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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非)수도권에도 존재하는 퀴어를 생각한다 - 광주전남 퀴어 상담센터 '큐앤아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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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2. 7. 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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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상담센터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성소수자 인권을 가시화를 하려면 미디어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디어에서 성소수자가 보이는 것 자체가 파급력이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는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상영을 하게 되었고, 당시에 100명이 넘는 분들이 추위가 매서웠던 12월 5일에 모였다. 인프라가 좁고 사람들이 모이기 힘든 지역의 조건 속에서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ACT! 131호 인터뷰 2022.08.17.]

비(非)수도권에도 존재하는 퀴어를 생각한다
광주 퀴어 상담센터 ‘큐앤아이(Q&I)’ 인터뷰

 

인터뷰어, 정리 및 작성 : ACT! 편집위원 김서율

 

 코로나 이후 서울시청 광장을 가득 메우는 오프라인 행사는 잠시 중단되었던 국내 최대 규모의 퀴어문화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지난 7월 16일 토요일, 2년 만에 재개되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들뿐 아니라 각개 지역에서 올라온 성소수자들의 축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서울과 수도권 밖에서 살아가는 지역의 퀴어들은 경제, 사회문화적 제도나 커뮤니티, 인프라의 부재 등 많은 측면에서 고민을 안게 된다. 이러한 양상에 대한 고민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성소수자 상담을 비롯한 활동을 모색하고 있는 단체도 존재한다. 

 이번 ACT! 131호 인터뷰의 주인공은 광주 전남 지역 퀴어 상담센터 큐앤아이(Q&I)다. 건희, 지민, 나디아, 낙원 현재 네 명의 팀원이 만들어가고 있는 큐앤아이는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을 성소수자에게 체계적인 지원과 상담을 제공하고 인권 옹호 활동을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다만 상담센터 운영을 올해 초부터 잠정 중단한 상태다). 또한, 사회 문화적으로 퀴어와 관련된 다양한 체험과 능동적 참여를 할 수 있는 활동이 수도권에만 집중된 현상을 탈피하고자 전남 광주 지역의 퀴어&앨라이(Ally : 지지자)를 모집해 이들이 서로 교류하도록 다양한 캠페인과 행사를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인터뷰는 건희님을 제외한 낙원, 나디아, 지민 세 분을 22년 6월 광주의 한 카페에서 만나 오프라인 대면 인터뷰로 진행하였다.

▲ 큐앤아이 활동가들. 왼쪽부터 지민, 건희, 나디아, 낙원.



Q. 먼저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드린다.

낙원 : 큐앤아이에서 활동도 하면서 어쩌다 대표 역할도 수행하고 있는 낙원이라고 한다.

나디아 : 나디아라고 한다. 예전 활동명은 젤피, 가을 정도로 썼었다. 닉네임은 그때마다 바뀐다. 이름은 남이 규정짓는 게 아니라 내가 규정짓는다고 생각한다.

지민 : 지민이라고 하고, 2021년 8월에 큐앤아이를 정말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다.

 

 

