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 옆을 지키는 카메라가 있다.
카메라에 찍힌 영상은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한 소재로 활용되기도 하고, 법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한 증거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노량진 수산시장 투쟁을 비롯해서 다양한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은석 님을 만나보았다.
[ACT! 128호 인터뷰 2022.01.14]
철거 현장에서 파괴되는 공동체가 보였다
- 미디어 활동가 <은석> 인터뷰
인터뷰 및 정리 : 김서율, 김주현 (ACT! 편집위원회)
- 소개 부탁드린다.
다큐멘터리 작업하는 은석이다. 투쟁현장을 기록하는 활동을 주로 해왔다. 최근에는 노량진 수산시장 투쟁 관련 기록 활동하면서 작업을 병행 중이다. ‘노량진수산시장’ 외 활동으로는 강제집행 위기에 놓인 ‘을지OB베어’와 화성외국인보호소 고문 사건에 대응하는 모임인 ‘외국인보호소 폐지를 위한 물결, International Waters 31’에서 작은 힘이지만 함께 하고 있다. 비자발적 이주와 반생태적 움직임에 저항하는 예술가들의 작은 공동체인 ‘예술행동 한뼘’에서 활동 중이다.
- 영상 기록을 매개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처음 미디어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동네에 친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체류 비자가 없는 미등록 상태었다. 그 중 한 친구가 단속에 걸리게 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영상으로 기록을 시작했다. 화성외국인보호소 잠입 취재도 하고 여러 단체도 찾아다녔다. 강제 추방 이후 본국(방글라데시)까지 찾아가서 기록을 하기도 했다. 사실 단순히 친구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게 영상 기록 활동의 시초가 된 셈이다. 이후 비자발적이고 강제적인 이주, 존재 박탈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이 많아졌다. 그리고 책도 찾아보면서 이주 문제에 관련된 작업도 하게 되었다.
- 학생 운동도 했는지? 우연한 계기였다고는 하지만 이전에도 미디어나 영상, 혹은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전사가 있을 것 같다.
영화는 만화책처럼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외삼촌이 사준 8mm 비디오카메라가 결정적이었다. 테이프 하나로 수십 번 덮어쓰면서 온갖 것들을 찍었다.
대학교 때는 영화 동아리를 했다.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미술 동아리를 찾아갔는데 아무도 없어서 기다리다가 노랫소리에 홀려 음악 동아리 문을 열었다. 그때 민중가요를 접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내가 노래를 잘했거나 미술동아리에 누군가 있었다면 지금 전혀 다른 길을 갔을지도(웃음). 그 뒤에 씨네필들이 모여있는 영화 모임에서 나 홀로 활동을 오래 했다. 당시 영화 동아리 친구들이 운동권 성향이 있었다. 등록금 투쟁도 하고, 영화나 주류미디어에 대한 비평도 했다, 그런 영향을 받았다.
- 대학교 졸업 후 영화 쪽 일을 하려고 했나?
상업영화 현장에는 가기가 싫었다. 작업방식이 비효율적이고 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고서 판단하는 건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 극영화 현장을 2~3곳 정도 찾아가서 일했다. 그런데 해보니 확실히 이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웃음). 제작방식이 신인감독, 신인작가, 스탭, 조단역들을 ‘입봉’이라는 이름으로 갈아넣는 방식이었다. 극영화를 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하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위에서 얘기한) 친구가 출입국관리사무소(현 출입국·외국인청)의 단속에 걸려서 강제추방이 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를 기록하면서 미디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그게 2007-2008년 경이었다. 대학은 일찌감치 그만뒀다.
- 이후 어떤 활동을 했나?
초기에는 그냥 강제 추방당하게 된 친구의 상황을 기록하면서 이 과정을 작업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직접 영화를 만들지 않더라도 당사자가 스스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활동으로서 한 단체와 ‘이주민 독립영화제작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
한국에 이주한 분들을 대상으로 극영화나 다큐 등 영상 작업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모집해서 워크숍을 진행했다. 로빈 쉬엑 연출의 <이상한 나라의 산타>(2013), 섹 알 마문 연출의 <파키>(2013) 등이 당시 워크숍을 통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중도입국 청소년과 작업했던 것도 있다. <굿모닝 로니>(2014). 작게 펀딩도 하고 시나리오를 함께 썼는데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중3 때 만났는데 <굿모닝 로니>는 고2 때 같이 작업했다. 감독은 어릴 때 한국으로 온 경우인데, 고등학교 졸업 후 미등록 체류자로 강제추방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살고 싶고, 영화를 너무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대학입시를 준비해보기로 했다. 입학을 근거로 비자를 받을 계획을 세웠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만약에 비자가 불허되면 이주인권단체들과 같이 싸워보려고 했는데 다행히 대학도 합격하고 비자도 나왔다. 조만간에 학교를 졸업한다고 한다. 얼마 전 함께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며 연락이 왔다.
