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열차 강도>에서 교차 편집의 순간으로 지목되는 장면은 교환원이 깨어나 댄스홀의 민병대에게 강도 사건을 알리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교차 편집이 되려면 교환원과 강도단 간의 교차가 적어도 한 번은 더 일어나야 합니다. 즉 일반론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대열차 강도>에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보다 한결 더 다듬어지고 진전된 교차 편집은-어쩌면 교차 편집으로 볼 수 있는 것 자체가-없는 것입니다."
[ACT! 128호 우리 곁의 영화 - 영화사 입문 2022.01.14]
조민석(<The Secret Principle of Things>, <춤>)
일반적으로 고전적 편집 또는 연속 편집의 초기 발전을 서술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가 편집을 발견한다. 에드윈 S. 포터Edwin S. Porter는 편집을 한 단계 발전시키고, 데이비드 W. 그리피스David Wark Griffith에 의해 고전적 편집의 체계가 자리잡힌다. 이때 멜리에스의 작품으로는 <달세계 여행(Le Voyage dans la Lune)>이, 포터의 작품으로는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Life of an American Fireman)>과 <대열차 강도(The Great Train Robbery)>가, 그리피스의 작품으로는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과 <인톨러런스(Intolerance)>가 거론됩니다. 이러한 작품들로부터 편집 체계의 진전을 확인할 수 있으며 멜리에스, 포터, 그리피스, 이 세 명의 선구자-혹은 ‘작가’로서의 감독-에 의해 편집 체계가 크게 발전되었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 세 사람 중 고전적 편집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피스뿐입니다.
에드윈 S. 포터
오늘은 에드윈 S. 포터를 거론할 때 언급되는 두 작품,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과 <대열차 강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일반적인 논의에서는 이 두 작품으로부터 서사체 영화와 교차 편집의 시도 및 진전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합니다.
먼저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1903)을 보겠습니다.
깜빡 잠이 든 소방수의 꿈에 엄마와 아기가 보입니다. 잠에서 깬 그가 소방 경보를 누르자 취침 중이던 소방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소방차를 타고 출동합니다. 소방차들은 한참을 달려서야 불이 난 집에 도착합니다. 집 안에는 소방수의 꿈에 나타났던 아기 엄마가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갑작스러운 화재에 기겁하며 쓰러집니다. 다행히 소방수들이 집 안으로 진입해 엄마와 아기를 구출하고 화재를 진압합니다.
그런데 마무리된 줄 알았던 이 상황이 다시 펼쳐집니다. 이번에는 그 모습이 건물 밖의 시점에서 보입니다. 같은 상황, 같은 시간의 장면이 병렬 배치된 것입니다. 이러한 구성은 교차 편집의 맹아적 단계로 이야기되곤 합니다.
<대열차 강도>는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에서 구사한 체계가 한결 다듬어진 작품으로 설명됩니다.
철도 전신소를 습격한 강도들이 교환원에게 가짜 서신을 전달하게 한 뒤 그를 기절시키고 포박합니다. 멈춰선 열차에 올라탄 강도들은 우체부를 죽이고, 우편함을 폭파하고, 전신환을 훔칩니다. 격투 끝에 기관사 한 사람을 쓰러뜨려 열차를 세우고 남은 기관사 한 사람을 위협해 기관차를 떼어놓고는 승객들을 불러 세워 이들의 금품까지 갈취합니다. 분리시켜둔 기관차를 타고 도주하는 듯하더니 얼마간 가다가 기차를 버리고 가파른 숲으로 내려갑니다. 개울 너머에는 강도들이 미리 준비해둔 말이 있습니다. 이때 의식이 든 전신소의 교환원이 어딘가에 전신을 보내자 얼마 후 한 소녀가 나타나 그를 일으킵니다. 교환원은 댄스홀에 모여있는 민병대에 강도 사건을 알립니다. 곧바로 강도단과 민병대 간의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강도단이 어딘가에 돈을 묻고 있는데 이들의 뒤로 민병대가 다가옵니다. 잠시 총격전이 벌어지지만 강도단은 결국 모두 사살됩니다. 마지막에는 강도단 두목이 관객을 향해 총을 발사합니다. 이 마지막 장면이 <대열차 강도>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입니다.
<대열차 강도>에서 교차 편집의 순간으로 지목되는 장면은 교환원이 깨어나 댄스홀의 민병대에게 강도 사건을 알리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교차 편집이 되려면 교환원과 강도단 간의 교차가 적어도 한 번은 더 일어나야 합니다. 즉 일반론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대열차 강도>에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보다 한결 더 다듬어지고 진전된 교차 편집은-어쩌면 교차 편집으로 볼 수 있는 것 자체가-없는 것입니다.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과 <대열차 강도>는 영화적 혁신에 기여한 작품이라기보다는 포터의 성공작 또는 흥행작에 가깝습니다. 여러 차례 말씀드렸다시피 이 시기의 영화 제작자들은 예술가가 아닙니다. 포터의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멜리에스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포터에 있어 멜리에스의 영향을 흔히 예술적 전수나 공경처럼 이야기하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표절, 도용에 불과합니다. 포터는 오히려 멜리에스의 파산에 일조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과 <대열차 강도>의 성취로 여겨지는 것들은 사실 브라이튼 스쿨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은 브라이튼 스쿨의 작품을 고스란히 가져온 작품입니다.
