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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다, 모이다, 엮다, 잇다 - 코로나19 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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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0. 8. 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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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의 신규 코너 ‘미디어 큐레이션’을 소개합니다. ‘작지만 큰 영화관’과 ‘작지만 큰 영화제’ 코너를 이어가며 미디어 콘텐츠의 배치와 매개 그리고 미디어문화와 공간의 관계를 보다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미디어운동의 또 다른 전략으로서 큐레이팅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꾸준히 만들고 싶습니다. - 임종우(ACT! 편집위원)

 

[ACT! 121호 미디어 큐레이션 2020.08.14.]

 

만나다, 모이다, 엮다, 잇다

- <코로나19 인권영화제: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셀프 리뷰

 

고운(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지난 3, 24회 서울인권영화제 준비로 부산함과 동시에 코로나19의 확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였다. 대남병원의 폐쇄병동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고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각종 영화제를 비롯한 행사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만나고 모이는 모든 자리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될 때였다. 그리고 331,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가들은 24회 서울인권영화제를 연기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에 들어갔을 때라, 연기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가들은 24회 서울인권영화제를 연기하는 이유가 단순히 위험때문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다들 공감했다. 이는 곧 다른 형태의 활동에 대한 의지이기도 했다. 원래의 방식으로 만나고 모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연결과 연대를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유보하게 하는 위험이나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그렇기에 더더욱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해야 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코로나19 인권영화제에 대한 기획은 사실상 24회 서울인권영화제 연기 논의와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A를 할 수 없으니 B라도 하자는 단순한 대안 제시는 아니었다. A를 할 수 없는 상황, 혹은 하지 않아야 하는 지금 이 상황을 모두들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 속에서 너무나 많은 불평등과 혐오, 차별을 발견했고, 이것은 코로나19로 갑자기 터져 나온 것들이 아님을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활동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서울인권영화제는 첫 온라인 인권영화제를 통해 코로나19의 장면들과 사람들을 엮고 잇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  오프라인 참여를 하는 활동가들이 세로로 긴 책상에 모여 앉아있다 .  온라인 참여를 하는 활동가들도 있다 .  책상 위에는 회의에 필요한 노트북과 화상 회의를 위한 아이패드가 놓여있다 .  온라인 참여를 하는 활동가와 오프라인 참여를 하는 활동가가 아이패드로 소통하고 있다 .

 

  온라인 활동은 단순히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장소 전환이 아니다. 온라인 신문고로 1만 명의 서명을 모으는 것과 광장이나 거리에서 1만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히 다르다. 오프라인 영화제가 온라인 영화제로 간단히 탈바꿈할 수는 없었다. 특히 인권영화제는 서로 만나고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 활동가들이 관객을 만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관객들이 서로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 여기에 나 말고 누군가가, 무언가에 공감하고 모였다는 그 사실 자체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의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 의지는 연대의 씨앗이 된다.

 

  한편 온라인 행사에 따른 실무도 오프라인의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상영작을 찾고 선정하는 기간도 길어졌다. 일곱 편 내외의 코로나19 상황과 관련된 영화를 찾기로 결정하고 서울인권영화제의 이전 상영작과 최근 국내외 영화제를 뒤져가며 영화를 추려냈다. 본격적인 난관은 코로나19에 따른 배급사와의 연락 지연, 온라인 상영에 따른 높은 상영료 등이었다. 심지어 몇 주간의 연락 끝에 결국 온라인 상영은 불가하다는 고지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코로나19와 인권이라는 주제도 어려웠다. 코로나19 인권영화제의 9개 상영작 중 8개의 프로그램 노트는 자원활동가들의 손에서 태어나고 완성되었다. 프로그램노트에서는 영화를 코로나19와 엮고, 인권의 시선에서 영화와 관객을 이어야 했다. 쓰는 사람들도 읽는 사람들도 괴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다들 처음 보고 겪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공부가 필요한 와중에 코로나19는 매일매일 또 다른 혐오와 차별의 장면들을 생산해냈다.

 

  라이브토크 기획도 쉽지 않았다. 기획 초반부터 가지고 있던 그림은 따로 흩어진 듯 보이는 코로나19의 상황들을 엮어내는 것이었다. 그림의 디테일은 물론 자주 바뀌었고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의 활동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고, 공동주최를 제안하여 함께 토크의 방향을 짬으로써 가닥이 잡혔다. 두 번의 라이브토크를 위해 인권활동가들과 수어통역사 등 총 14명의 사람들이 7번의 미팅을 온오프라인으로 가졌다.

