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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의 영화 없는 영화관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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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0. 12. 1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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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없는 영화관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과 함께, 극장이라는 공간이 어떤 경험을 제공할 수 있으며 어떤 콘텐츠가 알맞은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ACT! 123호 이슈와 현장 2020.12.16.]

 

멀티플렉스의 영화 없는 영화관 활용법

 

박동수 (ACT! 편집위원)

 

 

  영화관에 영화가 없다. 사실 영화가 없지는 않다. 관객들이 코로나19를 뚫고 극장을 찾을 만큼의 큰 영화가 없다는 뜻이다. 12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이 시작됨에 따라 또 다시 여러 편의 영화가 개봉을 연기했다. 이용주 감독의 <서복>, 최국희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가 개봉을 연기했고, 디즈니-픽사의 신작 <소울>1월로 개봉을 연기했다. 1223일 개봉 예정인 <원더우면 1984>마저 개봉이 연기된다면 올해 전 세계 극장가에 소개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테넷> 뿐이다. 게다가 최근 워너브라더스는 2021년 라인업 전체를 극장과 HBO Max를 통해 동시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엔 <>, <매트릭스4>, <고질라 대 콩> 등 모든 블록버스터 라인업을 포함된다. 제작비와 홍보비에 투입된 금액을 극장에서 회복해야 할 블록버스터들이 극장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작은 영화들, 한국영화들은 계속 개봉하고 있다. 하지만 사정은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각각 9월과 10월 국내 개봉 예정이었던 해외 독립영화 <안티고네><패뷸러스>11월로 개봉일을 옮겼었다. 1217일 개봉 예정이었던 <> 또한 개봉을 연기했다. 3월 개봉 예정이었던 이충현 감독의 <>240억이 예산의 대작 <승리호><사냥의 시간>의 뒤를 따라 넷플릭스를 택했다. <도굴>, <>, <조제> 등 소수의 개봉작, 재개봉작, 기획전 등을 제외하면,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씨네Q 등 국내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상영되길 기대할 법한 큰 영화들은 자취를 감췄다. 오죽하면 감독판이나 파이널 컷등의 이름을 달고 <강철비 2: 정상회담>이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의 여름 개봉작들이 다시 상영되거나, 3월 개봉했던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8개월 만에 재개봉하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영화관에 예전처럼 관객을 끌어모을 영화가 없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관객들의 발길이 끊긴 것과 동시에, 관객들이 극장을 찾도록 유도할 수 있는 영화가 없는 실정이다. 11CGV의 주요 상영관 중 하나인 CGV왕십리에서 기존의 상황이라면 절대 상영하지 않았을 법한 작은 영화인 피에트로 마르첼로의 <마틴 에덴>이나 셀린 시아마의 <걸후드>가 상영되는 것을 지켜보며, 심지어 CGV와 롯데시네마가 마침내 <힐빌리의 노래>, <맹크>, <더 프롬> 등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에 문을 개방하는 것을 보며 그러한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영화관에 관객을 끌어모을 영화가 없다. 그래서 지금 극장들은 빈 상영관들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영화 <서복>(이용주, 2020)은 개봉을 연기했으며, <콜>(이충현, 2020)은 넷플릭스를 선택했다.

 

  사실 영화관에서 통상적인 영화가 아닌 콘텐츠를 상영한 사례는 많다. 메가박스는 2016년부터 클래식 소사이어티라는 이름의 브랜딩을 통해 여러 오페라와 클래식 콘서트 실황을 상영하고 해설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롯데시네마 또한 최근 해외에서 공연된 오페라를 녹화 중계하는 방식으로 오페라 상영을 진행했다. CGV2006년부터 매번 월드컵 생중계를 진행한 바 있으며, 최근엔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생중계를 진행하기도 했다.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명사들이 진행하는 사이다 강연등의 강연 콘텐츠도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코로나19로 인해 예정된 해외 오페라 공연이 취소되어 프로그램 자체가 취소된 롯데시네마의 오페라 상영을 제외하면,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영화가 아닌 극장 콘텐츠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작 편수 자체가 줄어들고, 관객들을 끌어모을 큰 영화들이 사라지며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가장 적극적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공급하려는 곳은 CGV. CGV는 최근 극장 상영관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CGV ICECON’을 런칭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CGV ICECON은 기존 CGV가 보유한 문화, 예술 콘텐츠 상영 브랜드 스콘에서 시작되었으며, 콘텐츠 보강을 위해 새롭게 런칭한 브랜드이다. CGV 측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ICECON은 함께 즐기는(Interactive), 개성 있고(Colorful), 흥미로운(Exciting) 콘텐츠를 의미한다. ICECONBTS의 월드투어를 다룬 <브링 더 소울: 더 무비><브레이크 더 사일런스: 더 무비>, 트로트 가수 김호중의 팬미팅을 담은 <그대, 고맙소: 김호중 생애 첫 팬미팅 무비>, 일본 밴드 래드윔프스의 공연실황을 담은 <래드윔프스 안티 안티 제네레이션>을 차례로 선보였다. 이 중 몇몇 콘텐츠는 오래 전부터 CGV가 힘을 쏟고 있던 ScreenX 포맷(*1)으로 기획되어 제작되었고, 해당 포맷으로 개봉되기도 했다. 기존에도 <빅뱅 메이드><트와이스랜드>, <아이즈 온 미: 더 무비> 등 아이돌의 공연실황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해 ScreenX 상영을 진행한 사례는 많지만, 올해처럼 유사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 경우는 많지 않다.

