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할 수 있다,올바르면서도 재밌을 수 있다 같은 새로운 것을 깨달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보통 올바른 것을 챙긴다고 하면 재미없다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 디자인을 하면서 피부색이나 헤어스타일을 실제 사람처럼 하려고 하는 것보다, 피부색을 노란색으로, 헤어스타일도 여성형과 남성형을 나누지 않고 디자인하니까 새로운 것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ACT! 121호 페미니즘 미디어 탐방 2020.08.14.]
올바르면서도 재밌을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
- <닷페이스> 디자이너 김헵시바 인터뷰
인터뷰 진행: 김세영 (ACT! 편집위원)
녹취 및 작성: 박동수 (대학생, 관객)
얼마 전 동아시아 퀴어 미술을 조망하는 전시 [작은 불화]의 소책자에서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라는 문구를 마주했다. 6월 말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라색으로 물들였던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이하 온라인 퀴퍼)의 슬로건이다. 닷페이스의 주최로 8만여 명이 참여한 온라인 퀴퍼는 학교부터 영화제까지 수많은 것들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변화하는 와중에 등장했다. 퀴어 미술을 주제로 한 전시에서 온라인 퀴퍼의 슬로건을 만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느 퀴어문화축제가 그러한 것처럼, 6월 말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목격한 행렬이 다른 공간에서도 이어지고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온라인 퀴퍼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전국 각지의 퀴어문화축제가 취소된 상황에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안전하고 즐거운 연대의 공간. 온라인 퀴퍼는 그간의 퀴어문화축제들이 지켜온 가치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수많은 뉴미디어 채널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닷페이스의 존재와 가치를 알고 있을 것이다. 닷페이스는 마이너리티의 관점으로 다양한 사회문제를 진단하는 것을 넘어 변화를 이끌어간다. 온라인 퀴퍼는 그러한 닷페이스의 색깔이 드러난 프로젝트이다. 온라인 퀴퍼의 기획을 주도한 닷페이스의 디자이너 김헵시바를 만나 닷페이스와 온라인 퀴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Q.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김헵시바이고, 닷페이스에서는 헵찌로 불리고 있습니다. 닷페이스에서 2년 반 정도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닷페이스에서 하는 일은 주로 팀의 메시지를 영상 안팎으로 시각화하는 것과, 저희 구독자 및 닷페피플이라는 멤버십 회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헵찌라는 닉네임은 주변 친구들이 헵바 혹은 헵시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헵찌가 되어 있더라고요(웃음).
Q.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무엇인가요?
A. 보통 디자이너를 프리랜서 디자이너, 에이전시 디자이너, 인하우스 디자이너 셋으로 나눕니다. 그 중에서 어떤 기업을 위해 일하는 전속 디자이너를 인하우스 디자이너라고 합니다.
Q. 닷페이스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닷페이스는 변화가 필요한 지점에 있는 마이너리티의 목소리를 내는 미디어입니다. 원래의 역할은 그 정도였는데, 현재 변화를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변화를 직접 설계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닷페이스가 보여준 얼굴과 목소리를 기반으로 한 신뢰와 영향력이 생겼는데, 이를 조금 더 넓은 곳까지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확장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Q. 개인적으로 학부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하던 페미니즘 미디어 그룹은 다루던 문제들이 변화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금세 지쳐갔는데, 닷페이스는 온라인 퀴퍼나 등 가시적인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 닷페의 팀 구조가 PD로만 구성된 것은 아닙니다. 닷페피플을 소화하는 멤버,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 솔루션디벨로퍼(닷페이스가 정의한 문제의 솔루션이 되는 캠페인을 설계하는 일) 등이 있어요. 컨텐츠와 캠페인에 집중하는 인력과, 그것이 아닌 멤버십이나 캠페인을 담당하는 업무가 분담되어 있어서 지금의 닷페이스가 가능 것 같아요. ‘닷(dot)’이라는 조직구조를 올해부터 운영중인데, ‘닷’은 하나의 목적을 가진 TF 같은 것입니다. 닷은 ‘루트 닷’과 ‘프로젝트 닷’으로 나뉩니다. ‘루트닷’은 상시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조직 단위입니다. 컨텐츠 제작, 캠페인, 멤버십 운영, 조직문화 등에 대해 ‘닷리드’가 목적에 맞게 멤버를 꾸려 분기별로 수행합니다. ‘프로젝트 닷’은 두 달 안에 끝날만한 프로젝트를 위해 운영됩니다. 온라인 퀴어퍼레이드나 앤드픽쳐닷(닷페의 미래를 꾸려보는 프로젝트) 등을 위한 프로젝트 닷이 운영되었습니다. 닷 체계를 통해 팀이 ‘팀을 위한 팀’이 아니라 목적을 위한 팀을 구성하게 되어 좀 더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 것 같아요. 돌아가며 리드를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Q. 처음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A. 원래는 ‘Here I Am’ 프로젝트와 텐가와 함께하는 ‘섹스 토크쇼’ 두 프로젝트를 위해 닷페에 합류했었습니다. 처음에는 3개월 정도 일하는 것이었는데, 닷페이스에 눌러앉게 되었습니다(웃음).
