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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창작자의 지속가능성에 다가가는 ‘독립영화제작사 HER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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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1. 4. 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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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이 조금 더 커졌을 때 다른 여성 감독들이 감독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내놓고 후원을 받는 걸 하고 싶어요. 여성 감독의 영화를 지지하고 만드는, 좋은 이야기를 만들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ACT! 124호 페미니즘 미디어 2021.04.09.]

 

 

여성창작자의 지속가능성에 다가가는 독립영화제작사 HER FILM’

-HER FILM 강예솔, 허지예 감독 인터뷰

 

 

녹취 및 인터뷰 진행 : 김세영(ACT! 편집위원)

녹취 및 글 정리 : 황혜진(ACT! 편집위원)

 


  <기생충> 촬영 당시 봉준호 감독이 스태프들의 표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근로시간 52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화제가 된 지 어느새 2년이 흘렀다. 당연한 것들임에도 한국의 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지난 해 여름 독립영화제작사 HER FILM의 인스타 계정에 다큰아씨들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글과 함께 프로젝트 규칙이 올라왔다. ‘건강하게 찍기, 즐겁게 찍기 그리고 당당하게 찍기라는 세 가지 규칙을 근간으로 매 분기마다 새로운 감독과 주제를 공개해 정해진 후원기간 동안 모인 후원금으로만 영화를 만든다는 흥미로운 기준을 세운 그들은 독립영화 제작 현장에서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그 안에서의 지속 가능함을 찾고 있다.

 

  본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HER FILM을 만나기 불과 며칠 전, 허지예 감독의 단편영화 <SAVE THE CAT>은 감독의 국적으로 인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본선 선정 취소가 되었다. 이는 두 해 전에는 한국영화로만 명시되어있던 출품자격규정이 한국 국적을 가진 감독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불거진 일이었다.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SNS에서 감독이 겪은 사이버 불링과 어느 곳보다도 다양성에 열려있어야 할 영화제의 배제적 규정으로 인해 여럿이 상처 받았다. 지난 318일 ACT!는 <SAVE THE CAT>의 배경이기도 한 HER FILM의 작업실에서 강예솔, 허지예 감독과 만나 그들의 활동과 그간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나누었다.

 


 

Q 저희가 인터뷰 요청을 드렸을 때 어떤 마음으로 응해주셨나요?

 

지예 : 저희 진짜 좋았고요. 사실 이번에 이슈가 있어서 인터뷰를 잠시 미뤄야 하나 생각을 했다가 스스로 타협하고 그 일에 대해서 스트레스 안 받고 싶어서 하기로 했어요. 저는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외국 국적으로 한국에서 영화를 할 땐 제약도 많고 서러울 일도 많아요. 귀화는 늘 계획 속에 있기는 한데, 과정도 2년 정도 걸리고 귀화를 당장 하기에는 애매한 상황에 있거든요. 영화진흥위원회에 제작 지원을 넣을 때 외국인이면 개인으로 지원이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사업자로 지원은 가능해서 이 친구랑 그전부터 영화를 자주 했으니까 같이 시작하게 되었고, 작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첫 번째 프로젝트를 만들게 되었어요. 그래[HER FILM]을 시작하게 되었고 [HER FILM]에게 인터뷰가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예솔 : [HER FILM]은 처음이고, [다큰아씨들]에 대해서는 퍼플레이에서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지예 : 그래서 되게 좋았어요. ‘조금씩 저희에 대해 알아가고 계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웃음)

 

 

Q 두 분은 작업도 많이 하셨다고 했는데, 어떻게 만난 사이인가요?

 

예솔 : ‘...라고 지금은 없어졌는데 너도 비포 선라이즈를 좋아했으면 좋겠어라는 모임이 있었어요. 주기적으로 매번 참여자를 신청받은 후 모여서 영화를 보며 와인 한 잔 마시는 모임이었어요. 거기에서 만났는데 서로 이야기가 잘 맞았어요.

