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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영화’라는 신화: <기차의 도착>을 둘러싼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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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0. 9. 2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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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저 일화 속 관객들은 영화라는 발명품을 구경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영화가 펼쳐 보이는 환영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입니다."

 

[ACT! 122호 우리 곁의 영화: 영화사 입문 2020.10.14.]

 

 

3. ‘최초의 영화라는 신화: <기차의 도착>을 둘러싼 이야기들

 

 

조민석(<The Secret Principle of Things>, <>)

 

  1895 12 28. 이날은영화의 탄생일이라 칭해지는 날입니다. 영화의 탄생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피가 상연되던 그랑 카페의 관객들이 ‘시오타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 보며 점점 자신들 쪽으로 가까워오는 기차가 그랑 카페 안으로 돌진해 자신들을 덮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허둥지둥 카페를 빠져나오려고 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후 일화는 널리 퍼져 당대의 사람들에게 영화의 존재를 각인시켰으며 영화사에 기록됨으로써 영화의 탄생을 알리는 중대한 사건으로 후대에 두고두고 회자되기에 이릅니다. 이와 더불어 <기차의 도착>최초의 영화라는 명예로운 명함까지 갖게 됩니다. 영화의 탄생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걸맞는 참으로 신화적인 일화가 아닐 없습니다. 

 

▲ 기차의 도착 (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18951228일에 <기차의 도착>은 상영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저 신화적 일화도 사실이 아닙니다. 아래는 18951228일 상영작 목록입니다.

 

뤼미에르 공장의 퇴근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La Sortie de l' Usine Lumière à Lyon)

정원사(Le Jardinier(물 뿌리는 사람, l’ Arroseur Arrosé))

리옹에 상륙한 사진 협회 (Le Débarquement du Congrès de Photographie à Lyon)

마상 곡예(La Voltige)

금붕어 낚시(La Pêche aux poissons rouges)

대장장이(Les Forgerons)

아기의 아침 식사(Repas de bébé)

담요 점프(Le Saut à la couverture)

코델리어 광장(La Place des Cordeliers à Lyon)

바다(La Mer(해수욕, Baignade en mer))

 

  <기차의 도착> 상영은 한 달 후인 이듬해 125일이 공식기록입니다.

 

  또한 <기차의 도착> 일화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크게 지점을 지적할 있습니다. 당시 영화를 관객들이 그렇게 어수룩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 그리고 당시의 영화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영화라고 여기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점입니다. 지점은어트랙션 시네마'(The Cinema of Attractions) 언명한 거닝Tom Gunning 의해 적극적으로 논의된 지점입니다.

 

 

  “19세기 무대 환상의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보이게 하는 것, 논리와 경험의 기대를 뒤엎기 위해 그럴 듯한 외양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런 극장이 상대한 관객은 어리숙한 시골 촌뜨기가 아니라 닳고 닳은 도시의 쾌락을 찾는 사람이었고, 그들은 무대 기술에서 가장 현대적인 테크닉을 자신들이 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_톰 거닝, 「경탄의 미학(An Aesthetics of Astonishment)」(1989)

 

 

  당시의 사람들이 영화를 관람하는 태도가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거닝이 「경탄의 미학」에서 서술한 바를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이어보면 상품을 품평하는 도도한 소비자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1895년 12월 28일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가 발생했다. 장소는 파리에 있는 그랑 카페의 한 방이었다. 그 당시 카페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고, 가수들과 다른 공연자들의 여흥을 즐기기 위한 모임 장소였다. 그날 저녁, 사교계의 후원자들이 각각 1분 정도 되는 영화 10편을 보여주는 25분짜리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1프랑을 지불했다. 공개된 영화 중에는 오귀스트 뤼미에르와 그의 아내가 아기에 음식을 주고 있는 근접한 장면, 한 소년이 호스를 밟아 정원사가 스스로에게 물을 뿌리게 하는 우스꽝스러운 무대 장면, 그리고 바다를 찍은 장면도 있었다.”

