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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요요는 돈다 - <요요현상>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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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21. 4. 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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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요요현상이란 박수 받았던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도는 현상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ACT! 124호 리뷰 2021.04.09]

 

그래도 요요는 돈다.

- 영화 <요요 현상>

 

김철홍(영화평론가)

 

  박수칠 때 떠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표현이 우리 사회에 어떤 격언으로써 활약하고 있는 것 자체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물론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애초에 박수 받는 거다. 그게 정말 어렵기에 사람들은 쉽게 떠나지 못한다. 박수 받기 전의 나와 박수 받은 후의 나 사이에서 갈등한다. 조금 더 박수 받아도 되는 거 아닐까. 지금 떠나면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다른 박수를 받을 수 있을까. 아니 차라리 처음부터 박수를 받지 않았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그 선택의 순간에서 영화 <요요현상> (이 시작된다. 여기 떠날까 말까, 하고 있는 요요 챔피언들이 있다. 윤종기, 곽동건, 이동훈, 문형웅, 이대열. 왕년에 여기저기에서 박수 깨나 받아본 경험이 있는 이 일당은 마치 케이퍼무비처럼 마지막 박수한탕을 위해 영국 에든버러로 떠난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거리예술공연 축제에서 시원하게 박수 한 번 받고, 이 애증의 요요를 내려놓을 작정이다. 이를테면 떠나기 위해 떠나는 이별여행인 것이다. 이들이 이제 요요를 그만두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지 않는 요요로는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인정하는 진짜기술을 배우거나,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별여행 같은 게 말이 되냐는 사람들의 의심처럼, 공연을 마친 그들의 요요에 대한 사랑이 역으로 불타오름에 따라 문제가 발생한다. 성공적인 공연을 끝낸 그들은 당시의 짜릿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음으로 털 축제를 찾아보는데, 희망으로 가득 찬 이 장면에선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진다. 다시 한 번 케이퍼무비를 가져와 이야기를 해보면, 마지막이라는 약속을 어긴 자들의 끝은 항상 좋지 않게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 <요요현상>❘ 고두현 ❘ 2019

 

  <요요현상>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바로 이 불안감이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끝내 현실이 된다. 말하자면 <요요현상>은 불안감을 안은 채 예정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이다. 이건 스포일러가 아니다. 영화의 촬영기간인 2011년부터 2016년까지 7년의 기간 동안, 요요가 요요 챔피언들에게 박수 이상의 것을 가져다줬던 시절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단언컨대 요요는 90년대 후반 요요붐이 일었던 순간부터 그랬던 적이 없었다. 이러한 현실은 요요현상 멤버들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영화 초반, 그들은 자신들이 한창 챔피언으로 이름을 날렸던 시절을 회고하는데, 요요는 챔피언이었던 당시에도 늘 올해까지만하는 것 또는 취미였으며, 그 후로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할 때도 요요는 마이너스요소였고, “이거(요요) 하느라아직까지 취업하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는 말을 한다. 따라서 이미 제목에 요요가 들어가는 순간, 영화의 종착지는 상당 부분 이미 정해진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에든버러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멤버들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부터 분열한다. 그 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다. 카메라는 먼저 동건의 집을 찾아가는데, 동건이 문을 여는 순간, 아직 입을 열기도 전에, 그러니까 미처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영화는 자막으로 동건의 이름과 그 아래에 대학원생이라는 글자를 보여준다. 이 자막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요요와 전혀 상관없는 대학원생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나온 동건의 이름이다. 영화의 인트로에서 이미 동건을 비롯한 멤버들의 이름과 요요 관련 이력이 자막으로 제시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같은 인물의 이름을 두 번씩이나 소개하는 것은 결코 흔하지 않다. 마치 그때의 동건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 멤버들과 구분 지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동훈은 직장인’, 종기는 요요 판매업’, 대열과 현웅은 공연예술인이라는 자막으로 ()소개 된다. 자막에서 알 수 있듯, 멤버들은 직업으로 구분되어지고, 갈라진다. 그렇게 누군가는 요요로 한 번 먹고 살아보는 게목표라는 말을 하지만 누군가는 한 번이라도 요요로 먹고 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요요현상이라는 요요를 멈추게 하는 건, 그 무엇도 아닌 현실인 것이다.

