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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기사 없는 영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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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0. 8. 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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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상황이 일상에 스며들기 이전에 비해 확연하게 극장에 가지 못하고 있지만 간간히 우리 곁에 찾아오는 개봉작과 영화제를 위해 극장을 찾곤 하였습니다. 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그 순간은 여전히 행복하고 더 나아가 감사하게 느껴졌는데요. 작품과 관객이 만나게 하는 수많은 요소들 가운데 영사기사로서의 역할과 노고 역시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엠마 영사기사께서 영사기사로서의 업무 환경과 경험, 더 나아가 변화하는 상황에 따른 고민을 전해주셨습니다. - 김세영(ACT!편집위원)

 

[ACT! 121Me,Dear 2020.8.14.]

 

영사기사 없는 영사실

 

엠마 (영사기사)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영사기사가 되기 전까진 이 직업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 말곤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었다. 그러니 내가 이 직업을 갖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 개인 사정으로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된 때였다. 천성이 노동자라 구인구직광고를 닥치는 대로 찾던 무렵 운 좋게 영사기사 모집공고를 발견했다. 체력이 바닥나 있던 내 상태로도 도전해 볼 만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사실 아는 바가 거의 없는 분야여서 약간의 환상도 있었다. 뭔가 있어 보이는 직함이다, 영화는 실컷 볼 수 있겠구나.

 

  면접 당일 난생처음으로 영사실이란 곳엘 들어갔다. 첫 인상은 곧장 뛰쳐나오고 싶었다. 엄청나게 시끄러웠고, 어두웠고, 답답했다. 여기서 종일 일하면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았다. 실장님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 금방 익힐 거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격증도 없고 직업에 대해 아는 바도 없는데다 소음에 기가 팍 죽은 앨 어딜 봐서 채용하려 했는지 의아하기도 하다. 아무튼 기본적인 예의만 대충 갖추고 나가려던 내 마음을 잡아 끈 건 거대한 영사기들도, 일이 쉽다는 실장님의 말도 아닌(쉽지도 않았다!) 책상 위에 나란히 놓인 세 대의 모니터였다. 하나는 색색의 기다란 막대기들이 기차를 이뤘고, 하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대문자 영어로 가득 찬 엑셀 파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상영관 CCTV였다. 굉장했다. 구인구직란에서 내가 느꼈던 약간의 환상이 완전히 충족되는 광경이었다. 나는 잘 할 수 있겠다고 했다. 자격증 준비도 바로 하겠다고 했다. 묻지도 않은 개봉작 감상평도 떠들었다. 내가 영화를 즐겨 본다는 걸 어필하면 좋게 봐줄 것 같았다. 집에 돌아가선 그제야 영사기사에 대해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정보가 별로 없었다. 영화를 상영하는 사람이면 영화관의 핵심이 아닌가? 그런데 뭐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열이면 여덟 정도는 <시네마 천국>을 들먹였다. 유튜브엔 필름 롤이 등장하는 영화 씬, 영사기 구조를 영어로 설명하거나 외국인이 영사기 앞에서 떠드는 게 다였다. 베일에 싸인 직업이구나, 세상에 이것도 멋졌다. 체력이 정상치로 돌아와 원래 자리로 복귀하기 전까진 계속 이 일을 해야겠구나. 결심이 선 다음 주에 떨리는 첫 출근을 했고, 어쩌다 보니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영사기사로 일하고 있다.

 

