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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발견한 ‘내일’ – 제 17회 EBS국제다큐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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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20. 9. 2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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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범위가 축소된 팬데믹 시대에 - 영화는 우리 곁에 없는 것을 곁으로 가져오고, 갈 수 없게 된 곳을 생각하도록 한다."

 

[ACT! 122호 미디어 큐레이션 2020.9.29.]


영화에서 발견한 내일

 제 17회 EBS국제다큐영화제

 

박동수(대학생, 관객)

 

▲  2020 EIDF 2020  포스터  ( 출처 : EDIF )

 

  코로나19가 찾아왔고 팬데믹이 선언됐다. 많은 영화들이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 개봉을 연기했고, 극장들은 임시휴관과 축소상영을 선택했다. 영화제들은? 국내외의 수많은 영화제들이 취소되고 연기됐다. 영화제 시즌을 알리는 인디다큐페스티발은 3월에서 5월 말로, 전주국제영화제는 일반 관객 상영을 포기한 채 온라인상영과 장기상영회로 대체되었다. 이후 온오프라인 병행을 택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한적인 오프라인 상영과 온라인 상영을 함께 한 미장센단편영화제와 서울환경영화제 등, 영화제들은 각자의 방식을 택해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코로나19는 영화제들의 진행을 가로막았다. <국제수사>를 비롯한 개봉예정작들이 개봉 연기를 발표함과 동시에, 8월 중순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인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전주 장기상영회가 취소되었고, 서울 장기상영회의 GV 행사 또한 취소되었다. 오프라인 행사를 치루지 못한 무주산골영화제는 시즌2라는 이름으로 준비 중이던 무주와 서울 상영을 잠정 연기했다. 서울퀴어영화제,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등은 퍼플레이나 웨이브 등의 플랫폼을 통한 온라인 개최를,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온오프라인 병행을, 부산국제영화제는 2주 연기를 택했다. 당장 다음 달의 상황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영화제라는 오프라인 기반의 축제는 온라인이나 가늠할 수 없는 미래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  EIDF D-Box  ( https://www.eidf.co.kr/dbox )

 

  다만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EIDF)만은 상황이 다르다. EBS 채널과 VOD 서비스인 DBox를 통해 진행되던 EIDF는 여느 해와 다를 바 없이 진행되었다. 물론 오프라인 상영은 진행하지 않았고, 제한된 방식으로 진행하려던 야외상영 또한 취소되었지만, 영화제 자체는 별 다른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주로 EBS 방영과 D-Box를 통해 영화를 관람하던 EIDF의 관객들은 여느 때처럼 영화를 관람했다. SNS 타임라인과 블로그를 통해 각자 집에서 관람한 영화의 감상을 나누고, 흥미롭게 본 영화를 여기저기에 소개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된 여러 영화제를 통해 봐왔던 디지털 풍경이 실은 EIDF를 통해 봐왔던 것임을 새삼 떠올렸다. ‘코로나19를 이미 대비하고 있던 영화제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그간 EIDF를 통해 경험한 온라인상영이 온라인으로 전환된 다른 영화제들을 접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춰줬다는 생각을 해본다.

 

▲  < 아쇼 >( 자파르 나자피 , 2019) ( 출처 : EIDF )

 

  그래서일까, 올해 EIDF 상영작 중 유독 관람에 대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아시아 단편선섹션으로 소개된 자파르 나자피의 <아쇼>는 이란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양치기 소년 아쇼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쇼는 시네필이다. 하지만 그가 사는 곳 근처에는 극장이 없다. 아쇼는 사촌누나가 태블릿PC에 담아준 파일들을 통해 처음 영화를 접했다. 그는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나체가 나오는 유럽 영화들이 외설적이라서 보기 싫다는 아버지의 말에, 아쇼는 아빠가 뭘 알아요? 아빠는 구로사와(아키라) 영화를 천 번이나 봤잖아요.”라고 대꾸한다.

  엠마 스톤 말고는 오스카를 받지 말았어야 한다는, <라라랜드>의 오스카 수상에 대한 아쇼의 논평은 꽤나 날카롭다. 염소와 양에게 배우 이름을 붙여주고, 액션 배우가 되기를 꿈꾸는 아쇼에게 영화는 세상을 향한 창이다. 숫양이 뿔로 들이받아 고장 난 태블릿PC, 외부를 향한 아쇼의 창이 닫힌 것과 다름없다. 외부를 볼 수 없는 사람은 내부의 규칙을 습득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할 수 없다. 아쇼가 말을 배우기 전부터 마을 어른들끼리 약속해버린 결혼은 아쇼와 아쇼의 약혼 상대를 서로를 밀어내는 양 극으로 만들어버린다. 가부장제적이고 폭력적인 전통은 외부를 꿈꾸게 하는 영화의 부재와 함께 아쇼의 삶의 범위를 제약한다.

 

▲  <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며 >( 크리스 브린가스 , 2019) (출처: EIDF)

 

  <아쇼>와 같은 섹션을 통해 소개된 크리스 브린가스의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며>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인 타임즈 시네마에 대한 작품이다. 영화는 은퇴를 앞둔 영사기사니이도 아바솔라와 중년의 여성 배우 브릿지 마틴. 두 사람의 기억을 통해 타임즈 시네마라는 장소와 필리핀 영화산업의 부흥기를 추억한다.