 

지예 : 그때 영화를 보러 간 이유가 상영하는 영화가 <프란시스 하>이었거든요. 그 영화가 <졸업>이라는 영화의 기획 시나리오를 썼을 때 레퍼런스가 되어 준 영화였어요. 그래서 극장 형태의 영화관에서 보고 싶어서 갔어요. 그곳에서 이 친구를 만났는데, 제가 원래 낯가려서 사람에게 절대 그렇게 말을 안 하는데 갑자기 뭔가 제가 이 친구한테 꽂혔나 봐요. 아 그리고 얘기를 하다 보니까 집이 같은 방향이었어요. 저랑 같은 버스를 탄대요. 그래서 어디서 내리세요?” 하니까 저랑 같은 데에서 내리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집이 5분 거리...

 

예솔 : 머뭇머뭇하다가 이 친구가 제가 영화 찍는데 혹시 PD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이랬어요. 뭣도 모르좋아요!” 했어요.

 

지예 : 그렇게 바로 PD 제안에 응해주시고, 동네도 바로 가까이에 있으니까 만난 지 한 달 만에 거의 몇 년 본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게 되었어요. 이 친구가 현재 같이 사는 강아지가 있는데 그 강아지를 처음 만나고 같이 살게 된 것 전부 지켜보고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예솔 : 그렇게 되어서 같이 작업한 게 <졸업>이라는 영화였고, 그 영화로 전주국제영화제도 가게 되고, 른 영화제도 가게 되었어요. 개봉을 위한 조건을 살펴보았는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개봉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사업자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HER FILM]이라는 사업자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지예 : 참 신기해요. 그 모든 과정이 거의 1년 안에 진행이 되었어요. 저는 추진력이 좋지 않은데 이 친구가 추진력이 좋으니까 이런 거 해볼까?” 하면 이 친구가 하고 있어서 하게 돼요. [다큰아씨들]도 이야기 꺼내고 한 달 만에 기획 들어가서 바로 첫 테스트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Q [다큰아씨들]의 다른 두 감독님은 어떻게 만나신 건가요?

 

지예 : <졸업>의 조연출과 배우였습니다.

 

예솔 : 인연은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지만, 여성 영화인들이 창작하는 환경에 대해서 서로 하소연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각자 가지고 있는, 영화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사적으로 많이 나누다 보니 우리가 뭔가를 해보자 해서 결국에는 네 명이 모여서 시작을 하게 된 것 같아요.

 

 

Q [다큰아씨들] 프로젝트명이 너무 귀여운데,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지예 : 제가 <작은 아씨들>을 좋아해요. 그런데 딱 영화처럼 우리도 네 명이고, 농담처럼 누군 작은아씨들이고 난 늙은 아씨들이고 막 이런 식으로 말장난을 하다가 ? 다큰아씨들 좋은데? 하면서 정해졌어요. (웃음) 아 부끄러워.

 

예솔 : 생각보다 반응이 좋더라고요.

 

지예 : 입에도 착착 붙고. 저희는 다 친구처럼 지내는데 묘하게 다 연령대가 안 겹쳐요. 예솔은 빠른 년 생이고 박수안 감독님은 제 후밴데 친하고, 김소라 배우님은 언닌데 친구고 이래서 좋은 조합이에요 신기해요.

 

예솔 : 사실 엄청난 의미라기보다 나머지 세 명의 팬심에 의해서 정해졌어요. (웃음)

 

▲ 허지예 감독
▲ 강예솔 감독

 

Q [HER FILM]에서 어떤 일을 구체적으로 하고 계실까도 궁금했고 그 안에서 두 분의 역할과 더 나아가서 [다큰아씨들] 네 명의 역할이 궁금해요.

 

지예 : [다큰아씨들] 프로젝트는 본격적으로 [HER FILM]이 첫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SAVE THE CAT> 같은 경우에는 이 친구가 PD 역할을 해주고 박수안 감독님이 조연출 역할, 김소라 감독님이 연출팀이 할 수 있는 일들과 의상팀을 맡아주셨어요. 앞으로 [다큰아씨들]은 각각의 감독님들의 작품을 하는 동안 저희 안에서 메인스 탭을 돌아가면서 해주려고 하고 있어요. 이번에 새로 진행하는 <로봇이 아닙니다>에는 제가 조연출 겸 프로듀서로 들어가 있어요.

