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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민으로 덕질하기의 슬픔과 기쁨 - 다큐멘터리 <성덕>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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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2. 10. 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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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를 생각하면 보는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집단기억을 고려해야 하는 건 맞는데, 일개 사회 구성원일 뿐인 내가 타인의 의견이나 기억을 다 고려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그나마 영화 <성덕>의 존재가 위안이 된 것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그때그때 나름대로의 최선에 다가갈 수는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ACT! 132호 리뷰 2022.10.19]

여성-시민으로 덕질하기의 슬픔과 기쁨

- 다큐멘터리 <성덕>(2022) 리뷰

  예미

 

‘BTS brought me here’라는 유명한 댓글이 있다. BTS 멤버들이 따라 부르거나 추천해줘서 유명해진 노래에 많이 달리는 댓글이다. BTS가 너무나도 슈퍼스타인 탓에 이들과 정말 실낱 같은 접점만 있어도 이 댓글이 남발되다 보니 악명 높은 밈이 되어 버렸지만, 내가 사랑한 스타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건 이런 댓글을 남발하고 싶어질 만큼 기쁜 일이다.

<성덕> 시사회가 열린 영화관에서 이 댓글을 떠올렸다. 시사회가 열린 용산 CGV는 오세연 감독에게도, 나에게도 덕질이력이 데려다준 곳이었으니까.

 

 

1. 여성-시민으로 성장한 팬들

 

영화 <성덕>의 대부분은 오세연 감독과 주변 친구, 동료들이 여성 혐오적 범죄 행각으로 몰락한 스타와 여성 팬덤의 팬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각한 사건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꽤 유쾌하다. 객석에서 많은 웃음이 터져나온 장면 중에는 노래방에서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를 외치다가 그 곡을 부른 가수(FT아일랜드 최종훈)도 성범죄로 몰락했음을 새삼 깨닫는 장면도 있었다.

 

이렇게 무심코 떠오를 정도로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있던 스타의 편린을 삶에서 쉽게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을 영화를 보며 짐작할 수 있었다. 생활 속에 스며든 덕분에 수많은 것을 체험하며 자아상과 인생사 곳곳에 를 새겼다면, ‘와의 시간을 부정하는 것은 곧 자기부정을 동반한다. 성범죄마저 부정하며 정준영을 옹호하는 팬들의 행각에 대한 의문이 영화를 이끌었지만, 스타의 몰락 이후 자기부정의 고통을 겪은 팬들을 보면 오히려 질문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자기부정까지 하며 와의 관계를 끊어내려는 이유가 무엇인지로.

 

이들에게 고통을 택하게 만든 것은 여성,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자각이다. 소위 페미니즘 리부트이후 여성 팬들의 큰 사랑을 받은 스타들이 여성 대상 성범죄로 몰락하는 모습을 보며, 범죄를 저지른 스타들에게 여성 팬들이 어떤 존재로 비춰졌을 지를 상상하면 견딜 수가 없어진 것이다. 팬 활동을 통해 이들에게 자산과 지위, 즉 이들이 성범죄를 마음대로 저지를 만한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 같은 사회 여성 시민들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자각도 크게 다가왔다.

 

여전히 정준영을 옹호하며 현실을 부정하려는 팬들과, 적어도 자신을 부정할지언정 같은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고민하는 팬들 중 영화는 후자에 힘을 싣는다. 관객 모두를 뒤집어지게 만들었던 박사모 집회 장면의 결론이 그렇다. 그렇지만 시민으로서의 자각이 자기 삶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도록 영화는 관점을 뒤튼다.

 

영화는 팬 하나하나의 경험과 족적을 거론하며, 팬 문화를 대하는 초점을 스타에게서 팬으로 옮겨온다. 이를 통해 여성 팬들이 스타에게 삶이 종속된 존재가 아닌, 팬 문화 속에서 적극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꾸려가는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팬 문화는 행복한 삶을 원한 이들이 사랑으로 만들어낸 산물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또 다시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성덕> 스틸컷

 

2. ‘덕질의 주인은 누구인가

 

사건사고로 인해 끝나버린 덕질이 스타에 대한 애정 말고 무엇을 남겼는지를 살펴보는 장면은 영화 밖, 오세연 감독과 관객인 나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정준영은 성범죄로 몰락했지만 오세연 감독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 여성-시민으로서의 자각, 그리고 첫 개봉작 <성덕>이 남았다. 여러 음악인을 덕질하면서 느낀 것들을 적어 보다가 <성덕> 시사회에 초대받은 내 모습이 영화의 결론을 지지하는 증거처럼 보이는 순간, 나는 덕질의 주인은 팬 자신이라는 영화의 결론에 깊이 설득되었다.

