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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라는 영화적 체험, 그 변화의 길을 찾아 - 인디다큐페스티발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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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0. 8. 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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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통제되는 이 시기 영화를 보이려는 자와 보려는 자의 존재와 의지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간 묻지 않았던 의미와 열망을 목격한 것일지도 모른다."

 

[ACT! 121호 이슈와 현장 2020.8.14.]

 

영화제라고 하는 영화적 체험, 그 변화의 길을 찾아서

- 코로나 시대의 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2020을 열며

 

최민아(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장)

 

 

  세계의 일상을 뒤바꾼 코로나19가 이제는 차라리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제 반년 남짓,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을 줄로만 알았던 모두는 어느새 적응하였고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 여전히 혼돈 속에 있지만 그러함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동안과는 다른 새 시대에 대한 삶의 방식을 찾아 나가게 되었다.

 

  ‘봄을 여는 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은 20회를 맞는 2020년 영화제의 개막을 326일 예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2월 말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폭증하였고, 여느 때와 같이 봄을 열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온 세상이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영화제 개최를 위한 준비가 상당 부분 진행되었으나 결정이 필요했다. 영화제를 예정대로 개최할 것인지, 개최할 수 있는지, 개최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본 적 없는 선택의 기로였다. 곧바로 영화제 개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 연기 결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실상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연기가 결정되었고, 이제부터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하여 계속해서 예측해야만 했다.

 

▲  인디다큐페스티발2020은  3월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상황으로 연기되며  5월 개막하였다.  계절이 지나고 나면 포스터 분위기가 영 어울리지 않았을 거라며 안도하였다.

 

  연기를 결정하고 주어진 과제는 그렇다면 어떻게 개최할 것인가였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의 기본 전제는 영화제의 취소가 아닌 연기였고, 극장 상영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무리한 선택이었을 수 있으나 영화제와 영화 간 약속을 지키고, 극장을 통해 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경험을 지키고자 하였다. 이는 민간 주최의 국내 영화제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며, 그런 만큼 무거운 책임을 안고 안전과 영화제 본연의 가치가 공존하는 길을 찾고자 하였다. 우선 무기한 연기가 아닌 다음의 개최 시기를 확정해 발표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예측, 영화제 사무국의 수용 가능 범위, 타 영화제 개최 일정 등의 고려가 필요했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현실적으로 충분히 먼 미래까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고, 하반기 많은 영화제가 예정되어 있는 가운데 시기를 옮긴 소규모 영화제가 어딘가 위치하기란 쉽지 않았다. 4월 총선이 지나면 생활 방역으로 접어들 것을 막연히 기대해보며, 앞선 요건을 고려해 526일로 영화제 개최 연기를 결정하였다. 서둘러 영화제와 관련된 이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양해를 구한 후, 영화제를 3주 앞두고 개최 연기를 발표하였다.

 

  공식 발표가 이루어지기 전, 무거운 마음으로 여러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계획을 공유하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히려 영화제를 격려하며, 인디다큐페스티발2020을 함께 완주하겠다고 응답하였다. 사무국 단기 스태프도, 상영작 감독도, 자원활동가도,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이라고 하는 영화제는 인디다큐페스티발만의 문제가 아님을 새삼 확인하며, 영화제를 함께 이루는 동료들의 지지와 연대로 다시 출발선에 설 수 있었다.

 

▲  모두가 안전한 영화제 참여를 위해 방역 지침을 마련하고 비접촉 운영방식을 적용하였다 .

 

  준비해나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안개 속이었다. 누구도 겪어본 적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나가며 모든 계획과 업무는 수정의 반복이었다.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한 곳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였다. 코로나19로 인한 휴관 없이 민간에서 극장을 유지했던 인디스페이스의 고민과 경험, 운영 방침을 다중이용시설 정부 지침과 함께 참고하며 관람객과 참여자에 대한 안전 관리 지침을 마련해나갔다. 관계 부처에서는 영화제를 예정대로 개최하는지 2월부터 지속적으로 확인했지만 이는 혼란을 가중시킬 뿐, 정확한 실태조사나 대응책 마련의 움직임은 없었다. 우리는 동료의 경험과 조언을 바탕으로 점차 길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방역 절차, 상영관 및 현장 운영, 온라인 활용 등 전반에 걸쳐 조언을 얻으며 방법을 찾아 나갔다.

