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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물들인 거짓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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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2. 1. 1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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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 글은 2021년 12월 7일부터 2022년 1월 4일까지 미디액트에서 진행된 강의 ‘한 편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분석해보기’의 수료작입니다.

 

 

<기생충> 분석 : 피로 물들인 거짓의 향연

 

김진형

 

 

영화 기생충은 세 개의 스테이지로 나뉜다. 앞뒤로 인트로와 에필로그가 배치되어 총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트로

기우네 식구는 산동네 다세대 주택의 반 지하에 산다. 영 좋지 않은 주거 환경에서 가족들은 근근이 아르바이트로 먹고 산다. 적은 품삯이라도 마다할 수 없는 형편이다.

 

곱등이, 방역소독과 술취한 소변남은 일상적 습기와 악취를 환기시키는 설정이다. 반 지하 주거 환경을 매우 구체적으로 재현하고, 영화 전반의 모티프가 되는 냄새를 시각화한다. 대책 없이 사는 가장 기택에게 충숙은 쌍욕을 내뱉지만 피자 박스를 온 가족이 접는 상황을 본다면 협력이 이루어지는 관계이다. 이는 합이 맞는 집안 내력을 보여주는 설정인 듯하다. 추측컨대 원심력과 구심력의 긴장 관계를 제어할 수 있는 충숙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회전을 거듭할수록 에너지량이 커지는 투해머 선수였던 충숙은 영화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무게의 중심을 잡는 캐릭터라 생각한다.

 

첫 번째 스테이지 : 믿음의 벨트

기우 가족의 위장 취업 과정이 펼쳐진다.

 

친구 민혁이 수석을 선물하며 기우에게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한다. 기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동생 기정에게, 기정은 영악한 수법으로 윤기사를 몰아내며 아버지 기택을 끌어들인다. 기택은 두 자녀들과 은밀히 공모해 문광을 몰아내며 엄마 충숙을 취업시키는데 성공한다. 박사장의 아내 연교는 자신 주변 사람들로 연결된 관계를 신뢰하고 기우 가족은 이를 십분 활용하는데 그 속임수의 수위는 높아간다.

 

민혁의 방문은 사건의 시작이다. 선물로 가져온 수석은 그의 집에 차고 넘치는 물건으로 흔한 것이지만 기우에게는 ‘상징적’이다. 행운 혹은 길조로 해석될 수 있는 이 사물은 민혁의 제안과 동격이다. 경제적 이익. 그러나 그 사물을 소유한 자의 행위에 따라 불운을 불러올 수 있는 중립적인 상태이다. 그러나 여기엔 특정한 의미가 숨어있다. 작가는 다양한 소품들이 있을 텐데 왜 수석을 선택했을까? 따지고 보면 수석은 자연으로부터 훔쳐온 것 아닌가? 오래전부터 그리 해온 것이라 죄의식의 경계가 사라진 사물이다. 자연이 사람의 선물로 둔갑하고 기복의 상징으로 기우의 집안 한켠에 자리 잡고 (그렇지만 불의 기운이 강한 곳에 자리 잡은) 행운을 불러올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 쓰임새가 바뀌어 후반부에서 기우를 심각하게 타격한다.

 

두 번째 스테이지 : 불우 이웃끼리

문광의 방문으로 인해 가족 회식이 깨지고 뜻밖의 비밀 벙커가 발견된다. 기우 가족과 문광 가족은 박사장 집에 빌붙기 위해 서로 사투를 벌인다.

 

박사장 가족이 캠핑 간 틈을 타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그러나 문광이 갑자기 찾아오고 지하 비밀 공간에서 남편 근세를 발견한다. 빚에 쫓겨 도피한 근세를 챙겨달라는 문광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순간 기우 가족의 정체가 들통 난다. 전세는 역전되어 문광 가족은 기우 가족을 제압한다. 그러나 기습 반격으로 혼전으로 치닫는 중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연교의 전화가 온다. 기우 가족이 주도적으로 사태를 수습하고 박사장 가족에게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든다. 그들이 곯아떨어진 틈을 타 무사히 빠져나오지만 돌아온 반 지하 집은 폭우로 잠겨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이 된다. 이재민 임시대피소에서 쪽잠을 청하지만 마땅한 대책은 없다.

 

갈등이 고조되는 이번 스테이지에서 눈여겨볼만한 점들이 많았다.

