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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멜리에스는 영화예술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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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1. 8. 2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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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멜리에스에게서 편집의 의의를 이야기할 때 그것은 구문론적 의미에서의 편집이 아니라 특수효과로서의 편집입니다. 멜리에스에게 영화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마술을 펼쳐보일 수 있는 기교의 장이었습니다."

 

[ACT! 126호 우리 곁의 영화 - 영화사 입문 2021.08.31.]

 

 

5.  조르주 멜리에스는 영화예술가가 아니다

 

 

조민석(<The Secret Principle of Things>, <>)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는 극장을 운영하던 마술사였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마술사였던 것은 아닙니다. 학업을 마치고 서른 살 무렵까지는 가업에 동참해야 했습니다. 군 복무 시절부터 마술사가 되고 싶어 했지만 멜리에스는 아버지의 은퇴에 이르러서야 마술사로 나설 수 있게 됩니다. 이때 두 형에게 자신의 지분을 판 돈으로 로베르-우댕 극장(Théâtre Robert-Houdin)을 매입합니다.

 

  로베르-우댕 극장은 ‘현대 마술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장 유진 로베르-우댕Jean-Eugène Robert-Houdin이 설립한 마술 전용 극장입니다. 멜리에스가 매입할 무렵에는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극장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막중한 과업을 짊어지게 된 멜리에스는 극장의 본래적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 흥행을 이끌어내기 위해 '계몽주의자'적인 헌신을 합니다. 덕분에 극장 사정은 점차 나아져 갔습니다.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 상연회에 참석한 멜리에스는 로베르-우댕 극장에 영사기를 두고 싶어 했습니다. 뤼미에르 형제에게는 거절 당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촌뜨기와 영화>(1901)를 연출한-로버트 W. 폴Robert W. Paul로부터 애니마토그래프Animatograph를 구입합니다. 그리고 폴과 에디슨의 영화도 몇 편 구매해 극장 프로그램에 영화 상영을 포함시키기 시작합니다.

 

  첫 작품 <카드놀이(Une partie de cartes)>가 공개된 건 1896년 5월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입한 영사기를 개조해 발빠르게 촬영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은 <카드놀이>가 뤼미에르 형제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상영해 관객을 끌어모으던 그랑 카페와 경쟁하기 위해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베끼거나 리메이크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 시기의 대표작은 <사라진 여인(L’escamotage d'une dame chez Robert-Houdin)>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원제의 맥락을 살리면 ‘로베르-우댕 극장의 부인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사라진 여인>은 마술을 영화로 옮긴 작품으로 해당 마술은 로베르-우댕 극장을 대표하는 마술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라진 여인>에는 <카드놀이>와는 다르게 편집이 쓰이고 있습니다.

 

<사라진 여인>(1896)

 

  편집을 발견하고 창작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 주시하다시피 조르주 멜리에스가 영화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사라진 여인>만 보아도 단번에 알 수 있듯이 멜리에스의 편집은 영화예술적 시도가 아닙니다. 마술적 도구일 뿐입니다. 극장주로서 영화의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였고 편집의 목적은 마술적 환상을 구현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조르주 멜리에스에게서 편집의 의의를 이야기할 때 그것은 구문론적 의미에서의 편집이 아니라 특수효과로서의 편집입니다. 로베르-우댕 극장의 본래 성격이 오토마타, 환등기, 조명 등 무대장치를 활용한 마술에 있었으며 멜리에스에게 영화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마술을 펼쳐보일 수 있는 기교의 장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작 몇 편을 보겠습니다.

 

▮ 악마의 성 Le Manoir du diable, 1986 

▮ 연금술사의 환각 L'hallucination de l'alchimiste, 1897 

▮ 천문학자의 꿈 La Lune à un mètre, 1898 

▮ 원맨 밴드 L'Homme-Orchestre, 1900 

▮ 고무 머리의 남자 L'Homme à la tête en caoutchouc, 1901 

 

  이 작품들은 대체로 <유령의 성(Le Château hanté, 1897)>, <악몽(Le Cauchemar, 1896)>, <네 개의 성가신 머리(Un homme de tête, 1898)> 등 각각의 ‘마술’ 유형마다 다른 버전들이 있습니다. 극장의 전형적인 레퍼토리 때문일 것입니다. 이 레퍼토리는 마술쇼 프로그램의 레퍼토리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조르주 멜리에스의 머릿 속에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영화가 없습니다. <악마의 성>, <연금술사의 환각> 등이 극적 상황에 기반하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마술쇼입니다.

 

 

  “시나리오, 즉 ‘이야기’에 관해서는 맨 마지막에만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구성한 시나리오는 그저 ‘무대 효과’, ‘속임수’ 혹은 근사하게 배열한 타블로를 위한 핑계로만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고도 할 수 있지요.”

 

 

  지난 시간 살펴보았던 톰 거닝의 「어트랙션 시네마」에 인용되어있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발언입니다. 그가 영화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차차 말씀드리겠지만 이는 오늘날 블록버스터 영화의 구조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의 대표작 <달세계 여행(Le Voyage dans la lune)>이 꼭 그러합니다. <달세계 여행>은 앞서 본 ‘마술’들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달세계 여행>(1902)

 

  널리 알려져있다시피 조르주 멜리에스의 말년은 비참했습니다. 파테 영화사와의 힘싸움에서 밀린 것을 시작으로 니켈로디온 시장을 거쳐 서사 영화의 시대가 오고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멜리에스는 극장주로서도 영화사업가로서도 완전히 몰락하게 됩니다.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 지난 회

[ACT! 118호] 1 영화사를 공부하는 이유 
[ACT! 120호] 2 영화사의 사건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다 
[ACT! 122호] 3 ‘최초의 영화’라는 신화: <기차의 도착>을 둘러싼 이야기들 
[ACT! 124호] 4 영화는 궁극적으로 관객을 향한다 


글쓴이. 조민석

2012년 여름부터 ACT!와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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