  이렇게 오래 몸담게 된 가장 큰 계기는 근무시간 대부분을 혼자 일 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서비스업의 꼭짓점 어드메에 있을 영화관에서 오롯이 기계와 나만 있을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행운이다. 물론 그렇게 여기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옆 사람의 말도 잘 들리지 않는 소음,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운 기계 먼지와 어둠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면 시끌벅적하면서 온갖 냄새로 가득 찬 로비를 지나 영사실로 들어갔을 때의 어떤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동굴 같은 공간에 짱박힌 영사기사의 하루는 이렇다. 영화관 운영 특성상 교대 근무다보니 아침 일찍 출근할 때도, 오후 늦게 출근할 때도 있다. 일과는 언제 출근하느냐에 따라 비슷하면서 조금 다르다. 아침엔 영사기 부팅을 시작으로 스케줄 편성 확인, 광고편성 시간 확인, 시영하면서 사운드와 상영관내 컨디션 확인으로 첫 회차 상영 전 점검을 한다. 본 상영 중엔 스케줄이 맞게 짜여 있는지, 광고 시간이 틀어지진 않았는지, 화면과 소리는 잘 나오고 있는지 체크한다. 하루에 한 번 꼴로 먼지에 더럽혀진 바닥을 닦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반사경과 영사창을 닦고, 서버 하드점검을 하고, 램프 파워를 확인한다. 두어 달에 한 번씩은 수명이 다 한 램프와 영사기 필터를 교체한다. 한여름이나 한겨울같이 외부온도의 간섭이 심할 땐 영사기 내부온도를 수시로 체크하며 영사실 내 온,습도를 조절한다. 마감 시엔 익일 스케줄을 서버에 입력하고 영사기를 끈다. 이렇게 얘기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정말 간단히 설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 영사기를 다루는 것 역시 대체로 쉬우나 파고들면 어렵다.

 

  디지털 상영 과정은 어떨까. 필름시대에서 디지털로 넘어온 후 무거운 필름을 나르는 육체노동이 사라졌을 뿐 과정은 절대 간단치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디지털 영화를 영사하기까지의 작업을 나열해보자면, TMS라고 중앙 제어 시스템이 있다. 외장하드에 담겨진 영화가 입고되면(이것을 DCP라 부른다) TMS에 업로드 한다(최근 들어 가끔 외장하드가 아닌 네트워크를 통해 영화를 다운로드 받는 경우도 있다). TMS에 업로드 된 영화는 이제 CPL이라 불린다. 이것을 상영할 각 관 서버에 뿌린다. 그런 뒤 파일 내 오류 유무를 파악할 검증 작업을 1차적으로 완료하고 원격 큐 프로그램을 만든다. 이는 자동으로 램프와 다우저를 열고 앰프 채널을 조정해 광고 및 영화를 시작케 하고, 영화가 끝난 후 자동으로 딤머등이 켜지며 다우저 및 앰프 채널을 자동으로 종료하는 일종의 명령어인데 우리는 SPL이라 부른다. 완성된 SPL은 다시 해당 영화가 들어있는 서버에 재배포한다. 간혹 영화가 입고될 때 크레딧이 시작되는 시간을 알려주기도 하는데 (아마) 대부분의 영사기사들은 화면비, 음량 및 딤머등이 켜지기에 적절한 시간을 직접 확인한다. SPL작업을 끝으로 상영할 수 있는 영화도 있지만(보통 비영어권, 독립영화가 이에 해당된다), 다수는 KDM이라는 걸 추가로 배포해야 상영이 가능하다. KDM은 암호화 코드로 잠긴 영화를 한시적으로 틀 수 있게끔 해주는 조치인데, 보통 7일에서 한 달 단위로 재배급된다(기간이 종료된 KDM은 상영이 불가하다). 상영 준비가 끝나면 풀 테스트로 자막, 화면, 음향 등의 세부적인 확인을 거친다.

 

  가장 이상적인 풍경은 영사기 하나에 붙어 앉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거겠지만, 동시 다중 상영하는 멀티플렉스의 특성상 그럴 수 없기에 통합 모니터링 시스템을 적극 이용한다. TMS는 앞서 설명한 관별 영화 배포작업과 스케줄 입력 이외에도 전반적인 서버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원격 컨트롤부터 영화 자동 시작신호가 옳게 전달되었는지, 램프 시간, 프로젝터 내 각종 보드의 온도 확인 등이 가능하다. 좀 더 정확한 모니터링을 위해 앰프 원격 프로그램, 프로젝터 원격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고, 상영관 내 설치된 CCTV도 수시로 체크한다.

 

  그렇지만 숱한 스마트폰, 노트북, PC의 오류와 같이 영사기 또한 디지털식이기에 예기치 못한 오류를 피할 순 없다. 나 또한 크고 작은 영사사고를 겪어 봤다. 기계 오작동부터 어처구니없는 실수까지 종류도 꽤 다양하다. 어떤 건은 운 좋게 바로 해결해 문제없이 넘어가지만, 어떤 건은 유지보수 업체조차 원인파악을 못 할 때도 있다. 영사사고 앞엔 장사 없다. 모두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내 실수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감시창을 통해 꽉 찬 객석을 내려다보노라면 몸속에 흐르는 피가 통째로 수직 하강하는 느낌이 든다. 경력 30년이 넘는 실장님도 영사사고가 나면 당황한다. 가끔씩 악몽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영사기사에 가장 적합한 체질은 기관지염 감수도, 비타민D 장기복용도, 무너진 바이오리듬을 추스르는 것도, 이명에 익숙해지는 것도 아닌 영사사고에 의연할 수 있는 강심장일지 모르겠다.

