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랑날랑 혼삿길>에서 가장 이질적이지만 가장 진실된 이 장면은, 사회제도의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삶의 형태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금 역설한다."
[편집자 주] 가상현실, 메타버스의 시대다. 팬데믹은 느리게 다가올 미래를 가속화하였고, 온라인 가상공간에 ‘메타버스’라는 이름을 붙여 현실의 공간과 움직임을 모방하려 한다.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변화 속에서 퀴어의 위치는 더욱 거센 조류에 휘말린다. <들랑날랑 혼삿길>(*주1)에서 팬데믹 상황이 언급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화상회의, 가상배경, 딥페이크 등 팬데믹과 함께 일상화된 기술을 통해 한국 사회의 가족제도 속에서 퀴어의 위치를 조망해보는 작업이 제공하는 시의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127호 리뷰 코너에서 다루게 되었다.
[ACT! 127호 리뷰 2021.11.12.]
가족제도 속에서 퀴어의 위치
- <들랑날랑 혼삿길>(홍민키, 2021)
박동수(ACT! 편집위원)
‘나’는 오픈리 게이다. ‘나’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결혼할 수 없다. ‘나’의 친형은 얼마 전 여자친구와 결혼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가족들을 인터뷰한다. 홍민키 감독이 자신의 상황을 녹여낸 <들랑날랑 혼삿길>은 감독 자신이 다른 이들과 나눈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형과 형수를 비롯해 어머니와 아버지, 사장어른에게 각각 게이인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질문하고, 결혼정보회사에 상담전화를 걸어 “동생이 게이인데 매칭에 문제가 될까요?”라며 상담원과 대화를 나눈다. 또한 친구와 영상통화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게이로 사는 것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남자친구인 미국인 맥스에게 결혼을 물어본다.
이 대화들은 크게 세 개의 층위로 구분되어 등장한다. 가족들의 인터뷰는 마치 줌(ZOOM)을 통해 진행된 것처럼 촬영되었다. 인물은 정면에서 촬영되었고, 각자의 집으로 보이는 배경은 대화에 맞춰 조금씩 변화하는 가상배경이다. 친구와의 대화는 버스, 지하철, 길거리 등 공공의 공간에서 촬영되었다. 다만 배경이 되는 공간과 스마트폰을 들고 화상통화를 하는 모습은 합성된 화면이며, 스마트폰 속 감독과 친구의 얼굴은 딥페이크를 통해 세일러문과 보라돌이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그리고 상담원과의 통화 및 맥스와의 대화는 온전히 현실의 공간을 바탕으로 한다. 맥스와 감독이 동거하는 집에서 핸드헬드로 촬영된, 홈비디오와 유사한 형태의 화면이 등장한다.
세 층위의 화면은 독특한 감흥을 제공한다. 가족과의 대화는 가부장제적이며 퀴어배제적으로 구성된 한국 사회의 가족제도 속에서 게이인 아들, 형제, 남편의 동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가족이라는 관계성이 제공하는 친밀함과 유대감을 바탕으로 한 솔직한 대화들로 구성된다. 이 대화 속에는 게이를 비롯한 퀴어들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편견의 답습과 함께 생각지도 못한 급진적인 이해가 공존한다. 화상회의를 연상시키는 화면구도와 3D로 제작된 가상배경은 종종 감독과 가족들의 대화가 결혼을 목표로 하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러한 구성은 동성 간의 결혼이 법적으로 금지된 대한민국의 현재를 풍자적으로 드러낸다. 동시에 퀴어 당사자인 홍민키 감독과 가족과의 대화가, 마치 게임 속의 다이얼로그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된 것임을 보여준다. 가령 감독의 아버지는 커밍아웃을 듣고 당황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남자친구가 미국인이라 안도했다는 사실을 함께 전달한다. 대한민국에서는 할 수 없지만 미국에서는 가능한 어떤 것, 과거의 인식과는 차이를 보이는 지금의 사람들. 전통적인 결혼관을 여전히 가지고 있음을 말함과 동시에 아들이 미국인과 연애하기에 외국에서라도 결혼할 수 있겠다며 안심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자신이 경험한 사회의 구조들을 내재화한 결과물이다. 그 속에서 감독의 가족들이 보여주는 포용력은 전통적 가족관과 퀴어 가족구성원 존재가 충돌하며 발생한 모순적이며 이중화된 태도에 가깝다.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감독은 그러한 포용력이 자신과 가족의 삶에 존재하는 독특하며 강력한 구성물임을 알고 있으며,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오랜 시간 축적된 구조를 깨고 나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은, 남자친구와의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네트워크가 불안정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흔들리는 어머니와의 대화 화면을 통해 드러난다.