브라이튼 스쿨
브라이튼 스쿨Brighton School은 잉글랜드 남부 브라이튼 지역에서 활동하던 일군의 영화 제작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후대에 조르주 사둘Georges Sadoul이 붙인 이름입니다. 좁게는 조지 알버트 스미스George Albert Smith, 제임스 윌리엄슨James Williamson 그리고 작품이 전해지지 않는 알프레드 달링Alfred Darling과 에스메 콜링스Esme Collings를, 느슨하게는 로버트 폴Robert. W. Paul, 세실 헵워스Cecil Hepworth 등의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지만 에드윈 포터의 성취로 여겨지는 것들 대부분이 실은 브라이튼 스쿨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들의 작품을 보며 연속 편집의 주요한 면면들을 확인해보겠습니다.
조지 알버트 스미스의 1899년작 <터널에서의 키스(The Kiss in the Tunnel)>입니다. 터널 밖과 열차 안, 두 장소가 하나의 맥락을 따라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외부 전경과 무대로서의 실내 공간이 하나의 시공간으로서 결합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쓰이는 연속 편집입니다.
조지 알버트 스미스의 1900년작 <망원경으로 봤더니(As Seen Through a Telescope)>입니다. 여기서는 시점(P.O.V) 쇼트가 쓰이고 있습니다. 망원경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는 사람, 망원경을 통해 보이는 것이 연결되는 연속 편집니다. 같은 구성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페르디난드 제카Ferdinand Zecca의 <발코니에서 본 광경들(Scènes vues de mon balcon)>(1901)이 있습니다. 시점 쇼트에 카메라 패닝panning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조지 알버트 스미스의 1903년작 <메리 제인의 불운(Mary Jane's Mishap)>을 보겠습니다.
아직 잠이 덜 깬 메리 제인이 화로에 불을 지피고는 구두를 닦습니다. 메리 제인이 기지개를 켤 때 처음에는 그의 상반신만 보이다가 이내 쇼트가 나뉘더니 무대 전체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메리 제인이 구두를 닦자 그의 모습이 다시 처음처럼 확대되어 보입니다. 오늘날만큼 정교하지는 않지만 동작을 연결 삼아 사이즈 운용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유념해두어야 할 점은 이것이 예술적 시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메리 제인의 모습을 확대해 보여주는 이유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얼굴과 표정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번에는 제임스 윌리엄슨의 1900년작 <중국 선교소 침공(Attack on a China Mission)>을 보겠습니다.
중국 의병대가 한 선교소를 침공합니다. 선교사의 가족들은 의병대를 이겨내지 못합니다. 여성과 아이들이 피신한 집안으로 의병들이 들이닥칠 때쯤 해군들이 나타나 중국 의병들을 제압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해군들의 모습이 정면으로 보입니다. 카메라의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카메라가 행위가 일어나고 있는 곳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즉 시점 이동과 공간 분할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192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취해지는 편집 구성입니다.
이어서 1901년작 <불이야!(Fire!)>를 보겠습니다.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만 알고 계셨던 분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에드윈 포터의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은 제임스 윌리엄슨의 <불이야!>를 그대로 베낀 것이나 다름없는 작품입니다.
두 작품의 차이로는 소방차가 출동하기 전까지의 초반부 설정과 앞서 언급한 화재 진압 및 인명 구조 상황을 보여주는 방식을 들 수 있습니다.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의 초반부, 꿈꾸는 장면은 포터가 늘 차용하던 멜리에스적 연출이므로 굳이 지적하지 않겠습니다. 반면 소방수가 경보를 울리자 침상에 누워있던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장면의 몽타주는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편집 발전의 전개에 있어서도 유의미한 구성이라 하겠습니다.
후반부 화재 진압 및 인명 구조 장면은,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에서는 한 상황을 실내와 실외의 구도에서 각각 한 번 씩 반복해 보여주지만, <불이야!>에서는 집 안과 건물 밖을 오가면서 하나의 상황을 연속체로 보여줍니다.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불이야!>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도 후대에 <불이야!>처럼 연속 편집의 체계에 따라 재편집되어 상영되곤 했습니다.
<불이야!>를 그대로 옮긴 포터가 후반부를 왜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구성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 부자연스러운 구성이 당대의 관객들에게는-뤼미에르 형제의 역재생처럼-의외의 볼거리가 되었으리라 추측해봅니다.
이처럼 에드윈 포터의 성취로 여겨지는 것들은 대체로 브라이튼 스쿨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대열차 강도>에서 강조하는 선형적 전개나 평행 행동-교차 편집은 <불이야!>,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에도 이미 쓰이고 있습니다. 이 무렵 포터에게서 눈여겨봐야 할 점들은 오히려 다음과 같은 작품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 밤으로의 파노라마 - 범미 박람회 Pan-American Exposition by night, 1901
▮ 톰 아저씨의 오두막 Uncle Tom's Cabin, 1903
▮ 코끼리 전기 처형 Electrocuting an Elephant,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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