 

예솔 : 일단 [다큰아씨들] 같은 경우에는 [HER FILM]이랑 완전 별개는 아니지만 조금 따로 생각해야 하는 지점이 일단 프로젝트팀이고 롤들이 고정되어있지 않고 계속 돌아간다는 것이 조금 [HER FILM]과 차이가 있어요. [HER FILM] 같은 경우, 대체로 주요 업무는 대표인 지예 감독님이 하고 있고 서류를 내서 심사를 받고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을 때 제가 여력이 되면 도움을 드리기도 해요. 제가 영화 쪽에서도 일을 많이 하고 있지만, 영화를 영화관에서만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의 포맷으로라던가 이런 쪽으로도 보여주는 것으로도 방향을 열어두고 있어요. 이번에 전주영화제 된 것도 실험영화거든요. 영화 아닌 다른 예술계통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어서 지원사업이라거나 영화를 소개할 수 있는 루트에 밝은 편이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컨택해오는 일들을 하고 있어요. 다큐 작업을 많이 하시는 여성 영화 창작자들이 모여있는 ‘미닝오브’라는 팀이 있어요. 그분들을 어떤 지원사업에서 만나고 그분들이 퍼플레이를 소개해주셔서 저희가 퍼플레이랑 컨택을 하고 퍼플레이덕분에 미디액트도 알게 되고 (웃음)

 

지예 : 저는 주로 세금 처리랑 아이디어, 머리를 쓰는 일을 한다면 이 친구가 정말 다양하고 많은 사람을 알고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영화도 서대문엔이라는 곳에서 지원을 받고 찍었는데 그것도 이 친구가 하고 있는 영역 안에 있는 부분이어서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 PD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예솔 : 영화에 관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영역을 다들 좁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영진위에서 하는 지원사업이나 영화제에서 하는 지원사업에서만 지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술이라는 범위를 넓게 생각했을 때 영화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루트들은 많은 것 같거든요. ‘서대문엔이라는 지원사업도 서대문 안에서 예술을 하고 있는 여러 주체들을 지원해 주고 그들이 하고 있는 활동을 지속 가능하게 해주는 그런 사업이에요. 영화를 만드는 것도 그런 예술 활동이고 저희도 하나의 플랫폼을 제시하는 개념이니까 거기에 부합해서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닝오브’에서도 장비 지원이나 여러 가지 방식들을 제안해주셨고 퍼플레이와도 저희가 생각지도 못한 선 공개 상영을 하는 방법들을 이야기할 수 있었고... 그래서 영화 바깥에서 활동해본 경험이나 그렇게 넓혀진 시각이 조금 도움이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Q 작업을 같이 할 수 있는 동료를 구하고자 하는 갈증은 다들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여서 하고 계시는 것은 너무 귀해 보여요.

 

예솔 : 영화도 그렇고 이 친구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저희와 [다큰아씨들]을 하는 다른 두 친구도 그렇고 자기가 영화인이고 영화를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자기 검열을 엄청 많이 하더라고요. 자기가 뭔가를 하지 않으면 도태될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고 그렇게 도태되어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니 그거에 대해서는 좌절감도 들고. 어쨌든 내 몸을 사리지 않고 불태워서 계속 뭔가를 해내야 하는데 소모되는 것들이 너무 많고. 그래서 영화 제작 환경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거기에 방점을 찍고 이야기하는 것이 [다큰아씨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예 : 그래서 예산에 맞게 찍자는 컨셉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갈리고 싶지 않아서, 착즙 되고 싶지 않아서.

 

▲  HER FILM  인터뷰 사진 / (좌) 강예솔 감독, (우) 허지예 감독
▲  HER FILM  인터뷰 사진

 

Q 지금 인터뷰하기 전 불과 3일도 안 된 사이에 지예 감독님에게 많은 일이 있었는데, 겪으신 일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예 : ACT!에서 다뤄주시면 좋겠어요. 거의 트위터에서 제가 난도질을 당해서.

