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나영이 길고양이들과 관계 맺는 방식, 그들과 같은 높이에서 접근하고, 손길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 필요한 타자가 되는 것. 카메라 뒤에 있는 두 감독은 카메라 앞에 나서지 않는다. 다만 카메라와 권나영이 주고받는 시선은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손길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한 목적에 따른 공존이 아니라, 도시에 함께 살아가는 동등한 타자로서 관계하고 있다는 합목적성이 <고밥주>에서 카메라의 위치를 규정한다."
[ACT! 128호 리뷰 2022.01.14.]
“왜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않나요?”
-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 리뷰
박동수(ACT! 편집위원)
“우리는 구성적으로 본바탕이 반려종이다. 우리는 서로를 살 속에 만들어 넣는다. 서로 너무 다르면서도 그렇기에 소중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지저분한 발달성 감염을 살로 표현한다. 이 사랑은 역사적 일탈이자 자연문화의 유산이다.”(*주1)
- 도나 해러웨이
2021년 11월 11일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이하 <고밥주>)가 정식개봉했다. 같은 주 영화 배급을 위한 후원 페이지와 배급사 목영EnM SNS에 영화에 대한 별점 테러 사건에 대한 공지가 올라왔다.(*주2) 고양이와 캣맘을 혐오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튜브에 올라온 예고편 영상, 네이버 평점란 등에 악의적인 댓글을 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네이버 평점란의 최상단은 여전히 영화와 길고양이, 캣맘에 대한 저주와 악담이 차지하고 있다.(*주3) 길고양이를 다룬 국내 독립 다큐멘터리는 영화제와 극장 개봉 등을 통해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고밥주>를 제외하고서라도, 지난 5년 동안 길고양이를 다룬 국내 다큐멘터리 4편이 개봉했으며, 영화제를 통해 여러 장/단편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주4) 그러나 이 작품들에는 <고밥주>의 것과 같은 악플이 달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작품의 주제적 측면에서 다른 작품들과 <고밥주>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 사이의 공존과 공생이라는 테마를 공유하는 작품들 사이에서도, 특히 <고밥주>가 공격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고밥주>의 주인공은 고양이가 아니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인간 혹은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 환경에 의해 고통을 겪는 고양이를 구조하며, 여건이 되는 한 이들을 임시 보호하기도 하는 캣맘 권나영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몇몇의 고양이가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대신 김희주와 정주희 감독이 권나영과 함께하며 영화에 담긴 29마리의 고양이가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영화는 페이스북의 캣맘 그룹을 통해 자신이 밥을 주고 돌보는 유기묘의 모습을 생중계하는 권나영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으며 신장 질환으로 주 3회 투석을 받아야 하는 권나영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골목을 누비며 고양이들을 만난다.
"고양이 밥 줘서 미안합니다. 저도 얼마 못 산다는 말에 동물도 사람 같이 한번 태어나고 죽는 것 같아서 줍니다. 저도 안 좋은 병에 걸려서 죽기 전에 한번 좋은 일 하려고 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권나영이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장소에 붙여둔 쪽지의 내용이다. <고밥주>에 대한 악플의 대부분은 “고양이를 데려가 키울 여건도 안 되면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은 민폐”라는 식이다. 이러한 악플은 <고밥주>에 앞서 상영된 여러 다큐멘터리의 후기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에 악플을 쏟아붓는 사람들은 장애를 갖고 있으며 생계가 불안정한 중·노년 여성이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위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에 가깝다.
길고양이로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비인간 동물에게 그러하겠지만, 위험한 일이다. 잊을 만하면 보도되는 길고양이 학대범이 곳곳에 도사리고, 육중한 크기의 자동차는 그보다 절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생물에게 위협적인 존재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물과 식량을 구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장애인으로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 또한 다르지 않다. 영화 초반, 병원이 문을 열기 전부터 신장 투석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권나영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는 투석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다른 이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권나영은 코로나 19 발생 이후 이전과 같은 만남이 곤란해졌음을 페이스북 그룹 라이브를 통해 이야기한다. 최근 장애인 단체의 대중교통 이동권 관련 시위를 막기 위해 지하철로 진입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일시적으로 폐쇄한 사건이 벌어졌다.(*주5) 권나영이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면을 보며 이 사건이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가장 처음 배제되는 대상은,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때조차 배제되던 이들이다.
