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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만난 독립영화 배급사의 고민들 - 포스트핀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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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0. 9. 2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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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어디서 독립영화와 단편영화를 봐야하는 걸까? 극장상영이 어려운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는 OTT 플랫폼으로만 찾아야 하는 것일까?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독립영화 배급사에서도 자체 기획전을 진행하는 건 쉽지 않다. 새로운 극장의 형태와 역할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고민이다."

 

[ACT! 122호 이슈와 현장 2020.10.14.]

 

코로나19를 만난 독립영화 배급사의 고민들

포스트핀의 경우

 

나일선(포스트핀 대표이사)

 

 

  때는 서기 2020. 폭발적인 인구증가, 자원고갈의 위기, 날로 심해져가는 환경오염 문제 등으로 심각한 생활고를 겪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되면서 인류는 지구를 대체할 새로운 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독수리호를 우주로 파견한다. 그러나 독수리호가 뜻밖에도 우주항로에서 실종되자 독수리호 선장의 아들인 13세 소년 아이캔은 아버지를 찾아나서 수색대 우주선에 몰래 탑승하고 동시에 수색대 최연소 대원으로 편입하게 된다. 아이캔은 우주의 한 혹성으로 먼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다.

▲ 애니메이션 영화 <2020년 우주의 윈더키디>

 

  198713화 규모로 방영된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의 줄거리다. 그때 이 작품을 보았다면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우주를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보며 ‘2020년에 우리는 우주여행도 하며 살겠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희망찼던 2020년도 4분의 3이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우주여행이 아닌 일상의 대부분을 코로나19 속에서 보내고 있다. 영화 후반작업과 영화제 기술팀 운영, 독립영화 배급사를 운영하는 나는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걷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 영화제는 축소되거나 취소되고, 기술팀 운영 예산도 줄어들었다. 야외 영화상영 행사는 말할 것도 없고, 극장개봉작이나 영화제 출품작의 색보정과 마스터링 후반작업 분량도 현저히 감소했다.

 

 

영화제의 온라인 상영을 마주하며

 

  매년 봄을 여는 영화제였던 인디다큐페스티발은 2월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일찌감치 5월로 개최를 연기하였고, 한국 3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인 전주국제영화제도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온라인 영화제를 시도했다. 이후 대부분의 한국 영화제는 오프라인 상영과 온라인 상영을 병행하거나 온라인으로만 진행하는 등 개최방법을 선정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해마다 1,000여 편의 독립 장/단편 영화가 만들어진다. 극장개봉을 하는 소수의 장편영화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작품은 영화제를 통해서만 소개되는데, 올해는 유독 혼란스러웠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바로 내일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모든 운영계획과 스케줄은 무의미해졌다. 부산국제단편영화제의 경우 3월 중순에 4월 개최로 일정을 변경했음에도 8월 개최로 다시 운영방향을 바꾸었다가 결국 개막 일주일 전에 또 다시 온라인 영화제로 전환해야 했다. 아마 지금도 수많은 하반기 영화제들이 많은 고민과 두려움 속에 있는 듯하다. 오프라인 개최를 하더라도 영화제는 50인 미만으로 관객 수를 제한하여 스크리닝을 추진해야 할 테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2020 온라인 GV 현장
▲ 인디애니페스트2020 오픈 채팅방 GV 현장

 

  국내 독립영화 배급사를 운영하는 나는, 솔직하게 아직 영화제 온라인 상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제는 감독과 배우 그리고 관객이, 극장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영화제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왔다. 그래야 감독들이 다음 창작활동을 위한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불가피한 조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온라인 개최를 해야 하는 영화제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말이다.

 

 

영화제와 창작자 사이에서

 

  영화배급사는 영화제와 창작자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중개자의 역할을 한다. 단편영화 전문 배급사의 경우 연간 40~50여 편의 새로운 영화를 프로그래밍 하는데, 영화제별 성격과 출품 조건 등에 따라 작품 한 편당 적게는 30, 많게는 50~60개 영화제에 출품을 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자. 영화제 극장상영을 목표로 출품한 영화가 온라인에서만 상영하게 된다면 어떤 창작자가 선뜻 동의할까? 물론 신진 작가들은 대부분 그래도 영화제 타이틀로 공개하는 상황이니 온라인 상영을 거부하지 않겠지만 꾸준히 영화를 통해 관객을 만난 감독들은 온라인 상영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독립영화 배급사는 이러한 사안을 두고 감독과 영화제 사이를 오가며 온라인 상영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수차례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 지난 6월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상영방법과 유료 관람에 대한 협의를 하지 않은 채 온라인 상영을 일방적으로 통보해 많은 창작자들과 배급사들에게 질타를 받았다. 다른 영화제들은 온라인 개최 여부 관련해 배급사와 긴밀한 논의를 시도하거나 배급사와 창작자가 각자 자신의 입장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지만 미쟝센단편영화제는 무성의한 태도를 일관하거나 다소 강압적인 방식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한국단편영화배급사네트워크(인디스토리, 센트럴파크, 포스트핀, 퍼니콘, 필름다빈,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씨앗, 호우주의보 7개 배급사)는 아래와 같이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 2020년 6월 10일 한국단편영화배급사네트워크 공식 성명
▲ 2020년 6월 10일 한국단편영화배급사네트워크 공식 성명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단편영화 전문 배급사는 감독과 작품의 매니저다. 상영여부가 정해지면 스케줄과 감독의 행사참석 여부, 세부일정, 숙박, 홍보 등 다양한 일을 하는 매니지먼트인 것이다. 또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각각의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배급사의 권리이자 역할이다. 이를 무시하는 상영주체를 향해 계속 목소리를 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영화제 관련 업무를 시작한지 20년이 됐다. 수능 이후 청소년영화제 자원활동을 계기로 스무 살부터 다양한 스태프 업무를 수행했고 기술팀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영화제 기술팀 위탁운영과 영화후반작업, 독립영화 배급, 독립영화 비상설 극장 운영까지 하고 있다. 후반작업에서부터 상영까지 포스트프로덕션의 포스트프로덕션쯤 되는 일을 십여 년간 하고 있다 보니, 그래서 영화제가 운영과 상영 시스템을 바꾼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충분히 공감한다. 글을 쓰는 지금도 명절 연휴를 모두 반납하고 영화제, 온라인 플랫폼과 함께 하반기 영화제 온라인 및 오프라인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으니까.

 

 

코로나19 이후 독립영화의 자리는

 

  코로나19 이후 관람문화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극장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OTT 플랫폼에 피로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공연이나 영화를 관람하고 극장을 나서자마자 그 경험을 이야기하며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데 극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친밀성의 획득과 공감대 형성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지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어디서 독립영화와 단편영화를 봐야하는 걸까? 극장상영이 어려운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는 OTT 플랫폼으로만 찾아야 하는 것일까?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독립영화 배급사에서도 자체 기획전을 진행하는 건 쉽지 않다. 새로운 극장의 형태와 역할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고민이다. 

 

▲ 다락스페이스의 단편영화 GV 취소 공지
▲ 다락스페이스의 단편영화 GV 취소 공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앞으로 우리의 모습이 매우 궁금하다. 내년에는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려나? 영화제는 안전하게 개최될까? 오늘도 지나간 오프라인 단편영화 상영회 GV 취소 공고문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시 읽고 있다. 나의 바람이 모든 사람의 바람과 같을 거라 생각한다.

 


글쓴이. 나일선

 

- 영화후반작업 회사 포스트핀과, 영화복합문화공간 다락스페이스 대표이사이다. 사회적협동조합 커뮤니티시네마네트워크 이사로도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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