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가 멈추진 않았습니다. 감독님도 작품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어요. 관객들은 여전히 영화제를 찾아옵니다. 방법이 달라졌을 뿐 모두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감독님과 이 달라진 방법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ACT! 125호 이슈와 현장 2021.06.25.]
코로나 시대에 셀프 배급을 하는 감독님께 보내는 편지
- 단편영화의 온라인 영화제 배급 시 고려해야 할 것들
김승희 (애니메이션 감독)
안녕하세요. 오늘도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영화제 업무를 하고 계시는 감독님.
건강 챙겨가며 일하고 계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김승희라는 애니메이션 창작자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호랑이와 소>라는 단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의 영화제 배급을 혼자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감독님처럼 말이죠. 이전 작품인 <심경>과 <심심>의 영화제 배급도 거의 저 혼자 했습니다. 배급사와 계약을 하긴 했었습니다만, 감독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배급사에서 단편영화를 출품해주는 영화제의 수는 한정적이죠. 그래서 제가 주도적으로 영화제 배급을 해왔습니다. 아, 뜬금없이 왜 만나자마자 이런 소리를 하느냐고요? 그건 코로나 시대에 감독 혼자 영화제 배급을 할 때 어떤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야 하는지에 대해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영화제의 보안 시스템: DRM보안과 Geoblock
혹시 이런 이야기를 할 상대를 찾고 계셨나요? 그렇다면 정말 반갑습니다. 저도 감독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의 영화제는 100% 오프라인 상영이었습니다. 그때의 문제는 오로지 작품이 선정되느냐, 안 되느냐였습니다. 코로나 이후의 영화제는 그 형식이 상당히 다양해졌습니다. 여전히 오프라인 100%, 혹은 온라인 100%, 아니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한 하이브리드까지. 그러면서 국내외 영화제에 작품이 선정되어 온라인 상영이 될 때 알아봐야 할 것들이 생겼습니다. 혹시 'DRM보안'과 'Geoblock'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이 두 가지가 바로 그 고려사항입니다.
DRM보안은 온라인 상영 시 불법 복제, 재배포 등을 방지해주는 일종의 보안장치입니다. 작품 저작권 보호가 중요한 저희 창작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보안시스템이지요.
Geoblock은 온라인 상영 시 작품에 접근 가능한 지역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Geoblock을 한국으로 설정하면 한국 외 다른 국가에서는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들어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Geoblock은 작품 배급 전략에 따라 프리미어 상태를 유지하게 해 줍니다. 코로나 이후 소수 영화제는 기존의 프리미어 조건을 없앴지만, 여전히 많은 영화제가 프리미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제가 경험해본바 유럽권 영화제들은 나라별로 Geoblock을 걸 수 있도록 했고, 미국권은 미국 전체에 혹은 주별로 Geoblock을 걸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든 영화제가 위에 말씀드린 두 가지 기능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예산의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좋다, 나쁘다고 이분법적으로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영화제도 코로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으로 대책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아, 이 부분은 조금 뒷부분에서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고 지금은 다시 DRM과 Geoblock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만약 영화제에서 온라인 상영을 위해 DRM보안과 Geoblock을 모두 제공할 때는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이 경우 보통 영화제와 OTT 플랫폼이 계약을 하거나 영화제 자체에서 상영 플랫폼을 구축하기도 합니다. 미국 영화제의 경우 Eventive를 상영 플랫폼으로 쓴다면 위의 두 보안 기능이 제공된다고 보셔도 됩니다. 만약 감독님께서 '작품이 상영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곳에 이런 연락을 받았다면 걱정 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배급을 진행하시면 됩니다.
