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사람들에게 텔레비전과 영화는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리고 이것이 ‘왜 영화산업에 장애인 포용 및 접근성에 대한 조치가 요구되는가?’라는 질문의 답이 될 수 있다. 영화는 모두를 담은 채로, 모두에게 닿아야 한다."
[ACT! 126호 미디어 인터내셔널 2021.08.31.]
포워드 독: 장애인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들
(FWD-Doc: Documentary Filmmakers With Disabilities)
한진이
2016년 2월, ‘모두의 영화관’이라는 슬로건을 내 건 공익기획소송이 제기되었다. 청각, 시각장애인 네 명으로 구성된 원고는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3사를 상대로 자막 제공 장치, 음성 해설 장치 등의 정당한 편의 제공을 요구했다. 1심 재판부는 이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피고들은 법적인 의무가 없다, 비용 마련이 어렵다는 주장과 함께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소송의 지지부진한 진행과 피고 멀티플렉스 3사의 대응에서 엿볼 수 있는 발상이 있다. 그것은, 장애인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일은 시혜의 영역에 있으며, 따라서 여유 자원이 있을 때나 고려해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자막을, 음성 해설을 제공하는 일은 정말로 경제적인 관점에서 득이 아닌 실인가? 영화관, 더 나아가 영화산업의 책임은 단순히 ‘규정 준수’ 정도에서 그쳐 마땅한가? ‘포워드 독’은 아니라고 선언한다.
‘포워드 독: 장애인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들(FWD-Doc: Documentary Filmmakers With Disabilities)’은 영국의 ‘독 소사이어티(Doc Society)’의 주도로 설립되었으며, 농인 및 장애인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와 협력자로 구성되어있다. 포워드 독은 광범위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의 농인 및 장애인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포용 촉진을 도모하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실천을 담은 툴킷(Toolkit) (*주1)과 인게이지먼트팩(Engagement Pack) (*주2)을 제공한다. 포워드 독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짐 레브렉트(Jim LeBrecht)는 니콜 뉴넘(Nicole Newnham)과 함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를 제작했으며, 이들의 영화는 높은 수준의 장애인 포용성 및 접근성을 성취한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사례로서 포워드 독의 툴킷에서 심도 있게 연구되었다.
포용과 접근성을 위한 툴킷: 다큐멘터리 영화 안의 장애 서사 바꾸기
넷플릭스(Netflix)의 후원을 받아 포워드 독과 독 소사이어티가 공동 제작한 이 툴킷은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들을 대상으로 작성되었으며 효과적인 영화 제작 및 재현 방법론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다. 자료는 영화산업이 단순히 규정 준수가 아닌 최선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행동하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함을 선언하며 시작한다.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에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한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의 말을 빌리자면, 다수의 사람들에게 텔레비전과 영화는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리고 이것이 ‘왜 영화산업에 장애인 포용 및 접근성에 대한 조치가 요구되는가?’라는 질문의 답이 될 수 있다. 영화는 모두를 담은 채로, 모두에게 닿아야 한다.
툴킷은 곧이어 미국 내 61만 명 장애 인구가 스크린 위에서, 카메라 뒤에서, 또한 화면 매개 스토리텔링의 소비자로서 만성적으로 소외되며 지속적으로 과소재현된다는 사실을 꼬집는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엄청난 경제적, 창조적 가능성이 영화 산업 안에 존재한다는 말과 같다. 동시대 영화 대부분에서 발생한 수익 중 50% 이상은 번역판(더빙, 자막)과 배리어프리판(농인을 위한 자막, 시각장애인 또는 저시력자를 위한 음성 해설) (*주3)에서 온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 무궁무진한 경제적 잠재력에 비해 고품질의 배리어프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비용은 극히 사소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애주기를 통틀어 공정하고 접근 가능하며 본연적인, 따라서 잠재적인 장애인 관객을 유치할 수 있는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고 또 어떤 모양을 띠게 되는가? 포워드 독의 툴킷은 장애의 재현, 관객 접근성, 영화 제작 과정에서의 접근성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매우 섬세하고 유용한 팁을 제공하며, 이는 포워드 독의 웹사이트(fwd-doc.org)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인게이지먼트팩(Engagement Pack)
포워드 독이 영국 영화 협회의 다큐멘터리 공동체 기금(BFI Doc Society Fund)과 함께 제작한 이 장애인 주도의 자료는 영화 제작자, 위원, 후원자, 구매자, 의사 결정자, 비즈니스 업무자 및 상영자를 대상으로 작성되었다. 포워드 독의 인게이지먼트팩은 농인 및 장애인 영화 제작자들과의 진정성 있고, 공정하며, 존중을 갖춘 협업에 투자하는 영화 제작 공동체에 대한 열망과 더불어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하는 일이 종종 관객 및 이해관계자들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갖는다는 것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모든 과정을 보다 포괄적이고 공정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료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장애인 동료 및 전문가와의 관계 참여와 관객과의 관계 참여로, 이에 초점을 맞춘 실용적인 정보와 모범 실천 사례를 제공한다.
본론에 앞서 인게이지먼트팩은 영화산업의 현주소를 예리하고 엄밀하게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인 개념 몇 개를 설명한다. 여기에는 그 극도의 중요성으로 인해 툴킷에 이어 해당 자료에도 또 다시 등장하는 개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비장애 중심주의(Ableism)' (*주4)이다. 비장애 중심주의는 보편적인 ‘할 수 있음’들은 우월하다는 믿음에 기반하여 비장애인의 우수성을 전제하고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그들에 대한 차별을 영속화하는 현상으로, 미디어 환경에서 아래와 같은 모양을 띤다.
제시된 일련의 예시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영화산업의 민낯이 이러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렇다면 영화 제작 공동체는 어떻게 오랜 시간 영화산업과 그 개인들 안에 내재되어 있었던 비장애 중심주의를 몰아내고 비로소 선한 사회적 영향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포워드 독의 웹사이트(fwd-doc.org)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인게이지먼트팩이 기꺼이 당신의 길잡이를 자처한다.
공정하고 본연적인 태도로 장애인을 재현하기, 영화 제작 및 배급 과정에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포함하기, 장애인이 주도하는 스토리텔링을 발굴하기, 영화에 대한 장애인 관객의 접근성 높이기 등, 포워드 독의 단호한 지시는 당위가 명백하여 일말의 의문이나 의심도 남기지 않는다. 내게 있는 유일한 의문은 오로지 '모두의 영화관' 소송의 피고인 멀티플렉스 3사를 향한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소수자를 배제하는 방향만을 고집하는 피고들은 무슨 수로 새로운 세상에 자리를 마련하려 하는가? 낡고 편협한 것은 지난 세상에 남아 있는 편이 좋다. □
*주
1) 툴킷(Toolkit)은 한국어로 도구 또는 도구 모음으로 번역될 수 있으나 소비적인 느낌이 드는 바, 번역 없이 사용하였다.
2) 인게이지먼트팩(Engagement Pack)은 관계 참여 꾸러미 정도로 번역될 수 있으나, 어감의 미묘함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원어 그대로 사용하였다.
3) 배리어프리(Barrier free)는 직역하자면 장벽에서 자유롭다는 의미로서,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물어 장애인을 포함한 약자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운동이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자막과 음성해설이 포함되어 시/청각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영화를 뜻한다.
4) 본 글에서는 Ableism을 비장애 중심주의로 번역했으나, 해당 개념은 종종 능력주의, 장애차별주의, 강건 신체주의로 번역되기도 한다.
▮ 관련 사이트
- 포워드 독 (FWD-Doc)
글쓴이. 한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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