 

예솔 : 나무위키에도 올라갔어.

 

지예 : <졸업> 팬 분이 올려도 되는지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저는 나무위키가 뭔지 모르고 그러라고 했어요.

 

예솔 : 나무위키에 전주국제영화제를 검색하면 사건사고 탭에 허지예 사건만 있어요. ‘허지예 감독 트위터 공론화 사건이렇게 있어요.

 

지예 : 트위터의 특성상 인용해서 잘못 말씀하시는 분이 생기면 다른 분들이 나머지를 안 읽고 잘못 인용한 사람의 말을 리트윗하더라고요. 그것도 천 트윗 넘게 리트윗 되면서. 저는 시발점이 누구인지 알고, 누구의 트윗을 시작으로 사이버불링이 시작되었는지 알아요. 처음엔 그냥 넘겼는데, 사람들이 그 사람의 글을 읽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어서 충격적이었고, 그래서 제가 전주영화제에 입장문을 요청했어요. 이런 규정이 있는 영화제가 제가 찾아본 바로는 2개 더 있어요. ‘정동진 독립영화제’랑 ‘서울독립영화제인데, ‘서울독립영화제에는 문의를 드렸어요. “아직 출품 규정이 올라오기 전 이긴 하지만 작년 규정을 살펴보니까 한국경쟁에 한국 국적자만 받는데 혹시 이것에 관해 논의해보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하고 물었는데 수상과 세금의 문제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설명을 드렸어요. “저는 영주권자고 세금에 문제가 없어도 이게 논의될 여지가 없는 건가요?” 했더니 저희가 매년 논의를 하고는 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해서 논의를 부탁드렸고, 만약 안 바뀌고 출품규정이 나오면 다시 한번 더 문의해야 할 것 같아요. 정동진은 차차 연락을 할 거예요. 부천은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변동이 될 수 있음이라는 정말 포괄적인 내용이 있는 유연한 규정이 있어요. 사실 영화제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규정을 내놓더라도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는 그 한 줄만 포함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트위터에서 제가 계속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 계속 해명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제 국적을 말하지 않고 저랑 1분만 대화해보면 전혀 의심은 하지도 않고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텐데 저는 이번에 계속 증명해야 했어요.

 

예솔 : 화교 초··고를 나왔고 아버지가 홍콩인이면 흔히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차이나타운의 중국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더라고요. 물론 그것도 사실은 굉장히 이상한 이미지이지만.

 

지예 : ··고 화교 학교 나왔으면 그냥 중화 문화권에 있는 사람 아닌가?라는 말을 하신 분이 있어서 고등학교 졸업한 지가 7년이고, 그걸 평생이라고 하면 곤란하다고 했더니 그렇게 쓴 분이 자기가 한 말은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의심을 하더라고요. 안 봤으니까, 본 적이 없으니까. 근데 저는 그게 놀라웠어요. 살면서 어떻게 다문화 가정을 못 보지?

 

예솔 : 그들은 다문화 가정을 못 봤을 리가 없어요. 보고 있는데 그냥 모르는 거고. 그리고 생각하는 이미지도 따로 있을 거예요.

 

지예 : 저 같은 경우를 처음 본 사람들이 하는 논의들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전복되면 되는 거니까. 저는 그래서 상처도 받지 않고 이런 의견 충돌이 있구나 하고 넘어가는데, 갑자기 트랜스젠더 혐오까지 끌어와 욕을 하니까 불필요한 분들이 상처를 받게 되었어요. 그래서 법적 대응하겠다고 댓글 다니까 그런 글이 하나도 안 달리더라고요. 어떤 식으로 왜곡되는지 이걸 다 지켜보는 것이 참담했어요. 제가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맥락이 지워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국적을 지우고 보면 누가 봐도 문제없는 한국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많은데, 내가 하나의 국적만으로 나를 증명할 필요도 없고, 다문화 가정이니까. 중국인이면서 한국인일 수 있는, 대만인이면서 한국인일 수 있는 사람들이 실재하는데 그들이 계속 증명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 인정을 못 받으니까 그런 것들이 계속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아요.