_데이비드 보드웰, 크리스틴 톰슨, 『영화사』(지필미디어) p9

 

 

  보드웰과 톰슨은 이날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피 상연을 보러 사람들을사교계의 후원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895 12 28 시네마토그라피 상연을 보러 이들은 뤼미에르 형제처럼 부르주아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최신의 기술 시연에 익숙하고 그것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인 데다가 시네마토그라피를 상연하는 뤼미에르 형제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반면 익히 알려진 저 신화적 일화  관객들은 그와 정반대에 있는 같습니다. 거닝의 말처럼 사리에 아주 어두운어리숙한 시골뜨기같아 보입니다. 이것이 일화가 지닌 번째 오류입니다.

 

  두 번째 오류는 당시의 영화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영화라고 여기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르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영화를 영화에 담겨진 내용을 봅니다. 그러나 당시 저들이 보고자 것은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이 아니라 영화라는 발명품 기계가 구현해내는 기술이었습니다. 영화가 자체로 구경거리였던 것입니다. 반면 일화 관객들은 영화라는 발명품을 구경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영화가 펼쳐 보이는 환영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영화의 내용에 빠져드는 오늘날의 관객들처럼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 스크린 너머에 있는 저편의 세계가 자신의 의식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서사 영화를 때의 의식입니다.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서사 영화는 필름 다르Film d’Art 제작되는 1907년경부터 시작됩니다. 이후에야 사람들은 영화에서 내용을 보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점점 자신들 쪽으로 가까워오는 기차가 그랑 카페 안으로 돌진해 자신들을 덮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의식은 당시의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의식이 아닙니다. 

 

 

  “어트랙션 영화란 정확히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은 레제가 찬미한 특질, 즉 무언가를 보여주는 능력을 기반으로 한 영화다. 크리스티앙 메츠가 분석한 서사 영화의 관음적인 요소와는 대조적으로, 이것은 전시적인 영화다. 나는 다른 글을 통해 어트랙션 영화가 관객과 구축하는 이러한 다른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초기 영화의 요소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바로 반복적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배우의 시선이다. 이 행위는 나중에 가면 영화가 만드는 현실적인 환영을 망치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이 시점에서는 열렬히 활용되면서 관객과의 접촉을 형성한다. 카메라를 향해 히죽거리는 코미디언에서부터 거듭 카메라를 향해 절을 하고 몸짓을 해 보이는 마술 영화 속의 마술사에 이르기까지, 이를 통해 영화는 그 가시성을 전시하며, 관객의 관심을 얻어내기 위해 기꺼이 자기 폐쇄적인 허구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_톰 거닝, 「어트랙션 시네마: 초기영화, 관객 그리고 아방가르드(The Cinema of Attractions: Early Film, Its Spectator and the Avant-Garde)」(1986)

 

 

  1895년부터 1907년경 사이의 영화, 서사 영화 이전의 구경거리 또는 show로서의 영화를 가리켜어트랙션 영화 합니다. 시기의 영화는 관객들에게충격, 스릴,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화 주로트릭, 게임, 개그, 추격을다룹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영화가 상영되는 상황 전체가 하나의 쇼입니다. 또한 실제로 쇼를 때와 마찬가지로 무대와 객석의 구도가 전제되어 있곤 합니다. 그런 까닭에 배우가 관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반면 서사 영화에는 보여줌과 관람 상황이 전제되어 있지 않습니다. 서사 영화 인물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을 보라고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서사 영화는관음적입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훔쳐보는 서사 영화의 관객은 플롯에 구축된 복잡한 상황을 따라가며 인물에게 정서적으로 몰입하는 가운데 스크린 저편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영화가 펼쳐보이는 환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지만 신화적 일화가 서사 영화가 자리잡히고 이후에 만들어진 같지는 않습니다. 1900 전후에 이미 널리 퍼져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1901년에 앞서 언급한 상황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촌뜨기와 영화(The Countryman and the Cinematograph)>라는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소문이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이렇게 오늘날까지 널리 전파될  있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화의 사실 관계를 따져 묻기 시작한 것도 비교적 근래의 일입니다.  

 

 

참고문헌

- 리처드 러시튼, 개리 베틴슨, 영화이론이란 무엇인가?(명인문화사)

- 톰 거닝, The Cinema of Attractionshttps://pkwin21.blog.me/221616892169


글쓴이. 조민석

- 2012년 여름부터 ACT!와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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