도시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고밥주>는 길고양이와 인간 사이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공존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권나영이 투석을 위해 병원을 찾는 초반부 장면에서, 다른 환자들은 카메라를 든 감독이 누구냐고 묻는다. 여기에 대답하는 것은 두 감독이 아닌 권나영이다. 영화가 진행되고, 시간이 흐른다. 권나영,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 사이로 카메라를 잡고 있는 감독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등장한다. 권나영이 길고양이들과 관계 맺는 방식, 그들과 같은 높이에서 접근하고, 손길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 필요한 타자가 되는 것. 카메라 뒤에 있는 두 감독은 카메라 앞에 나서지 않는다. 다만 카메라와 권나영이 주고받는 시선은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손길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한 목적에 따른 공존이 아니라, 도시에 함께 살아가는 동등한 타자로서 관계하고 있다는 합목적성이 <고밥주>에서 카메라의 위치를 규정한다.
“친밀한 타자를 더 잘 알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별수 없이 겪게 되는 우습고도 비극적인 실수들은, 그 타자가 동물이건 인간이건 또한 무생물이건 간에 내 존경심을 자아낸다.”(*주6)라고 도나 해러웨이는 쓰고 있다. 그의 두 번째 선언문인 「반려종 선언」은 상대방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종들을 ‘반려종’(companion species)이라 부른다. ‘길’고양이는 인간으로 인해 탄생한, 도시라는 조건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길고양이는 인간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종이다. 동시에 도시에 거주하는 인간으로, 수많은 타자가 함께 거주하는 도시에서 권나영은 ‘여성’, ‘중년’, ‘장애인’으로 분류되는 존재다. 그의 존재는 인간이 만들어낸 통계학적, 의학적, 사회적 지표들에 의해 분류되고 정의된다. 차이를 규정하고 종을 분류하는 인간중심적, 자본중심적 통치기술은 비인간 존재를 포괄하는 ‘친밀한 타자’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도시의 길고양이와 함께하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신장 투석을 받는 권나영의 삶은 작위적인 도시공간 속에서 무작위로 함께해야 하는 타자들의 실뜨기 놀이(cat’s craddle)(*주7)다.
<고밥주>는 권나영과 길고양이가 그러했듯 카메라를 통해 권나영이라는 ‘친밀한 타자’를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길고양이에 관한 다른 독립 다큐멘터리도 이러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이 ‘타자’로서 도시에 살아가는 비인간 존재와 거리를 두고 그것을 담아냈다면, <고밥주>는 고양이가 아닌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삶을 주인공으로 삼음으로써 “서로에게 현저히 타자인” 도시의 존재들이 공존하는 형식을 보여준다. 유독 <고밥주>를 타겟으로 삼은 악플이 성행했던 것은, 길고양이 혐오자들이 도시에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했기 때문이 아닐까? 권나영의 삶에 밀착한 <고밥주>의 카메라는 렌즈 앞의 대상과 거리를 벌리고 객관성을 취하는 대신, 권나영과 길고양이들의 ‘실뜨기 놀이’에 개입한다.
정주희 감독은 인터뷰에서 “‘나영 님에게 고양이란 뭘까, 왜 그토록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고양이를 돌보는 걸까?’라는 의문으로 영화를 시작했는데, 점차 질문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주8) 그의 말처럼 영화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대신 공생하는 반려종을 보여준다. “왜?”라는 질문이 발화되는 순간, 그 질문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위를 넘어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자의 존재 자체를 향하게 된다. 때문에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라는 제목은 그 말을 발화하는, 길고양이와 캣맘을 혐오하는 이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왜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않나요?” □
*주
1) 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 역, 책세상, 2019, 117p.
2) 목영EnM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공지
https://www.instagram.com/p/CWZjd54vWvq/?utm_medium=copy_link
3) https://movie.naver.com/movie/bi/mi/point.naver?code=195962 (2021.12.08. 접속)
4)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조은성, 2017),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임진평, 2019), <고양이 집사> (이희섭, 2019), <꿈꾸는 고양이> (지원, 강민현, 2020) 등이 극장에 정식개봉했으며, <고양이의 숲> (강민현, 2017), <고양이들의 아파트> (정재은, 2020) 등 다수의 작품이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었다.
5) 「‘장애인 이동권’ 선전만 해도 불법?…엘리베이터 일시 폐쇄한 혜화역」, 출처: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2147.html#csidx5f9eaf5e3e996a285662ec8475c1c13
6) 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 역, 책세상, 2019, 161p.
7) 인간을 중심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것을 넘어 인간, 비인간, 유기체, 인공물, 기술을 포함하는 관계가 마치 실뜨기 놀이에서처럼 상대방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 낸다는 도나 해러웨이의 용어. 자세한 설명은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최유미, 도서출판b, 2020) 또는 『트러블과 함께하기』(도나 해러웨이, 최유미 역, 마농지, 2021)을 참조.
8) 「외길이 일러준 우정 DMZ Docs 2020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 정주희·김희주」, 출처: http://reversemedia.co.kr/article/411
글쓴이. 박동수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영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계속 보고 듣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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