 

▲ <요요현상>❘ 고두현 ❘ 2019

 

  영화는 하나의 과학 법칙 같은 현실에 맞서 끝까지 요요를 돌려 보려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한 번, 그러나 결말은 예정되어 있다. 마치 언젠간 돌아와야 하는 요요처럼 끝이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이 요요가 끝까지 팽팽하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가 그 정해진 종착지에 도착하는 것을 계속해서 지연하려는 에너지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201610요요현상이라는 공연팀은 해체되지만, 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만의 요요를 이어간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직장인동훈이다. 동훈은 팀이 해체된 이후, 다시 대회에 나가 사람들의 환호를 받고 2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다.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때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동훈에게,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유일하게 픽션의 성격을 띠는 장면을 선사한다. 동훈은 다음날 출근할 때 입을 셔츠를 다림질하고 잠에 들고, 카메라는 그런 동훈을 까닭 없이 지켜본다. 그런데 이때 불현듯 동훈이 요요를 하고 있는 장면이 마치 꿈처럼 삽입된다. 동훈의 몸짓은 슬로우모션으로 구현되고, 멀리서 관중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윽고 알람이 울리자 잠에서 깬 동훈은 출근을 준비한다. 이때 동훈의 꿈처럼 연출된 이 기묘한 장면은 영화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떠올리게도 한다. 과연 동훈은 자신의 꿈 장면을 찍을 때, 이것이 꿈으로 표현될 장면인지를 알고 있었을까. 이것은 연기였을까 아니면 일상의 한 장면이 꿈으로써 발현된 기적 같은 장면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간에 결국 꿈을 이룬 동훈에게 이 장면은 선물로써 다가왔을 것이다.

 

▲ <요요현상>❘ 고두현 ❘ 2019

 

  다시 요요를 손에 든 동훈의 모습을 보며, 돌아왔구나, 라는 말을 섣불리 하기에는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다. 한동안 요요를 놓았었지만, 다시 돌아온 거니까 이것을 진정한 요요현상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렇다면 무엇이 동훈의 before(비포)이고, 무엇이 after(에프터)일까. 두 번 나온 동훈의 자막 중 어느 자막이 진짜일까. 어떤 측면에서 <요요현상>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beforeafter라고 했을 때, 그 기준점은 어디일까. 박수받기 전과 후? 그렇다면 영원히 박수 받지 못한 사람은 실패자인가? 취미로서의 요요와 밥벌이로서의 요요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취미란 요요 같아서 아무리 발악해 봐도 결국은 마침내 멈추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애초에 요요현상이란 박수 받았던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도는 현상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는 마지막에 그럼에도 끝까지 멈추지 않는 요요를 보여주며 끝이 난다. 동훈이 오랫동안의 꿈을 이룬 그 대회엔 수많은 어린 요요 선수들이 있다. 영화는 그중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는 내년에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대학교를 졸업해도 계속해서 요요를 할 거라는 말을 한다. 말을 하는 동안 한시도 쉬지 않으며 요요를 돌리는 아이를 보며, 누군가는 또 하나의 요요현상이 나타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던 말던 아이는 계속 요요를 돌린다. 지금은 픽션이 가미된 이야기로 밝혀졌지만, 모두가 돌지 않는다고 했을 때 혼자서 꿋꿋이 돈다고 말했던 역사 속 그 인물처럼, 그래도 요요는 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때 여기엔 이 아이의 이름, 경력 어떤 것도 자막화되지 않은 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우리도 그곳을 비워놓기로 하자.


글쓴이. 김철홍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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