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 전쟁>은 한쪽 눈을 애써 감고 있다. 마지막 장면: 성전(聖殿) 같은 계단을 지나, 안개 너머 흐릿한 페페의 실루엣이 보인다. 똑바로 보기 위해서는, 두 눈을 모두 뜨는 수밖에 없다."
[ACT! 126호 리뷰 2021.08.31.]
페페는 우리의 것
-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아서 존스, 2020)
금동현
도널드 트럼프(라는 상징) 당선을 소실점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초정상화>(아담 커티스, 2016)는 1975년 뉴욕에서 시작한다. 아담 커티스는 1975년 뉴욕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정치가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늙은 정치인들은 위기가 협상과 타협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와 달리 은행가들은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협상할 수 없는 것, 바로 시장(市場) 논리의 대리자였습니다,” 1975년 뉴욕 재정 감독관으로 활동한 펠릭스 로하틴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민주당원 펠릭스 로하틴은 뉴욕시 파산이 “자유주의와 민주당의 지적 파산의 실례”로 이용되지 않기를, 곧 미국이 덜 잔혹하고 더 민주적인 국가가 되기 위해서 뉴욕의 파산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주1) 그런데 뉴욕 파산을 막고 투자 업계로 돌아온 펠릭스 로하틴은 시장 논리가 투자 업계를 장악했음을, 소규모, 가족적이었던 투자 업계가 모두 사라졌음을 발견한다. 운용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긴축(austerity)을 통해 사회 문화적 규범에 시장 논리가 전면화됐던 것일까?
나는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아서 존스, 2020)이 제공하는 페페 이야기에서 앞의 일화를 떠올렸다. 매트 퓨리는 그의 만화 《보이즈 클럽》의 등장인물 페페가 대안 우파의 상징으로 이용되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이미 밈이 되어버린 페페는 원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케키스탄(Kekistan, 페페에서 유래한 가상 국가)의 티셔츠를 입고, 하켄크로이츠 문신을 새긴다. 매트 퓨리가 만화를 통해 페페를 죽이자, 페페는 4chan 유저를 빌려 관을 열고 윙크를 한다. 큰 결과-도널드 트럼프로 우선달성 되었던-를 예비하는 변화가 일어난 걸까? <밈 전쟁>은 이와 같은 과정을 매트 퓨리를 중심으로, 범생이처럼 정리한 영화다.
그것이 문제다. 범생이는 일탈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범생이는 일탈자를 두 가지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첫째 대안 우파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걸기. (<밈 전쟁>의 도입부는 실재 개구리와 매트 퓨리의 경험-사촌 데이비드의 기억, 파트너 아이야나의 몸-이 결합하여 페페가 탄생했다는, 지적 재산권에 신뢰를 주는 구성으로 이뤄져있다.) 둘째, 홍콩 민주화 운동이라는 올바른correct 사용 방식을 일러주기. 그러나 ⑴ 동시대 일탈자 중 다수는 국가를 낡은 미디어로 얕잡아 보거나, 법적 대응의 가능성을 무시한다. 우리는 지금 바로 이베이를 통해 ‘케키스탄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페페 티셔츠’를 살 수 있다. 그리고 (범생이는 믿지 못하는 것 같지만!) 일탈자들 또한 ⑵ 자신의 정치적 진정성을 믿는다. <밈 전쟁>의 근본적인 무력함은 일탈자의 정치성이 전혀 없다고 믿는 데서 기인한다. <밈 전쟁>은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푸티지를 직접 사용하지만, 일탈자의 정치적 행동은 4chan의 아이보리색/파란색 그라데이션 배경, 트위터•유튜브의 레이아웃과 함께 사용하며, 인용 사실을 과시적으로 드러낸다. 