 

▲  허지예 감독의 반려묘  '조매기'

 

Q <SAVE THE CAT> 영화 이야기를 더 해주세요. 궁금하게 만들자고요!

 

지예 : <SAVE THE CAT>은 영화제에 출품을 시작하면서 연출 의도랑 시놉시스를 쓰는 게 되게 어려웠던 영화였어요. 글자 수의 제한이 있어서도 그랬지만, 한마디로 정의, 정리하기가 참 어려운 작품이에요. 단편적으로 말하자면 작업실을 공유하는 성향이 많이 다른 여성 둘이 있는데, 작업실 앞에 고양이가 버려지는 사건을 통해서 고양이가 작업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휘젓고 다니는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에는 진희라는 캐릭터가 고양이를 구하게 되었던 행위가 왜 그러는 걸까? 에 대한 답을 찾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구한다는 행위가 어떤 식으로 또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행위로 연결되는지를 쫓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게 좀 필요한 메시지인 것 같아요. 저는 늘 불안한 것 같아요. 제가 모르는 어떤 시간에 누군가가 떠나가는 경험을 20대 초반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이번에 영화를 다 찍고 나서 일어난 일이지만 저는 사실 변희수 님이 돌아가신 것도 감당하기 힘들었고, 그 일주일 전에도 김기홍 님이 돌아가시고그분들이 인터뷰했던 내용 중에 우리 같이 살아남자라는 메시지가 많았다고 기억을 하는데, 사실 그 메시지가 자기가 살고 싶어서 했던 메시지라고 생각했고 제가 영화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도 그 이유였다고 생각했어요. 여성으로 살면서 외로운 시간이나, 이번에 불거진 문제지만 외국인 신분으로 한국에서 사는 이 외로움 같은 것들이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거나 누군가에게 구해지는 어떤 행위, 제가 누군가를 구하고 누군가에게 구해지고. 저는 사실 이 친구(매기)를 제가 구한 게 아니고 이 친구가 저를 정말 많이 구한 것 같아요. 이 친구 덕에 제 삶이 정말 분주해졌거든요. 이 작업실 이전에 살았던 작업실에서의 삶은 너무 고독했어요. 혼자 그 작업실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새벽이 되고, 집이라는 공간에서 도망치는 창구 같은 것이었는데 너무 외로웠어요. 그런데 이 친구를 만나고 이 작업실로 옮기고 나서부터 뭔가 삶이 분주해져서 그걸 통해서 제가 구해졌다는 느낌을 되게 많이 받아서 그런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되게 잘 만든 것 같아요.

 

예솔 : 잘 만들었다고 자부합니다.

 

지예 : 잘 만들었다기보다는 ? 왜 이렇게 잘 나왔지?’ 하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예솔 : 그리고 현장에서 스탭들이 특정 장면을 보고 울었어요. 이건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어쨌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거, 그러한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존재로 살아가는 그런 존재들에 대해서 확인하는 영화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 영화가 가지는 의미가 [다큰아씨들]이라는 플랫폼이 존재하는 이유와 맞닿아있는데 [다큰아씨들] 같은 경우에도 관객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플랫폼이잖아요. 관객들이 저희의 영화에 관심을 가져주고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에 대해서 공감을 해주고 응원을 해주기 때문에 그 응원의 크기만큼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SAVE THE CAT>의 의미와 엄청나게 맞닿아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SAVE THE CAT>을 처음 기획할 때 친구 같은 존재들, 위로가 되는 주변의 존재들에 대해 생각하며 쓰다 보니 이 친구가 그렇게 이야기를 써 내려간 것이고 그래서 사실은 이 영화가 굉장히 의미가 되게 커요. <SAVE THE CAT>에게 이번과 같이 전주의 상황이 생긴 것에 대해서 저희끼리도 너무 안타까워했고.

