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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배우지망생도 배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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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1. 6. 1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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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단순히 '열심히'라는 단어에 빠져 꼭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여야만' 맞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무턱대고 책상에 앉아만 있다고 공부가 되는 게 아니듯, 나도 나에게 더 맞는 발전적인 방법을 찾아서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간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ACT! 125 Me,Dear 2021.06.25.]

 

 

게으른 배우지망생도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윤해원

 

 

  18살 여름에 자퇴를 했다. 흔한 집안 사정이었고 가족들이 준 상처에 파묻혀 불안정한 어린 날들을 보냈다. 독립하려면 일을 해야 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쉼 없이 일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가 나에게 뭐 하는 사람이냐 묻는다면 '배우요'라고 답하기보다 '그냥 알바해요'라고 하는 게 편했다. 마음 깊은 곳에선 배우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지만 그러면 자동으로 따라올 질문들을 견디기 힘들었다.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했고 그렇기에 자동적으로 연기는 뒷전이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연기엔 자신이 없어졌고 '나는 입시 연기만 배워서 카메라 연기는 할 줄 몰라' 하는 적절한 핑계가 있었기에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남들은 필름 메이커스라는 곳에서 프로필도 넣고 오디션도 본다는데 나는 첫 작품부터 최민식 배우님 급의 연기력을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더욱 발을 들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커버린 나는 현재 배우지망생인지 배우인지 콜센터 상담사인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지 도대체가 뭐가 뭔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가뭄에 콩 나듯 현장에 가게 되면 황송하게도 '배우님'이라고 불리지만 일 년 365일 중 364.5일은 '상담사 황지윤' 혹은 아무 호칭도 없이 '아쿠아 3'(담배 명)하는 외침만 들려올 뿐이다.

 

  정말 감사하게도 촬영을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 하나 있긴 하지만 배우를 꿈꾼 18살 이래로 그 동안 촬영했던 작품은 손에 꼽는다. 1년에 한 편도 못 했던 셈이다. 그래서 평소엔 그냥 일만 주야장천 하다가 휴무를 빼서 촬영장에 나가고 그때야 비로소 배우 활동을 한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작아지고 의기소침해지며 일에 치여 살다 보니 연기 연습할 시간은 부족하고 그렇다고 돈을 안 벌 수는 없고,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몇 해 전 한 선배님께서 말씀하시길, '배우'는 연기로 돈을 벌어먹는 사람, '배우지망생'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셨다. 꼭 그 기준이 아니더라도 배우란 말은 나에게 너무나 크고 귀해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내 행동이 떳떳하지 못한 것도 한몫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이런 얘기를 하게 되면 배우 윤해원 입니다. 라고 소개하기보다 배우지망생 윤해원입니다. 라고 한껏 움츠려 소개하게 된다. 배우가 되려면 적어도 일과 배우로서의 비중에서 1%라도 배우로서의 비중이 더 높아야 배우라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 왼쪽부터 배우지망생 황지윤, 배우 윤해원

 

 

  배우를 꿈꿨던 시간 동안 연기보다 생업에 시간을 들이는 일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 날 자꾸만 작아지게 했다. 당시 나름대로 최선이었던 선택이었던지라 다시 돌아가도 크게 바뀔 것 같진 않지만 부끄러운 건 사실이다. 연습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연기 연습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으레 들리는 말에 속아 정말 수동적으로 임했다. 촬영이 잡히면 그제야 급하게 준비했고 후회 속에 촬영을 마친 후 맘을 다잡고 혼자 연습을 시도 해봐도 작심삼일이었다. 어떻게 연습해야 하는지 방법 자체를 모르겠다는 답답함이 컸다. 줄곧 그렇게 수동적이고 나태한 태도로 임하다 보니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됐다.

 

  최근 현장에선 결과물이 꽤 좋게 나와 감사히도 호평을 많이 받았다. 그 현장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자신감의 필요성이었다. 나는 여느 현장에서와같이 매우 수줍었고 그게 연기에도 영향을 끼쳐 연기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그때야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실력이 올라올 때를 기다리는 게으른 배우지망생이 아니라,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연기할 수 있는 배우에 가까워져야 자연스레 현장 감각도 읽힐 수 있고 자신감도 차오를 것이란 걸.

 

  주변 동료들의 말을 들어보면 촬영이 잡혀 대본이 나오지 않는 한 따로 연습을 안 한다는 사람도 있고, 매주 나가는 스터디를 통해 독백을 20개쯤 갖고 있다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다가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다들 배우를 지망하고 있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그동안 단순히 '열심히'라는 단어에 빠져 꼭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여야만' 맞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무턱대고 책상에 앉아만 있다고 공부가 되는 게 아니듯, 나도 나에게 더 맞는 발전적인 방법을 찾아서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간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글쓴이. 윤해원

-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배우지망생. 배우, 감독, 작가 등 예술 안에서의 다양한 삶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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