 

  CGV가 기존에 지닌 여러 특별관과 CGV ICECON의 공동기획은 여러 공연실황 영상에 그치지 않는다. 팬데믹 이전인 20201월에 시작된 것이지만, <라 트라비아타> 상영으로 첫 선을 보인 월간 오페라부터 <브로드웨이 42번가>, <톡식 어벤저> 등의 뮤지컬 공연 영상을 상영한 월간 뮤지컬’, 11월 런칭한 월간 클래식등의 콘텐츠가 씨네 드 쉐프나 골드클래스 등 고급화된 상영관에서 진행 중이다. 또한 호러/괴담 유튜버 돌비와 함께 기획한 <공포체험라디오 4DX>CJ 4DPLEX와의 공동기획으로 공개된 바 있다. ICECON의 참여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여러 논란 끝에 <가짜 사나이2>의 극장판 또한 개봉할 예정이다. 다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해 개봉일이 정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엔 청담 April 어학원이 제작한 교육용 애니메이션 <출동! 시크릿 보틀 수호대>4DX 오리지널 콘텐츠로 개봉할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리그 오브 레전드> ‘롤드컵실황 중계는 ScreenX3면 스크린을 활용해 미니맵과 스탯데이터를 동시에 보여주는 등의 방식을 선보였다. 특별관이 아닌 상영관에서는 다양한 강연 및 토크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가령, 지난 7월에는 밀리의 서재와의 공동기획으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나르와 비대면 북토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문학살롱>이 진행되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다양한 강연 프로그램 또한 CGV 예매창에서 확인할 수 있다. ICECON은 자신들의 공연실황, e-스포츠 생중계, 강연/토크 프로그램, 뉴미디어와의 콜라보 등의 콘텐츠를 각기 스테이지, 플레이, 라이브러리, 채널로 카테고리화 하여 브랜딩하고 있다.

  

▲ 'CGV ICECON' 이 선보인 콘텐츠들

 

  CGV에 비하면 콘텐츠의 다양성이나 프로그램의 가짓수에서 떨어지지만, 메가박스는 지난 2016년부터 꾸준히 클래식 소사이어티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특히 라이엇 게임즈와 협업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음악을 게임의 시네마틱 영상 및 팬메이드 영상과 함께 공연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 더 오케스트라>를 클래식 소사이어티의 일환으로 생중계될 예정이었다. 다만 11월 말 예정된 공연이 코로나19 재확산의 여파로 취소되며 극장 생중계 또한 취소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해외의 오페라 공연이 취소되며 롯데시네마의 2020년 오페라 프로그램 전체가 취소되었다. 다만 지난 10월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전 경기를 상영관에서 생중계할 것을 확정했다. 국내 멀티플렉스 프랜차이즈 중 가장 늦게 출범한 씨네Q, 비록 대관의 형식이지만 이슬아 작가의 북토크를 진행했다.

 

▲ (왼쪽부터) <리그 오브 레전드: 더 오케스트라>, 롯데시네마 오페라 2020 취소 안내, 롯데시네마 포스트시즌 생중계 포스터

   

  영화 없는 영화관을 무엇인가로 채워보려는 멀티플랙스들의 시도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게임부터 프로야구에 이르는 스포츠 경기 생중계, 오페라, 뮤지컬, 클래식, 아이돌 콘서트 등을 포괄하는 다양한 공연실황 콘텐츠, <공포체험라디오 4DX>와 같은 유튜버와의 합작 콘텐츠, 북토크를 포함한 여러 강연 콘텐츠. 여기서 화상으로 진행되지 않는 강연 콘텐츠를 기존에 진행되던 다양한 토크 프로그램의 연장이라 생각하면, 그 밖의 콘텐츠들은 모두 스크린을 필요로 한다. 사실상 스크린을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콘텐츠가 영화가 사라진 상영관을 어떤 방식으로든 대체하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콘텐츠들이 앞으로 어떻게 영화관에 뿌리내리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TV조선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 트롯>의 극장판 <미스터트롯: 더 무비>가 어느 정도 힌트를 제공하는 것 같다. <슈퍼스타K>로 시작된 경연 프로그램의 열풍 속에서, 주요 경연자들의 공연을 담은 콘텐츠가 제작되어 극장에 상영된 사례는 <미스터트롯>이 처음이다. 일본 등의 국가에서 TV드라마나 TV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 극장개봉하는 것은 일종의 루틴이 되었고, 한국에서도 TvN 드라마 <나쁜 녀석들>의 극장판이 개봉했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TV 프로그램의 극장 진출은 점점 더 흔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아이돌 스타의 공연실황 다큐멘터리가 극장가에서 나쁘지 않은 흥행을 기록하고, 해당 콘텐츠의 개봉 때마다 이루어지는 상영관 명명권판매(*2)가 극장의 새로운 수입원으로 등장함에 따라 유사한 콘텐츠가 끊이지 않고 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이 OTT 플랫폼과 유튜브의 성장을 가파르게 앞당기며 영화와 영화가 아닌 영상 콘텐츠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산업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티빙 등의 OTT 플랫폼은 영화와 TV드라마, 예능프로그램, 심지어 스포츠 중계까지 하나의 플랫폼 내에서 다뤄진다. 각각의 콘텐츠는 형식과 성격에 따라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각 콘텐츠 사이의 위계나 차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콘텐츠라는 덩어리로서 각기 다른 OTT 플랫폼 내에 존재하며, 콘텐츠 사이의 다름만이 플랫폼 사이의 차이를 낳는다.

