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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기의 가장 맛깔난 방식, 밥상- 책 <연대의 밥상>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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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2. 12. 1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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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OB베어는 새로운 골목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연대의 밥상>의 말을 빌리자면, 연대인들을 위해서 주방에서 노동을 하던 사장님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주방 노동을 하는 모습, 그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릇을 나르고 설거지를 하며 할 일을 찾는 연대인이었던 나는 손님이 되어 제값을 지불하고 음식을 먹겠다. 그렇게 연대의 밥상은 이어진다. “잘 먹고, 잘 먹이며 함께 살기 위해서.”"

 

[ACT! 133호 리뷰 2022.12.22]

 

함께 살기의 가장 맛깔난 방식, 밥상

-  <연대의 밥상> 리뷰

 

소라(연대하는 채식인 모임)

 

일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을지로 노가리 골목으로 향했다. 취기 오른 사람들을 지나쳐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곧 쿵짝쿵짝 음악 소리가 들린다. 을지OB베어에 도착한 것이다. 매주 보는 얼굴들이 살갑게 웃으며 오셨어요한다.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주섬주섬 피켓을 찾아 집어든다. 쌓여있는 피켓뭉치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 ‘폭력적인 강제집행 자행한 건물주 만선호프 규탄한다!’ ‘만선호프 노가리 골목 독점을 중단하라!’ 야장(가게 밖 도로에 펼친 테이블) 손님으로 가득찬 만선호프 앞에 서서 피켓을 들었다. 을지OB베어를 지키기 위해서다.

 

이내 밥이 도착한다. 보온이 되는 배달가방에 냄비째 넣어 음식이 식지 않게 이고지고 온 사람들이 짐을 푼다. 연대인이다. 밥과 반찬이 나온다. 조금씩 흩어져 피켓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모여 그릇을 꺼내고 수저를 챙긴다. 저마다 가져온 요리나 과일을 펼쳐놓기도 한다. 그중 눈에 띄게 서글서글한 사람 한 명이 있다. 양복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오는 사람마다 말을 붙인다. <연대의 밥상>을 쓴 옥바라지선교센터 이종건 사무국장이다.

 

새벽같이 달려와 제집 철거되는 것마냥 막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벌금이라도 맞으면 그를 위해 또 모금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혹시 지치지 않을까 밥 한 끼 먹이며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파괴된 생태계의 멸종위기종이 된 것마냥 외로운 현장을 찾아가 끊어진 고리를 연결하고, 짓무른 상처를 소독하는 사람들. 현장에서는 그들을 연대인이라 부른다.”

p.83_외로운 현장에서 보리굴비 밥상까지, 이어지는 연대의 인연

 

<연대의 밥상>은 음식 에세이다. 밥상에 관해 말한다. <연대의 밥상>은 투쟁 기록집이다. 그 밥상이 어디에 있었는지, 누가 차린 밥상인지를 들려준다. 언제 강제집행 용역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밥과 수다로 밤을 지새우던 쫓겨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연대의 밥상>은 재개발 또는 건물주의 욕심 때문에 평생을 성실히 일궈온 공간을 하루아침에 잃은 사람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연대인들이 차린 밥상에 관한 책이다. 

 

▲ <연대의 밥상> 표지

 

쓰레기 집하장이었던 거리를 청소하고 그곳에 포차를 세워 장사를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30년 동안 주머니 가벼운 손님들을 먹여왔는데, 언젠가부터 아파트가 빽빽히 들어서더니 포차 거리 때문에 집값 떨어진다는 민원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구청 주도하에 하루아침에 강제집행을 당했다. 아현동 포차 거리 사장님들의 이야기다. 포크레인질 한두번에 가게가 부숴지고 길바닥에 그릇이 나뒹굴던 차가운 아침, 울부짖는 거인이모와 강타이모의 곁에는 연대인들이 있었다.

 

이모들은 아현동, 대흥동 각각 새로운 공간에서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이종건 작가와 연대인들이 이모들의 새 가게에 들른다. 거인이모만의 꾸미’(고기 고명)가 올라간 잔치국수의 맛, 강타이모가 끓여준 각별한 라면의 맛. 이모들은 밥을 먹지 왜 면을 먹냐며 혼을 낸다. 국수 한 그릇, 라면 한 그릇 달라 했을 뿐인데 상에는 그새 백반이 차려진다. 투쟁 현장에서 이모들이 연대인들에게 내어주던 그 맛 그대로다. 월세를 네 배 올리겠다며 사실상 쫓아내려하는 건물주가 강제집행을 연거푸 시도할 때, 서촌 궁중족발의 철문을 굳게 닫고 새벽 내내 가게를 지키던 때에도 연대의 밥상은 언제고 차려졌다. 먹어야 또 싸우니까.

 

오로지 돈만 좇는 탐욕이 도시의 골목골목으로 밀고 들어와 오랜 시간 빚어온 삶과 추억, 문화와 역사를 그냥 막 지워버린다. 무악동에는 옥바라지 골목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의 가족들이 옥바라지를 하며 만들어진 골목이다. 이종건 작가가 몸담고 있는 옥바라지선교센터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현대사의 질곡과 100년 된 한옥이 보존되어 있던 옥바라지 골목은 돈의문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헐려 나갔고, 그 자리엔 대기업의 아파트가 들어섰다.

