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6개월이 겨울인 나라, 코로나 방역의 최 후진국인 미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 캐나다에서 겪고 있는 코로나 이야기”를 전합니다.
[ACT! 123호 Me,Dear 2020.12.16.]
코로나와 함께 캐나다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 입국한 지 두 달 만에 락다운, 3개월간의 백수생활
그렇지만 정부 지원으로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이진행
코로나19로 하루에 2000명 이상 사망자가 나오고 있는 바로 옆 나라 미국과 비교하자면, 캐나다의 코로나 방역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줄곧 영하권으로 내려간 11월 이후에는 캐나다의 코로나 상황도 다시 악화되고 있다.
감염자가 하루 400명을 넘어가면서, 캐나다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토론토는 11월 23일부터 다시 락다운(Lockdown)을 선언했다. 이로 인해 코로나 대 유행기였던 지난봄과 마찬가지로 필수 업종이 아닌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고 노동자들도 되도록 재택근무를 하게 된다. 극장, 공원 등 공공시설도 마찬가지.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던 올 봄의 상황이 대도시들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당시 3월 중순부터 6월까지 이루어졌던 락다운 기간에는 내가 사는 소도시를 포함, 캐나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필수직종인 의료, 식품공급 등을 제외한 모든 일터가 문을 닫았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직종은 모든 일을 재택으로 돌렸다. 관공서, 은행 할 것 없이 오프라인 사무실을 열지 않아서 아무도 공공기관에서 필요한 서류를 뗄 수도, 운전면허 시험을 볼 수도 없었다. 하다못해 대중교통인 버스에서도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앞문으로의 승하차를 금지시켰다. 덕분에 요금을 지불할 수 없어져서 자동으로 모든 버스가 무료로 변했다.
사람들의 일상이 완전히 변했다. 미용실에 몇 달 동안 갈 수 없고, 책이나 옷을 사러 갈 수도 없었다. 모든 종류의 식당에서 취식이 금지되고 오직 배달과 테이크아웃만 가능했기 때문에, 외식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던 남편은 일시 해고가 되었고,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도 수업을 전면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훨씬 일찍부터 코로나가 유행했으나 경제활동을 거의 다 열어놓았던 한국의 소식을 들어오던 나로서는 무척 놀라운 차이었다. 일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하지만, 캐나다 사람들은 큰 불안 없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캐나다의 코로나 시기 지원 정책
전면적인 락다운으로 인해 대량의 휴직과 실직이 발생했는데, 캐나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 시기를 극복했을까?
캐나다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계를 정부가 책임질 수 있는 구조 덕분이었다. 코로나19 판데믹에 대한 캐나다 정부의 기본 대처는 CERB(Canada Emergency Response Benefit, 캐나다 긴급 재난지원금)였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자리를 잃거나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수입이 적어진 사람은 누구나 1주에 5백 달러, 1개월에 2천 달러(한화 180만 원 정도)를 정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었다. 수입이 없어진 사람은 2천 달러 전액을, 수입이 줄어서 이 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차액을 통장으로 입금해준다. 가구당이 아니라 개인당 지원이다. 클릭 몇 번이면 신청이 가능하고, 별도의 증빙서류도 요구하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정부의 기조였다. 혹시라도 부정수급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추후에 세금환급 시기에 환불하게 하거나 이후에 벌금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CERB는 기본일 뿐,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는 추가 양육비 지원 및 교육비 지원이 있었고, 경력을 쌓거나 일자리를 찾지 못하게 된 대학생들을 위한 지원도 따로 있었다. 몇몇 주에서는 세금 환급 시기를 앞당겨서 갑자기 시작된 판데믹 시기에 목돈이 들어올 수 있게 했다.
놀라운 건, 이러한 혜택이 자국민만이 아닌, 캐나다에서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주노동자이던 유학생이던 관계없다. 작년까지 살던 호주만 해도, 영주권자 이상만이 지원금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유학생들과 워킹홀리데이 등 노동비자로 호주에서 영주권 없이 살던 사람들은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들었다. 그렇다고 자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일이 없이 비싼 물가를 감당하고 살았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를 비롯해서 올해 초 캐나다에 들어온 유학생들은 안타깝게도 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수에 속했다. CERB는 코로나로 일자리가 없어진 사람들을 지원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전년도에 5천 달러 (원화 450만 원 정도) 이상의 수입을 신고한 적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한 해 5천 달러의 소득 신고는 학교를 다니면서 약간의 아르바이트만 했어도 가능한 수치이다. 다만, 작년에는 캐나다에 살지 않아 소득도 없었던 우리는 이 혜택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상황을 실업자 신세로 버텨야 하나 암담하던 차에 EI (Employment Insurance benefits, 고용보험)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이 락다운 2주 전부터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시기이지만 이미 노동자 신분이 되었고, 노동자라면 누구나 고용보험을 받을 수 있다는 캐나다의 놀라운 정책 덕분! EI 역시 이 시기에는 CERB와 연계되어 월 4천 달러의 수입을 보장해주었다.
나와 같이 수업을 받던 친구들(대부분이 인도 학생들이다.)은 마트와 패스트푸드 식당, 피자집에 취업했다. 더러는 거의 풀타임으로 취업이 되기도 했는데, 이 시기 캐나다 정부에서 필수업종의 노동자 부족 현상을 막고자 필수업종에서 일할 경우 유학생들도 주 20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19 판데믹 시기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사업장들에서는 일은 늘었으나 일할 사람은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의외로 쉽게 일자리를 잡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소도시에서는 락다운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의 마트 노동자들이 인도계로 바뀌었던 것 같다. 원래부터 캐나다에 살던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CERB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힘들고 위험하게 일터에 나올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 아닐까?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노동자가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느끼면 일터에 나오지 않을 권리가 보장된다.) 반면, 유학생들은 코로나 상황이던 아니던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 그래서 백인들의 빈자리를 인도계 이민자들이 채우게 된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 사회보장이 강력한 국가의 씁쓸한 단면이기도 하다.