일탈자의 정치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우리는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모든 현실을 현실로 믿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마크 에임스는 미국에서 벌어진 직장·학교 테러에 대해 이렇게 썼다. “때로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정상이 아닌-사람만이 객관적으로 끔찍한 부당함에 맞서 들고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조건을, 그 조건이 아무리 비참할지라도, 받아들일 방법을 찾는다.”(*주2) 변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환경에 대한 반응은 순전히 미친 것-“분노가 아니라 악”으로 비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밈 전쟁>에 사용된 <임금노예(wagecuk)가 되어야하는 니트의 반응>이라는 영상 속, 직장을 구하라는 말에 바로 울음을 터뜨리는 여성을 조롱하며 웃는 청중의 웃음소리를 다시 들어보자. 임금노예: 인셀 위키에 따르면 경제적 여건 개선이나 자아의 실현을 꿈꿀 수 없는 막장(dead-end) 직업. 일탈자는 자본과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직업을 단호히 거절한다. 대안 우파의 이데올로그 스티브 배넌은 <아메리칸 다르마>(에롤 모리스, 2018)에서 이렇게 말한다. “완전한 파괴 이전에는, 우리 국가를 지배하는 영속적 지배 계층은 지금 이대로 있을 것”이므로, “시스템의 완전한 폐기, 대낫이 풀을 베어버리듯 모든 것을 잘라버리는 혁명”이 이뤄져야 한다. 일탈자, 대안 우파는 어쩌면 가장 급진적인(radical) 변혁의 예비 자원일지도 모른다.
기왕 얼치기 사회학자 노릇을 한 김에 조금 덧붙이자면. 남재일은 20대 남성의 언어 사용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마치 자신들은 여성혐오와 관련이 없다는 듯 침묵하는 기성세대의 위선을 조롱하는 자멸적인 진정성의 현시(강조-인용자)가 포함돼있다. (…) 어쨌거나 젊은 남성들의 여성혐오는 자신들이 처한 정치적 현실의 원인을 독해하지 못한 채 막연한 억울함을 엉뚱한 대상에게 표출하는 실패한 정치적 요구의 성격도 있다는 것이다.”(*주3) 20대 남성의 정치적 상상력이 인셀 만큼 급진적인가는 따져봐야겠지만(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남재일이 지적한 “자멸적인 진정성의 현시”를 모조리 없는 체 할 수는 없다. 환상, 염결한 공론장이라는 환상을 걷어내고 (실패한) 정치적 요구를 주체화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나는 더 정직하게 보인다.
욕지기가 치솟고 머리가 지끈거려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들이 차단한 언어(씹선비/진지충)를 회피할 수 있는 전략을 짜는 수밖에 없다고, 커뮤니티와 전쟁을 벌이기보다 커뮤니티 내부에서 언어를 변용하는 것만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나는 다짐하듯 써보고 싶다. <밈 전쟁>은 한쪽 눈을 애써 감고 있다. 마지막 장면: 성전(聖殿) 같은 계단을 지나, 안개 너머 흐릿한 페페의 실루엣이 보인다. 똑바로 보기 위해서는, 두 눈을 모두 뜨는 수밖에 없다. □
* 주
1) 펠릭스 로하틴, 이민주 역, 『월가의 전쟁』, 토네이도, 2011, 168쪽.
2) 마크 에임스, 박광호 역,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 후마니타스, 2002, 115쪽.
3) 남재일, 「한국 공론장의 분열과 틈새」, 『문학과 사회 하이픈』 2020년 겨울호, 2020, 17쪽.
글쓴이. 금동현
94년생. 대구 사람. 영화를 중심으로, 논픽션을 쓰고 싶다.
가족제도 속에서 퀴어의 위치 - <들랑날랑 혼삿길>(홍민키, 2021) (0) | 2021.11.09 |
---|---|
실존이라는 정의 - <갈매기> (김미조, 2021) (0) | 2021.08.27 |
빛을 향한 그리움 -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파트리시오 구스만, 2010) (0) | 2021.08.27 |
한국 교회에 대한 고발, 한국 교회를 위한 발버둥 - 온라인 전시회 #ChurchToo #있다 #잇다 리뷰 (0) | 2021.06.14 |
그래도 요요는 돈다 - <요요현상> 리뷰 (0) | 2021.04.09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