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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돌이킬 수 없는 변화 - 닷페이스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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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2. 7. 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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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스러지다'라는 단어를 곱씹는다. 형체나 현상 따위가 차차 희미해지면서 없어지는, 불기운이 약해서 꺼지는. 나와 동료들의 인생이 이 단어와 맞닿아 있다고 느끼기도 했고, 가끔은 이 단어를 우리의 삶에서 밀어내고 싶기도 했다. 밀어내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따위 것의 세상에서 나와 동료들은 끊임없이 스러지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ACT! 131호 Me, Dear 2022.08.17.]

 

6년, 돌이킬 수 없는 변화

- 닷페이스가 떠났다

 

희너

 

  들려오는 여러 소식에 마음이 뒤숭숭하다. 여성가족부 폐지 로드맵, 경찰국 신설, 한전기술 지분 매각, 수많은 여성 범죄 사건까지. '세상이 왜 이따위냐'를 외치던 대학생 때와 지금의 세상은 별달라진 바 없이 여전히 '이따위'. 이따위 것의 세상에서 나의 마음을 지키며 살 수 있게 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요소는 이따위의 세상에 함께 분노하는 동료들의 존재였다.

 

  삶의 수많은 순간에서 그런 동료들을 만났다. 대학교에서 미디어학을 배웠던 나와 친구들은 주류 미디어에서 담지 않는 사회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그렇게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실전에 적용해보자는, 이따위로 돌아가는 세상에 함께 분노하자는 마음 하나로 '**뉴스' 계정을 만들었다. 우리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여성 시위에 함께 참여하여 시위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 시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으며 '우리에겐 이런 동료들이 있고, 이런 목소리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이후 시위를 하고, 다른 사회 참여 활동을 하면서도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 생각의 스펙트럼은 제각각이었지만 '그럼에도 이런 세상에선 살 수 없다'라거나, '우리는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마음은 하나였다. 시민단체에서 다른 기업들보다 적은 돈을 받으면서도 일할 수 있는 원동력 역시, 지금의 내 옆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료 때문일 것이다.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20대를 지나는 동안 나의 마음을 지키는 과정엔 닷페이스가 함께 있었다. 닷페이스는 우리의 이런 순간을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함께하는 동료였다. 여성의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회 곳곳의 문제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어떤 것이 문제라고 느껴질 때면 그 이야기를 닷페이스가 다루고 있었다. 그런 닷페이스가 해산했다. 해산 이메일을 펼쳤을 때 들었던 감정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죄책감이었고 하나는 위기감이었다. 나에겐 아직 닷페이스와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었다. 동시에, 내 마음속 동료인 그들과 이야기 나눌 시간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우리는 계속 이야기 주고,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 생각의 결은 다르지만, 결국 조금 더 나아진 세상을 위해 사는 동료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그림 sekko)

 

  따지고 보면 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미디어들은 많다. 그러나 '객관적이지 않아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문제'들이 세상에 존재한다. 닷페이스의 뜨거운, 하다못해 따뜻했던 시선들은 객관을 넘어선 관점을 제시했다. 나는 이것이 닷페이스의 차별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객관을 넘어선 관점은 사회의 시각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맞추도록 했고, 주변에 스치듯 지나간 이웃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했고,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왔다. 닷페이스가 이끈 변화들은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내게 닷페이스는 항상 든든한 지원군, '믿을 구석'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비정상인가?'라는 생각일 들 때면 닷페이스를 찾았다. 그 안에서 다루고 있는 의제들에는 늘 함께하는 사람, 나의 동료들이 있었다. 우리는 직접 만나 소통하지 않아도 닷페이스의 영상과 글,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고 '이따위의 세상에 함께 분노해줄 동료'의 범주로 함께했다. 물론 닷페이스가 다루는 모든 의제에 긍정적인 관점만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적어도 닷페이스가 만든 사회적 연대에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닷페이스의 콘텐츠를 통해 긍정과 부정의 평가를 넘어 존재를 인식하고 서로 설득하고 설득당할 준비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닷페이스에서 받은 것이 많은데 정작 내가 닷페이스에 내어 준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면 조소담 대표가 보낸 닷페이스 해산 이메일을 들여다본다. 그럴 때마다 '자원의 한계'라는 단어 앞에서 큰 먹먹함을 느낀다. 친구들과 '**뉴스'를 시작했을 때, 교수님이 우리에게 '채널의 수익구조'에 관해서 물었다. 그때 우리는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고, 콘텐츠가 좋으면 사람들이 당연히 돈을 쓰겠죠. 같은 대답을 했었다. 수익창출보다는 필요하기에 해야 한다는, 우리에게 자본보다 더 중요한,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다는 믿음. 그 믿음에 기꺼이 함께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했던 말이었다. 여러 활동을 해보고 지금은 시민단체에서 일하며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 내가 믿는 더 나은 세상'을 사람들과 함께 지속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매 순간 느낀다. 내가 지키고 싶어하는 신념을 부정하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조롱에 '무뎌졌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닳은 후에야 나는 닷페이스가 해산을 결심하기까지의 지난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마음으로 닷페이스를 시작했고, 지켜왔고, 고민했고, 해산을 결심했는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투자했어야 할 비물질적 자원마저도 주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닷페이스의 해산에서 느낀 위기감 또는 충격이 이 '비물질적 자원'의 고갈을 우리 모두가 마주했다는 데서 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물질적 자원 역시 중요하지만, 그래도 닷페이스가 말한 '자원의 한계'를 그저 '수익 창출 모델을 발굴하지 못한 아쉬움' 정도로 분석하는 세상을 볼 때면 작은 한숨이 나온다.

 

▲ 박근혜 하야 시위 당시 촬영한 사진 (제공: 희너)

 

  나는 종종 '스러지다'라는 단어를 곱씹는다. 형체나 현상 따위가 차차 희미해지면서 없어지는, 불기운이 약해서 꺼지는. 나와 동료들의 인생이 이 단어와 맞닿아 있다고 느끼기도 했고, 가끔은 이 단어를 우리의 삶에서 밀어내고 싶기도 했다. 밀어내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따위 것의 세상에서 나와 동료들은 끊임없이 스러지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스러지는 존재들에겐 몇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그들이 분명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세상엔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마음을 닫거나,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스러지는 존재들은 그런 문제들에 마음을 열고 마음을 쓴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마음을 심지 삼아 불태우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언젠가, 스러질 수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또 하나, 스러지는 존재는 어디에서든 다시 피어난다는 것이다. 큰불이 되어 뜨겁게 혹은 작은 불로 은은하게라도. 수많은 동료들이 스러져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나 역시도 그랬다. 때로는 당장에 바뀌지 않는 것들에 절망해서, 때로는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아서, 때로는 그냥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때로는 현실적인 여건이 되지 않아서. 닷페이스의 해산에도 크고 작은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들을 함께 해결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늘 내게 남겠지만, 마음 한편으로 깊게 느꼈던 위기감은 다독여보려고 한다. 닷페이스의 과정을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은 그 어떤 모습으로든 다시 피어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스러져보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의 스러짐에 '거봐라. 결국 안 되잖아, 너네가 뭘 할 수 있는데?' 하며 조소를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스러져본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그 일에 마음을 다했는지. 여전히 이따위 것인 세상이라 해도 그 안에서 무엇을 바꿨는지. □

 

 

 


 

글쓴이. 희너

스러지는 존재들을 애정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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