- 2000년에 초중반까지는 주로 이주민 관련 활동을 해왔는데, 근 몇 년간은 강제철거 농성장에서 주로 지내는 것 같다. 이주민, 빈곤, 강제철거 등 주로 연대하는 곳들에 경향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2015년 단골 가게였던 홍대 ‘삼통치킨’이 강제집행을 당하게 됐고 이때 촬영한 영상을 편집해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매일 틀었다. 집행 현장을 기록하다보니 ‘테이크아웃드로잉’ 등 다른 강제철거 현장으로 자연스레 이어지게 됐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는 거의 몇 개월 상주하면서 다른 예술가들과 협업도 하고 기록도 하고 대안 상영회도 열었다. 그 무렵 ‘옥바라지골목’이 강제철거 됐고 ‘우장창창’, ‘아현포차’, 다음해에는 ‘궁중족발’에서만 열 두 차례의 강제집행이 있었다. 정말 많은 일이 2015~2017년에 벌어졌다. 기록작업은 2018년 장위7구역까지 이어졌다.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방치된 옥탑방에서 두 달 정도 살면서 철거의 경험을 겪었다. 식물과 동물들이 그 과정에서 죽거나 다치거나 사라졌던 기억이 있다. 이웃들이 떠나야 했고 오래된 단골 가게들이 모두 안 좋게 이사를 갔다. 이주민 강제추방, 강제철거, 홈리스 등등 모두 비자발적 이주라는 점에서 동일한 폭력성을 많이 느낀다.
사실 노량진 수산시장에 연대하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2015년도에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이 마무리되고 신시장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는데 혼자 알음알음 찾아가다가 보니 파괴되는 공동체가 보이기 시작하고 했고, 이건 내가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이주민이 스스로 영화를 만들고 말할 수 있게 워크숍을 진행했던 것과 강제철거 현장에 대해 기록하겠다는 것은 접근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일단 철거 현장은 상황 자체가 너무 다급하다. 당장 장사를 하는데 철거를 하고 하루하루 침탈에 대한 걱정과 생계 문제 때문에 당사자인 사장님이 직접 미디어를 통해 자기 이야기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됐다. 그래서 나라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알려야된다는 생각이 컸다. 재판 과정에서 증거 자료로 될만한 것들을 찍어야하는 이유도 있다.
그 뒤로 변화는 있었다. 투쟁이 길어지면서 당사자분들이 필요할 때 직접 기록할 필요성이 생기기도 했다. ‘모두를 위한 1인 미디어’ 같은 제목으로 농성장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 2016년에 빈곤사회연대와 함께 반빈곤영화제를 처음 만들면서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이 기록한 영상을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섹션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 고민이 이어져 2회 영화제에서는 카메라가 단순히 기록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당사자가 스스로의 서사, 그리고 변화의 과정을 담는 작업을 완성해서 틀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노량진수산시장, 청계천을지로, 노점, 홈리스 당사자분들에게 제안을 하고 시작했는데 현장 상황이 어려워 많이 진행되지 못했다. 홈리스 문제를 다룬 <머물 수밖에, 떠날 수밖에>(2020) 같은 다큐멘터리가 그런 고민에서 나온 영상이다.
- 혹시 영상 작업이나 활동에 대한 고민이 있나? 은석 님은 노량진 수산시장 대책위원회 같은 직책도 맡아가며 훨씬 더 현장에 개입하는 활동가로서 포지셔닝하고 있는 것 같은데.
고민은 계속 든다. 노량진 수산시장 작업할 때도 많이 들었다. 현장의 급박한 상황을 짧게 짧게 알리면서도 이외에도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물리적인 시간이 안 된다. 게으른 소리일 수도 있지만 현장에 있으면서도 내 개인 작업을 해가며 현장과 조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정말 안 되더라. 투쟁이 소강기일 때 막 편집을 하다가도 무슨 일이 터지면 나가야 한다.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당사자인 시장 상인들에 대한 미디어교육도 필요하고 등등.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서 영화제 등에서 상영한 작품은 주로 완결된 서사보다는 현장을 알리는 짧은 클립들을 묶은 영상이다. 최근 인천인권영화제와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한 <시장으로 가는 길>(2020)이 대표적이다. 영상을 한다는 것은 촬영하고 편집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업인데 이건 정말 다른 영역이다. 촬영은 하면 할수록 점점 숙련도가 늘어나는데, 편집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현장을 기록한 것을 나만의 질문으로 조합하고 싶은데, 현장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느라 핑계를 대면서 미루고 있다.
밤새며 촬영하는데 춥고, 강제 침탈 과정에서 카메라가 고장난다든지 하는 문제는 어쨌든 물리적으로 해결하면 된다. 내 작업은 미디어를 통한 연대이고, 그래서 나만의 질문을 그만큼 길게 던져보고 싶은데 자꾸 핑계를 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때가 가장 힘들다.
- 향후 활동 계획이 있다면?
위의 질문과 연결되는데, 좀 더 깊게 노량진 수산시장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상인들끼리 서로 막 경쟁하는가 하면, 또 그걸 지키기 위해서 똘똘 뭉친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이면이 있다. 그들 사이에서 어떤 것들이 남고 상실되는지, 그런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다. 영상에 없는 인터뷰와 후기를 담은 기록집도 협업을 통해 만들어볼 생각이다. 장위7구역 철거 투쟁과 관련된 작품도 올해는 꼭 시작하고 싶다.
