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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되지 못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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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2. 10. 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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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듬어지며 만들어진 서사속의 인물은 필시 삶 속의 그 인물과는 다르게 편집되어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단한 편집이라고도 생각치는 않는다. 우리는 모두 보고싶은 것만을 보고, 보여주고싶은 것만을 보여주니까. 때론 부모의 몰랐던 과거를 알게 되기도 하고, 몰랐던 친구의 아픔을 뒤늦게 알게 되기도 한다. 삶의 플롯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원체험들을 우리는 기억속에서 편집하여 자신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살아간다. "

 

[ACT! 132호 Me, Dear 2022.10.19]

 

이야기가 되지 못한 이야기들

 

안지환

 

 

▲2021년 11월 백령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다보면, 서사에 포함되지 못하는 것들이, 서사가 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당연한 일이다. 당장 촬영 분량만 해도 몇백시간의 푸티지중, 겨우 한시간 반 정도 되는 시간만큼만이 선택받고 나머지는 다 캄캄한 곳으로 침잠한다.

 

카메라가 돌지 않는 시간에 오가는 대화들은 또 어떠한가? 작업자들간의 고민과 대화들 속에서 선택되고 버려지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음악감독은 얼마나 많은 곡들을 만들었다 버리는지. 뿐만 아니라, 작업자와 대상(subject)과의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와 관계, 대상의 변화, 삶의 여러 이야기들 또한, 영화로 매듭지어지게 될 서사에 포함되지 못하고 흘러가는 것이 부지기수다.

 

가령 주인공이 어떤 불법적인 일을 행했다고 해보자. 그가 그 일을 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담았다고 해보자. 거기에다 그가 그 불법적인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심경을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 해줬다고 해보자.그리고 그가 그런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그라는 사람을 너무나 명징하게 드러내주는 상징임을 작업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느낀다고 해보자. 더구나 내게는 그것이 푼크툼으로 다가왔다고 해보자.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서사 속에 그 이야기가 들어갈 시간이 없다면? 혹은 그의 불법 행위가 상영됨으로 인해, 그것이 극장을 벗어나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면? 이것이 그의 반대세력에게 약점을 던져주는 증거가 된다면? 그가 한 그 일이, 그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일이어도, 그 일은 서사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대신 그와 우리들만이 우리에게 있었던 그 사건을 죽는 날까지 곱씹게 될 것이다.

 

꼭 불법의 일처럼 그것이 영화에 드러나면 큰일날 만한 일 뿐 아니라, 사소한 이야기들도, 최종적으로 부드러운 서사를 위해 불균질한 것으로 간주되어 곧잘 잘려 나간다. 3시간짜리 러프컷에서는 중요한 플롯 포인트로 생각했던 사건이 결국에는 통째로 날아가기도 한다. 아예 인물이 날아가기도 한다. 오랜 시간을 애정을 갖고 이야기를 함께 가꿔왔던 인물이 통째로 날아가버리는 것이다.

 

사건이나 인물까지 갈 것도 없다. 사소한 장면들 또한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고양이를 구해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 시간도 부족한 판에, 우리의 주인공을 비호감으로 만들 장면들은 다듬어져야 한다. 사소한 습관, 표정, 행동. (실례를 상세히 말 못 하는것을 양해해주시길) 가능한 많은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아야 우리의 주인공은 서사 속에서 작동할 것이기 때문에, 오해나 비호감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들은 다듬어지게 마련이다. 또한 전체 서사를 위해, 어떤 하루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맥락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어떤 표정을 선택하느냐, 어떤 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물이 느끼는 감정이 다르게 표현되고, 관객이 이입하는 감정의 결도 달라진다.

 

▲2016년 3월 5.18 자유공원

 

작업자 입장에서 유난히 마음이 기우는 푼크툼[1] 들이 있다. 인물의 과거사일수도 있고, 어떤 한 컷일수도 있고, 어떤 하루일 수도 있다. 때로는 영화를 만드는 초반에 그 푼크툼이 영화의 뼈대를 구성했다가, 최종본에서 가차없이 빠지기도 한다.

애초에 담으면서도, ‘이건 너무 좋지만 영화에는 쓸 수 없겠는걸?’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다듬어지며 만들어진 서사속의 인물은 필시 삶 속의 그 인물과는 다르게 편집되어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단한 편집이라고도 생각치는 않는다. 우리는 모두 보고싶은 것만을 보고, 보여주고싶은 것만을 보여주니까. 때론 부모의 몰랐던 과거를 알게 되기도 하고, 몰랐던 친구의 아픔을 뒤늦게 알게 되기도 한다. 삶의 플롯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원체험들을 우리는 기억속에서 편집하여 자신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살아간다. 명절 간에 몰랐던 부모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다. 명절 전에 편집하며 날리고 왔던, 아까운, 서사에 포함되지 못한 이야기들, 습관들, 장면들, 푼크툼들, 나의 원체험과 공명하는 프레임 속의 마테리얼들을 생각한다. 무척이나 애정해서 버릴 수 없었던 그것들이 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영화의 서사에는 포함되지 못하여도, 대상자와 우리는 그것들을 때때로 죽기 전까지 이야기 할 것이다.

 

[1] 롤랑바르트의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 언급된 개념으로, 라틴어로 ‘점(點)’, ‘찌름’이라는 뜻이며 화살처럼 찔려오는 어떤 강렬한 인상을 의미한다.

 


 

글쓴이. 안지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영화 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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