Q. 큐앤아이를 시작하게 된 각자의 계기나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낙원 : 광주 전남에서 성소수자들이 상담할 수 있는 창구나 복지 차원에서 서비스를 봐줄 수 있는 곳이 전무하다. 그러니 상담을 받으러 가던 성 확정 수술을 하러 가든 망명 신청을 하듯이 서울로 떠나게 되잖나. 광주여성민우회에서 나디아를 만나게 되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러다 나디아가 민우회 일을 그만두면서 활동을 해볼 생각 있냐는 제안을 해주었고, 그즈음에 나디아가 먼저 큐앤아이를 설립했다. 내가 민우회에 들어갔던 건 여성 인권 운동의 목적도 있었지만,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목표도 있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면서 얼떨결에 성소수자 꿘의 길에 들어가게 됐다(웃음). 단체가 본격적으로 설립되고, 상담센터도 개설되면서 온라인으로 상담을 게시판으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줌이나 화상채팅으로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4-5명 정도 상담을 진행했던 것 같다. 원래 신청한 인원은 더 많았었는데, 성소수자 상담을 위한 관련 자격증과 전문 교육 수료 및 활동 이력을 가진 사람이 나디아 뿐이라서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상담센터 활동은 나디아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운영하면서 그와 동시에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3명의 구성원이 같이하는 그런 방향성에 중심을 잡았다. 그 이후에 지민도 합류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나디아 : 단체를 많이 옮겨 다녔는데, 첫 번째로 몸담았던 조직은 청년 단체였다. 서울에 ‘마음 연결‘ 프로젝트라고 성소수자 자살 예방 기획의 팀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청년들의 부채 문제에 의식을 갖고 이 부분을 같이 해결해보려고 노력하는 청년 단체였다. 하던 일은 빚이 있는 청년들을 상대로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빚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금융 복지, 사회 복지, 사회적 지지, 제도권 안에 법망의 지지 이런 게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활동하면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 연결’의 팀원으로서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한편으론 일반 청년들도 경제적 빈곤을 겪고 집 안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하물며 성소수자들은 더 어렵지 않을까는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마음 연결‘에서 빚을 가진 내담자들을 어떻게 상담할 것인가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사례를 가지고 교육을 진행했었는데, 성소수자들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의 상황이나 일반 청년들이 처한 상황이나 크게 다르진 않았다. 다만 성소수자들의 문제는 꼭 연애 문제가 같이 낀다든지 하는 문제로 인해 본인이 자발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됐다는 죄책감을 한층 더 느끼게 되면서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식의 구조가 있었다. 데이트 폭력 같은 문제를 예로 들면, 법망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동성의 관계 속에서 사기를 당했어도 그냥 좋아서 빌려준 돈으로 판단되니까 고스란히 자신이 진 빚이 되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성소수자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직장에선 아웃팅 문제로 그런 이야기를 꺼내질 못한다. 사회복지나 경제적 제도에서 성소수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걸 많이 체감했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제도, 복지제도가 하나도 없더라. 한편으로는 내가 ’마음 연결‘ 활동을 하고 싶어서 서울을 왔다 갔다 하긴 하면서도 교통비를 지급해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서울까지 오가야 하는 걸까, 나는 왜 이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접하고 성소수자 운동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2011년에 트위터를 시작하면서였다. 내가 여태까지 고민해왔던 답을 여기서 좀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트위터를 했고 공부도 하게 됐다. 고등학교 때에는 ‘친구사이’나 ‘이반시티’ 등 이런 커뮤니티 문화가 강했을 때여서 네이버 다음 카페를 많이 이용했다. 그때 기억하기로는 ‘벽장들의 숨은 이야기’라는 카페가 있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세분화된 지향들을 알려줘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전공을 상담으로 가게 됐다. 주변 친구들이 사회 운동을 하기도 했고, 사회 운동에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1년에 서울퀴어문화축제와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게 되면서 여기가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구나 느꼈다. 

성소수자 운동을 하고 싶어서 뛰어들어 열심히 활동을 해보려 했다. 하지만 광주는 아무래도 지방이다 보니 성소수자 운동을 하는 곳이 없었다. 여성 운동 단체에서 성소수자 운동을 이끌어나가는 정도다 보니까 우선 여성 운동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여성단체 활동을 하면서 성소수자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한계점이 많이 있다는 걸 활동하면서 알게 됐다. 여성단체에서 일하기 전에 광주 퀴어문화축제 1, 2회 인권지킴이를 했었다. 전에는 회원으로 광주여성민우회에 있으면서 퀴어모임 ‘퀴어럽’(퀴어랑 앨라이들을 위한 북클럽)에서 활동하며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이 모임이 자연적으로 와해가 되었다.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를 했는데도 뭔가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없고, 성소수자 운동을 하는 것에 주춤거리는 걸 보면서 성소수자를 위한 단체가 지방에도 꼭 따로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낙원을 만나고서 큐앤아이를 만들게 되었다.

지민 원래 대학 다닐 때도 젠더학 전공을 했고, 소수자 인권에 관련된 운동을 학교에서 꾸준히 해왔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줌으로 수업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재학 중인 상태로 한국에 들어왔는데, 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운동을 하고 싶었다. 특히 퀴어나 장애에 관련된 운동. 처음에 활동 관련해서 알아보니 대부분의 큰 단체나 재단은 서울에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광주에 머물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정도 그냥 서울에 있는 곳으로 가볼까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조금 어이가 없기도 했다(웃음). 일단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이 광주에 분명히 퀴어가 존재하는데 서울까지 항시 올라가야 하는 문제에서 말이다. 그래서 혹시 몰라서 광주 퀴어 이런 키워드로 SNS에 많이 검색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내가 미국에서 사용하던 키워드랑 한국에서 쓰는 키워드가 다른지라 검색하는 데 되게 오래 걸렸었다. 그러다 큐앤아이가 뜨는 거다. 처음에는 상담 옵션이 있길래, 퀴어랑 한국에 관련된 상담을 요청해볼까 했는데 그러다 나디아와 연결되었다. 나디아와 이야기하면서 점점 큐앤아이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후에 낙원과도 연결되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디아 : 지민과 상담을 하는데, 이야기하면 할수록 본인이 해결하고 싶은 사정이나 고민 지점을 말하는 게 아니라 활동 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느껴졌다. 그래서 ‘어 잡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민에게 같이 활동해보고 싶냐고 미끼를 던졌다. 그걸 지민이 덥석 물었다(웃음). 다른 구성원들도 굉장히 환영했다. 당시에는 광주에 있는 구성원이 낙원밖에 없었는데 낙원이 지민을 만나보고 이야기해보고선 괜찮다고 해서 서울에 거주하는 다른 팀원인 건희의 동의로 멤버가 되었다. 

