을 동료, 이곳에서 찾다

 

이진영 (은행정 책마당)

 

 100페이지 남짓한 <지역 미디어 생존가이드> (이하 보고서)를 읽는 내내 세계 각지에서 지역 미디어 저널리즘을 고민하고 각자의 상황과 한계 속에서도 혁신과 지속가능성을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글로 만나 연대의 마음을 느끼는 경험을 했다. 남미와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과 인도, 파키스탄 등 태어나 평생 가본 적 없는 나라에다가, 그곳의 정치, 문화, 역사적 맥락도 부족한 상황에서 듣는 이야기였지만, 글자 그대로 시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인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역 미디어로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하는 공감대가 모든 한계와 제약을 뛰어넘게 했다. 특히 서문에서 밝힌 “공간성을 강조하던 로컬리즘 패러다임에서 공유된 문화나 사회적 연대감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차원의 로컬리즘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 지역 미디어가 이러한 “로컬리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체 내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공동체 권리에 대한 발언권을 주며, 잘못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된 정보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힘을 주는 활동을 한다”는 보고서의 생각과 믿음에 강하게 동의했고, 보고서를 읽으며 먼 타국에 사는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동시대성을 공유한다는 생각에 흥분도 되었다. 양천구라는 동네에서 활동하며 생긴 감각과 문제의식으로 벌인 지역 미디어 관련 활동과 행동들이 지역을 넘어 세계 보편의 문제와 맞닿아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동료를 찾은 듯 힘이 나기도 했다.

 

▲ 지역 미디어 생존가이드 표지 및 목차 (원문: 국제언론인협회(IPI))
▲ 인도의 지역 미디어 '카발 라하리야'

 공간적 함의를 담고 있는 ‘지역 미디어’라는 단어를 은연중에 더 지역이라는 공간에 가두어 사고했던 습성을 시작부터 깨고 시작하는 점이 좋았다. 보고서는 웹진 <양천의 소리>가 양천구의 이야기를 공론화하는 미디어를 넘어 성공적인 지역 뉴스 미디어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 미디어가 독자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또 “지역 미디어가 그들과 공동체(들)에 어떤 뉴스 혹은 정보격차를 파악해서 빈 부분을 채워주고 있는가?”라는 핵심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고 말을 건다. 이 질문을 통해 <양천의 소리>가 양천지역의 각 분야 활동에 관한 소식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웹진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겪는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비어있는 논의를 일으키고 공론을 형성할 수 있도록 발전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양천의 소리>를 읽고자 해서 그 정체성과 역할을 명확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보고서가 세계 곳곳의 다양한 지역 미디어 사례를 조사하면서 설정한 세 가지 프레임은 자칫 세계 사례 모음집으로 방향을 잃을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보고서를 읽는 이들에게도 구체적인 대안을 목록화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세 가지 프레임은 첫째, 뉴스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저널리즘의 관점 / 둘째, 콘텐츠를 묶는 상품 혹은 사용자 경험의 관점 / 셋째, 수익모델의 관점이었다. 이 세 가지 질문에 지역 미디어가 각자의 답을 할 수 있을 때 심층 저널리즘이 가능하게 되고, 결국 유용한 정보제공과 사회적 자본 형성에 역할을 해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게 있다는 된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이러한 전제와 설계는 각각의 자리에서 지역 미디어를 준비하고 있거나 변화와 혁신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조사하고 분석한 세계 곳곳의 지역 미디어 사례가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확인할 수 있게 해주어 개별 사례에서 얻는 배움과 더불어 지역 미디어의 체계를 만들어 가는데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도움이 될 것 이다.

