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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향한 그리움 -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파트리시오 구스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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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1. 8. 2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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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ACT! 편집위원회에서는 다큐멘터리 창작자가 쓰는 다큐 리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첫 시작은 <너에게 가는 길>을 연출한 변규리 감독이 작성한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리뷰입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다큐멘터리를 공부하기 시작할 때였다. 영화를 보고 놀랍다고 생각했다. 칠레의 아픈 조각을 어떻게 이리도 아름다운 화법으로 그려낼 수 있었을까."

 

 

[ACT! 126호 리뷰 2021.08.31.]

 

빛을 향한 그리움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파트리시오 구스만, 2010)

 

변규리

 

 

  칠레 북부에는 아타카마라는 사막이 있다. 사막의 건조하고 투명한 공기는 천체관측을 하기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그 아타카마 사막에 세계 각지의 나라가 힘을 모아 세계 최대 천체관측소를 세웠다. 그리고 그 칠레에서 태어난 감독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공상과학소설을 좋아했고 별의 이름 하나하나를 외웠으며 천체도를 간직했다는 감독은 아타카마 사막의 아름다운 천체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평온함을 유지해 온 감독의 나라 칠레에 균열이 생긴다. 민주주의의 물결이 일었고, 감독은 그 고결한 모험에 일원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얼마 뒤 쿠데타가 일어나 민주주의의 꿈과 과학을 쓸어가 버렸다. 외국 동료들의 지원으로 칠레의 천문학자들은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감독은 천문학을 사랑했고, 세계최대의 천체관측소가 있는 아타카마 사막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공간에서 감독은 천문학자, 고고학자, 마사지사 그리고 칠레의 70년대 독재 정부에 희생된 자들의 유가족을 만난다. 과거를 기억하고 발굴하는 얼굴들. 그들의 이야기가 아타카마 사막에 펼쳐져 있다.

 

▲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파트리시오 구스만, 2010)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영화가 시작되고 10분 동안은 감독이 정말 천문학을 너무 사랑해서 만든 영화인가 싶었다. (물론 천문학에 대한 그의 열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영화를 보는 동안 평소에는 만나기 어려운 아름다운 천체를 감상할 수 있고, 천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아타카마 사막의 천체관측소에 가보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별의 세계를 스크린 안에 담아낸다. 그런데 나는 영화를 보면서 점점 놀랐다. 천문학에 대한 감독의 열렬한 사랑이 다른 이야기와 만나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타카마 사막에서 관측된 천체의 의미를 칠레 독재 정부에 희생된 자들의 유해를 직접 발굴 하고 있는 유가족의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와 연결한다.

  영화가 반쯤 지나면, 드넓고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에서 한 자루의 삽을 들고 다니며 칠레의 독재 정부에 희생된 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2002년을 기준으로) 28년 동안 맨손으로 유해 발굴 작업을 해온 이 여성들은 그들의 유가족이다. 그중에는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한 유가족도 있고, 아주 작은 뼛조각만을 발견한 유가족도, 아직 아무것도 찾지 못한 유가족도 있다.

 

  천문학자의 과거를 기억하고 연구하는 작업은 환영받고 존경받지만, 유가족들이 희생자의 과거를 기억하고 발굴하는 작업의 의미는 삽 한자루에 쥐어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과거를 연구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 유가족들의 (2002년을 기준으로) 28년 동안 이어온 이 작업에 어떤 무게의 그리움이 있는지, 상상하기 어려운 어떤 간절함이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유가족은 말한다. 뼈가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그리고 희생자의 턱뼈가 발견되었다고 하면, 필요없다고 말할 거라고. 내가 바라는 건 전부라고. 온전히 끌고 갔는데 부분은 필요 없다고 말이다.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그리움을 지겹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며 이 여성들의 기억과 역사를 존중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칠레 독재 정부에 희생된 자들의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 될 거라고 느꼈다.

 

▲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파트리시오 구스만, 2010)

 

 

  이 글을 부탁받았을 때 단지 다큐 창작자가 쓰는 다큐 리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선정한 영화에 관한 추억이나 이 영화를 선정하게 된 이유를 함께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영화를 선정한 이유는 나에게 조금 각별했기 때문인데, 이 영화는 나에게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대해 새로운 상상력을 처음으로 심어준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다큐멘터리를 공부하기 시작할 때였다. 영화를 보고 놀랍다고 생각했다. 감독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길래, 칠레의 아픈 조각을 어떻게 이리도 아름다운 화법으로 그려낼 수 있었을까 하고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한 번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어느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혼자 극장에 찾아가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이 영화를 만들어 준 감독에게도, 출연자들에게도, 영화제에도 상영해 준 극장에도 고마웠다.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2010)를 처음 봤을 때와 지금의 극장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요즘 부쩍 느낀다. 나도 OTT 플랫폼으로 영화를 접하는 게 극장에 가는 것보다 편안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혼자 소파에 누워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는 것과는 다른 감각을 선사해준다.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기, 생판 모르는 남들과 영화를 통해 같이 웃고 울고 놀라는 경험, 홀로 온전히 감정에 빠져드는 걸 체험하는 감각 등. 나에겐 여전히 극장은 그립고, 애틋하다. 그리고 극장에서 상영된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2010)는 그 모든 것을 느끼게 해준 영화다.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을 바라보는 일이 무척 설렜던 기억이 난다.

 


글쓴이. 변규리

- 다큐멘터리 <거리에서 온 편지>(2015), <플레이온>(2017), <너에게 가는 길>(2021)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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