 


Q. 최근에 지방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에 대한 연구도 국내에서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주목도는 빈약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서울 및 수도권과 비교했을 때 경제적, 사회 문화적 격차나 의료, 복지 서비스 등 여러 제도적 차원에서 느낀 문제의식이 큐앤아이를 설립하신 목적과도 당연히 연결될 수 있을듯하다. 실제로 단체를 설립하고 활동하시면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서울과 지방의 온도 차를 실감했을 것 같기도 한데 관련하여 든 생각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낙원 : 최근에 지역 퀴어를 퀴어링하는 행사를 진행했었다. 광주에서 성별을 다시 확정 짓는 성 확정 관련하여 변호를 맡으셨던 공익변호사 모임 단체인 동행에 따르면, 광주에서는 네 번째로 성별 정정이 법적으로 확정이 된 사례였다고 한다. 행사를 통해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누면서 서울과 비수도권이 가지고 있는 경험이든, 인프라든, 그런 것들의 차이가 일련의 통계, 수치, 사례들로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가 상담센터로서 활동할 때도 굳이 광주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여수에 계시는 분들도 상담을 신청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이런 공간이 장치가 없다면 그분들은 품을 들여서 사비로 교통비로 지불해가면서 서울에 갔어야 했거나, 아니면 혼자서 고통을 참으면서 지내거나 할 텐데 말이다. 그런 경험을 주변에 접하게 되면서 인프라의 차이를 절실히 체감하게 된다. 지역에서 더 살기 힘든 특수한 조건에 있다 보니 서울로 가게 되는 어쩔 수 없는 현실도 이해가 간다. 지역에서 성소수자로서 살기 힘든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탓에 더 많은 돈과 품을 들여서 빚을 안고서라도 말이다.

제주권역 퀴어 커뮤니티인 ‘퀴여움‘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제주도는 특히나 섬이어서 같은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초중고를 다 똑같이 거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퀴여움 활동가 한 분은 서울에서 지내고 타지에서 머물다가 성인이 되어서 섬인 제주도로 들어갔다. 그런데 누군가가 새로 섬에 들어오니까, 쟤는 육지에서 왔다더라 하는 소문이 바로 퍼진다더라. 저변의 문제, 문화의 차이일 수도 있고 퀴어로서 제주에서 살아가면서 더욱 커밍아웃하기 힘든 특수한 상황이 있다고 한다.

낙원 : 지역 퀴어문화축제에서는 청소년들이 유독 더 결집하는 것 같다. 1회 퀴어문화축제 때는 참여만 했었는데, 실제로 청소년 비율이 엄청 높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놀랐다. 상대적으로 더 커밍아웃하기 힘들고, 가시화하기 힘든 환경에 있다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안전망이 있어서 그제야 나타내는 게 아닐까. 이건 그만큼 평상시에는 안전망이 확보되지 않은 환경이라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그런 점에서 서울과 조건이 확실히 다른 측면도 있을 테고. 

Q. 큐앤아이는 공식 홈페이지나 네이버 modoo를 통해서 광주·전남 지역 성소수자들의 온라인 상담 및 비대면 화상 상담 창구이기도 하지만, 광주극장에서 연분홍치마의 제작작품인 <너에게 가는 길> GV 행사도 기획하는 등 성소수자 인권 향상 운동에 개입하거나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외부 활동도 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병행해온 활동에 대해서 더 들어볼 수 있을까. 구상하는 계획이 있으면 말씀 부탁드린다.