Q. 닷페이스의 프로젝트 중 인상 깊었던 작업으로 어떤 프로젝트들을 하셨나요? 어떤 점이 인상깊었는지 궁금합니다.
A. 아무래도 역대급은 온라인 퀴퍼가 아닐지…(웃음)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을 것 같다”, “이건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상상 이상의 임팩트를 가져왔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 이상으로 큰 변화를 가져와서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세탁소의 여자’ 프로젝트도 기억에 남습니다.
Q.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의 기획 계기와 의도, 개발 및 디자인 등의 준비 작업 과정, 론칭 이후 사람들의 (뜨거운) 참여와 반응에 대한 감상 또는 소회, 닷페이스 차원과 개인 차원에서의 어떤 의미의 작업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온라인 퀴퍼를 상상했던 그림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팀 내에 없었습니다. 개발자인 팀원이 퇴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저도 UI/UIX 디자인을 소화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고민했었어요. 그러다가 스투키 스튜디오를 알게 되었고, 스투키의 작업 중 월경컵 박람회에서 참가자가 자신의 캐릭터를 디자인하게 하는 것을 보고 여기서 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컨택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퀴퍼를 진행하기 전에는 이게 잘 될지 감이 하나도 안 왔었습니다. 스투키 스튜디오에서 성공의 지표를 어떤 것으로 잡을지에 대한 목표치를 물어봤을 때 1만 명 참여라 대답했었어요. 기존에도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지만, 많은 이들의 자발적인 참여 자체가 중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됐었던 것 같아요. ‘벽장 퀴어(클로짓 퀴어)’인 분들이 참여를 안 한다거나, 참여자가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린 뒤 주변 사람들의 거부감 때문에 올리지 않는다거나, 자신의 인스타그램 피드의 통일성을 해친다는 등의 이유로 참여를 안 해주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었어요. 하지만 너무 잘 되어 버렸죠. 그리고 이렇게 커스텀 캐릭터가 많을 것이라 예상을 못 했어요. 기대에 맞는 캐릭터가 없으면 참가자들이 직접 그리지 않을까 하긴 했지만, 기대보다 많이 참여했어요. 참여율이 올라가니까 커스텀 캐릭터도 많이 눈에 띄더라고요. (Q. 기억나는 커스텀 캐릭터는?) [재수의 연습장]의 재수 작가님의 캐릭터, <매드맥스> 캐릭터, 제가 좋아하는 DJ 요한 일렉트릭 바흐님의 캐릭터도 기억에 남아요. 기업이나 단체의 후원을 받아 아이템을 추가하는 것은 처음부터 기획되었던 것이었어요. 각자 커스텀을 해서 피드에 올리는 것은 각자가 잘하는 것이었지만, 아예 온라인 퀴퍼 서버에 올리는 것은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피드가 더 다양해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다행히 다양한 기업과 단체가 참여해서 좋았습니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가 참여한 경우엔 무료로 진행했어요. 닷페이스에서 진행한 온라인 퀴퍼에 다른 퀴어문화축제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했는데, 도리어 기존 퀴어문화축제들에 리스펙을 보낼 수 있는 방식이 되어 좋았습니다.