 보고서를 통해 ‘지역 정치기자 양성과정’으로 <양천의 소리> 필진을 확대하여 웹진 기사 콘텐츠를 강화하고 조직의 확장을 꾀하고자 했던 기획이 결국은 독자들을 끌어들일 열쇠를 찾아가는 길이었음을 이해했다. 각각의 지역 미디어들이 처한 상황과 지역의 맥락을 고려하여 이러한 열쇠를 찾아가려는 노력들이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정리되어 있어서 <양천의 소리>와 유사한 사례에서는 공감대를 얻었고, 정치지형의 변화, 기술 발전, 저널리즘 형식 등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요소들을 사례 속에서 끌어올려 상상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키르기스스탄의 지역 미디어 ‘클룹’은 저널리즘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이들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민주주의에 호의적이고, 진실에 호의적인)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 저널리즘 학교나 선거 모니터링 부서를 운영하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인도의 ‘더 뉴스 미닛’은 독자들이 단순히 미디어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진다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참여에 가치를 둔다는 점을 배우고 월간 편집회의를 회원 독자들에게 개방했는데 참여율도 좋고 평가도 좋았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은 전통적인 회원제 방식의 운영을 혁신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연결되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정 책마당의 첫 기획이기도 했던 2022년 ‘지역 정치기자 양성과정’ 운영과 교육 이후 참가자들과 운영진들이 함께 있는 온라인 소통방을 유지하며 지역 소식을 공유하고 ‘양천의 소리’ 필진으로 초대했던 활동이 과정의 혁신이었다. 지역 미디어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양천지역의 역사와 현재의 맥락을 고려하여 양천지역 미디어 생태계를 만들고, 미디어 운영에 독자의 참여 방안을 다방면으로 고민할 때 저널리즘의 내용도 풍부해지고 지속가능한 조직으로의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적, 물적, 경제적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활동에 익숙한 지역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한 웹진 ‘양천의 소리’는 발간하고 배포하는 과정 자체에 특별히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도 되었다. 사명과 가치를 앞세워 스스로 자원도 내고,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활동에 온전히 기대어 운영해온 탓이다. 그러다 보니 여력이 가능한 만큼의 활동만 실행으로 옮겨졌다. 이러한 상황에 지역 미디어로서 성장, 확대, 혁신하기 위해 내놓았던 구성원들의 아이디어는 꿈을 꾸는 것으로 만족했던 게 사실이다. 지역 미디어가 효과적인 수익 모델을 만들고 각 조직의 상황에 맞는 수익 모델을 실험하는 사례들을 읽으며 스스로가 기존의 관성적 사고와 활동의 틀 안에 갇혀있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보고서는 연구 과정에 지역 미디어들이 그들이 제공하는 핵심적인 가치로부터 최대한의 수익을 끌어낼 방법을 깊이 고민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 가치란 바로 독자와의 깊은 관계와 신뢰이며, 이 신뢰를 수익으로 전환하고 싶다면 그 매체의 저널리즘이 어떻게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독자들이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지에 대해 독자들과 터놓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지역 미디어가 수익모델을 찾아가는 것은 지속가능성의 문제이고, 이 문제는 지역 미디어 조직 혼자만의 고민과 노력으로 해결하기보다 독자로 설정한 사람들과 함께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과 제안, 그리고 곳곳의 사례들이 새로운 기획의 영감과 가능성을 주었다. 

 

▲ '지역 정치기자 양성과정' 교육 사진 (토론 모습)

 

 실제로 ‘지역 정치기자 양성과정’ 교육에 텍스트 기반의 정치기사 쓰기 교육보다 기자의 시선이 담긴 한 장의 사진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사진기사에 관한 교육의 출석율과 참여율이 훨씬 높았다. 이 현상을 해석해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보고서의 파라과이의 ‘엘 수르티도르’의 사례가 눈에 띄었다. 엘 수르티도르는 애초에 시각 저널리즘을 앞세워 기자와 디자이너 그룹이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로 시작했다고 한다. 주요 뉴스를 JPG 파일로 배포하고 애니메이션, 타임라인, 공공장소와 미술관에서 전시 등 시각 매체를 활용한 새로운 형식을 계속 시도할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왓츠앱과 같은 SNS를 적극 활용한다고 한다. 텍스트 기반 기사뿐만 아니라 기자와 독자가 접근이 용이한 다양한 형태와 매체를 활용하는 기획이 실제로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하니 지역 미디어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확대되는 것 같았다. 또 지역 미디어 중에 독자를 넓히고 신뢰할만한 지역 저널리즘에 관한 수요를 만들기 위해 미디어 교육과 선거 감시 등 콘텐츠 제작 외의 활동도 동시에 꾸준히 진행하는 곳들이 많았고 이 또한 지역 미디어 단체가 살펴야 할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시선과 색깔을 가진 지역 미디어가 많아진다면 다양성이 존중받는 지역사회로 변화하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보았다. 세계 곳곳의 사례와 더불어 지역 미디어에 대한 가능성과 배움, 다양한 상상으로 가득 찬 보고서를 만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할 따름이다.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드는건, 이러한 기회와 자리를 만들고 지역 미디어의 새로운 실험들이 가능하도록 지원해야 할 서울마을미디어 사업이 4월로 마무리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처럼, 마을미디어 사업의 종료가 마을미디어 활동의 종료는 아니다. 우리의 활동은 끝나지 않는다. □


