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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에 올라타기 - 비옽 (BEOTT)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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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2. 4. 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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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나 영화관처럼 ‘매체’를 과도하게 특권화한 채 『비옽』을 펼치기보다는, 이 역시 ‘영화'를 다루고 있는 하나의 독립지면으로 대해주시길 바란다. 편집장 구형준의 말을 빌리자면 부디 당신이 이 산책에 흔쾌히 동참하길 바라며 말이다."

 

[ACT! 129호 리뷰 2022.04.11]

 

가속에 올라타기

 

이광호(영화평론가)

 

  『비옽 (BEOTT)은 부산영화평론가협회 필진들을 중심으로 기획 및 출판된 OTT 전문 비평지다. 좀처럼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전통적인 형태의 영화관이 그 입지를 잃어가고, 각자가 각자의 화면을 한 손에 품은 채 영화를 만나게 되는 작금의 상황은 전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지구적으로 방구석 1열에서 영상을 보는 것은 일상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이미지의 홍수라는 표현마저 진부해진 시기이니만큼, OTT 서비스에서 제공되는 영화들을 대상으로 여러 필진의 글이 수록된 지면이라는 점에서 지극히 동시대적인지면이라는 생각이 곧잘 들게 된다. 잡지의 구성은 두 개의 챕터로 나뉜다. 혹자의 말로 여전히 문화를 선도하는 K-콘텐츠분야에서 굵직한 획을 그었다고 말할 수 있는 <킹덤>을 중심으로 다섯 명의 필진이 각자의 시선을 적은 1부가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모니터 앞 파수꾼이라는 제목을 달고 개별 필진이 각자 주목한 OTT 서비스 작품에 대해 다루는 2부다.

 

  언뜻 이와 같은 기획은 무용해 보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부터 어떤 관객인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영화를 보는 환경이나 매체와 관련해 크게 강박적이거나 예민한 편이 아니다. 더구나 대체로 영화관과 OTT를 다루는 담론에서 각각의 매체적 특질을 과장하며 대립 구도를 선택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반대로 애초부터 매체는 영화와 관련 없으며 영화를 보는 관객의 상태가 훨씬 중요하다는 식으로 관객의 능력에 의존하는 식의 관점 역시 어딘가 답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여기에 매체라는 개념을 어떤 식으로 정의할 것이며, 보편적인 의미의 영화역시 그 매체에 포함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곁들여지면 상황은 금상첨화로 복잡해진다. 덧붙여 내게는 OTT와 영화관의 문제에 있어 시작점도 다르다. 영화를 보는 상황이 아니라 영화를 보기 전의 상황이 정말이지 판이하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관에서는 절대로 티켓 부스를 서성이지 않지만, OTT에서는 그 안정감 있는 화면 디자인에 푹 빠진 채 무슨 영화를 볼까중얼거리다가 시간을 날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 매거진 『비옽 BEOTT』 창간호

 

  이런 고백을 연료 삼아 더욱 솔직해져야겠다. 나는 어떤 때는 손바닥 한 뼘만한 디스플레이와 조악한 음질로 곧잘 영화를 보면서도, 어떤 때는 마치 극장주의자에 가까울 정도로 백색의 스크린과 철통같은 암실을 고집하는 관객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단히 비일관적이고 분열적인 상태에 놓인 관객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비옽의 편집장 구형준이 서문에 적은 대로 우리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혼란에 빠져 있다”. 여러 필진의 비평을 담은 지면이 이러한 혼란스러움에 확답을 내리기보다는 자신들 역시 혼란을 겪고 있음을 진솔히 고백한다는 점에서, 혹자는 평론가들의 전문성과 강단 부족을 지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선 이와 같은 증상을 앓고 있는 독자인 나로서는 다른 이들의 생각과 말이 궁금해지기도 하고, 한 번 정도는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는 것이다.