 

  여기까지가 몇 년 전의 일반적인 영사기사 이야기이다. 그럼 요즘의 영사기사는 어떨까. 아니, 이젠 영사기사라고 잘 불리지도 않으니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되겠다. 통합 운영이라는 말이 처음 들렸을 땐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영사실에 사람을 두지 않는다는 건 당시만 해도 레이저 영사기가 곧 도입된대!’만큼 머나먼 얘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자본을 주무르는 대기업의 추진력은 놀라웠다. 영사실은 무인화 되었고, 영사기사들은 매니저급이 되어 매표에 가서 표를 팔거나 매점에 가서 팝콘을 팔았다. 그만큼 인력이 많이 줄었는데, 이 과정에서 베테랑 영사실장급들이 다수 사표를 던졌다. 매니저들은 기존 할당된 업무에 영사기까지 다뤄야 했기에 벼락치기로 자격증 공부를 했다. 기능사 시험장엔 어디 극장 매니저, 어디 극장 점장들로 가득했다. 그 해 곧 사라질 직업 1순위란에 영사기사가 있었다. 하지만 현장 체감상 벌써 사라지고 허울만 있는 듯 했다. 흉흉한 시기였다.

 

  지금도 그때와 다를 바 없다. 다만 이런 상황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뿐이다. 코로나19에 직격타를 맞은 곳이 극장이라지만, 우리는 이미 몇 년 전에 통합이라는 큰 파도를 겪어서 그런지 작금 사태가 심각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손님이 끊긴 만큼 근무 시간도 줄어서 내 손에 떨어지는 월급마저 적어지는 암담함이 추가된 정도. (7월부터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는 있다) 요즘엔 일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현장에서 보내며 출근하자마자 잠깐, 다음 근무자와 교대하기 전 잠깐, 그리고 퇴근 시간을 늦춰가며 밀린 영사업무를 본다. 분명 틈틈이 영사기를 만지지만 시간이 없어 꼭 필요한 일만 하기에 한계가 있다. 전처럼 영사기에 집중할 수 없다. 내 작업이 한참 남았어도 입장을 받으러 로비로 뛰어가야 한다. 영사기에 경고등이 깜빡이는 걸 퇴근할 때까지 못 본 날도 있다. 영사사고로 다급히 나를 찾는 무전에 콜라를 뽑다가 전력 질주한 날도 있다. 필름에서 디지털, 그리고 디지털 자동화 시스템에 밀려 인력 감축의 우선지목을 받은 이 자리를, 당장 다음 달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 직업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졸지에 이리저리 떠돌게 된 거다. 그래서 해가 지날수록 예전만 못한 마음가짐으로 일한다. 결은 조금 다르나 아마도 이 기분은 가중된 업무로 허덕이는 운영팀 또한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물론 영사실과 영사팀이 온전히 유지되며 영사 아르바이트생까지 두는 극장도 있다.)

 

  영사기사는 정말 곧 사라질 직업이 될까? 슬픈 일이지만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 아직은 무인화 디지털 운영시의 무사고를 보장할 수 없기에 유예되고 있을 뿐이다. 시스템을 욕하기엔 상대는 너무나 커다란 집단이다. 자본주의로 똘똘 뭉친 한통속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영사기사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정부 지원조차 제대로 못 받아 영사기사가 아닌 극장 자체의 존폐위기가 허다한 독립극장으로? 아니면 영사기사 없는 멀티플렉스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 새 직업을 찾는 게 정녕 가장 이상적일까? 영사실 밀대가 삐쩍 마를 때까지 현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영사기사. 매니저로 불리는 극장이 더 많은 영사기사. <시네마 천국>을 떠올리며 우리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글쓴이. 엠마

- 잘생기고 앙칼진 고양이와 같이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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