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32호 길라잡이 2022.10.24]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
황혜진 (ACT! 편집위원)
완연한 가을입니다. 아직 저의 옷장 속엔 정리하지 못한 여름옷이 있지만, 어느새 낮에도 제법 쌀쌀한 걷기 좋은 계절이 되었습니다. 날씨 좋은 날이면 혼자 종종 산에 갑니다. 산에 가면 평소에는 서로 말 걸지 않던 타인과 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잠시 쉬어가는 의자에서 초콜릿을 나눠 먹기도 하고, 산을 오르다 마주치는 고양이를 함께 바라보다 이야기 나누며, 정상에 다다를 즈음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힘내라는 응원을 길에서 만나는 등산객들과 주고받다 보면 금세 정상에 도착합니다. 산이라는 공간은 누군가를 스치듯 만나더라도 그곳에 함께 존재한다는 공동의 경험으로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가지게 되나 봅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의 대화가 불편하지 않은 산이라는 공간은 복잡한 일상에서의 경계를 내려놓고 마음이 편해지게 만들어줍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공간이 하나쯤은 있겠죠?
최근 누구나 마음이 편해야 하는 근무공간에서 여러 청년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 공간은 누군가의 일터이기도 하고 소비자에게 판매가 될 빵을 만드는 공장이기도, 하루에도 수만 명이 이용하는 지하철역이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일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들에 반해 어느 시의원의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여러 가지 폭력적인 대응을 남자 직원이 한 것 같다.”라는 망언과 제빵공장에서 사고를 당한 노동자 빈소에 답례품으로 쓰라며 빵을 놓고 가는 회사를 보면 더욱 피해자의 죽음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ACT! 또한 기사를 읽는 모두에게 안전한 매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함께 연대하기 위한 마음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사치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가 현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ACT! 132호에서도 주변을 살피고 함께 살아가려 하는 다양한 기사들을 담았습니다.
[미디어 인터내셔널] 코너에서는 “다큐멘터리를 퀴어링:LGBTQ+대담” 다섯 번째 기사를 실었습니다. 비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투자자들과 대중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퀴어영화를 만들기 위한 제작자들의 고민이 담겨있습니다.
[리뷰] 코너에는 2개의 원고를 담았습니다.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가단 빌라>를 연출한 이효진 감독의 동료이자 친구인 나선혜 님이 감독의 전작인 <자살도 할 기운이 있어야 할 수 있다>와 비교해 현 작품 안에 드러나는 가부장제와 모녀 3대의 결속을 통해 영화를 리뷰합니다. 대중음악평론가 예미 님은 9월 말 개봉해 많은 팬들의 공감을 사고 있는 오세연 감독의 <성덕>에 대해 글을 쓰셨습니다. 누군가의 팬 혹은 팬이었을 관객들을 위로하는 이야기들이 영화 안에 어떻게 담겨있는지 보여주셨습니다.
[인터뷰] 코너에는 정신질환이나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 무대에 설 수 있는 연극을 기획하는 1인 프로덕션 <미친존재감>의 손성연 독립기획자가 당사자가 함께하는 불완전함과 완벽하지 않은 공연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페미니즘 미디어 탐방] 코너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편이 되기 위해 콘텐츠를 만드는 유튜브 채널 ‘담롱’의 팀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인터뷰이-인터뷰어-구독자로 이어지는 연대의 영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고민에 주목 부탁드립니다.
[미디어큐레이션] 코너에서는 국내 소도시의 척박한 영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마산에서 ‘마산영화구락부’를 만들고 ‘무학산영화제’를 기획한 김준희 님이 <누구나 하는 일: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단체와 영화제의 기획 과정과 운영 방식을 소개해주셨습니다.
[Me,Dear] 코너에서는 촬영 되었지만 영화 안에 포함되지 못하는 푸티지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한 안지환 님의 이야기를 보내주셨습니다.
[Re:ACT!]에는 청년인문학모임 <후레자식들>의 신원 님과 광주극장에서 일하며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조신영 님이 함께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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