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 대한’,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중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청년에 의한’이었다. 지역 영상문화의 생산 주체로 청년의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ACT! 124호 미디어 큐레이션 2021.04.09.]
우리가 상영할 때 생기는 의미는
- <로컬 시네마를 위한 조건들> 기획전을 되돌아보며
임종우(ACT! 객원 편집위원)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속 20주년을 마무리하고 올해 잠정중단을 발표했다. 미쟝센단편영화제는 금년도 개최를 끝으로 행사를 종료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또한 아시아나항공의 후원 종료와 함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외에 소문 없이 사라지는 영화제가 적지 않다. 2020년 전까지 영화제는 해마다 양적으로 증가했다. 자연스럽게 이제는 줄어드는 시대가 왔나보다 싶다가도 무언가를 점검하지 못하고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영의 의미를 질문해본다. 사전적 의미는 영화 따위를 영사하는 일이다. 그럼 OTT는 영화를 ‘상영하는’ 걸까? 온라인 플랫폼에서 상영과 게시 행위는 어떤 점에서 다른 걸까? 극장을 경험하지 않는 세대가 출현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충분한 대답이 아닐 수 있겠으나 내가 생각하는 상영은 생산 주체와 참여 주체, 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시간과 공간, 상영작 배치하는 맥락, 그리고 실천을 지탱하는 자원과 자본의 성격이 맺는 관계들을 정교하게 사유하는 일이다. 조심스럽지만 지금 우리가 사라지는 건 선명해지는 위기의식을 외면하고 상영의 의미를 끊임없이 점검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대안의 대안
영화제 문화의 축소 혹은 위축을 바라보며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되기 전 경기도 성남에서 청년 문화활동가들과 진행했던 상영실험을 떠올렸다. 성남시 청년참여형 대안상영 프로젝트 <로컬 시네마를 위한 조건들>은 겉으로 보면 어린 사람들의 반항 같은, 비꼰다면 배불러 보이는 기획이었다. 성남에는 미디어센터가 있고 CGV 아트하우스 상영관도 있으며 그곳에서 다양한 독립예술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겠느냐고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대안의 대안”은 아무래도 조금 더 욕심을 부리는 일이다. 우리는 지역 미디어 문화거점의 관성과 편향성을 짚고자 했다. 예를 들어 미디어센터의 상영 프로그램은 시니어 이용자를 중심으로 지나치게 간편하게 편성되었다. 그곳에서 청년 영화감독과 관객의 고민은 종종 “아직 몰라서 하는 말”이나 “젊을 때나 하는 이야기”로 치부되곤 했다. 기특함을 넘어서는 진중한 수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을 몇 년간 겪으면서 청년에 대한,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대안상영을 계속 구상했던 것 같다.
<로컬 시네마를 위한 조건들> 기획전의 경우
‘청년에 대한’,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중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청년에 의한’이었다. 지역 영상문화의 생산 주체로 청년의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청년 문화활동가들과 함께 대안상영 워크숍을 열었다. 상영작 선정과 섭외, 상영관 대관, 비평과 관객과의 대화 준비, 기술 상영, 정산 모든 과정을 함께 경험했다. 꿈과 진로, 노동과 생계, 취미와 문화, 현실참여 등 청년세대 문제를 반영한 동시대 독립영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성남시 청년지원센터와 함께 거버넌스와 공동의 후속과제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특히 대안상영 워크숍은 두 개의 트랙으로 진행했다. 하나는 청년 영화예술인을 모집해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청년 커뮤니티 시네마를 발굴해 그들의 경험과 성장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전자는 “쟁점기획 스크리닝: 독립과 지속”을, 후자는 “커뮤니티 스크리닝: 즐거운 상상력”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그리고 모든 참여 주체가 접속하는 “지역영상문화 청년네트워크포럼”을 개최했다.
막연한 ‘다음’과 부유하는 과제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부대행사 취소 및 축소 개최를 차치하더라도 본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질문을 남겼다. 첫째, 독립, 지속, 즐거움, 상상력을 구성하는 의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둘째, 지역 미디어 문화 플레이어 전반의 성찰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데 실패했다. 이는 청년참여형 대안상영 프로젝트가 지역 내 프로그램으로 정례화되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지역 청년 내부의 다양성을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면서 기존 문화사업을 두고 문제시했던 편향의 문제를 일정 부분 반복했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이렇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부유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상영을 해야 할까? 우리에게 ‘필요한’ 상영은 무엇일까 질문해본다. □
글쓴이. 임종우(ACT! 객원 편집위원)
- 2018년부터 2020년 가을까지 ACT! 리뷰 담당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경기도 성남시에서 영상문화운동에 집중하는 중이다. 모두를위한극장공정영화협동조합의 운영위원이며 성남교육영화제 총괄 프로그래머이다. 대학교에서는 한국독립영화의 역사와 미디어교육 기획 방법론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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