 

건축가 남궁현자 선생의 걸작 하우스로 지어진 2층 주택은 알고 보니 지하 비밀 벙커를 마련해둔 것이다. 문광의 말에 따르면 북한 핵공격에 대비한 대피 공간으로서 외국 관객들에게는 로컬 이슈로 비춰질 수 있겠다. 해석에 따라서는 프로이트의 인간 의식 구조와 비유될 수도 있겠다. 다혜와 다송이 거주하며 공부하는 이성의 공간 2층은 Super Ego, 식사와 응접, 섹스가 이루어지는 일상의 1층은 Ego, 눈에 띄지 않거나 접근조차 어려운 지하실 공간은 Id. 특히 근세가 칩거하고 있는 비밀 공간은 영화상에서 대략 지하 3층 정도의 깊이를 갖고 있어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다. 물론 봉 감독의 여러 전작에서 종종 연출되었던 요소들이다. 이러한 공간은 인간에게 친화적이지 못한 불편함, 공포, 어두움, 습기, 무의식의 영역이다.

 

또한 박사장 가족에게는 취미, 휴식, 학습, 게으름과 쾌락이 나른한 무신경으로 펼쳐지는 공간이라면 다른 두 가족들에게는 노동의 현장이자 생존 투쟁의 장소이다. 그래서 문광 가족과 기우 가족이 이 집에서 벌이는 행위들은 목숨을 건 사투로서 동물 같은 매우 기민한 감각으로 진행된다. 비슷한 사정과 형편의 동일 계급이지만 서로의 약점을 파고들며 노노갈등이 적대적 모순으로 치닫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코미디 연기연출로 이 시퀀스를 무겁지 않고 동물 우화처럼 경쾌하게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작가의 탁월함 덕택이다.

 

세 번째 스테이지 : 착하신 분들

다송의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에 느닷없이 유혈 사태가 벌어진다.

 

생일 파티를 위해 연교는 기우 가족을 불러내고 각자 임무를 부여한다. 지우는 비밀 벙커에서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지만 문광을 잃은 근세에게 피습된다. 생일 파티장에 나타난 근세가 기정을 습격하고 충숙과 몸싸움을 벌인다. 차키를 달라고 다급하게 호통 치는 박사장의 역한 표정에 혐오의 감정이 충돌하며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기택이 그를 찌르고 돌연 어디론가 사라진다.

 

내가 기택 가족이 아니라 기우 가족이라 칭하는 이유는 영화 전반을 통해 위장 가족 취업을 처음 시작한 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해결하고자 했던 이가 기우였기 때문이다. 아무런 계획이 없는 기택보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하고자 했기 때문이고 에필로그의 결말부에서 보여지는 아버지 기택의 구출 가능성은 결국 기우의 계획과 행위 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석이 따라오고 자꾸 달라붙는다고 말했던 지우는 쪽잠에서 깨어나 지하실 사태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질 것을 다짐한다. 앞서 물이 차오른 집안에서 기우의 손안으로 떠오르는 수석의 부유 장면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어느 장면처럼 다소 생경하게 보여진다. 무거운 수석을 굳이 가방에 넣어 지하실 문광 가족에게 찾아간 이유는 무얼까? 눈에 띄지않는 곳에서 살해로 끝장을 내고자 했던 그의 의도와는 달리 반격으로 오히려 수석에 의해 크게 상해를 입는다.

 

에필로그

뇌수술 이후 충숙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기우는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아버지를 수소문하던 기우는 우연히 과거 박사장 집 조명으로 타전되는 모르스 부호를 수신한다. 아버지가 그 비밀 벙커에 숨어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된 기우는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한 근본적인 계획을 새로 세운다.

 

기우가 아버지 기택을 구출하기 위해 근본적인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기약하는 장소는 여전히 다름 아닌 산동네 반 지하이다. 마지막 장면은 영화 괴물의 그것과 유사해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열린 결말로서 기우의 계획을 관객들이 기대하게 만든다. 관객은 그 계획의 절반은 알고 있다. 그 주택을 사서 아버지를 구출한다는 것을. 나머지 절반은 질문으로 주어질 수 있다. ‘기우는 어떻게 그 돈을 마련할 것인가?’

여기서 관객을 향한 작가의 질문이 빛난다. 질문에 덧붙여 기우의 삶에 대한 태도가 변화됐음을 알리는 장면이 있다. 세속의 사연을 제법 가지게 수석이 기우에 의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다. 길운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내려놓게 기우. 여러분, 질문이 새롭게 여겨지지 않는가?

 

수석을 내려놓는 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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