Q. 닷페이스 내부에서 온라인 퀴퍼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요?
A. 닷페이스 내부에서 ‘회고회의’를 진행했어요. ‘루트 닷’ 같은 경우엔 분기마다, ‘프로젝트 닷’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회고회의를 진행합니다. 기억나는 대로 말씀드리자면, 우선 협업 과정이 너무 쾌적했어요. 외주처럼 맡기게 되면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맞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스투키에서 이런 프로젝트에 최적화되어 있었고, 저희만큼 프로젝트의 의도도 확실히 이해해주었고, 감수성이 맞았기 때문에 좋았습니다. 어떤 문제 제기가 들어와 빠르게 수정했어야 했을 때 빠른 피드백이 가능했고, 의견교환 과정 중에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이 수월했습니다. 협업경험 외에도, 처음에는 서비스처럼 기획을 하고 접근했기에 놓치게 된 것이 많았던 것 같아요. 때문에 미처 고려하지 못해 오픈 이후 받은 피드백에 대한 회고도 했어요. 가령 웹 접근성이 시각장애인들에게 좋지 않았다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이를 생각하지 못하다가 접근성을 위한 대체 텍스트 추가했어요. 이런 피드백들을 경험하면서, 이후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매뉴얼이 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온라인 퀴퍼를 진행하면서 피드백을 받아 프로젝트가 좋은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메뉴얼과 프로세스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Q. 온라인 퀴퍼 디자인 작업을 하는 과정 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어떤 것이었나요? 또 작업에 많은 영향을 준 요소가 있었다면요?
A. 이번 경우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귀찮겠다 싶을 정도로 피드백 요청을 많이 했거든요. 덕분에 시각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혼자서 붙들고 있을 때는 상상력은 한계가 있더라고요. 때문에 닷페이스 동료와 스투키 스튜디오의 피드백이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 캐릭터를 만들었을 때 현실에 있는 사람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집중했어요. 사람 피부색을 그대로 쓰고, 윤곽선도 지금의 보라색이 아니었어요. 네온 색도 없었고요. 그러다가 스투키 스튜디오에서 “퀴퍼에서는 사람들이 안 해본 것을 해보고 싶어할 것”이라고 피드백을 주어 디자인 방향이 바뀌었어요. 그 이후로 퀴퍼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을까를 상상하며, 퀴퍼에 갈 것 같은 사람들의 옷차림을 떠올렸습니다. 드랙 아티스트 중에 ‘빛하믹주’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폴댄스 퍼포먼스에서 인어 의상을 입은 것이나, 요한 일렉트릭 바흐를 떠올리며 번개 머리를 작업하는 경우가 그랬어요. 단발머리 디자인은 루땐(퀴어 페미니스트 댄스 공간)에서 같이 춤추는 분의 머리를 떠올렸어요. 또한 퀴어 컬처에서 이야기가 많이 되는 캐릭터들에서 영감을 받은 것도 있어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 속 아르테미스가 ‘레즈퀸’으로 해석되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그러한 디자인을 제작했습니다. 제가 퀴어컬처와 가까운 사람이라 그러한 방향으로 상상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Q. 보이는 결과나 영향력에만 집중하여 프로젝트의 본질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헵시바님은 어떻게 프로젝트의 중요한 지점을 유지하나요?
A. 일단 운이 좋은 건 닷페이스를 소비해주는 분들이 올바른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잘 될수록 다양한 피드백이 들어와 더 정신을 차리게 되더라고요. 바빠지면 그냥 넘기게 되는 부분들이 많아지는데, 이번엔 피드백을 바로 소화해줄 수 있는 파트너도 있고, 저 스스로도 안전한 공간의 중요성에 대한 것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드백이 들어오면 바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어요. 프로젝트가 잘 되면 잘 될수록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고요. 피드백 받아서 좋아졌던 것이 많아요. 앞에서 얘기했던 접근성 대체 텍스트도 그렇고요. 또한 재수 작가님이 민머리 옵션이 없어서 직접 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민머리 옵션을 추가했어요. 사실 민머리 옵션은 원래 고려했었는데, 빠르게 오픈을 하려다 보니 빠지게 되었습니다. 코딩 방식에서 레이어를 얹는 다른 헤어스타일과는 다르게 민머리는 어떤 요소를 빼는 것이었기 때문에(스투키 쪽의 프로세스라 잘은 모르지만) 빠트리게 되었어요. 하지만 스투키 스튜디오에서 피드백을 빠르게 반영해주셔서 쾌적한 협업경험을 했습니다(웃음).