 

  그간의 구성에서 많은 것을 덜어내거나 다른 방법을 생각해나가며, 점차 코로나19로 인한 행사 대비를 넘어 영화제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혼란한 마음이 일었다. 주최 측 입장에서 우려하거나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은 곧 영화제가 고유하게 가져왔던 경험에 맞닿아 있는 것들이었다. 비로소 영화제에서 처음 혹은 다시 소개되는 영화가 관객과 만나고, 영화제를 통해 동료와 친구를 만나고, 영화와 사람이 모이는 축제의 기억을 함께하는 것, 우리에게는 영화제가 갖는 영화적 체험이 분명 존재하였고 이것이 흔들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는 과연 얼마만큼 축소하거나 대체될 수 있는 것일까.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시기, 짧은 시간 안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텅 비어버린 극장을 보며 익명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이대로 사라져버릴까 위기를 느끼게 된 것처럼, 비대면 시대에 영화제의 존재를 성립하게 할 의미와 방법은 무엇일지 스스로를 향한 질문 앞에 놓였다.

 

▲  극장을 찾아준 관객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스태프, 자원활동가는 최선을 다해 극장을 지켰고 영화제 집행위원회, 한국독립영화협회 다큐분과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방역을 도맡았다 .

 

  아득하더라도 어느새 시간은 흐르고 연기를 결정한 시기가 다가왔다. 지금도 그러하듯 이때까지도 코로나19 상황은 별달리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영화제 개막일에 상황이 다시 악화되며 공공시설 폐쇄 등 긴급조치가 이루어져 혼란에 빠지기를 반복했지만, 근심을 안고서라도 영화제를 개최하는 7일의 시간 역시나 흐르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인디다큐페스티발2020528일부터 63일까지 롯데시네마 홍대입구관에서 개최되었다. 조금 늦더라도 우리의 봄이, 그리고 누군가의 봄이 여느 때처럼 돌아왔다.

 

  예와 같은 크기의 활력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어려운 시기임에도 이곳에 모인 이들이 가진 또 다른 모양의 활력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여전히 영화제에 새로운 영화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관객이 있었고, 관객과의 만남에 설렘을 안고 상영을 기다리는 영화와 감독이 있었으며, 이 영화제가 무사히 개최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라며 힘을 모은 스태프와 자원활동가가 있었다. 그리고 특수한 상황 속 영화제를 함께 만들어내고자 기꺼이 방역에 직접 나서준 동료들이 있었다. 변화한 상황 가운데 미처 예상치 못한 부족함도 많았지만 많은 이들이 영화제를 끌어 안아주었고, 이곳에 모인 영화와 사람들의 경험이 모여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  포럼은 미디액트와 협업하여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시청자와는 채팅으로 소통하였다. 관객과의 대화는 극장에서 진행하되 비접촉을 위해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활용하고,  영화제 폐막 후 일부 작품은 온라인 상영을 진행하였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인디다큐페스티발이 개최된 지 두 달여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다수의 영화제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개최되었다. 고민과 실행의 깊이는 더욱 깊어졌을 것이고, 점차 체계화된 환경에서 영화와 관객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무언가의 가치를 지키고자 다양한 실험을 해나가는 이 시기는 아마도 모두에게 끝 모를 어려움이자 새 시대에 대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한편, 삶이 통제되는 이 시기 영화를 보이려는 자와 보려는 자의 존재와 의지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간 묻지 않았던 의미와 열망을 목격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존재에 대한 그동안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영화제는 미지의 영화와 무수한 경험을 수반한다. 영화제를 만들어가는 활동가이자 영화제를 좋아하는 관객으로서, 앞으로도 펼쳐질 이 순간들에 영화제가 함께이기를 바란다. 우리의 영화적 체험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 최민아

-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영화와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들 사이를 잇는 일에 관심이 있고, 마음에 남은 영화들을 또 다른 어딘가에 전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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