  비디오와 DVD,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등장으로 자리를 잃어가는 단관극장, 영화관을 중심으로 형성되던 상권에서 대형쇼핑몰에 들어선 멀티플렉스로 인해 변화하는 영화관 주변의 풍경, 사라지는 집단관람의 경험을 추억하는 영사기사, 영화관을 집처럼 드나들며 지금의 남편을 만난 추억.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타임즈 시네마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는 것이 되었다.

  브릿지 마틴은 영화관은 연인들에게 사랑의 증인 같은 곳입니다라고 말한다. 시네마(Cinema)는 영화와 극장을 모두 의미한다. 디지털 영화의 등장 이후,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가속화된 영화=극장 공식의 해체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며>는 개인의 기억을 공동의 기억으로 쌓아 올리며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할 것을 요청한다. 영화가 담아내는 것은 두 개인의 기억이지만, 그것들이 보여주는 것은 2019100주년을 맞이한 필리핀 영화의 역사, 그리고 그와 비슷한 모습을 공유하는 영화 경험의 역사다.

 

▲ < 시네마 파미르 >( 마틴 폰 크로그, 2019 ) ( 출처 : EIDF )

 

  ‘페스티벌 초이스: 글로벌섹션에서 소개된 마틴 폰 크로그의 <시네마 파미르> 또한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며>와 유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위치한 극장 시네마 파미르를 운영하는 스태프의 인터뷰와 극장을 찾는 관객들, 그리고 극장을 보여준다. 이곳의 사정도 마닐라의 타임즈 시네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관객들은 DVD를 통해 영화를 보는 것에 익숙해지며 극장을 덜 찾기 시작한다. 게다가 40년 가까이 이어지는 전시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관객들은 기본적인 극장 예절도 알지 못한다. 극장을 운영하는 다가르왈 장군은 관객들이 극장의 규칙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극장 스태프와 관객 사이에서 종종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증언한다. 카메라는 그러한 상황을 생생히 담아낸다. 때문에 전쟁이라는 극도로 폭력적인 상황에 놓인 관객들에게 단순한 오락시설이 아니다. 시네마 파미르는 오락시설임과 동시에 학교이자 공동체이고, 때로는 포탄을 피할 대피소가 된다. 정말이다. <시네마 파미르>에는 극장 밖에서 폭탄 테러가 벌어지자 극장 스태프들이 극장 문을 걸어 잠그고 관객들이 안전한 장소에 머무르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시네마 파미르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곳 그 이상의 장소다.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며>가 영화의 장소인 극장을 다뤘다면, <시네마 파미르>는 관객의 장소인 극장을 이야기한다.

 

▲ < 수녀님들이 물었습니다 >( 고든 퀸 ,  제럴드 테마너 , 1968)(출처: EIDF)

  극장 없는 영화제는 성립 가능한가? 사후적인 해석이지만, EIDF의 방식은 그것을 꾸준히 질문해왔다. 극장이 아닌 곳에서 극장을 사유하기란, 저 멀리 있는 것을 우리 앞으로 가져오는 영화의 본질에 가까운 행위다. 코로나19로 인해 <수녀님들이 물었습니다>처럼 행복에 대해 길거리의 타인들과 긴 대화를 나누는 풍경은 사라졌다. <JR의 벽화 프로젝트>가 다룬 참여형 미술 프로젝트는 앞으로 몇 년간 만날 수 없는 기획이다.

하지만 EIDF를 통해 본 영화가 전해오는 것들을 볼 수 있다. 편지글과 이미지를 주고받으며 기억과 역사를 쌓아가고 감정과 경험을 나누는 <해협>의 방식처럼, 집에서 본 영화의 경험은 각자의 타임라인을 통해 공유되고 중첩될 수 있다. 물론 오프라인에서의 대화와 극장이라는 공간의 경험을 온라인이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허니랜드>를 극장 스크린이 아닌 13인치 노트북 화면으로 관람한 것은 분명 아쉬운 일이다.

 

▲  < 허니랜드 >( 류보미르 스테파노프 ,  타마라 코테프스카 , 2019) (출처: EIDF)

 

  그럼에도 우리는 태블릿PC만을 통해 영화를 본 아쇼를 시네필이라 부르고 배우가 되고자 하는 그의 꿈을 응원한다. 지금은 갈 수 없게 된 극장이라는 공간을 떠올리며 마닐라의 두 사람과 추억을 나눈다. 극장이라는 장소의 의미를 되새기며 공동체 내에서 극장이 담당해 온 역할을 되새겨 본다. 삶의 범위가 축소된 팬데믹 시대에 영화는 우리 곁에 없는 것을 곁으로 가져오고 갈 수 없게 된 곳을 생각하도록 한다. “다시 일상으로라는 EIDF 2020의 슬로건이 아직은 먼 미래처럼 느껴지지만, 우리는 다큐, 내일을 꿈꾸다!”내일이 영화들이 담아낸 과거의 있음을 알 수 있다.

 

- 글에 언급된 EIDF 2020의 상영작들은 물론, 이전 EIDF를 통해 상영된 몇몇 작품들 또한 D-Box서비스 구독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글쓴이. 박동수(대학생, 관객)

-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영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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