  

▲ OTT 서비스 웨이브(wavve)의 카테고리 화면. 방송, 영화, 드라마 등이 혼재한다.

 

  최근의 멀티플렉스들이 취하는 전략은 이러한 OTT 플랫폼의 전략과 닮았다. 어떤 면에서 이는 공연장이나 경기장의 경험을 극장의 큰 스크린 위에서 모방하려는 시도이지만, 동시에 OTT 플랫폼으로 접속할 수 있는 노트북, 태블릿PC, 스마트폰 스크린의 모방이기도 하다. 상영관이라는 환경 내지는 ScreenX4DX 등 특별관의 경험을 콘텐츠와 결합하려는 시도가 전자의 모방이라면, 어떤 콘텐츠를 상영할 것이냐는 측면에선 후자의 모방에 가깝다. OTT 플랫폼이 TV를 집어삼켰다면, 멀티플렉스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4DX 재개봉 등 특별관 재개봉에 매진하는 CGV와 최근 공격적으로 돌비 시네마(*3) 상영관을 오픈하고 있는 메가박스를 떠올려보자. 그리고 유튜버의 콘텐츠를 거의 그대로 상영했을 뿐인 <공포체험라디오 4DX>, 유튜브에서 OTT플랫폼을 거쳐 극장개봉을 준비하던 중 스스로 무너진 <가짜 사나이2> 등을 떠올려보자. 영화가 사라진 영화관은 영화관만의 차별성을 주장하기 위해 특별관에 매진하고, 정작 콘텐츠 자체는 전통적인 영화에서 벌어지고 있다. 극장은 무엇을 상영하는 곳인가? 극장은 무엇을 볼 수 있는 곳인가? 영화 없는 영화관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과 함께, 극장이라는 공간이 어떤 경험을 제공할 수 있으며 어떤 콘텐츠가 알맞은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 코로나19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음에 따라, 본문의 내용과 실제 상황이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1) ScreenXCGVKAIST가 공동 개발한 프리미엄 상영관이며, 전면 스크린을 넘어 양쪽 벽면까지 3면을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세계 최초 미래형 다면 상영관을 표방한다.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지운 감독의 <더 엑스>를 통해 첫 선을 보였고, 2018<보헤미안 랩소디>의 폭발적인 흥행에 힘입어 4DX IMAX와 함께 CGV의 대표적인 특별관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2) 2016년 엑소의 멤버 도경수의 첫 영화 주연작 <순정> 개봉에 맞춰 CGV여의도에 도경수관이 생긴 것을 시작으로, 여러 아이돌 스타나 배우 등이 신작을 내거나 생일을 맞이할 때마다 팬들이 극장에 돈을 내고 그들의 이름을 내건 상영관을 일시적으로 만들어낸다. 팬덤의 연령층이 다양해지고 규모 또한 커짐에 따라, 영화관의 한 층 전체를 사용하거나 하나의 사이트에 있는 여러 상영관에 예명, 본명, 팬들의 애칭 등을 모두 붙이는 등으로 진행되고 있다. 가령 지난 9월 메가박스 홍대에는 랩몬스터관, 김남준관, RM관이 있었다.

 

3) 오디오 기업 돌비(Dolby)의 영상기술인 돌비 비전과 오디오 기술 돌비 애트모스등의 기술과 고유한 디자인을 갖춘 프리미엄 상영관. 지난 7월 메가박스 코엑스를 시작으로, 메가박스 안성스타필드, 메가박스 남양주현대아울렛 스페이스원에 차례로 2, 3호 돌비 시네마 상영관이 개관했다.

 


글쓴이. 박동수

-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영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계속 보고 듣고 읽고 씁니다. 123호부터 ACT! 편집위원으로 결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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