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가장 영화적인 순간은 바로 우리가 보고 있던 영화가 끝날 때 아닐까.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영화의 기술적 측면만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삶의 틈에 끼어 있는 영화를 즐기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ACT! 126호 Me, Dear 2021.08.31.]
영화관과 나
이슬아
작년에는 운이 좋게도 두 차례에 걸쳐 상영회를 기획해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 번은 ‘초보 영화 프로젝트 33기’의 오프라인 상영회였고, 또 한 번은 한 해의 미디액트 수료작을 모아 유튜브를 통해 송출하는 온라인 상영회였다. 이전에는 영화 상영회를 온라인으로 하게 되리라 상상하지 못했지만 작년에는 연기하거나 문을 닫았던 영화제도 올해부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영을 동시에 운영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피할 수 없는 변화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상영회를 준비하는 과정 중 기획 단계에서의 차이는 미비했다. 전체 일정과 콘셉트, 프로그램의 순서를 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홍보물을 제작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이점은 상영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먼저 온라인에서의 상영은 비용과 공간, 시간적인 제약이 오프라인에서의 상영보다 훨씬 자유로웠던 반면, 오프라인 상영은 공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극장을 대관해야 했고 비용적인 문제로 5시간 이내에 23편의 작품을 상영해야만 하는 제약이 따랐다. 또한 온라인에 비해 영사 담당, 좌석 배정 및 안내 담당, 방역 담당, 진행 담당, 스틸컷 담당 등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온라인 상영은 오프라인 상영에서 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감독과 영화제에서는 극장 상영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극장이라는 공간은 영화를 서사의 늪에서 해방시켜 준다. 우리가 집에서 볼 수 있는 스크린의 크기는 극장이 보유하고 있는 스크린의 크기와 작게는 몇 십 배 크게는 몇 백 배의 차이가 있다. 스크린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은 곧 움직임의 크기가 다르다는 의미한다. 극장에서는 배우나 카메라의 움직임이 크지 않아도 큰 화면에 영사되기 때문에 관객들이 쉽게 변화를 인지할 수 있지만 휴대폰으로 보는 영화에서는 그 움직임이 미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플랫폼에서 공개될 것이냐에 따라 주로 사용되는 샷의 크기가 다르다.
또한, 집에서 보는 영화는 극장과 달리 외부환경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관객의 집중을 위해 끊임없는 자극을 필요로 한다. 주로 서사나 배우의 연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근래에 유행했던 소재가 무엇이었는가. 불륜과 배신, 그리고 좀비가 아니었던가. 온라인의 공간에서는 관객이 눈을 뗄 수 없게 전개가 빠르고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이야기가 조금 더 유리하다. 그런 영화도 있는가 하면 관객이 부단히 바라보는 노력을 통해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영화도 있는데 이런 종류의 영화는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대만 뉴웨이브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된다면 배우의 연기 외에도 관객들이 발견을 할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이 있는 반면, 집에서 만나게 되는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나 대사에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 그래서 아직 연출을 꿈꾸는 입장이지만 앞으로 만들게 될 영화가 어떤 플랫폼에서 보일지에 따라 달라질 변화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영화는 더 이상 극장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 영화관보다 집에서 더 많은 영화를 보게 될 세대가 될 것이다. 이전에는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간 한참 뒤에나 VOD 서비스로 만나볼 수 있었는데, 현재 OTT 서비스는 플랫폼 내에서만 볼 수 있는 자체 콘텐츠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서 제작과 배급의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극장 상영의 대체재라고 여겨졌던 OTT 서비스는 공격적인 마케팅 끝에 새로운 플랫폼의 시대를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했고, 포스트 프로덕션뿐만 아니라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런 제작 환경의 변화는 감독들에게도 영향이 있었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감독이 있는가 하면, 또 이에 대해 거센 불만을 표출하는 감독도 있다. OTT 플랫폼 가운데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넷플릭스는 구독자에게 새롭고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영화를 제작하더라도 일부 극장에서만 상영하거나 그마저도 개봉하지 않기도 한다. 이런 OTT 서비스의 성격 때문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넷플릭스를 두고 ‘극장 혐오자’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으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대중들은 놀란 감독을 두고 새로운 매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지식한 사람이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사라져 가는 극장 산업을 우려하는 감독의 소신 있는 발언이라 말하기도 한다.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한 것은 OTT 서비스가 극장가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인지, 혹은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어 영화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에 대해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영화제에서 극장 개봉 없이 OTT 플랫폼에서 제작되는 영화도 영화로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현재에는 많은 감독들의 영화가 스트리밍 업체의 지원을 받아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고 그렇게 만들어낸 영화가 각종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게 되면서 논란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현재는 감독들이나 배우들이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반기는 분위기이다. OTT 서비스의 특성상 작품에 대한 손익분기점이 없어 흥행에 대한 부담이 적고 그로 인해 창작자에 대한 제약이 기존의 할리우드 제작사에 비해 적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과거 넷플릭스를 비난했던 스필버그 감독도 오리지널 영화를 제작하기로 입장을 바꾼 것을 보면 언젠가 놀란 감독의 생각이 바뀔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제 극장만을 고집하는 건 너무 낭만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가장 영화적인 순간은 바로 우리가 보고 있던 영화가 끝날 때 아닐까. 영화가 끝나는 순간, 극장은 감독이 만들어 낸 가상의 세계와 우리 사이의 연결을 빛을 통해 단절시켜 버리고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현실로 복귀하게 된다. 누군가는 끝없이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밝아짐과 동시에 자리를 뜨기도 한다. 만약 좋은 영화였다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영화를 떠올릴 것이고, 불만족스러운 영화였다면 영화를 보기 위해 할애된 시간을 아까워하며 귀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영화의 기술적 측면만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삶의 틈에 끼어 있는 영화를 즐기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극장, 극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모든 과정을 말이다. 앞으로 극장이 아닌 OTT 플랫폼이 영화 시장의 주류를 이끌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렇더라도 나는 영화관이 건재하기를 바란다. 더불어 미흡한 작품을 극장을 통해 상영해 볼 기회를 만들어 준 미디액트에게도 큰 감사를 표한다. □
글쓴이. 이슬아
-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의 등장인물이 되거나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현재는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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