 

  사실 그런 탓에 잡지를 읽기 전 ‘OTT 전문지를 표방한 비옽에 대해 내가 기대했던 것은 충족되지 않은 편이다. 다시 말해 이 잡지를 통해 왓챠와 넷플릭스만으로도 허덕이는 나에게 OTT 경험만의 특징과 차별점은 무엇이 있고, 그로 인해 영화 세계에는 어떤 변칙이 가해지는지, 요컨대 내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자 나름의 동아줄이 되어주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보았던 것이다. 물론 이 비평들 안에는 (대체로 글을 마무리하는 대목에서) 필진 각자가 작품이 놓인 환경과 개별 작품 간의 관계성을 지시하는 문장들도 드문드문 새겨져 있지만, 서두에 잡지의 구성을 언급한 대로 비옽OTT라는 서비스 자체에 대한 비평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OTT라는 서비스에서 제공되는 작품에 대한 비평을 수행하는 잡지다. 그리고 이것은 혼란에 빠져 있는필진들의 글이다.

 

▲<킹덤: 아신전> 포스터

 

  다시 말해 비옽에 실린 글은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라는 일종의 절대주의적 태도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시리즈물 <킹덤>을 다루는 1부에서 필진 모두가 각자의 글을 적은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들 모두가 테마를 은근하게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사에 설정된 좀비들의 속도감이 작품 자체에 가하는 문제를 짚어본 심미성의 글, 인물들 간의 거리 차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이 관객의 층위로 넘어옴을 지적하는 김민우의 글, 서사를 단계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난데없이 도약하는 순간에 주목한 구형준의 글, 언뜻 기존 장르의 클리셰가 뚜렷이 드러나보인다는 특징을 중점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한창욱의 글, 과소몰입이라는 키워드를 중점으로 내러티브의 친절함을 톺아보는 윤아랑의 글까지. 요컨대 1부에서 <킹덤>을 다룬 이들의 글은 개별 작품에 대한 글처럼 보이면서도, 미시적인 차원에서 OTT 서비스가 품은 성급함과 뒤틀림의 성격을 무의식적으로 환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시 말해 여기서 개별 작품은 OTT라는 커다란 환경 아래 객체화된 하나의 사례처럼 놓이기보다는, 다른 비평 지면에서 다루어지듯 여전히 한 편의 작품으로 대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비옽의 필진들은 OTT라는 이름의 가속하는 롤러코스터를 바라보고 진단하는 자의 위치에 있기보다는, 그 롤러코스터에 탑승해 직접 체감한 가속의 여파를 스멀스멀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러니 서술의 성격은 다를지라도, 동시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일반에 대해 뾰족한 비판을 가하는 시각이론가 조너선 크레리의 말도 떠오르는 것이다.

 

  “종잡을 수 없이 잇따라 등장하는 소비 제품과 서비스들을 연결해주는 유일하게 일관된 요소는 우리의 시간과 활동이 전자 교환의 범위 내부로 갈수록 단단히 통합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의사결정 시간을 줄일지, 어떻게 숙고와 사색의 쓸데없는 시간을 없앨지를 연구하는 데 매년 수십억 달러가 들어간다. 바로 이것이 현시대 진보의 형식이다시간과 경험의 가차없는 포획과 통제.”

-조너선 크레리, 24/7 잠의 종말, 김성호 옮김

 

  물론 나는 비옽을 읽고 OTT 서비스가 개별 작품에 가져다준 본질적인 특징이나 유별난 변화 같은 것이 무엇인지는 감지하지 못했지만, 외려 비옽OTT 전문지를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작품론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중심은 개별 영화에 있다고 말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OTT와 영화관이 치고받는 지지부진한 싸움에서도 결국 시청자가 보려하는 건 일차적으로 영화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두에 언급한 대로 더 이상 ‘OTT’라는 것이 이 시대에 갑자기 나타난 요물이나 특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비옽을 읽을 미래의 독자들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다. OTT나 영화관처럼 매체를 과도하게 특권화한 채 비옽을 펼치기보다는, 이 역시 영화를 다루고 있는 하나의 독립지면으로 대해주시길 바란다. 편집장 구형준의 말을 빌리자면 부디 당신이 이 산책에 흔쾌히 동참하길 바라며말이다. 

 


글쓴이. 이광호(영화평론가)

2018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비평공모 우수상을 수상했다. 학부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영화에 접근하는 일에 재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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