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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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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2. 6. 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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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사정을 걱정하고 시장 논리를 운운하면서 아직도 머리는 질문을 던진다. 왜 여태껏 독립영화사에 다니고 있냐고, 왜 구태여 극장으로 향하고 있냐고. ‘알아주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이 일에 진심인 사람들이 거기에 있으니까’. 제대로 된 답변이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답은 이게 전부이다. 너무도 연약하고 부실한 답인 터라 언제까지 이 답변으로 응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오래도록 이 답변이 내 마음에 유효하게 남아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ACT! 130 Me, Dear 2022.06.11.]

 

우리가 여기에 있다

소네

 

채용 의사를 밝혀주셔서 깊이 감사드리지만 입사는 어려울 같습니다.’ 어렵게 메일을 작성한 인사담당자에게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메일을 발송했다. 취업 전선에 뛰어든 만에 중견 규모의 종합유통업체로부터 합격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고, 합격의 기쁨을 느낀 며칠도 되지 않아 입사 포기 메일을 전달하게 되었다. 늦기 전에 영화 업계에서 활동해보고 싶다는 , 그것이 유일한 입사 포기 이유로 다른 이유는 없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건 처음으로 온전하게 주체가 되어 중대한 결정을 내려본 경험이었다.

 

이후 나의 이야기도 수려한 영화처럼 시나리오를 타고 순조로이 흘러갔다면 좋았겠으나, 메일을 보내고 후로 2 동안 나는 어디에도 자리 잡지 못한 좌충우돌을 일삼아왔다. 처음에야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 업계에서 내가 있는 일들을 탐색하고 실행에 옮겼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영화제, 영화사, 영화감독 어느 하나에도 나의 족적을 제대로 남기기 어려울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성과는 있지만 성공은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입사 포기 메일을 작성할 때의 굳은 다짐은 제쳐 채로 영화 업계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들에 자꾸 기웃거렸고, 영화 업계는 포기한 채로 다시금 일반 기업에 부지런히 지원서를 넣으며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연이은 낙방에 어쩐지 벼랑 끝에 있는 같다는 느낌이 무렵, 아는 사람의 소개로 독립영화 제작배급사에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이미 영화 쪽으로는 어느 정도 마음을 접은 터라, 면접을 앞둔 흔한 기대나 두근거림은 없었다. 얼마 찾아온 출근하실 있냐는 연락에하루 정도만 시간을 주실 있나요라고 답한 부리나케 친구를 호출했다. ‘과연 이곳에서 일하는 맞을까라는 질문을 골백번 반복하며 머리를 쥐어뜯는 나에게, 친구는 그곳에서 일하는 것의 장단점을 나열한 어느 곳에 많은 개수가 채워지는지 세어보자고 했다. 예상했겠지만 당연하게도단점 압도적으로 채워졌고, 그럼에도 나는 다음날 영화사로 전화를 걸어출근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장단점 쓰기가 항상 하나의 정답만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출처: www.istockphoto.com)

 

출근 간은언제 도망치나고민하며 줄행랑칠 있는 타이밍을 재던 내가 이곳에서 햇수를 넘기며 어느새 작은 뿌리를 내렸다. 그간 아홉여 작품이 극장에 걸리는 과정을 동료들과 함께하며 같이 울고 웃은 기억이 어느덧 한가득이다. 이곳에 자리 잡게 데에는 매우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다. 우리가 제작배급하는 작품의 가치,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알아주는 제작진들, 그리고 종종 찾아오는 나름대로의 성과. 모두가 나를 후미진 사무실에 붙잡아두는 이유들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어느 이유보다도 나를 이곳에 있게 하는 앞에 앉아있는, 하루의 삼분의 일을 함께하는 동료들인 듯하다.

 

이제 하나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그다지 특별한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매달 몇십여 편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지만, 관객 수는 반의반 토막이 오래이고 부가판권 시장은 형태와 규모를 지속적으로 불려 나가고 있다. 이제는 극장에 가야 이유보다 가지 않아도 이유를 찾는 편이 수월하다. 영화를 극장에 거는 일에 진심인 동료들을 보면서 가끔씩 의문이 때가 많을 수밖에 없다. ‘ 이렇게 애쓰고 있는 걸까?’하며.

 

흉흉한 시국에 극장은 텅 비어버렸다. 그런데 우리, 왜 이렇게 애쓰고 있는 걸까.

 

일을 시작할 때야작품의 가치와 일의 의미 마음에 새기지만, 막상 일이 시작되면 마음에 새긴 뜻에 생채기를 내는 사건들이 허다하게 터진다. 여느 직장인처럼, 그간 겪어온 슬픈 일을 나열하자면 하루도 부족하고, 해도 안된다는 마음에 처진 어깨로 퇴근하는 날들도 된다. 그럼에도 다음날이면 어제 봤던 사람들이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있다 느낌이 주는 힘에 대해 말한다면 지극히 상투적인 글이 되어버릴까 싶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있다 느낌은 동력이 된다.

 

영화를 배급하는 너무나도 비가시적인 영역이어서, 들이는 수고와 노력에 비해 쉽게 눈에 드러나지 않는 얄궂은 특성을 지녔다. ‘정말이지 바빠요라고 투덜대지 않으면 바쁜 티조차 나지 않는 일이고, ‘우리가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으면 정말 우리가 여기 있는 모를 같은 일이다. 그러기에 더욱이 목소리 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리는 제작을 마친 영화를 극장에 걸어 다시 영화를 시작하는 일에 열중인 사람들이고, 그러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래서인지 바로 앞에서 마케팅 방향을 고민하는, 카피 문구를 짜내는, 미수급된 상영본을 걱정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인지할 때면, 이리저리 치이며 생채기 입은 마음이 조금은 아문다. 모두들 없어지지 않고 여기에 있다는 점에 감사하면서, 앞으로도 그렇게 앞에 있어 주기를 바라게 된다. 그렇게 하루, 일주일, 달을 일할 있게 된다.

 

 

새로운 식물 동료들도 우리와 함께해주고 있다.

 

 

전으로 돌아가, 영화사에 처음으로 들어오던 모습을 떠올려본다. 이곳에서 일하는 내게 단점으로 다가올 있다는 알면서도 발을 들였고,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안심하며 들여놓은 발을 오히려 깊숙이 넣었다. 얼마 극장에 멍하니 앉아있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손가락을 번만 움직이면 집에서 있는 작품이라는 알면서도 극장으로 향했고, 적은 수이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극장을 찾아와 지근거리에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지갑 사정을 걱정하고 시장 논리를 운운하면서 아직도 머리는 질문을 던진다. 여태껏 독립영화사에 다니고 있냐고, 구태여 극장으로 향하고 있냐고. ‘알아주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일에 진심인 사람들이 거기에 있으니까’. 제대로 답변이 되지 않을 알면서도 지금으로서 있는 답은 이게 전부이다. 너무도 연약하고 부실한 답인 터라 언제까지 답변으로 응수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오래도록 답변이 마음에 유효하게 남아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글쓴이. 소네

보이지 않더라도 늘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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