 

지예 : 저는 루이자 메이 올컷을 좋아하는데 영화 작은 아씨들이 시작할 때 이 말이 나와요.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쓴다.” 이 문구를 보기 전에도 그런 태도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세상에 더 개입하고 더 들여다보게 되면 될수록 더 우울할 상황이 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극장에 와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다른 행복한 가능성의 세계들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의 영화에는 배드 엔딩이 없어요. 영화는 늘 해피엔딩이에요. 그게 중요한 거 같아서 그 태도로 영화를 만드는 것 같아요. 루이자 메이 올 컷이 정말 제가 원하던 워딩을 딱 해서 저는 영화 시작하자마자 바로 울었어요.

 

 

Q 예솔 감독님이 준비하시는 [다큰아씨들] 다음 프로젝트 <로봇이 아닙니다>순수성에 대해 다루는 영화라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카테고리와 기준으로만 판단과 판별을 내리는데 이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솔 : 그 맥락에서 출발하고 있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상상되는 홍콩 국적을 가진,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지 못해서 스스로 항의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있을 것이고 그 이미지에 지예 감독이 부합하던 부합 하지 않던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로만 판단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것도 그렇고 제 생각도 그렇고, 저희의 상상은 항상 제약되어있다는 거죠. 예를 들면 이 친구의 학교에 있는 화교 친구들도 따지고 보면 한 학년에 몇 백 명이 될 것이고, 몇 년이 지나면 수 천, 수만 명이 될 텐데 앞서 말한 건 그들을 배제하는 사고방식이 되어버리니까 그런 것들을 우리가 계속해서 환기시키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진짜 다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지금의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사실 국적 얘기뿐만 아니라 LGBT 문제든 여성의 문제든 그것 외에 사소하게 따지자면 온갖 것들이 포함되는 건데 예를 들면 ‘학생 다움’, ‘엄마 다움’, ‘비건 다움’ 이런 다움이 붙을 수 있는 모든 명사가 사실 되게 명확한 것 같지만 명확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게 생각보다 되게 큰 문제더라고요.

 

 

Q 혹시 그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나요?

 

예솔 : 지금은 시나리오 단계에 있고 영화가 일반적인 내러티브 픽션 영화들과는 달리 여러 가지 자료조사가 더 많이 필요하고 자료를 기반으로 짜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리서치를 많이 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스토리 자체의 콘셉트라던가 이 영화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날 것인가에 대한 러프한 어떤 아이디어들은 어느 정도 자리 잡혀있고 그 안에서 논의할 대상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세부적인 것들은 추려가고 있는 과정이에요. 크게는 사람이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라는 것으로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그 범위가 워낙 넓다 보니 일단은 시각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사람이라는 것을 판별하는 여러 가지 기준을 살펴보자로 좁히고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장애 담론과 제일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각적으로 판단할 때 사람이다 혹은 아니라고 헷갈리게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외적인 장애들이 많은 것이 있어서 그렇게 가지 않을까,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이디어가 모이냐에 따라서 많이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 <SAVE THE CAT> 영화 이미지
▲ <로봇이 아닙니다> 영화 이미지

 

Q [HER FILM]이 갖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지예 : [다큰아씨들]의 목표랑 비슷하고 저는 [다큰아씨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리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아요. 판이 조금 더 커졌을 때 다른 여성 감독들이 감독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내놓고 후원을 받는 걸 하고 싶어요. 여성 감독의 영화를 지지하고 만드는, 좋은 이야기를 만들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감독의 고민이 들어간, 감독의 고민이 들어가려면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하는지를 같이 고민해주는 배급사.

 

예솔 : 이거는 저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겠지만 [다큰아씨들]과 같은 플랫폼이 많이 복제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지예 : 맞아요.