<지역 미디어 생존가이드>에서 사용한 단체 소개 형식에 따른
'은행정 책마당' 소개

배경:
 ‘은행정 책마당(이하 책마당)’은 양천구 신월동에 위치한 마을 공간이다. 2012년 8월 지역의 진보정당,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지역 사람들의 학습과 문화를 통한 교류와 연대의 장이 되기를 꿈꾸며 십시일반 뜻과 자원을 모아 만들었다. 

수익모델:
 운영을 시작한 지 만 10년을 넘긴 지금까지도 회원들의 회비가 공간 운영의 주요한 자원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처음 개관 당시에는 동네 작은 도서관을 표방했다. 책이라는 인류의 지혜와 생각을 모두가 평등하게 나누고, 또 책을 통해 지역 사람 누구나 평등하게 만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공간에 사람이 모이니 모인 사람들 스스로 더 다양한 형태의 만남과 이야기 장을 모색해 나가기 시작했다.

제공하는 가치: 
공간 공유를 넘어 영화를 통한 소통으로(영화 〈위로 공단〉, 〈나쁜 나라〉, 〈공동정범〉등을 지역단체들과 공동체 영화상영으로 진행했다) 사회문제 인식이나 해결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고, 회원 중에 진보적인 미디어 단체에서 활동한 사람들이 있었던 요인이 크게 작용해서 마을미디어의 필요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2017년 마을미디어 교실을 개최하여 과정을 수료한 주민들이 마을 미디어를 시작할 수 있게 인큐베이팅 했다. 

콘텐츠와 배포방법:
 2020년 2월부터는 양천지역 시민사회 각 분야 활동 소식과 양천구의 구의정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다루는 내용 등이 포함된 월 정기 발행 웹진 <양천의 소리>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책마당 일부 회원들과 책마당과 연결된 각 분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주요 필진이 되었고, 웹진 링크는 활동가들이나 마을 주민들이 모여 있는 다양한 SNS 소통방에 뿌려졌다. 또 이메일로 웹진 받기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의 전망:
 <양천의 소리>에 실리는 모든 기사 작성은 물론 웹진 편집 및 발송까지 활동가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시작한 덕에 특별히 예산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용의 다양성과 전문성, 필진 확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지역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과 시민사회 각 영역의 활동을 전달하는 소식지 성격을 넘어 정치의 시선으로 양천구 지역사회 문제를 분석하고, 양천구 행정과 구의회 등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역량강화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오랫동안 양천구 지역사회의 문제를 대안적인 시선으로, 지역 (진보)정치의 문제로 이야기하는 지역 미디어(공론장)가 부재했다는 사실을 <양천의 소리> 가 발행 회차를 늘려갈수록 깨닫게 된 것 같다. 방송과 신문, 온라인 매체들이 매일 같이 쏟아내는 청와대와 국회 중심의 정치 뉴스와 전국의 사건 사고에는 민감하지만 정작 내가 일상을 살아가는 양천지역의 정치와 정책, 사건에 대해 알기란 쉽지 않다. 마침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찾아가는 마을미디어 교육] 공모 지원 사업을 알게 되었고, ‘지역 시민정치기자 양성교육’으로 지원하여 2022년 하반기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다. 책마당의 지난 역사와 미약하나마 지역 미디어의 필요를 고민하고 노력한 바탕으로 이번에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기획하여 번역 발간한 「2022 지역미디어 생존가이드」를 읽고 지면을 통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 같다.

 


글쓴이. 이진영 (은행정 책마당)

2009년 양천구로 이사 온 이래 '양천구 활동가'로 정체성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어요. 주로 지역 시민사회 네트워크 활동에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아왔고, 마을공간 은행정 책마당 내 지역정치 모임인 '양천포럼'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은행정 책마당(실질적인 실무는 양천포럼에서 담당해요)에서 발간하는 웹진 <양천의 소리> 필진으로도 참여하며 지역 정치의 시선으로 활동을 설명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동료 활동가들과 2년째 기타를 배우고 있는데, 기타 치는 할머니가 되는 게 장래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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