Q. 새로운 프로젝트닷에 들어가 계신가요?
A. 지금은 딱히 없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나 캠페인이 생기기 전엔 텀이 있을 것 같아요. 그 사이에는 디자이너로서의 업무, 가령 명함 리뉴얼이나 닷페이스의 영어 폰트 변경, 단체 티셔츠 제작 등의 소소한 일들에 당분간 집중을 하고 싶어요. 닷페이스가 특이하게 스타트업이면서 미디어이기도 해서 디자이너가 일당백으로 일하게 되는데, 때문에 모드 변경을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Q. 닷페이스 영상 디자인에도 참여하시나요?
A. 영상은 PD님들이 최대한 할 수 있도록 탬플릿을 제작하고 빠지는 편이에요. 닷페이스 영상이 모션그래픽이 많이 들어가지 않고 실제 영상이 많다 보니 영상 디자인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모션그래픽 담당 PD님이 있어요. 영상 안에 있는 것들은 제가 잘 건드리지는 않지만, 디자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PD님들과 협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Q. 닷페이스에서 새롭게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의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나요? 현재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A. 공식적인 방식은 프로젝트 닷을 기획해 썸머(조소담 대표의 닉네임) 대표에게 이야기하면 그것을 전체회의에서 발제하고, 팀원을 꾸려 킥오프 회의를 하면 시작돼요. 하지만 보통은 티타임이나 식사시간 때 나눈 이야기에서 많이 시작됩니다(웃음). 일상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잘 되어 프로젝트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온라인 퀴퍼의 경우에도 썸머 대표와 대화하다가 “온라인으로 퀴퍼하면 안 될까?”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진행되었어요. 가령 ‘내가 만드는 하루’ 프로젝트는 ‘N번방’ 컨텐츠가 나온 이후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작되었어요. 보통 썸머가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온 아이디어를 닷페이스 슬랙 채널에 공유하면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Q. 학생 시절 조소담 대표님께 멘토링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선생님'으로서 떠올리게 되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 굉장히 관계가 평등하고 편해 보여요. 팀 내에서 일을 같이하는 동료들과의 관계 및 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A. 위계가 다른 조직에 비해 엄청 없는 편이에요. 서로 닉네임으로 부르고, 반존대로 대화합니다. 원래는 닉네임 뒤에 ‘님’을 붙였어요. 그러다 재작년에 하자센터와 함께 미디어캠프를 진행하다가, 하자센터에서는 이름 뒤에 ‘님’을 붙이지 않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그것에 동참할 것을 요청받았어요. 그 이후로 ‘님’을 붙이지 않는 것이 사내 문화로 자리 잡았어요. 그 전에도 평등하긴 했지만, ‘님’이 빠지니까 더욱 친밀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썸머가 대표로서의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요. ‘대표’는 썸머를 놀리는 단어가 되었어요(웃음). 썸머가 상상하는 일들을 실현하는 것이나, 팀원들이 어떤 일을 맡는 것이 좋은지, 어떤 장점이 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에 노력을 많이 해요. 개인의 욕구가 회사에 의해 묻히는 것에 반대하고요. 모두가 썸머의 리더쉽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있지만, 이것과 위계는 별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 이후에 입사한 팀원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어요. 제가 항상 어딜 가도 나이가 가장 어린 편인데, 그 때문인지 더욱 편하게 지내는 것 같아요. 새로운 팀원이 ‘뉴비’라는 느낌은 있지만 흔히 말하는 조직 막내라는 느낌은 없어요. 도리어 솔루션디벨로퍼 팀원이 처음 왔을 땐 오히려 상사 같은 느낌이었어요. 저보다 프로젝트를 리드해본 경험이 많았고, 조직문화를 많이 경험해보신 분이었기에 그랬습니다. 그렇기에 온라인 퀴퍼를 리드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이런저런 고민들을 많이 해결해주었어요. 때문에 오히려 더 배우면 배웠지, 늦게 입사했기에 저 보다 아래의 직급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Q. 닷페이스에서 일하기 전과 달라진 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이전에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나의 모습은 새로운 것을 접했기 때문에 더 진심이게 되는 게 있었어요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주변 사람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닷페이스에 입사한 이후 사람들에겐 다양한 맥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을 계몽하는 것 밖의 방법들을 알게 되고, 그것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다른 방법을 찾게 되더라구요. 그 전에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며 절망했다면, 닷페이스에 오게 되면서 사람들이 바뀌는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되었고, 그것을 일로 소화하면서 조금 더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일상에서는 사람들을 굳이 바꾸려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변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힘을 가진 것 같아요. 사람이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며 그것을 원동력으로 삼게 된 것이죠.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게 사랑이라 생각해요. 저는 사랑이라는 말을 좋아해서 여기저기에 많이 대입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원동력을 가장 많이 얻는 것이 사랑이고, 닷페이스는 그러한 지점을 처음 알려준 곳이에요. 제가 추구하는 것을 배신하지 않으면서도 일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Q. 얼마 전에 사랑이라는 단어로 타투도 하셨잖아요. 사랑을 목적과 용도가 있다는 듯이 분류하는 사람들이 많고, 사랑에 위계가 있을 수 없지 않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친구들이 많아요. 개인적으로 사랑한다고 했을 때 에너지가 많이 나는데,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상대나 사건이나 사회적 현상에 대해 행동하고 (감내할 수 있는) 희생을 하는 것이에요. 헵시바님은 어떠신가요?