 

‘BTS brought me here’라는 도식이 있다면, 이 도식에서 ‘BTS’가 중요한지 ‘me’가 중요한지 한때 고민해본 적이 있었다. ‘덕질이 인생에 끼친 영향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질 때 시작한 고민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이들 하나하나의 이름과 개성이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좌우한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 그들이 주었던 위로와 에너지가 감사하게 느껴지던 때에는 덕질에 있어 스타의 자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me’, 그러니까 덕질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데에 공감한다. ‘덕질을 시작하던 시절 나는 내가 원하던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아다닌 것 같아서였다. 그 시절 나는 힘든 일이 생겨도 굳건한 어른이 되고 싶었고, 오늘보다 내일이 낫기를 바랬다. 원하는 것이 같았다면 그 시절 다른 사람을 사랑했어도 삶이 그리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그 시절 덕질에 쏟아부은 열정이 실제로는 잘 살고 싶다는 열망과 같아 보였다.

 

각자의 삶을 잘 꾸려 나가려는 노력의 일환이 덕질이라면, 영화 안팎의 덕후들이 여전히 삶 한켠을 덕질로 채우면서도 시민으로서의 위치를 함께 고민하게 된 것이 모순되지 않는다. 여성-시민으로서 해악을 지지하는 것이 삶을 더 나아지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다만, ‘덕질시민-되기가 모순되지 않을 뿐 둘 모두를 함께하며 살아가는 과정이 험난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성덕> 스틸컷

 

3. 가치 판단의 슬픔과 기쁨

 

사랑했던 스타의 사건사고로 인해 몇 차례 좌절해 본 나에게 영화 <성덕>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영화를 본 뒤 오랫동안 좋아하던 작곡가가 구속 수감되어 한 차례 더 성덕이 되어 버리자, 이 영화를 본 것이 더욱 감사한 경험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대중음악을 다루는 필진으로서 나는 영화에서 위안만을 찾지는 못했다. 창작물을 다루는 평론가가 창작자의 사건사고 등 작품 외적 요인을 가치 판단에 얼마나 개입시켜야 하는지는, 지금 시대 평론가들에게 뜨거운 이슈이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 이후, 많은 평자가 지나간 역사나 예술의 계보를 없는 것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폭력의 족적을 남긴 이들을 추앙하여 영향력을 늘리는 데에 기여하고 싶지는 않다는 두 가지 의문 속에서 고민을 키우기 시작했다. 범죄를 일으킨 예술인이 그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작품과 작품 만든 사람을 분리해서 바라보자는 주장이 국내외에서 힘을 잃은 것은 미투 운동 이후다. 작품에 대한 추앙이 그 작품을 만든 범죄자에게 또 다른 폭력을 위한 공동체 차원의 기반을 마련해주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알아버린 것이다.

 

동시대 대중문화에 대한 가치 평가를 할 때는 나의 기억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가진 집단기억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영화는 다시금 알려주었다. 예컨대, 내가 어린 시절 빅뱅을 좋아했다고 해서 지금 시점에서 빅뱅의 음악을 무작정 찬양하면, ‘버닝썬사건을 통과해 온 이들에게 큰 분노를 살 것이다. 이런 사례를 생각하면 보는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집단기억을 고려해야 하는 건 맞는데, 일개 사회 구성원일 뿐인 내가 타인의 의견이나 기억을 다 고려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그나마 영화 <성덕>의 존재가 위안이 된 것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그때그때 나름대로의 최선에 다가갈 수는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성덕>은 사실 주장이 강한 영화가 아니다. 결론이 있기는 하지만, 오세연 감독 본인을 포함하여 영화에 출연한 그 누구도 완벽한 답을 정하려 하지는 않는다. 대신 <성덕>에서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수없이 쌓이는 대화가 결론 이상으로 중요하다. 영화를 이끄는 화자이기도 한 오세연 감독은 영화에 등장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생각을 발전시키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그 대화의 파편을 모아 전달하여 재미를 준다.

 

오세연 감독과 김다은 조감독이 너 승리, 나 정준영하며 서로의 덕질을 지목하는 장면이나 정준영의 성범죄를 처음으로 보도했던 박효실 기자가 메일에 이어 인터뷰에 나타난 장면처럼 디테일 하나하나에 일일이 웃었던 나는, 그런 대화와 웃음이 쌓여 나름의 최선에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얻었다.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고민을 발전시키는 것이, 답 없는 문제를 가장 현명하게 마주하는 법일 것 같다.

 


글쓴이: 예미 / 직책: 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을 사랑하며 보고 느낀 것을 쓰는 사람.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던 음악과 음악인을 이야기하다가 지금은 웹진 <아이돌로지>의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내 식의 덕질이야기를 민음사 <한편><미디어중독자의 행복한 삶>이라는 제목으로 써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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