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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의 사건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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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0. 6. 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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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해명하고 앞날을 엿볼 수 있게 할 때에야 비로소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 잠정적으로 정리하자면 당대의 사람들에게 과거의 일들을 빌어 특정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서술된 이야기가 역사인 것입니다."

[ACT! 120호 우리 곁의 영화: 영화사 입문 2020.06.05]

 

2. 영화사의 사건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다

 

조민석(<The Secret Principle of Things>, <춤>)

 

  120년의 영화의 역사에서 대략 절반쯤에 프랑스 누벨바그Nouvelle Vague가 있습니다. 이 시기는 영화사에서 가장 큰 변곡점 중 하나로 거대한 변동이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강성하던 할리우드가 힘을 잃어가고 미국의 경제적 지원에 힘입어 무사히 재건을 이룬 유럽이 제도적인 기반을 구축하며 영화계에 복귀합니다. 그로 인해 영화를 향유하는 풍토나 소비문화에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나는데, 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의 모습도 크게 달라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대한 전환의 결정적 계기로 프랑스 누벨바그가 언급됩니다.

  이 시기에 일어난 중요한 변화에 관해서는 뒤에서 상세히 말씀드리겠지만 그중 가장 격정적인 움직임은 아무래도 고전적 문법을 이루는 규범들의 파훼에 있습니다. 서구 세계 전체가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전에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청년들이 더 이상 잠자코 기성의 관습을 수용하지 않았고 영화를 향해서도 그러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프랑스 누벨바그를 비롯한 주요 뉴웨이브 운동들이 기존 영화의 체계를 공격하거나 새로운 영화를 요구하는 비평 및 선언을 내세우며 전개되었습니다. 당시 비평이 활성화된 데에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있습니다.

▲프랑수와 트뤼포François Truffaut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프랑스 누벨바그의 감독들은 본래 비평가였습니다. 그중 프랑수와 트뤼포François Truffaut는 누벨바그의 기수로 여겨집니다. 그가 19541월에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에 기고한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Une Certaine Tendance du Cinéma Français)이 누벨바그의 선언문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맥락을 따라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은 종종 질의 전통(Tradition de la Qualité)에 있는 기성 영화들을 비판하고 작가 정책(Politique des Auteurs)을 적극적으로 논하며 진정한 작가 감독과 작품들을 추대하고 피력하는 글이라 칭해지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비판하는 감독들과 그들의 작품들, 칭송하는 감독들과 그들의 작품들은 고작 한두 번 언급될 뿐이고, 실질적으로는 장 오랑쉬Jean Aurenche, 피에르 보스트Pierre Bost에 초점을 맞춰 시나리오 작가들의 영화(Des Films de Scenarisetes)를 비판하는 글로서 각색 비평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작가 정책과 관련된 적극적 논의도, 누벨바그를 향한 선언적 성격도 사실상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누벨바그와 관련된 수많은 말과 글에서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은 여전히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누벨바그 외에도 영화사의 주요 사건들 가운데 이렇게 과장되고 신화화된 사실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러한 개개의 사실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이 전해지게 되었는지 따져 묻는 일은 전문 연구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하고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상식을 환기해봅시다.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쓰이는 것이며 그런 까닭에 역사적 사건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기보다는 해석된 사실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유사 이래라는 말이 있듯이 역사는 스스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과거 사실들의 총합, 인류가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전체, 지나간 일들의 연대기적 나열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에 당대의 정치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든, 종교를 해명하는 교리든, 물질적인 질서나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적이고도 이상적인 관념이 더해진 다음에야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를 해명하고 앞날을 엿볼 수 있게 할 때에야 비로소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 잠정적으로 정리하자면 당대의 사람들에게 과거의 일들을 빌어 특정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서술된 이야기가 역사인 것입니다. 다만 역사 서술은 규모가 큰 작업이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착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확고한 목적이 있지 않고서는 쓰이기 어렵다는 점을 유념해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역사를 읽을 때는 반드시 서술 배경에 놓인 정치적 맥락이나 역사가의 지적 계보 같은 것들을 검토해봐야 합니다. 이러한 각성 없이 역사를 읽을 경우 자칫하면 특정한 시각에 경도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영화 비평이 시작되는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40년대 중후반부터 입니다. 앙드레 바쟁André Bazin과 로제 레나르트Roger Leenhardt20년대에 있었던 작가 담론에 다시 불을 붙였고 프랑수와 트뤼포, 장 뤽 고다르 등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젊은 필진들이 그들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습니다. 이것은 또 영미권으로까지 전해져 670년대 영화 비평 및 이론의 활성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조르주 사둘Georges Sadoul세계 영화사(Histoire Générale du Cinéma)가 처음 출간된 해도 1946년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역사를 유의미하게 의식하기 시작한 이들 역시 누벨바그 그룹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화 비평 및 이론, 영화사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진 기간이 기껏해야 5-60년에 불과한 것입니다. 게다가 영화사가 오늘날의 역사학 일반에서처럼 최소한의 객관성을 갖추기 시작한 시간은 그보다 훨씬 짧습니다. 역사는 필연적으로 매개 단계를 거친다는 점, 역사 서술에 필요한 제반 조건은 누구나 갖출 수 있는 자산이 아니라는 점, 따라서 확고한 목적이 있지 않고서는 쓰이기 어렵다는 점, 또 영화 제작이 전 세계에 걸쳐 다채롭게 이루어졌다는 점, 그에 반해 영화사 서술을 위한 객관적인 기반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비추어 보았을 때 이러한 절대 시간의 부족은 영화사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영화사에 전설과 신화가 난무하는 까닭에는 여러 정치적,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유를 콕 집어 무어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절대 시간의 모자람이 막연하지만 많은 말을 해주는 듯해도 그것만으로는 사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다 함께 영화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목적을 밝혀볼 순 있겠습니다. 영화사 연구자들과 비평가들이 보다 엄격하고 성실하게 탐구해나가도록 우리 역시 사회 구성원으로서, 영화를 향유하는 사람으로서 또 영화사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그들을 건전하게 채근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영화사를 일부 지식인들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영화사적 안목을 바탕으로 영화사를 언급하는 이들이 사료에 과학적인 태도로 접근하고 있는지, 설득력 없는 추앙을 내세우고 있진 않은지, 논의를 무분별하게 타 학문 분과로 확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또한 영화사 공부는 한편으로는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영화사적 안목은 영화 전반에 대한 안목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제시하는 다 함께 영화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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