낙원 : 너에게 가는 길 GV 행사 기획은 내가 주도적으로 했다. 이거 하자면서 끌고 간 셈이다. 우리가 상담센터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성소수자 인권을 가시화를 하려면 미디어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디어에서 성소수자가 보이는 것 자체가 파급력이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드라마 ’마인‘의 김서형이 커밍아웃했던 장면 하나로 화제가 되기도 하지 않았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었던 ’너에게 가는 길‘을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지역에서도 공동체 상영 형식으로 이 영화를 사람들이랑 함께 보고 퀴어, 앨라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멀티플렉스 체인이 아닌 광주극장에서 한번 마련해보고 싶었다. 여전히 독립 정신을 담고 있는 좋은 곳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광주극장에서 그렇게 상영을 하게 되었고, 당시에 100명이 넘는 분들이 추위가 매서웠던 12월 5일에 모였다. 인프라가 좁고 사람들이 모이기 힘든 지역의 조건 속에서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디아 : 단체를 만들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성소수자 관련 단체를 만드는 거라면 상담만 하는 것도 인권 운동만 하는 것도 아니고 두 가지를 잘 병행할 수 있어야 성소수자 인권을 증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광주극장 <너에게 가는 길>상영회 및 GV


Q.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최근에 프라이빗 퀴어 파티 <지역 퀴어를 퀴어링★>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지역 퀴어들의 네트워킹을 구축하는 자리이기도 해서 뜻깊었을 것 같다. 행사를 기획하고 실제로 주최한 소회나 감흥이 궁금하다.

지민 퀴어링 행사 장소를 찾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로프트 28’이라는 곳으로 정하면서 예전부터 단골이었고 사장님과 아는 사이여서 괜찮겠다 싶기도 했는데, 대놓고 성소수자 친화적인 말은 안 하셔서 내심 걱정하기도,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장님에게 상세하게 이 행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해 드렸다. 사장님이 영어 하시는 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인스타에 영어로 여쭤봤다. 퀴어 프라이드에 관련된 행사를 한다고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자기네 장소에서 꼭 호스트를 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표명해주셨다. ‘나와 우리 크루는 당신들의 단체를 정말 사랑한다’. 라고 인스타 디엠으로 답해주시면서 말이다.

그리고 행사 당일 토크콘서트가 끝나고 막간에 사장님이 자기가 한마디 해도 되냐고 해서 마이크를 쥐여 드렸다. 하시는 말씀이 본인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왔는데 캐나다는 LGBT 커뮤니티의 수도라며 광주에도 성소수자들이 존재함에도 지역 사회가 퀴어한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고 차별하는 문화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이 장소는 퀴어프렌들리한 장소라고 알고 있어 달라며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말을 해주셨다. 

낙원 : 그날 행사하면서 느낀 건데 분명히 있는 퀴어들이나 앨라이들이 흩어져있고, 퀴어문화축제 같은 경우가 아니고서는 그들이 모일만한 대안이 딱히 없었다는 것이지 않나. 물론 서울도 처음에는 그랬을 것이고. 나름 홍보도 하고 주변 지인들이나 단체 여러 사람을 끌어왔는데, 참여자들이 서로 각자의 존재를 마주하게 돼서 너무 즐겁고 반갑고 또 좋다는 말을 했다. 1부 토크콘서트 끝나고 2부에 다 같이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고 이야기를 나누며 좋아해서 행복했다. 심지어 거의 다 초면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응원이 돼준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기운을 받은 것 같아 너무 좋았다.

지민 처음 보는 분들도 와서 놀랐다. 퀴어 커뮤니티가 그렇게 좁다고들 그러는데도.

나디아 : 행사 기획하고 섭외할 당시에 섭외를 맡아서 했었다. 낙원이 힘을 얻었다면 나는 기운이 실은 빠졌다. 사실 섭외를 할 곳이 없었다. 서울이랑 수도권에 성소수자 관련 단체가 몰려 있어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 찾으면 일정이 안 맞았다. 아니면 단체 상황이 어려워서 뭔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정말 찾다 찾다 전북 퀴어를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했던 상담센터를 찾았다. 그곳은 퀴어 대상으로 지역 최초로 개관한 상담센터였다. 그런데 활동을 중단했다. 그래서 조금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재단에서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섭외해서 활동하면 좋겠다.

낙원 : 나도 행사 당일에는 기운을 얻었지만, 전날까지는 정말 지쳤었다. 지역의 퀴어 활동이 활발하기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새삼 확인하고 활동을 시작했어도 활동을 유지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점을 섭외하면서도 실감했다. 그래도 행사 당일에는 분명히 활동 유지, 활동 지속에 대한 의지 같은 것들이 분명히 느껴졌다.

낙원 : 다음날엔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난민 여성 관련 행사가 있었다. 그런데 행사의 다양한 국적의 자원활동가분들께서 파티가 있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갔을 거라고 말씀해주셨었다. 

▲프라이빗 퀴어 파티 <지역 퀴어를 퀴어링★> 행사 좌측 상단에서부터 이드(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호(제주 퀴여움 QUTE), 나비와 국화향기(성소수자 부모모임),지민,나디아,낙원


Q. 서울 및 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소규모 신설 단체의 홍보는 더욱 쉽지 않을 것 같다. 인스타그램이나 카페 등의 SNS나 홍보 전단 등을 활용하고 계시는데, 이에 대해서 고민하는 점이 있다면.