 

예솔 : 그래서 저희가 규칙이나 어떤 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거라는 것들을 공개한 것도 있어요. 여성 창작자들이 그것을 활용하고 그들이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온다면 되게 좋을 것 같아요. 여성창작자들이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고 싶을 때 가이드라인을 주고 그것에 대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생기면 좋으니까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지금도 저희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미디액트라던가 퍼플레이라던가 이런 곳이 있어서 저희도 힘을 내서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니까. 이것도 저의 개인적인 목푠데 [다큰아씨들] 프로젝트가 모두가 개별적으로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거든요. 우리는 이런 플랫폼을 고착화시키고 발전시키려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임금이 필요해요. 자본주의 사회라는 걸 배제하고 생각할 순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속가능하려면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을 벎으로서 다른 일을 하지 않고서 영화에 집중 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이 보장되려면 저희가 이 프로젝트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어야 해요. 어쨌든 1년 동안 저희의 목표는 많이 알려지고 많은 사람이 저희에게 공감을 해줘서 다른 분들에게 임금을 주고서라도 남아서 저희(감독)들에게도 임금을 처리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면 좋겠다는 것이 목표예요. 왜냐하면 1년이 넘으면 저희도 힘들어질 것 같거든요.

 

지예 : 저희도 시작단계라 계속 실험을 해보면서 체계를 잡아나갈 거예요.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저희가 안 지쳐야 하니까 돈이 사람을 제일 지치게 만드는 거니까. 저희가 유일하게 약속해 드릴 수 있는 건 좋은 작품인건데 저는 그거에 대한 확신이 있거든요. 그런데 작품이 점점 더 좋아지려면 금전적인 보상이 있어야 하니까요.

 

 

Q 마지막으로 못 다한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예솔 : 이 친구가 공론화 글 올렸을 때 크게 와 닿았던 문장 중의 하나가 저 같은 사람도 있어요.’ 라는 문장이었거든요. 그게 크게 다가왔어요. 보면서 슬펐고. 세상은 다 자기랑 다른 사람들이고 함부로 판단하기 어려운데, 꼬우면 귀화해라 이런 말들이 날카롭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어쨌든 내 생각만으로 사람의 모든 걸 판단하지 말자라는 걸 되새기게 되었어요.

 

지예 : 저는 전주영화제 사태 때 느꼈던 게 어제쯤에야 지인들의 응원메시지가 직접적으로 많이 왔어요. 전까지는 많이 외로웠어요.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외롭다고 느낀 건 제 방패막이 되어주는게 한국영화를 상징하고 있는 것들이 아니라 제 지인들이어서 외로웠어요. 저의 지인들도 제가 받는 트윗들을 보고 상처 받았을 거예요.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저는 그런 것들이 속상했고 피해의식일 수도 있는데 제가 서양국적을 가진 사람이었어도 이렇게까지 혐오감을 불러일으켰을까? 내가 중화권의 국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전 중국인이 아닌데... 제 여권으로 중국을 못가요. 중국인도 트윗이 왔어요. 중국인이 영어로 너 중국국적 아무나 가질 수 있는게 아닌데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달기도 하고, 한국인한테도 공격을 받고 되게 외로웠어요. 이런 외로움을 겪고 있는 비슷한 존재를 생각했을 때 사람들이 트랜스젠더 이슈를 끌고 와서 저한테 그랬으니까 그분들 생각이 많이 났어요. 사실 저는 하루였지만 그분들은 이런 것들이 매일이었을거라고 생각하니 많이 우울했어요. 사실 앞으로도 세상의 이런 일들에 개입되는 게 많이 무서워요. 무섭긴 하지만,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누구나 소외되지 않고 배제되지 않는, 모두가 어떻게든 소속감을 느끼고 어떻게든 구성원으로 인정되는 그걸 바라고 있으니까 힘이 닿을 때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관련 자료

 

독립영화제작사 HER FILM

- 인스타그램 @herfilmproduction

- 홈페이지 https://herfilm.modoo.at/

 

- <SAVE THE CAT> 한국단편경쟁 본선 선정 취소 관련 오마이뉴스 기사

[‘미나리가 당한 차별, 전주에서...국적 문제로 선정 취소 논란]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727629&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녹취 및 글 정리 : 황혜진(ACT! 편집위원)

- 일상 속에서 영화적인 순간들을 찾으려합니다.

 

녹취 및 인터뷰 진행 : 김세영(ACT! 편집위원)

- 나와 주변을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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