A. 어쨌든 사랑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잖아요. 사랑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말하는데,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것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사람들이 가진 사랑이라는 에너지를 믿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변하는 것이니까요. 사람을 믿는 것이 이 세상에서 너무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변화를 계속 목격하다 보니 사랑을 믿게 되었어요.
Q. 닷페이스는 사회 이슈를 마주하는 미디어인데, 절망을 가져다주는 장면을 목격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또 그럴 때마다 앞서 말씀하신 ‘사랑’을 잃기 쉬울 텐데 그러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주변의 친밀한 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해결해요. 저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을 토로하면서 회복하는 편인 것 같아요. 일할 때의 원동력과는 반대되는 것이긴 하지만, 다시 일할 힘을 챙길 수 있는 사랑이라 생각해요. 또 닷페피플들을 통해 얻는 힘도 커요. 닷페피플을 실제로 만나거나 보내주는 메시지를 보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것을 꿈꾸고 있고, 직접적으로 서포트해준다는 것을 알게 돼요. 내가 오늘 절망을 맛보았다고 해도 이 사람들이 같은 것에 대해 분노해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힘이 되더라구요. 분노 또한 사랑처럼 좋은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하잖아요. 같이 분노할 대상이 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사랑이고요. 결국 다시 사랑으로 돌아오네요(웃음).
Q. 앞으로 개인적으로 닷페이스 내에서 혹은 그 밖에서 기획/소망하고 있는 작업이나 방향성이 있다면요? 앞으로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A. 일단 닷페이스의 계획은 계속 문제를 진단하고, 거기서 변화를 만들어가는 케이스들을 만들어 사람들이 변화에 대한 효능감을 가질 수 있는 캠페인을 지속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개인적인 계획은 내년에 대학에 진학하는 것, 물론 붙어야 하는 것이지만(웃음). 닷페이스 내에서 루틴으로 하게 되는 일을 다른 팀원에게 넘기고, 학교를 다니면서 닷페이스 일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 고민 중이에요. 닷페이스가 아르바이트처럼 단순히 학교 다니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저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이 있어서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Q. 하고 싶은 말이나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온라인 퀴퍼 이야기를 즐겁게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특히 온라인 퀴퍼 작업을 하면서 충분히 올바르면서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닷페이스에서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들, 이를테면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올바르면서도 재밌을 수 있다 같은 새로운 것을 깨달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보통 올바른 것을 챙긴다고 하면 재미없다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온라인 퀴퍼 디자인을 하면서 피부색이나 헤어스타일을 실제 사람처럼 하려고 하는 것보다, 피부색을 노란색으로, 헤어스타일도 여성형과 남성형을 나누지 않고 디자인하니까 새로운 것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디자인에서 쓰이는 상상력과 정희진 선생님이 말씀하신 ‘인권판의 상상력’이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 상상력이 있으면 재밌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점점 성숙해지고 재미를 예전과 같은 것에서 느끼지 않게 되니까, 이런 것을 자꾸 발굴해내는 것에 대해서 자꾸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하반기에는 또 무엇을 할지 기대됩니다.□
닷페이스 https://dotface.kr/
닷페이스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JScFhgZV254qGkEOCJVB9Q
인터뷰 진행. 김세영(ACT! 편집위원)
- 영화를 보고 페미니스트 친구들,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에서 힘을 얻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배우고 찍다가, 지금은 미디어 교육을 기획˙진행하고 있습니다.
글쓴이. 박동수(대학생, 관객)
-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영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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