나디아 홍보 방향이 참 어렵다. 오프라인만으로 진행했을 때는 혐오 베이팅 같은 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잘 처리하면서 홍보를 더 잘 할 수 있을까의 고민도 생기고.

지민 : 미국에서 활동하고 왔지만, 미국만큼 홍보를 못 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해가 충분히 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불평불만은 아니나 이 정도일지는 정말 몰랐다. 미국에서 Grass root organization(풀뿌리 단체)여도 멤버 구성, 멤버 소개에도 이름, 사진, 개인 정보도 다 작성을 한다. 아무리 작은 곳이어도, 웹사이트에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곳을 아예 혹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그런 것도 재단 같은 성격을 띠는 수도권에나 존재한다. 그런 정보가 있어야 어느 정도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을 텐데.

나디아 : 그래서 구성원들의 정보를 어디서부터 어디서까지 공개해야 하는지, 사진을 올리지 말지, 내담자의 경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 적도 있다.

지민 미국과 한국의 운동 지형이 너무 다르다. 거기서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개인의 정보를 드러내는 것에 있어서 크게 걱정하는 수준은 아니다. 유명 활동가면 집 주소 독싱 관련 리스크가 있지만, 한국만큼은 아닌 것 같다.

Q. 앞서 홍보 문제를 언급했지만, 지속가능한 단체를 위해서 재정적인 문제는 항상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을 듯하다. 비온뒤무지개재단 등에서 시행하는 단체역량강화 지원 사업 등도 있지만, 관련 인권단체에서 기본적인 지원조차 쉽지 않은 상황일 것 같다. 관련하여 모색하는 활로가 있을지.

나디아 : 처음 단체를 만들 때, 원래는 시에 지원을 받는 단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테면 여가부나 보건복지부나 그런 곳에 지원을 받는 것. 그리고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 목표기도 했다. 꿈이 너무 컸다(웃음). 

낙원, 나디아 : 띵동 같은 경우는 설립된 후 좋은 활동을 안정적으로 펼쳐오다가 최근에 사단법인 등록을 해서 여가부에도 등록됐다고 하지 않았나. 거기는 수도권이기도 하고, 워낙 오래된 활동 역사도 있고, 무엇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니까. 우리는 청소년이 일단 아니고.

낙원 : 광주극장에서도 일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극장의 몇몇 분에게 커밍아웃을 자연스럽게 했지만, 너에게 가는 길 GV를 하는 작업을 하면서 공개적으로 극장에도 커밍아웃을 하게 됐다. 극장 사장님, 이사님까지도 이를 알게 됐다. 사장님이 큐앤아이를 아시고는 “이런 단체가 있었냐. 성소수자 상담을 해고 지원을 해주는 곳이냐. 나도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데 자원활동을 할 수 있냐”는 말을 하셨다. 그리곤 얼마 후에 후원 계좌에 100만원이 찍혀 있었다. 당시에 후원 내역을 확인하고 조금 울었었다. 처음 후원자들도 다 지인들이어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디아가 초기에 그때그때 있는 돈으로 투자를 많이 했다.

Q. 큐앤아이 활동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찼던 일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같은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지민 : 매일 보람찼다. (일동 웃음)

나디아 : 한 내담자가 기억에 남는다. BDSM 관련 상담을 했는데, 아무래도 그분에 대해서 상세한 이야기는 못 하겠지만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셨었다. 여기저기서 상담을 많이 했음에도 다른 곳에서는 억압이나 회유나 구타나 이런 식의 반응이 많았는데 같이 방법을 좀 찾아 나가자는 이야기를 하니 상담에 계속 참여해주셨다. 이런 상담의 사례들, 참여해주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Q. 큐앤아이를 통해서 향후 기획하고 있는 프로젝트나 목표 및 방향이 있는지.

낙원 : 우선 다 함께 지난 행사를 평가하고 난 뒤에 무엇을 할 지 장기적인 방향으로 생각해볼 것이기 때문에 향후 계획 수립이나 방향 설정은 점차 생각해보게 될 것 같다. 큐앤아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거나 연락하고 싶은 게 있다면 SNS 메시지나 메일로 편하게 연락 주시길 부탁드린다. □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님의 강제전역 취소소송의 승소 촉구 인증샷을 찍은 큐앤아이 멤버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고(故) 변희수 하사의 강제전역 취소 소송의 승소 판결을 촉구하며 벌인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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