다음은 DRM보안은 되지만 Geoblock기능은 제공할 수 없다고 하는 영화제입니다. 반대로 Geoblock은 되지만 DRM은 안된다고 하는 영화제는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이 경우 감독님께서 생각하셔야 할 부분은 작품의 프리미어 조건입니다. 혹시 영화제 서킷의 초반이신가요? 만약 첫 상영이 Geoblock 없이 전 세계에 온라인 상영이 되면 모든 프리미어는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프리미어 조건을 유지해야 한다면 영화제에 Geoblock 요청 메일을 보내세요. 작년에 한 유럽권 영화제에서 처음에는 Geoblock을 제공할 수 없고, 작품들이 보다 많은 관객을 만나길 바란다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몇 주 뒤 Geoblock을 요청하는 배급사와 감독들이 많았다며 필요한 작품에는 해당 보안 기능을 제공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제마다 대응이 다르겠지만, 경우에 따라 요청 메일을 보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또, 비록 Geoblock은 제공하지 않더라도 선정된 영화제의 규모가 크고 파급력이 크다면, 전 세계 온라인 상영을 긍정적으로 고려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희에게는 작품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장소에서 상영하는 것이 제일이니까요.
마지막으로 DRM보안과 Geoblock 모두 제공되지 않는 영화제입니다. 이 경우의 영화제들은 대부분 예산 안에서 가능한 상영방식을 구현하고자 합니다. 워터마크가 있는 파일을 상영하기도 하고, 작품별 상영 기간을 24시간에서 수일 내로 아주 짧게 잡기도 합니다. 혹은 Vimeo에 올린 후 영화제 홈페이지에 임베드(embed)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영 조건들이 출품 규정에 나와 있는 경우, 출품하면 자동으로 이 상영 조건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니 출품 규정을 꼼꼼히 읽어보세요. 구글 번역기나 파파고도 제법 믿을 만합니다.
사실 상영에 앞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저작권 침해일 것입니다. 이 경우 대부분 사후 대응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아무래도 보안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영화제와 상영 조건에 관하여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보시고 결정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보안 때문에 많이 걱정되신다면 아쉽지만, 정중히 거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온라인’으로의 변화
그럼 이제 제가 2020년에 온라인 영화제 서킷을 돌면서 느낀, 상영 환경 이외에 달라진 점들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들어주시겠습니까?
제가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은 장애인 관객들의 접근성입니다. 작년 제가 초청받은 국내 영화제 중에서는 정동진 영화제와 가치봄 영화제가 한글 자막을 지원해주셨습니다. 또, 영문자막과 함께 시각장애인 관객들을 위한 화면해설 파일도 제공이 가능한지 묻는 해외 영화제도 제법 있었습니다. 또 온라인 GV에 수화 통역사님이 함께하는 영화제도 있었습니다. 여전히 접근성이 높다고 말할 수 없지만, 많은 곳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감독님도 올해 영어자막과 함께 한글 자막도 만들어 보시는 것은 어떤가요?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해외 영화제의 Q&A참석이 온라인으로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 작년에 일대일 Q&A 영상의 사전녹화를 많이 했습니다. 사전녹화를 위해 영화제 팀과 시차를 고려해 스케줄을 잡았고, 촬영은 Zoom과 같은 화상회의 프로그램이나 Streamyard와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혹시 감독님 가까이에 영어를 잘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함께 참석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니면 영화제 측에 통역사를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작년에 한 감독님께서 어느 해외 영화제에 한국어 통역사를 요청해서 온라인 Q&A를 참석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시도해보세요. 갑갑한 시기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경험이 될지도 모릅니다.
아, 벌써 2021년의 중반인데 여전히 코로나 종식의 기미가 보이지 않네요. 그래도 영화제가 멈추진 않았습니다. 감독님도 작품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어요. 관객들은 여전히 영화제를 찾아옵니다. 방법이 달라졌을 뿐 모두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감독님과 이 달라진 방법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어떠신가요? 이 대화가 도움이 되었습니까? 부디 그러길 바랍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될 겁니다. 감독님의 새 작품이 올해 영화제 서킷을 성공적으로 돌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정말. 그리고 건강하세요. □
글쓴이. 김승희 (애니메이션 감독)
- 애니메이션 감독. 2014년작 <심경>과 2017년작 <심심>으로 슬램댄스, 앤아버, 독 라이프치히, 안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받았으며, 2018년에 삼성문화재단 지원 작가로 선정되어 프랑스 파리 시테 국제 예술 공동체 레지던시를 참여하였다. 2020년에 발표한 <호랑이와 소>는 뉴욕타임즈 Op-Docs 시리즈로 소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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