두 번째 층위인 감독과 친구의 대화는 가족들과의 대화가 취한 방식과 반대 위치에 놓여 있다. 사적인 공간을 모방한 가상배경이 아닌 열린 공공의 공간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감독과 그의 친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바깥에서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다. 혹은 세일러문과 보라돌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을 표현해내고 있다. 두 사람의 대화 주제는 여러 ‘미드’를 비롯한 대중문화 영역에서 어렵지 않게 퀴어 캐릭터를 접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다. 다시 말해 두 사람의 대화와 공공영역을 배경으로 합성된 영상통화, 그리고 3D 캐릭터 이미지로 가려진 두 사람의 얼굴은, 퀴어가 어디에나 존재하며 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존재가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을 직접 드러내는 것이 험난함을 보여준다.
광화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러 간다던 감독이 도착한 곳은 원래 참여하려던 집회가 아니라 동성애에 반대하는 태극기 부대의 집회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스마트폰 화면에는 에어드롭(Airdrop)을 통해 “남자 며느리 NO!! 여자 사위 NO!!”, “동성애 죄악 문재인 OUT 심판 확정!” 같은 메시지들이 날아 들어온다. 스마트폰은 현실과 분리되어 안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매체임과 동시에, 모두에게 접속 가능한 열린 공간으로 향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현실을 과장되게 재현하기도 한다. 때문에 스마트폰 화면은 퀴어에 대한 공격과 반격으로서의 전복이 동시에 일어나는, 그리고 그것을 항상 손에 쥐고 눈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괴리감이 체현되는 장소다. 감독은 필터 효과를 활용해 태극기 부대 집회 현수막에 그려진 달 문양을 세일러문의 달로 변화시킨다. 스마트폰 기술은 퀴어혐오적인 디지털 삐라를 살포함과 동시에 그것을 다른 것으로 뒤바꿀 수 있는 격돌의 장소다.
마지막 층위는 현실 그 자체다. 홈비디오처럼 촬영된 감독과 남자친구 맥스가 동거하는 집에는 3D 애니메이션이나 딥페이크 등이 사용되지 않는다. 다소 경직된 구도를 보여준 다른 두 층위와 다르게, 자신의 집과 맥스를 촬영하는 핸드헬드 카메라의 시선에는 애정이 배어 있다. 감독이 결혼정보회사 상담원과 상담을 나누는 음성은 이 공간을 바탕으로 등장한다. 감독은 자신의 남동생이 게이인 것으로 가장해 그것이 결혼에 문제가 될 것인지 물어본다. 카메라는 턴테이블에 LP를 갈아 끼우는 맥스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맥스에겐 들리지 않을 통화 속 상담원은 “남동생이 게이인 것은 가족 중 장애인이 있는 것과 비슷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맥스를 바라보는 카메라는 상담원의 말에 개의치 않고 남자친구와 함께 자신의 장소에 머물겠다는 다짐처럼 다가온다. <들랑날랑 혼삿길>에서 가장 이질적이지만 가장 진실된 이 장면은, 사회제도의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삶의 형태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금 역설한다. □
* 주
1) <들랑날랑 혼삿길>은 2021년 1월 전시공간 의외의조합에서 진행된 그룹전 <HOME SWEET HOME>에서 처음 공개되어 디아스포라 영화제, 인디포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춘천SF영화제, 그룹전 <카밀6>(합정지구) 등에서 상영/전시되었다.
글쓴이. 박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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