 

  온라인 영화제에서의 장애인접근권도 중요한 고민 지점이었다.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는 관객을 위해 가능한 상영작의 한국수어영상 크기를 평소보다 키우고, 자막해설을 만들었다. 웹사이트의 모든 이미지에는 꼼꼼하게 대체텍스트를 넣었다. 라이브토크의 문자통역, 수어통역 은 어려웠다. 수어통역 배치는 서너 번의 미팅 끝에 고안된 것이었다. 화면을 따로 분할하지 않고 수어통역사를 출연진과 나란히 배치하여 1~2명의 출연자를 각각 담당하게 했다. 수어도 크게 보이면서 화자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현장감을 강조한 배치였다. 영화제 이후 한국농인LGBT와 진행한 장애인 접근권 피드백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부분이기도 했다.

 

  결국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가들은 세 달 동안 좌충우돌하며 간신히 영화제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잡아나가야 했다. 상영작 수급이 무사히 완료되었을 때 가슴을 쓸어내렸고, 9편의 프로그램노트가 완성되었을 때 다함께 환호했고, 라이브토크의 패널이 섭외되고 큐시트가 나왔을 때 비로소 설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풀린 일이 단 하나도 없었다.

 

▲ 무대 위에서 <코로나19 인권영화제: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라이브토크 1부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박한희 활동가, 김보석 수어통역사(한국농인LGBT), 랑희 활동가, 백수진 수어통역사, 희우 활동가, 진희 활동가, 남진영 수어통역사가 앉아있다.

 

  2주간의 코로나19 인권영화제: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를 무사히 마치고 난 후에는 서울인권영화제의 모든 활동가들이 모여 두 번의 전체평가회의를 가졌다. 코로나19 인권영화제를 준비하며 어려웠던 지점들과 아쉽거나 부족했던 지점들을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온라인으로 연대의 현장이 가능한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온라인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의 단순한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막연한 생각은 코로나19 인권영화제 이후 더욱 확실해졌다. 특히 한 공간에서 동시간대에 만나고 모이는 것에 대한 감각을 온라인에서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는 정말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다. 어떻게 하면 온라인에서 누구도 남겨두지 않고, 차별 없이 만날 수 있을 것인지, 모일 수 있을 것인지, 연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정답은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한편 이번 영화제에서 재밌었던 장면 중 하나는 여러 지역의 책방이나 모임 등에서 자체적으로 각자의 상영회를 만들어 함께 영화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영회의 후기나 사진은 온라인 영화제를 진행하면서 큰 힘이 된 것들 중 하나다. 코로나19 인권영화제가 물리적인 연대의 공간은 마련하지 못했어도 그 씨앗은 될 수 있었다는 의미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쌓인 이야기도 많고, 해야 할 이야기도 많지만, 슬로건 해제의 몇 문장으로 대신하며 잠시 마침표를 찍는다.

 

▲ 관객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온라인 영화제를 즐기고 있는 사진 9장이 모여있다. 한국농인LGBT의 활동가들이 카페에서 함께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 사진, 모모책방에서 상영회를 마치고 색색깔의 마스크를 쓰고 찍은 사진, TV 혹은 노트북을 올려두고 찍은 사진 등이 있다. 화면에는 라이브토크나 영화, 트레일러 등이 다양하게 있다.

 

  코로나19극복신규 확진자 0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의 종식만으로는 이 재난을 극복했다고 할 수 없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한 발 물러나는 것만으로는, 어떤 존재를 없애는 것만으로는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없다. ‘안전은 누구의 안전인지, 국가의 방역이 유보하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확진자와 사망자의 숫자에 가려져있던 사람과 관계, 장면과 사건을 말해야 한다. 차별과 배제로 인한 위기의 불평등이 우리 모두의 사회적 재난임을 외쳐야 한다. 바이러스가 사라진 세상을 넘어 차별과 배제와 혐오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떠올리고, 기억하며, 우리는 더욱 더 연결되어야 한다.”  


글쓴이. 고운(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싶어 항상 고민이 많다. 뽀미랑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임활동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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