작업 외에 구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대안상영에 대한 고민을 늘 해왔다. 최근에 독립영화온라인 플랫폼도 활발해지는데, 새로운 플랫폼에서 어떻게 현장과 밀착해서 상영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한다. 미디어를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대안상영을 기획해보고 싶다. 친구들과 함께 올해에는 뭔가 시도해볼 생각이다. 관심 있는 분 연락 달라(웃음).
□
- (은석 님이 정리한) 인터뷰에 등장하는 사건 및 투쟁들
#이주민 강제추방 (강제퇴거)
체류비자가 없는 이주민들을 퇴거시키는 방법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폭력적인 검거를 오랫동안 해왔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주노동자가 임금을 떼이거나 다치거나 죽었다. 법무부가 서류상의 '미등록 신분'을 '불법 체류자'로 호명하고 미디어가 이를 부추긴 면이 크다.
#삼통치킨
홍대에 있는 삼통치킨을 싼 비용으로 내보내기 위해 강제집행 한 사건. 당시 건물주는 해당 건물의 세입자를 모두 내쫓았고 마지막 남은 삼통치킨도 내보낸 뒤 권리금을 가로채려고 했다. 권리금을 임대인이 빼앗을 수 없도록 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에 명도소송이 진행됐기 때문에 법원은 건물주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삼통치킨은 아들이 운영하다가 비싼 권리금과 월세를 받고 제3자에게 넘겨졌다.
#테이크아웃드로잉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 피해 현장. 특히 이곳은 유명 엔터테인먼트사와 연예인이 전문변호사를 고용해 처음부터 내쫓기 위해 달려들었다. 건물주는 가짜 임차인을 만들어 계약서를 썼고 언론 플레이도 적극적으로 했다. 많은 예술가, 학자, 연대인들이 모여 회사 대표와 건물주에게 사과를 받아냈고 6개월 뒤 공간을 떠났다.
#옥바라지 골목
서대문형무소 앞, 옥바라지를 위해 여관들이 모여있던 곳. 개발이 시작되자 관할구청은 옥바라지골목을 역사탐방 코스로 운영하다가 되려 거주민들에게 증거를 대라고 했다. 지게차와 크레인을 동원한 조합은 2015년 5월 17일 마지막 남은 여관을 강제철거 했고 서울시는 도로변에 형식적인 기념관 하나를 남기며 생색을 냈다. 당시 옥바라지골목 보존운동을 했던 활동가와 연대인들은 지금 청계천-을지로 보존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우장창창
신사역 가로수길에 있던 곱창집. 유명 연예인이 건물을 인수하면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고 법의 허점으로 계약갱신마저 거절당했다. 5년간의 분쟁 뒤 지금은 할리스 커피가 들어서 있다.
#아현포차
30년 넘게 아현시장 앞에서 장사를 해오던 포장마차. 새로 입주한 아파트에서 포장마차가 미관을 해치고 집값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민원을 넣었고, 여기에 명품도시를 약속한 구청장과 정치인들의 입김이 더해져 하루아침에 강제철거 됐다. 세금, 벌금 내면서 쓰레기 적치장이었던 곳을 자비로 레미콘 8대를 깔아 조성한 곳. 그때 지역 국회의원과 유명인사들이 찾아와 잔치를 벌였고 그 모습이 TV에도 방영됐다.
#궁중족발
서촌에 자리잡은 족발집. 강남에 십여개의 건물을 소유하며 수입가구점을 운영하던 건물주가 갑자기 보증금과 임대료를 세배로 올리며 나가라고 한 사건. 열 두 차례 최장기 강제집행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임차인 손가락 네개가 부분절단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됐고, 2018년 9월,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권이 5년에서 10년으로 늘었다.
#장위7구역
장위7구역 재개발 구역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집. 당시 가옥주는 수평이동을 요구했지만 조합은 가옥주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며 소문을 내기 시작했고 강제집행으로 일관했다. 많은 연대인들이 막아섰지만 서울시의 무책임한 태도와 조합의 대화 단절로 결국 강제퇴거를 당했다. 이후 모델하우스와 구청 앞에서 오랜시간 농성을 이어가다 지금은 건강문제로 요양중이다.
#노량진수산시장
서울시가 관리하는 대표적인 공영 중앙도매시장. 수협중앙회가 시장을 인수하고 서울시가 직무를 유기한 이래, 구시장 상인들은 빠른 속도로 강제이주 됐고 서울미래유산인 노량진수산시장은 사라지고 만다. 상인들은 좁고 비싼 건물로 이주됐고 구시장은 카지노, 아쿠아리움, 임대사업 등을 위해 허물어졌다. 지금은 개발 인허가 전 세금을 면제받기 위해 축구장과 야구장을 임시로 지어놓은 상태다. 부당하게 쫓겨난 상인들의 싸움이 올해로 7년, 강제철거 후 노숙농성을 이어온지 3년째다.
※ 참고
- 은석 님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injoog
- 은석 님 유투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6Wh4lmt1flQs7TNRu89V6g/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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