 

옥바라지 골목을 개발하지 말고 보존하자고 외치는 도시연구가, 활동가, 문화예술인 사이에서 이종건 작가는 예배를 드렸다(그는 전도사이기도 하다). <연대의 밥상>의 에피소드 중 천막 성찬의 사워도우와 거저 받은 일상의 소중함에는 철거현장에서 지낸 성찬예배에 직접 구운 빵으로 연대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먹음직스럽게 갈색빛이 도는 커다란 빵 한 덩이를 선물받아 현장 사람들과 평등하게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그 연대인에게 빵 굽는 방법을 배운다. 물과 밀가루, 효모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발효 빵 사워도우를 굽는 데에 하루가 꼬박 걸렸다. 긴 노동으로 구운 빵을 신문지에 잘 싸서 천막농성장까지 가져다준 그 마음에 작가는 뭉클해진다.

 

2016, 옥바라지 골목에 직접 구운 성찬빵을 가져다준 사람은 6년 후 매주 일요일 저녁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 냄비 가득 음식을 해온다. 그녀는 연대하는 채식인 모임의 요리사다.

 

 

▲ 을지OB베어와 함께하는 연대하는 채식인 모임

 

일요일 저녁마다 을지OB베어를 찾았던 것은 연대의 밥상을 차리기 위해서였다. 강제집행 이후 가게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결심한 사람들이 일주일에 하루라도 정성스런 식사를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채식하는 사람들이 제안했기 때문에 메뉴는 모두 비건(우유, 달걀을 포함한 동물성 재료를 일체 넣지 않은 완전 채식)이다. 쫓겨난 사람들이 자기 몫의 도시를 되찾기 위해서는 싸우고자 하는 마음과 지난한 시간을 견딜 인내가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는 동안 불쑥불쑥 찾아들 허기를 채워줄 타인의 연대다. 그래서 7개월 동안 현장에 밥을 차리고 사람들을 모았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인근의 인쇄소, 철공소 노동자들이 고된 하루를 달래며 호프에 저렴한 안주를 곁들이던 곳이다. 작은 호프집이 오밀조밀 사이좋게 모여 장사를 했고, 특유의 골목 문화가 인정되면서 서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야장 영업이 중구청의 협조로 가능해졌다. 골목이 통째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곳의 시작은 을지OB베어였다. 42년 전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 처음으로 문을 연 집, 우리나라 최초의 생맥줏집, 을지OB베어. <연대의 밥상>에 등장하는 여러 강제철거 현장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일상의 쫄면과 맥주를 지키는 일에피소드에 소개되는 을지OB베어는 2022421일 새벽 3, 건물주가 고용한 70여명의 용역으로부터 강제집행을 당했다. 불시에 들어올 강제집행에 대비해 가게를 지키고 있던 3대 사장과 연대인들은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용역은 을지OB베어의 간판과 가게 집기를 모두 뜯어냈다. 을지OB베어를 그렇게 잃을 수는 없었다. 강제집행을 당한 바로 그날 아침부터 시작해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간판 뜯긴 가게 앞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음악회, 행진, DJ파티, 예배, 낭독회 등이 줄지어 열렸다. 단골이었던 손님과 서울의 골목 다양성을 지키고자 하는 시민이 매일매일 피켓을 들고서 이웃가게들을 쫓아내고 골목을 독점한 만선호프의 폭력적인 실체를 알렸다.

 

연대한다는 것은 결국 타인의 공허함에 웅크린 나를 욱여넣고, 그렇게 내 가슴에도 무언가 채워 넣는 것이다. 그렇게 스며들어 서로의 살과 피가 되는 일이다. 서로 관계하는 일이고,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이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명백하게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이 함께 살기 위해 선택한 가장 적극적인 방식이 밥상이다.”

p.108_삼계탕을 추억하며, ‘연대의 밥상을 생각하며

 

어느 날 2대 사장 부부 중 한 명인 강호신 사장님이 그런 말을 했다. 가게 문을 다시 연다면 나와 같은 연대인들을 위해 채식 메뉴를 하나 만들 거라고. “우리 가게 힘내라고, 싸움에서 이기라고 매주 밥을 차린 사람들 덕분에 내가 가게를 다시 열게 될 텐데 어떻게 채식메뉴를 만들지 않을 수 있겠어요.” 맥주와 곁들이는 노가리 안주를 처음으로 개발한 가게의 차림표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다며 비건 딱지를 붙인 안주가 있다면 그건 연대하는 밥상이 만들어낸 또 다른 풍경일테다.

 

지난 1130일부로 을지OB베어는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문을 닫았다. 이 골목의 첫 가게였던 을지OB베어가 이 골목의 마지막 가게가 되기로 한 것이다. 골목의 문을 닫는 날, 을지OB베어 이주 선포식 골목선언을 했다. 상생과 회복이 불가능해진 골목을 우리 손으로 접고, 귀중한 노포(대대로 내려오는 오래된 가게)들이 맥없이 쫓겨나는 것을 방관한 지방정부에 대책을 요구할 것이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서의 마지막 밤에도 어김없이 연대하는 채식인 모임의 밥상이 함께했다. 이날 먹은 을지OB베어의 맥주 맛을 연대인들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그렇게 사라졌다. 자본의 탐욕에 고유의 빛깔을 잃어간, 우리가 그리워하는 수많은 그곳들처럼.

 

▲ 지로 노가리 골목에서의 마지막 연대하는 채식인 모임. 최수영 사장님과 연대인들

을지OB베어는 새로운 골목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연대의 밥상>의 말을 빌리자면, 연대인들을 위해서 주방에서 노동을 하던 사장님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주방 노동을 하는 모습, 그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릇을 나르고 설거지를 하며 할 일을 찾는 연대인이었던 나는 손님이 되어 제값을 지불하고 음식을 먹겠다. 그렇게 연대의 밥상은 이어진다. “잘 먹고, 잘 먹이며 함께 살기 위해서.” □

 


 

글쓴이.소라

글로 말 거는 사람. 울게 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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