한편, 갑자기 영업을 하지 못하게 된 회사와 자영업자들을 위한 지원도 있다. 필수사업장이어서 계속 영업을 하지만 매출이 떨어진 업체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임금의 75%를 보존해주는 긴급 임금 지원, 코로나19로 영업을 중단하거나 매출이 70% 이상 감소한 소상공인(small business), 비영리단체 및 자선단체들을 위한 긴급 상가 임대료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충격 최소화를 위한 사회적 노력들
정부의 지원 정책 뿐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노력들도 눈에 띄었다.
온타리오 주에서는 전기요금을 오프-피크(off-peak) 요금으로 통일해 실질적으로 요금이 낮아지는 효과를 노렸다. 사실상 출퇴근이 없어진 상황에서 가정의 전기 사용량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이었다.
자동차보험 회사에서는 자동차 보험료를 감면했다. 캐나다에서는 자동차 보험료가 매우 높기 때문에 가계 지출에 있어 꽤 큰 비율을 차지한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내가 가입한 보험회사의 경우 모든 고객에게 10%의 할인을 자동으로 적용했고, 12월이 되자 50 달러짜리 수표를 보내주기도 했다. 락다운 기간 동안 주로 집에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차량을 사용하지 않다 보니 실제로 사고도 줄고 그래서 보험회사가 감당해야 할 비용도 많이 줄었기 때문에, 보험회사로서는 개별 고객들의 보험료를 조금씩 줄여줘도 손해 보는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추정된다. 하지만 기업에서 일단 받은 돈을 뱉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개인적으로 무척 놀라웠다.
사실 캐나다 자동차 보험회사들의 이런 움직임에는 정부의 기민한 대응도 뒷받침되어 있었다. 락다운 상황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타리오 주정부에서 보험회사들과 보험비 감면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 4월 16일에는 관련된 규정을 개정해서 보험회사들이 제도적으로 코로나 기간 동안 고객들에게 할인을 제공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고 한다. 한편,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 기업의 책임과 태도를 요구하는 분위기 역시 보험회사들의 할인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온타리오 주 재무부 장관은 “우리는 이 전례 없는 시기에 기업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나는 종종 기업들에게 지난 5년 간 고객이었던 사람들이 향후 5년간의 고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라고 말했다.
일부 집주인들은 렌트비를 감면해주기도 했다. 전세 없이 월세로만 살아가야하는 캐나다의 특성 상, 수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집값이 큰 부담이 되기 마련. 세입자들이 코로나 때문에 줄어든 수입을 이유로 렌트비 인하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집주인이 동의해줬다는 훈훈한 소식들이 더러 들렸다. 안타깝게도 우리 집주인은 이메일에 답을 주지 않았다. 이런 미담은 렌트비가 살인적인 토론토, 벤쿠버 등 대도시 발인 경우가 많았다.
급작스럽게 온라인 수업을 받게 된 학생들을 위해서 각급 교육청과 학교들이 노트북을 대여하고, 지역통신사의 협조를 받아 와이파이 지원 등에 나서기도 했다. 푸드뱅크 등 기존의 복지 체계는 학교와 연계되어 더 강화되었다.
캐나다의 코로나 대응 정책을 요약하면, 강력한 락다운을 통해 코로나 확산을 막되,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도록 지원하고, 기업과 건물주 등 민간 영영에도 일정한 비용 분담을 요구했다고 할 수 있겠다.
수입의 큰 부분이 세금으로 국가에 적립되고 이를 통해 전사회적인 복지를 추구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물론, 코로나 대응을 위한 어마어마한 지출은 국가의 재정에 큰 위협이 되었을 수밖에 없고, 이를 다시 충당하기 위해 어떤 조치들이 뒤를 이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이 힘든 시기를 모든 사람들의 손해와 희생을 어느 정도 감수하면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필수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잊지 않으면서.
이 와중에 상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정부의 대책 수립과 후속 조치들이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평소에 캐나다의 행정 처리는 엄청나게 느리다. 모든 것이 빨리빨리 이루어지는 한국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속이 터질 정도.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의 대처는 매우 기민했다. 총리가 매일 TV 브리핑을 통해 현재의 상황과 대책들에 대해서 발표했고, 각 주 정부 역시 매일 상황을 업데이트하고 각종 지원정책들을 내놓다니, 이럴 땐 참 부지런하구나, 싶었다.
1월에 다시 시작될 나의 세 번째 학기 역시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소도시 역시 어느 정도 완화되었던 거리두기 단계가 다시 강화되고 있다.
2021년 초 부터 온타리오 주에서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고 한다. 의료인을 시작으로 백신 접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나면, 우리는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긴 겨울, 어디에 있던, 모쪼록 모두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길! □
글쓴이. 이진행
- 전 미디액트,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활동가, 카페사이 운영. 캐나다에서 디지털 마케팅을 공부하는 디지털 노마드. 캐나다에 들어온 지 2개월만에 코로나19 판데믹을 만나 집콕 중.
▮ 캐나다 정부의 다양한 지원 정책은 주토론토총영사관 문서에서 볼 수 있다.
▮ 참고 사이트
- 온타리오주정부 코로나 현황 https://covid-19.ontario.ca/
- 온타리오주정부 홈페이지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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