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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려운 질문에 답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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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1. 6. 1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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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독립영화라는 범주는 오리무중이다. 나는 모든 독립영화를 사랑할 수 없고, 당신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독립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을 계속할 것이다. 이 한 문장을 뱉기가 어려워 이렇게 길게 지면을 채운다. 그래도 나에게 독립영화가 무어냐는 질문은 하지 말아줘."

 

[ACT! 125 Me,Dear 2021.06.25.]

 

그 어려운 질문에 답하자면

 

 

한솔(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시네마매니저)

 

 

  얼마 전, 좋아하는 분과 인터뷰를 겸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립영화전용관에 일하는 사람으로서 추천하는 독립영화가 있냐는 질문에 당시 개봉을 앞두었던 주현숙 감독의 <당신의 사월>을 꺼냈다. 이유를 덧붙이는데 “7년이 지나도 다시 한 번 세월호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독립영화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나왔다. 나는 잠시간 당황했다. 나는 독립영화전용관에 있으면서도 독립영화에 대한 정의를 부러 피해왔다. 수없이 받은 질문, “독립영화는 무엇인가요?”라는 물음 앞에서 난처하길 여러 번. “알면 보러 오실 건가요?”라는 비관적인 대답만 삼켜왔다.

 

  언제부턴가 독립영화를 설명하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비장하고 거창하게 말할까 봐, 혹은 지엽적이고 얄팍하게 말할까 봐. 실로 알 수 없는 책임감이다. 그러던 나의 입에서 ‘이런 것이 독립영화’라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도 모르게 품고 있던 독립영화의 의미를 들킨 것 같았다. 때론 부정하고 때론 숨겼지만 내가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엄연히 존재했다는 사실 때문에 가슴이 뜨끔했다.

 

▲ 영화 <당신의 사월>

 

 

  나는 쉬이 무력감에 빠진다. 태도만으로는 이룰 수 없고, 예술만으로는 실행할 수 없는 일들에 종종 싫증을 느낀다. 영화라는 매체는 아주 복잡해서, 좋은 의도로 찍어도 나쁜 영향을 주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찍어도 좋은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한다. 원인과 결과가 쉬이 이어지지 않는 이 기묘한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택한 것은 영화에 대한 기대를 버리는 것이었다. 영화를 숭고한 자리에 두지 않는 것. 사람에, 삶에 앞서는 영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영화는 한 사람의 삶을 재정립한다. 내가 일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품에 안고 사는 문장이 있다. 85년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한 여성노동자들의 현재를 담아낸 주현감독의 <빨간 벽돌>의 상영 후 대담 자리였다. 다음은 그 자리에 참여한 주인공 성훈화 님의 말씀이다.

 

“구로동맹파업도 민주유공자법이 만들어지면서 유공자 인증서를 받았거든요. 그거 받고 마치 제가 문익환 목사라도 된 것처럼 감격했어요.”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몇 번이고 울음을 삼켰다. 문익환 목사라도 된 것처럼 감격했어요. 문익환 목사라도 된 것처럼. 문익환 목사라도. 아주 오래 이 말을 곱씹었다. 스스로를 “자생적 사회주의자”로 설명하고 “선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시집 식구들 사이에서, 아이 엄마들 사이에서 서서히 입을 다물게 되었던 한 사람이 자신의 역사를 부여 받는 순간을 생각해본다. 투쟁 이후에도 삶은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80년대 동맹파업의 숭고함을 말했지만 20대 노동자는 50대 ‘주부’가 되어있다.

 

▲ 영화  < 빨간벽돌> 인디토크 현장

 

 

  말 못 할 무력감을 품고 있던 그들이 푸른 나무 사이에 돗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다. 영화는 그들이 그 시절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선명히 말할 수 있도록 돗자리를 펴준다. 그렇게 소중히 들려준 이야기를 스크린을 통해, 스피커를 통해 더 큰 소리로 틀어주는 것이 독립영화라는 사실을 아마 그 자리에서 깨달은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문익환 목사를 뵙게 된 것보다 감격스러웠다. 이해받지 못하리란 생각에 입을 다물었던 시간들. 독립영화는 그 시간을 들어주겠다고 선뜻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가수 아이유의 노랫말처럼 ‘요즘엔 그냥 쉬운 게 좋아’서 OTT 서비스로 하릴없이 실시간 TV를 틀어놓는다. 까다롭던 기준은 무뎌지고 허용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아름다운 것에 혹하고 갖지 못한 것엔 분하다. 그럴수록 누군가의 이야기가 필요해진다. 진득하게 한 사람을 담아내는 서사와 재미없게 멀리서 바라보는 태도, 더듬거린 한 마디로 하루 종일 목구멍을 뜨겁게 하는 독립영화들은 쉽게 열려있는 마음을 복잡하게 파고든다. 다행히도 나는 독립영화를 언제나 옆에 두어서 한 사람의 서사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주기적으로 상기한다. 관조자로서의 내가 부끄러워지면서도, 당신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 영화를 다 본 뒤 뛰어가고 싶을 만큼 행복해진다.

 

  여전히 독립영화라는 범주는 오리무중이다. 나는 모든 독립영화를 사랑할 수 없고, 당신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독립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을 계속할 것이다. 이 한 문장을 뱉기가 어려워 이렇게 길게 지면을 채운다. 그래도 나에게 독립영화가 무어냐는 질문은 하지 말아줘. 

 

참고사이트

- <빨간벽돌> 인디토크 >> ­https://indiespace.kr/3807


글쓴이. 한솔

- 얼떨결 극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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